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18화 (18/175)

# 18

<18화>

우희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런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말아요. 가능할 것 같아요?”

우희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현당이 고개를 들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점 하나가 보였다. 새였다. 커다란 매가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감시가 당신 말고 또 있었군. 당신 혼자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 그럼 마음대로 하라고.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말 테면 말고!”

현당은 별 상관이 없다는 듯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걷는 자세가 엉성했다. 약간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두 다리를 벌리고는 양 발은 완전히 팔자로 비틀어서 어기적거렸다.

무언가 불안감을 느낀 우희가 현당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왜 그러죠?”

현당은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뒤만 돌아보았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아까 먹은 꼬치가 무언가 잘못되었나 봐. 급해…….”

우희가 비꼬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날름날름 잘 집어먹더라니…….”

현당이 한 손으로 엉덩이 사이의 계곡을 막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산은 뒤에서…….”

괄약근에 힘을 주느라 잔뜩 불거진 목소리가 들렸다.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던 소동이 다 안다는 표정으로 우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같이 들어갈 건가요? 두 분이 같이 가시면 깨끗하고 좋은 곳이 따로 있는데…… 거기는 닷 푼이면 되거든요. 싸지요?”

인분 썩는 내가 코를 찔렀다.

우희는 한 손으로 코를 싸매고 고개를 저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급하다 한들 뒷간에서 정(情)을 통하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불쾌했다.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보다니!

“둘이 가든 혼자 들어가든 한 푼이오.”

소동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우희는 엽전을 꺼내 소동이 내민 손 위에 동전을 얹었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우희의 뒷골을 후볐다.

파하아아…….

돌개바람이 일었다 가라앉은 순간, 우희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어어어…….”

멍하니 손을 내밀고 있는 소동의 신음 소리만 그 자리를 채웠다.

*    *    *

“어! 어? 어…….”

바지를 무릎까지 끌어내린 현당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우희가 떡하니 현당 앞에 서 있었다. 차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현당은 그녀만 쳐다보았다.

눈앞에 격랑이 있었다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더니, 우희가 나타났던 것이다. 급한 볼일을 보려던 차인지라, 현당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 이곳은 한 사람이 혼자 사용하는 독실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공공용이었다. 문도, 담도 없이 바닥에 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앉을 만한 구멍만 나란히 열을 지어 뚫려 있고, 적당한 구멍마다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덕분에 여기저기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갑자기 나타난 우희에게 쏠렸다. 그리고 지금 우희 앞에 서 있는 현당은 가장 늦게 들어온 덕분에 바지를 다 벗고 이제 막 자리에 주저앉으려던 상태였다.

한눈에 현당의 모든 것이 우희의 시야에 들어왔다. 힘없이 축 늘어진 현당의 분신까지 다 보였다.

우희의 볼이 빨개졌다. 눈시울이 다 뜨거워졌다.

흉측한 물건을 봐서 얼굴이 빨개진 게 아니다. 일이 급해 뛰어들어 온 현당을 믿지 못하고 감시하려 뒤쫓아 온 것이 들켰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기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른 것이다.

우희는 넌지시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차례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사방을 뒤졌다. 기왕 들어왔으니, 안에 있는 사람 중 의심이 갈만한 사람이 있는가 한 번 확인을 해 본다.

하지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자세로 자신을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들어왔으면 볼 일이나 보지, 왜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훑어보냐고 한마디씩 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목덜미까지 새빨개졌다. 화끈거려서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밖에서 기다릴게요.”

우희는 속삭이듯 대답하며 밖으로 나갔다.

*    *    *

조금 지나지 않아 현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순간에 현당의 옷에 벌써 냄새가 배었는지 현당이 나타났다 하는 순간에 인분 썩는 독특한 향기도 같이 풍겼다.

우희는 저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잘 봤어?”

“뭘요?”

“내 거 말이야. 어때? 듬직하지 않아?”

우희는 다시 얼굴이 발개졌다.

놀리는 말이다. 봤다고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도 나를 못 믿고 거기까지 쫓아왔냐고 조롱하는 어투다.

“나중에 우희도 보여줘야 해…….”

“뭘요?”

우희는 돌아보지도 못하고 소리만 질러댔다. 얼굴을 돌렸다가는 지금 달아오른 볼을 들킬 것만 같았다.

“우희 것 말이야. 그래야 공평하지.”

우희는 대꾸를 하려다 말았다.

뭐라고 말하면, 현당은 계속해서 우희를 놀릴 것이 뻔하다.

“왜 대답 안 하지? 보여주기 아까운가? 오호! 여태껏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군. 그렇다면 그것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우희는 경험이 없다는 소리? 허억. 이렇게 놀라울 데가! 강호 여인은 정조나 그런 것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 아닌가? 아니면, 우리의 남부맹의 문사만 독특하다는 말인가?”

계속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희는 현당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다. 오로지 듣기만 하면서 앞을 향해 걸어갔다. 뭐라고 한마디 하면 또 그것을 되받아칠 현당이었다. 이럴 때는 철저히 무시를 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다 문득 좋은 답변이 떠올랐다.

오늘 오전에도 현당이 울며불며 사정하게 만들었다. 남자라면 그 고통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 이상의 고문은 없는 법이었다.

“저러다 잡히면 안 아픈가 몰라…….”

우희는 자신이 낼 수 있는 한, 최대한 냉랭한 목소리로 현당에게 쏘아붙였다.

조용했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이겼다. 정통으로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하며, 우희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까지 현당이 말을 안 할까 궁금했다.

‘하나, 둘, 셋…….’

열 까지 헤아린 후 우희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휙.

소리가 나도록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히 따라오고 있어야 할 현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갈라지면서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없었다. 불과 열 걸음 사이에 바로 등 뒤에서 이죽거리던 현당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후두두두…….

우희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옆 건물 지붕 위로 신형을 날렸다. 하얀 봉황이 날아 내리는 것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처마를 밟고 올라섰다.

보이지 않았다. 현당의 모습은 사방이 아니라 팔방 어디에도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삐이이이…….

우희는 손가락을 모아서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가 천지에 메아리쳤다.

“모두 동작 그만!”

우희가 외치는 한마디의 명령이, 소리가 전해지는 공간 안에 위치한 모든 사람들의 귓전을 때렸다. 그것도 내공을 실어서 전한 소리였다. 천상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전방!”

“아직 안 오셨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멀리서 대답이 들렸다.

“후방!”

“앞서 지나가셨습니다.”

또 지나온 방향에서 대답이 들렸다.

“우측방!”

“안 나타나셨습니다.”

우희는 양손이 저렸다. 긴장 때문에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좌측방.”

“역시 안 나타났습니다.”

“아아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바로 등 뒤에서 사라진 현당은 어느 방향으로도 가지 않고 사라졌다. 잃어버린 것이었다.

한 가닥 기대를 안고 마지막 감시를 불러보았다.

“감시견은?”

컹컹컹컹…….

뒤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실패입니다. 공자께서 변소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 독한 냄새 때문에 개들이 공자의 종적을 쫓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찾아. 무슨 일이 있어도 공자를 찾아. 일각 안에 남궁 공자를 찾지 못하면 내 목숨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목숨도 없을 줄 알아라. 아니, 내가 죽기 전에 내 손으로 먼저 너희들의 목부터 비틀어 버리리라. 장터에 늘어진 생닭처럼!”

“존명…….”

우희의 목소리와 함께 대답이 터져 나왔다.

*    *    *

우희는 정신없이 달렸다. 뒤지고 또 뒤졌다. 샅샅이 찾고 있는 구석 없는 구석 안 들춘 곳이 없었다.  장터를 몇 바퀴를 돌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간혹 옷 색깔은 달라도 비단옷을 걸친 놈이 있으면 얼굴을 뒤집어 보았고, 현당과 비슷한 체형의 사람이 있으면 발가벗기기까지 했다. 인피면구를 썼을 수도 있고, 옷을 갈아입었을 수도 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동원해서 현당을 찾아 헤맸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현당을 얕잡아 봐도 너무 얕잡아 봤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닌데…….

벌써 해가 지고, 하늘에는 별들만 가득했다.

‘아아…….’

우희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그때였다. 남부맹에서 같이 나온 사역(使役)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일이 생겼습니다.”

우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현당이 사라졌는데, 또 일이라니…….

사역이 고갯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모용가 사람들이었다. 그들 뒤로 가마도 보였다.

이제는 뒷덜미가 당겼다. 혈압이 올랐다. 나는 듯이 달려온 가마가 우희 앞에 멎었다. 얼마나 서둘러 달려왔는지, 강호인들로 구성된 가마꾼들의 호흡이 가빴다.

가마꾼이 문을 열 사이도 없이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먼저 내렸다.

우희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은 커질 대로 커지고 있었다.

모용미였다. 남궁적의 약혼녀인 모용미가 어디에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우희 앞에 나타났다.

우희는 애써 침착한 척 웃음을 지어 보이며 모용미를 맞았다.

모용미는 우희는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를 찾고 있었다. 그 ‘누구’가 누구인지 뻔했지만…….

“적 가가는 어디 있는지요?”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희도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궁 공자는 이곳에 안 계십니다. 찾으시려면 남궁가로 가시는 것이 좋을 듯한데요.”

모용미의 말이 빨라졌다. 남들 앞에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다. 그만큼 흥분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들었어요. 아니,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적 가가가 지금 여기 있나요?”

모용미의 눈빛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울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남부맹의 문당(文堂) 소속의 사역들이 이곳에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궁 공자께서 의식을 잃은 후, 공자를 뵌 사람은 오로지 문사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사께서 사역들을 이끌고 이곳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공자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모용 낭자. 아직은 그 사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닙니다. 잠시만 참으시면 곧 남궁 공자께서 직접 모용 낭자를 찾아 방문할 것입니다.”

참다못한 모용미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요. 정무련의 포송 대협은 적 가가를 만나 뵈었다고 하는데, 난 적 가가에게 변고가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 아무 소식조차 들을 수가 없었어요. 적 가가라면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해요…….”

우희는 사면초가가 무슨 뜻인지 절감을 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위치가 딱 그 상황이었다.

그저 자신에게 매달려 울먹이고 있는 모용미를 달래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사역 한 명이 서둘러 달려왔다. 반가웠다. 무슨 소식인지 모르지만, 부르기도 전에 달려오는 것을 보니 분명히 전할 말이 있을 것이다. 꼭 그가 이 위기에서 구해줄 것만 같았다.

“공자께서는 지금 남궁가 앞의 찻집에서 문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아아…….”

우희는 절로 두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안겨서 울고 있는 모용미 때문에 우희는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제10장 그 시각, 현당은……

두 시진 전.

우희가 다가오며 현당의 팔짱을 꼈다.

“그럼 나갈까요? 약속은 지켜야겠지요.”

현당의 눈이 빛났다.

“약속…… 지키는 것인가?”

“그럼요. 단, 해가 지기 전까지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항상 저와 동행을 하고 말이지요.”

그 시각, 현당의 머릿속은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하고 있었다.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통보하는 것을 보니, 내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로군. 그렇다고 안 나갈 수도 없고. 안 나가겠다고 하면 앞으로도 못 나갈 거야. 한 번 손에 쥔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법. 나가는 거야. 담만 넘으면 그곳은 내 세상. 시간은 너희들이 정했을지 모르지만, 장소는 내가 정한다.’

“그럼! 그 정도는 나도 보장을 해줘야지. 오랜만에 세상을 나가보는군. 어서 가세.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현당은 자신의 팔짱을 낀 우희의 손등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    *    *

현당은 신이 난 척했다. 그래야 사심이 없을 거라고 우희에게 확신시킬 수 있었다. 사실 신이 나기도 했다.

드디어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비록 우희가 바로 옆에서 감시하고 있고, 날이 저물기 전까지 돌아가야 한다지만, 그래도 얼마 만에 밖으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서서히 넘어가고 있는 태양이 보였다. 저절로 남은 시간이 계산되었다.

‘대략 한 시진 반…… 그 안에 탈출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야 하고, 그들과 선이 닿아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현당은 마치 처음 장터에 구경나온 아이처럼 이리 뛰고 저리 기웃거렸다. 안 들리는 점포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현당은 들리는 점포마다 쌓여 있는 물건을 한 번씩 뒤집었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인들의 머릿속에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개중에 현당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이러는 이유는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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