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화>
우희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네 추리도 거기가 한계로구나 하는 듯했다.
“포송이 남궁 공자라고 확인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초식과 내공이지요. 초식은…….”
“그래서 내가 사흘 내내 기지일보만 했던 것이군. 그럼 내력은?”
“내력은 급한 대로 대법을 시전 했지요. 당신이 말하는 그 주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법? 오호……. 비밀이라는 말이지? 더 알려 들지 말라는!”
우희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포송도 대놓고 내력으로 당신을 시험하려 할 수는 없지요. 어차피 비무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까 눈에 띄는 행동은 서로 자제해야 할 테니까요.”
현당이 자세를 바로 했다.
“의자라도 가져다 앉지! 이렇게 올려다보려니 고개가 아픈데…….”
우희가 의자를 끌어다 현당 앞에 앉았다.
“자, 겉으로 드러나는 대결은 할 수 없는 상태. 그럼 포송은 어떻게 했을까요? 결국은 남몰래 내력을 주고받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럼 나도?”
“예.”
“그래서 포송도?”
“예.”
“그러기 위해 대법을 시전 했고, 그 대법의 부작용으로 나는 구토를 했다?”
끄덕끄덕.
“예에. 잘 아시는군요.”
“그럼 그 대법의 이름이 뭔데?”
멈칫…….
우희는 잠시 현당의 시선을 피해서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내 결심한 듯 굳은 표정을 짓고 현당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것은…… 현모강(賢母罡)이라고 합니다.”
“현모강이라…… 그게 뭔데?”
“현명한 어머니 같은 강기로 아이를 보호한다는 뜻인가? 좋아, 좋은 이름이군.”
우희도 만족스런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미소 짓던 그녀의 얼굴이 현당의 다음 말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좀 아쉽군.”
“뭐…… 가요?”
“부작용이 있잖아. 구토에 기력을 완전히 탈진 상태로 잃어버리기까지 하고…… 부작용이 너무 심하군. 왕성한 소화력을 자랑하는 내가 구토라니…… 토할 때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안심이 되는 듯 우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방편은 어쩔 수가 없어요. 속성으로 익히는 사마, 흑도의 무공들 또한 대부분 그런 부작용이 있지요.”
현당이 편한 자세로 드러누웠다.
“그래. 그래서 고지식하게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가는 정도(正道)의 무공이 계속 득세를 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나저나 피곤하군.”
우희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어렸다.
“그래요. 피곤할 테니,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하지요.”
“그래…… 우선 일주일은 벌었으니까.”
우희가 경고하듯 눈을 빛냈다.
“방심하지 말아요. 아무리 화련검이 남궁가의 기초 검법일지라도 남궁가의 비전절기니까…….”
“알아, 알아! 이제 문사도 가서 쉬지.”
우희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내일 봐요.”
“그래…… 내일!”
몸을 돌리던 우희가 생각났다는 듯이 얼굴을 돌렸다. 좀 전까지 부드럽던 얼굴은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한데…… 당신은 언제부터 내게 반말이지요? 왜? 무슨 배짱으로?”
이번에는 현당이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더라도 시원해 보이는 서글서글한 미소였다.
“아아, 이거? 난 문사가 받아주기에 허락한 줄 알았지. 내가 천성적으로 남들에게 존댓말을 잘 못하거든.”
우희는 현당을 노려보았다. 살기까지는 아니지만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그러지 마라. 나야 하찮은 목숨이지만, 문사의 그 고운 얼굴에 주름 잡힐라…….”
우희는 어이없어 실소했다. 행여나 현당이 볼까 고개를 돌리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생하셨소. 오늘은 이제 그만 쉬시고, 내일 뵙도록 하겠소이다아.”
현당이 말을 길게 끌면서 인사를 했다.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부드러운 축객령이었다.
“좋아요. 내일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이제는 어제까지처럼 봐주는 것 없습니다.”
“기대하지.”
현당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우희가 밖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그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현당의 말이 우희의 발을 붙잡았다.
“그건 그렇고, 현모강이라는 이름은 참 잘 지었어. 원래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에 그런 적당한 이름을 다 떠올리다니…….”
우희는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침상에 널브러져 있는 현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당은 현모강이라는 이름도 우희가 꾸며낸 것이라는 것마저 파악하고 있었다.
제7장 살았다!
“우후우, 아하아……. 우후우웁 아하아…….”
현당은 천천히 장도를 들어 올렸다가 끌어내렸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느린 속도로 칼을 움직였다. 그것만으로 힘이 드는지 땀방울이 맺혀 떨어졌고, 도를 휘두르는 팔이 떨렸다.
“검법과 달리 도법은 변초가 거의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동작 하나를 익히더라도 제대로 익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당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알아, 알아……. 기지일보를 사흘 내내 가르칠 때부터 알아봤다고!’
하지만 생각과 달리 얼굴은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숭고한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과장되어 보일 정도였다.
한참 장도를 휘두르던 현당은 고개를 돌려 우희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우희는 현당을 그저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뇌가 사고(思考)를 하고 입술을 움직여 생각을 말로 표현했다.
‘내가 그렇게 잘생겼소?’
하지만 생각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만큼 현당은 어리석지 않았다.
“뭐라도 있는 게요?”
“후우우…….”
우희가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그렇지. 직접 두 눈으로 내 얼굴을 보고 안 넘어온 계집이 없다니까…….’
잠깐이지만 현당은 예전에 한탕 할 때의 일이 생각났다.
수하들이 그 집의 구석구석을 털고 나온 재화들을 현당의 발 앞에 쌓아놓았다.
“이게 다요?”
현당 앞에는 잠옷 차림으로 끌려나온 삼십대 후반의 중년 귀부인이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현당의 질문에 오들오들 떨고 있던 여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어어어, 없……어요오.”
“형님, 한번 족쳐보죠. 미리 탐문한 바로는 일주일 전, 이 계집의 서방이 산호화(珊瑚花)를 구매했다고 하는데, 안 나왔습니다. 비싼 보물을 두는 곳이 따로 있을 것 같습니다.”
생익덕(生益德) 수구(隋九)가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산적 두목같이 생긴 놈이라 모르는 사람이 보고는 이놈이 대장인 줄 아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별호도 살아 있는 장비라 하여 생익덕이었다.
깜짝 놀란 귀부인이 듣기도 싫다는 듯 귀를 싸매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악. 정말이에요. 정말 이게 다입니다.”
“아서라. 저러다 자지러지겠다. 손끝 하나 안 건드렸는데 기절하면, 그게 더 억울하지 않겠느냐!”
현당은 여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정말이라 믿겠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인은 하소연했다.
“정말이에요. 정말입니다.”
고개를 들자 공포와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두리번거리는 눈빛이 뭔가가 더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현당은……. 결심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알겠소. 다 챙겼느냐?”
“예. 형님.”
“좋아. 얘들아, 가자.”
그때였다.
“저어, 정말 그냥 가시는 것입니까?”
현당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다 챙겼는데, 더 있을 필요가 있겠소?”
여인은 주변을 힐끔거렸다.
“들리는 말로는 입막음을 하기 위해 여인네에게 폭행도 한다던데…….”
“하하핫.”
현당은 호방하게 웃었다. 어디에서 그런 소문이 나도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기야……. 그런 식으로라도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명해지고 있다는 소리이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걱정 마시오. 우리가 명성을 얻다 보니, 소문이 와전되어 그런 것이오. 절대 그런 적은 없으니…….”
지금까지 바닥에 엎드려 있던 중년 여인이 현당의 바지 끝을 슬쩍 잡았다.
“정말…… 그냥 가시는 것이옵니까아?”
현당은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좀 전까지 겁에 질려 있던 표정이 아니었다. 바라는 무엇이 있다.
“더 일이 생기기 전에 사라지는 것이 바로 도둑! 챙겼으니 가야지요. 얘들아.”
순간, 여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기 저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 진짜 비싼 거예요. 희고(希古) 이당(李唐 : 송 고종 때의 유명 화가)의 작품이고요. 누렇게 변색되었다고 챙긴 이 그림은 위본입니다. 싸구려 가짜라고요. 그리고 저 족자를 걷으면 그 뒤로 금고가 나오거든요. 진짜는 저곳에 다 감추고요…….”
싱긋.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현당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나 보군요.”
우희의 말에 현당은 현실로 돌아왔다.
“아, 아니오.”
우희가 눈을 빛냈다.
“아닌 것 같은데요. 당신이 그렇게 미소를 지을 때는 화려했던 지난날을 떠올릴 때더군요. 한창 잘나가던 소패 현당이었는데 어련하겠습니까! 당신, 그것 알아요?”
‘오호! 때가 무르익었군.’
갑작스런 우희의 질문에 현당은 눈을 빛냈다.
이 계집만 잘 꾀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슬슬 현실로 옮길 때가 된 것 같았다.
“당신의 그런 미소는 꽤 멋있어요. 아마도…… 여러 여자를 홀렸겠지요.”
현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생각인데…….”
옳다구나!
내가 웃는 것을 보고 넘어오지 않은 계집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문사라고 칭송을 들을지언정, 너 역시 계집. 언젠가는 남정네 앞에 사타구니를 벌리고 드러누울 운명이다.
철컹.
바로 그 순간,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다.
갑자기 전해지는 충격으로 현당은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도법의 생명은 칼끝 한 치에 있어요. 딴 생각을 하는지, 당신의 칼놀림에는 그것이 안 보이는군요. 지금 당신의 도극(刀極 : 칼끝)에 걸어 놓은 쇠는 칼 무게의 두 배가 되는 놈입니다. 지금부터는 칼의 무게를 세 배로 늘리겠어요. 만약 다음에도 수련을 하는데, 잡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때는 다시 세 배로 늘립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화련검 신지창파(新枝蒼波) 다시 천 회. 시작!”
‘망할…….’
전보다 더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 * *
포송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숙부(叔父)를 침상에 드러누운 채로 맞았다.
“어찌 된 것이냐?”
남진권(南震拳) 포덕(蒲德).
포송의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선종문(禪宗門)을 이끌고 있었다. 선종이란, 바로 숭산 소림사를 의미했다. 결국 선종문이란 이름은 소림권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하산한 지 백 일 만에 남궁적을 만나고 돌아오더니, 바로 수련동으로 들어서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포송은 드러누운 채로 대답했다.
“남궁적, 그놈의 실력 말입니다.”
포덕이 눈을 빛냈다.
“오호! 뭐라도 본 게냐?”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는 얼굴로 포송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생각 밖이라서 당황했습니다. 지금쯤이면, 상승 심법이나 고등 초식에 매달릴 때인데, 놈은 오히려 기초 입문 무공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기초 무공이라니?”
눈을 치켜뜬 포송이 한 자 한 자 끊어서 이야기했다.
“화 ․ 련 ‧ 검!”
“뭐라?”
포덕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찌 생각하느냐?”
포송이 수염 때문에 까칠까칠한 턱을 쓰다듬었다.
“기본공을 익히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합니다. 하나는 초보가 새로운 계보의 무공을 익힐 때. 다른 하나는 익힐 만큼 다 익힌 사람이 새로운 깨달음 때문에 알고 있던 무공 초식의 해석을 달리할 때!”
포덕이 포송 옆에 앉았다.
“뭐라 생각하느냐?”
“당연한 것 아닙니까? 남부맹 후기지수(後期之秀) 중 제일이라는 놈인데, 그것도 자기 가문의 입문 무공도 몰랐다면 말이 안 되지요. 결국 놈은 후자입니다.”
“그럼? 소문이 거짓이라는 말이로구나! 그런데 놈의 내공은 어떻더냐?”
포송이 어깨를 내놓았다. 뚜렷하게 손 모양을 한 멍 자국이 드러났다. 그것도 다섯 손가락까지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놈이 남긴 것입니다. 소심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놈이 먼저 손을 쓰더군요.”
포덕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 호신강기를 뚫었다면 내공도 보통이 아니구나.”
포송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호신강기가 아니라, 그것도 철포삼(鐵布衫)입니다.”
포송이 옷을 여미며 드러난 어깨를 감추었다.
“남부맹은 물론 강호에 속성으로 내공을 키우는 그런 상승 심법이 있을 리는 없고, 놈은 어디서 영약을 구해다 먹은 게 틀림없습니다.”
포덕이 포송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느냐?”
포송이 눈가에 주름을 지으며 잇몸을 드러냈다. 박수를 치듯이 양 손을 포갰다. 순간,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로 불꽃이 튀었다.
“심경(深勁)!”
발경(發勁)의 일종으로 내경을 밖으로 날리는 수법이었다. 진경(鎭勁), 투경(透勁), 그리고 그 다음 단계가 바로 심경이고, 이 모두를 합쳐서 발경이라 했다.
진경이란 잇닿아 있는 물건에 내공을 전하는 것. 투경 역시 짚고 있는 사물에 내공을 속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진경과 투경이 전달하는 수준에 국한된다면, 이를 넘어서 심경부터는 전달받는 물건의 내부를 진탕시키는 것이고, 이 단계가 되면, 무형의 내공이 유형화하게 된다.
“놈은 지금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입니다.”
“받고 가만있었다면, 포송이 아니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포덕은 시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