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를 낸 사람을 노려보았다. 곧 죽을 사람을 앞에 두고 놀리냐는 듯했다.
그가 걸치고 있는 비단옷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얼굴에 개기름까지 흐르는 것을 보니, 어디 대감댁 자식인 듯싶었다. 호의호식하다 배가 불러 뭔 일을 저지르고 잡혀온 것이리라.
“배고프다니까? 죽을 사람은 죽을 사람이고, 살 사람은 먹어야 살 거 아냐?”
간수가 소리를 지르는 죄수한테 다가갔다.
“그래, 네놈은 내일 나간다고?”
간수가 나무그릇을 잡아당겼다.
“여기 있네, 많이 처먹게. 미안하이.”
간수가 그릇에 음식을 퍼 담았다. 그릇을 집고 있는 엄지손가락이 푸욱 잠길 정도로 수북하게. 정말 엄지손가락이 잠겼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수만 아는 듯했다.
현당은 조용히 음식을 끌어당겼다.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먹지 않는다면, 다른 죄수들도 식사를 거를 것만 같았다. 한 사람만 빼고…….
젓가락을 집었다. 젓가락……. 이곳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끝이 가늘어 흉기로 쓰일 수도 있었다. 때문에 옥에서는 금지된 물건이었다.
닥닥닥.
음식을 먹기 전에 젓가락을 한 번 움직여보았다. 젓가락 끝이 맞물리며, 기능에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천천히 음식을 집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꼭꼭 음식을 씹었다. 밥 알갱이가 곤죽이 될 때까지…….
현당이 밥을 입 안으로 집어넣을 때까지 사람들은 음식을 들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기다리다가 드디어 현당의 젓가락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음식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멈췄던 배식도 다시 시작되었다.
* * *
모용곽은 짜증이 났다. 이런 일까지 자신이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느꼈다. 사대 세가의 가주인 자신이 이런 잡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의 아랫사람 중에 충직한 놈으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그 수를 최소화하기로 약속까지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목표물이 나타날 때까지는. 다행히도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서히 해가 솟고 있었다. 최소한 형리아문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늦지 않기 위해서 목표는 나타날 것이었다.
모용곽은 시선을 돌렸다.
다각 다각 다각 다각…….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워워워…….”
그가 길을 막자 마부가 황급히 고삐를 당겨 마차를 세웠다. 모용곽은 마차에 달린 기장을 확인했다. 기다리고 있던 목표였다.
* * *
현당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이 부신 것으로 보아 날이 밝은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죽으러 가는 길에는 누구나 사지를 제대로 놀릴 수가 없다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혀를 움직일 수 없어 말도 하기 힘들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침이 흐르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흐르는 침을 닦지도 못하고 병자처럼 질질 흘리고만 있었다. 멀쩡한 것은 귀뿐인 듯싶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날이 밝았다는 것과 어렴풋이 옥문이 열렸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제 발로 걷지를 못한다지만 자네는 정말 심하군.”
간수가 흐늘거리는 현당을 끌고 나갔다.
* * *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사람은 어제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나? 오늘 나갈 사람이 엊저녁을 열심히 처먹더니…….”
나갔던 간수가 다시 들어오더니 오늘 출소한다던 비단옷의 사내를 짐 부리듯이 끌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죄수들이 입방아를 찧었다.
“내일 나간다는 놈이 간밤에 꾸역꾸역 밀어 넣더니, 내 저럴 줄 알았어.”
“그것 참! 개놈, 잘 되었다.”
“에잇, 퉤. 이놈아, 저놈이 앉았던 자리나 치워라. 옴 옮을라.”
* * *
현당은 바닥에 눕혀졌다. 바로 그의 옆에 또 한 사람이 눕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현당의 옷을 벗겼다. 옆 사람의 옷도 같이 벗겨졌다. 저 사람도 오늘 형 집행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사람이니, 나중에 편하라고 미리 수의를 입히는지도 몰랐다.
현당은 만사가 귀찮았다. 간수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벌거벗은 현당의 몸에 새로운 옷이 입혀졌다. 옷을 다 입자 현당은 다시 끌려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큰 문인 듯했다. 하기야 형리아문의 옥에서 형장으로 연결되는 문이니, 작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열리는 소리가 참으로 요란스러웠다.
눈이 부셨다. 좀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초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흐릿하게 보이는 것으로 짐작컨대, 바로 눈앞에 마차가 와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고초가 많으셨습니다.”
마부인 듯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현당에게 말을 걸어왔다.
‘고초? 무슨 고초를 말하는 것일까?’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위로하는 말이리라.
아마도 형장까지 거리가 꽤 되는 모양이었다. 자신처럼 인사불성인 사형수를 위해서 형리아문에서 마차를 준비했는지도 몰랐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호사스런 대접을 받는 듯싶었다.
마차 문이 열리는 듯하더니 몸이 구겨지듯 던져졌다.
* * *
비단옷의 사내는 바닥에 내팽개치듯 던져졌다.
“헤헤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제 곧 나갈 텐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누군가 그의 옷을 벗겼다. 실눈을 뜨고 그를 보려 들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제 그에게 음식을 배식하던 간수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헤헤헤…….”
아마도 집에서 그에게 출소할 때 입으라고 옷을 보내왔는지 새로운 옷이 입혀졌다.
“킁. 킁…….”
코를 킁킁거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분명 옷에서 나는 냄새였다. 시큼한 땀에 전 냄새뿐만 아니라, 배설한 오물의 냄새까지 섞여 있었다. 이것은 절대 그의 집에서 보낸 옷이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가업을 이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집이나 후리고, 패거리들과 어울려서 파락호 짓을 하고 돌아다녔으니, 아비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하기야 가업이라고 해봐야 별일 없었다. 그저 많은 재산을 적당히 축내면서 쓰면 되었다. 그의 아비 역시 자신보다 나이 어린 계집을 첩이라고 불러 앉히지 않았는가!
분명 그의 아비가 출소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 고생을 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외아들인 나한테 이런 짓거리를 해?’
돌아가면 그 계집의 가랑이부터 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옆에 드러누운 죄수를 간수가 업고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죄수의 얼굴이 보였다. 역시 아는 얼굴이었다.
‘가만 저승길 행렬을 보면 재수가 좋다지? 이제부터 나는 인생에 꽃이 피는 거야…….’
“헤헤헤…….”
멀리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고초가 많으…….”
비단옷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고초가 많았지. 하지만 이제 끝이야. 죽으면 무엇을 느낄 수 있겠어. 육신이 없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헤헤헤…….”
그래도 웃음은 흘러나왔다.
나갔던 간수가 다시 들어왔다.
“끙.”
그를 들쳐 업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나가는 거였다.
“헤헤헤…….”
쿠쿠쿠쿠…….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무척 큰 문이었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라. 당연히 형리아문에서 형의 집행이 정지된 분들이 나가는 문이니, 클 수밖에 없으리라.
“끙.”
쿵.
간수가 신음 소리를 내더니 그를 수레 위로 집어던졌다.
‘수레?’
비단옷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갸웃거렸다고 생각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는 그에게 고개를 움직일 힘이란 없었다. 좀 전에도 생각만으로 머리를 끄덕이지 않았는가!
그래도 좋았다. 출소하는 아들놈, 비단옷도 안 갈아입히는 아비가 그를 위해 마차를 가져다놓을 리 만무했다. 수레라도 끌어다놓은 것이 어디냐!
‘헤헤헤…….’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덜컹거리며 수레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 * *
송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죄인 현당의 형을 집행하는 날이었다. 비록 죄인이지만 그 기개가 마음에 들던 자였다. 그런 자의 목을 베는 것을 봐야 하는 날인데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현당을 집어넣은 포두가 자신이기에, 그의 형 집행을 끝까지 감독할 책무도 자신에게 있었다.
그런 기분과는 상관없이, 형장에는 벌써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참형을 받는 죄인의 피를 만지면, 행운이 깃든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서로 형장에서 죄인의 피를 뒤집어쓰겠다고 미리부터 좋은 자리를 놓고 싸움질이 벌어지고 있었다.
송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돌렸다. 그러자 형장으로 들어오는 수레가 보였다. 수레를 보는 순간, 송자는 눈을 크게 떴다.
불현듯 그만을 따로 불러 전하던 총관의 말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그래. 죽이기에는 정말 아까운 놈이라더니…….’
* * *
비단옷은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의 의지가 아니라 형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간수들이 한 짓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최소한 시력은 회복되었다.
여기는 분명 형장이었다.
비단옷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해대고 있었다. 어서 빨리 형을 집행하라는 독촉도 잊지 않았다.
엄청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다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기대한 채, 빨리 일이 벌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혀, 형……장!’
고통 없이 죽은 사형수의 피를 받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 때문에 형이 집행되는 날에는 형장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역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오늘이 바로 형 집행일이라는 뜻이었다.
‘누가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누굴까?’
비단옷은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했다.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걸치고 있는 옷이 보였다. 그 앞에 걸고 있는 패가 보였다. 죄목을 적어놓는 판자였다.
‘간(姦), 폭(暴), 도(盜).’
강간, 폭행, 도적. 죄목은 분명 자신의 것이 맞았다.
‘하지만…….’
하지만 자신은 오늘 출소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지, 사형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마음을 바로잡겠다고 그의 아비가 꾸민 일인지도 몰랐다. 능히 그럴 사람이었다.
‘헤. 헤. 헥…….’
비단옷은 억지로 웃으려고 노력했다.
관복을 입은 관원이 그의 앞에 섰다.
“죄인, 현당. 판결, 사형. 죄인은 형의 집행에 앞서서 할 말이 있는가?”
순간, 비단옷은 눈알을 뒤집으며 위로 치켜떴다.
‘현당이라니요? 내 이름은 진가소(陳可昭)예요! 사람이 바뀌었소, 사람이. 난 오늘 죽어야 할 현당이 아니라, 오늘 출소하기로 되어 있는 놈이오. 난 현당이 아니란 말이오!’
비단옷, 진가소는 목소리 높여 외치려 들었다.
한데……. 한데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입은 벌어졌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일이 잘못되고 있었다. 잘못되도 한창 잘못되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만 소리가 되어 흘러나올 뿐이었다.
“다시 묻겠다. 죄인 현당은 형의 집행에 앞서서 할 말이 없는가?”
“허어억. 허어억. 허억…….”
진가소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밝히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려 할수록 좌우에 대기하고 있던 관원들이 그의 몸을 옥죄었다.
“그럼. 형을 집행하라.”
관원이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진가소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순간, 망나니의 칼이 그의 옆구리를 때렸다. 날이 아니라 칼등으로지만, 순간적으로 진가소는 숨이 끊어질 듯한 통증에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짧은 순간이지만, 진가소의 목이 드러났다. 망나니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칼을 내리쳤다.
서걱. 툭. 파하아.
사람들이 사형수의 머리 잃은 몸뚱이에서 솟구치는 피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와아아…….”
* * *
송자는 몸을 돌리며 생각했다. 과연 자신의 침묵이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그의 발치로 굴러온 진가소의 머리에 눈길이 갔다. 마치 자신은 현당이 아니라 진가소라고 말하는 듯했다.
‘진가소! 정작 죽어야 할 놈은 바로 이놈이었어. 그래 잘된 거야.’
다시 한 번 남경 총관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죽이기에는 정말 아까운 놈이라더군.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