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51화
151화. 거인의 마지막 [완결].
20년 후.
안휘성 대별산.
“형님. 혈천교 놈들이 확실합니까?”
이십대의 준수한 청년이 사십대 초반의 무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맞아. 그렇다고 겁먹진 마라. 혈천교 본류는 이미 맥이 끊어졌고, 그 아류들이니까.”
“본류라도 겁내지 않아요.”
“그건 네가 그들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래.”
“사술이나 쓰는 놈들인데···그렇게 강했다고요?”
“그건 어디까지나 와전된 소문일 뿐이지. 실제로는 굉장히 강력한 무공을 갖고 있었어. 화운룡 맹주님이 당시 혈천교를 토벌할 때, 혈천교주를 만나 죽였거든. 그때 폭풍참륜을 써서 죽였다고 들었어. 그들은 폭풍참륜을 써야 이길 수 있을 만큼 아주 강했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건 형님이 태어나기 전이잖아요.”
“후후. 그렇긴 하지. 내가 한창 무공에 눈을 뜨던 시기에도 혈천교가 있었다. 지금의 너보다도 한참 아래였지. 그때 혈천교주가 곡진헌이었는데, 당시 암흑사련의 련주 척휘명의 몸을 빼앗았어. 그래서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때 천검께서 어렵게 그놈을 죽이셨지.”
“어딜 가나 아버지 이야기군요. 휴우, 난 언제나 아버지 명성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십대 청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천검이란 어마어마한 별호를 사용할 수 있는 무인은 오직 한 명.
구양천뿐이었다.
그를 아버지라 불렀으니, 이십대 청년은 바로 그의 아들 구양평이었다.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절정의 고수는 정검문 소속의 적요산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렸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무림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적요산의 무위는 놀랍게 성장했다.
헛된 명성에 관심이 없던 적요산은 오직 무공수련에 매달렸고, 틈나는 대로 구양천의 지도를 받으면서 단기간에 초고수로 거듭났다.
거기에 거듭된 실전경험은 그를 천하십대고수 중 일인으로 만들었다.
물론 천하십대고수 중 수장은 구양천이 이십년째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아성은 여전했다.
“겁나면 돌아가던가?”
“누가 겁난다고 그래요.”
구양평은 툴툴거리다가 대화주제를 바꿨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 세력이 무림을 통일하는 것보다 여러 세력이 공존하는 걸 택하셨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혈천교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을까요?”
“무인답지 못한 놈들이니까.”
“하긴.”
구양평은 적요산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술을 펼치려고 인신매매도 서슴지 않는 그들이었기에 구양천은 혈천교를 공공의적으로 선포했다.
“가자.”
“예.”
구양평은 적요산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둘뿐이었지만, 구양평은 적요산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가 볼 때 적요산은 부친 구양천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무인이었다.
대별산 깊은 계곡.
목조건물이 여러 채로 구성된 장원은 얼핏 보면 산적들의 산채로 보였지만, 언뜻 보이는 무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절대 범상치 않았다.
무인들이 날카롭게 경계를 서는 가운데 중앙에 세워진 목책루에서는 흑의무인과 청의무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겨우 둘이라고?”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흑의무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입구부터 지켜봤는데 그리 대단해보이진 않는다고 합니다.”
“이놈아. 그게 더 무서운 거다. 진짜 고수는 겪어봐야 아는 법이야.”
흑의무인은 청의무인을 질책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까지 은밀하게 잘 숨어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냄새를 맡았단 말인가?
“사십대와 이십대라고 하는데, 이십대 무인의 예기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어찌할까요?”
흑의무인은 ‘도망칠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이 곡찬영이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니.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돼.’
흑의무인 즉 곡찬영의 눈에서 살기가 일기 시작하자, 청의무인은 움찔했다.
“혈풍.”
“예!”
청의무인 즉 혈풍은 곧장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당장 무인들을 집합시켜라. 혈곡에서 저 두 놈을 척살한다.”
“예!”
혈풍은 곧장 아래로 몸을 날렸다.
곡찬영은 주먹을 꽉 말아 쥐며 으르렁거렸다.
**
혈곡.
무시무시한 이름과는 다르게 이 계곡은 양쪽으로 기암절벽이 솟았고, 폭포가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혈풍은 오십여 명의 무인을 이끌고 내려와 무인들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배치가 막 마쳤을 무렵 곡찬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배치 완료했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그놈들의 무덤으로 충분하구나.”
곡찬영은 양쪽으로 솟은 절벽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옵니다.
혈풍이 전음으로 경고를 날리자, 곡찬영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고 혈곡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계곡이군요.”
혈곡 입구에 들어선 구양평이 감탄을 토해내자, 적요산의 입 꼬리가 비틀어졌다.
“장미엔 가시가 있는 법이다. 조심해라.”
“···”
“매복이야.”
적요산은 단번에 혈천교 무리의 매복사실을 파악했다.
괜히 천하십대고수가 아니었다.
“저들이 우릴 알아보지 못했겠죠?”
“역용을 했으니까. 천천히 따라오면서 뒤로 처지는 놈들을 해치워. 다시 말하지만, 검을 쓸 때는 절대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고. 어설픈 인정을 베풀다가는 네가 죽는다.”
“알겠습니다. 어휴, 그놈의 잔소리.”
적요산은 툴툴거리는 구양평을 힐끔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을 날렸다.
끼요요요요!
소름끼치는 고음이 적요산의 입에서 발성되었다.
천마의 진산절학인 천마후(天魔吼)가 적요산에게서 발현되었다.
“끄아악.”
“커헉.”
내공이 충실하지 못한 혈천교인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혈풍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급히 진력을 끌어올렸다.
“이놈!”
곡찬영은 이대로 가다가는 교인들이 몰살하리라는 예감이 들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우우우우우.
그의 입에서 낮은 저음의 사자후가 발현되었다.
덕분에 그의 주변에 은신해 있던 교인들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쐐애애애애액.
적요산은 곡찬영을 발견하자, 천마후를 멈추고 귀혼검을 뽑아들었다.
구양천이 사용하던 명검이었다.
챙챙챙.
적요산은 강력한 무위를 바탕으로 곡찬영을 몰아붙였다.
곡찬영 또한 절정무인이었지만, 적요산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쾌(快)와 중(重)이 섞인 적요산의 기묘한 무공 앞에 손목이 떨어져나갈 듯 욱신거렸고, 단전은 크게 흔들렸다.
“아서라. 네놈들은 내 몫이다.”
적요산의 뒤를 급습하려던 교인들은 구양평의 검 앞에 추풍낙엽신세가 되었다.
절대 쾌.
마치 번개가 내리치듯 빠르게 내리 찍히는 구양평의 검을 교인들은 제대로 막지 못했다.
막으려고 검을 들어 올렸을 때는 이미 몸이 베어진 후였다.
그만큼 구양평의 검은 쾌검이었다.
“커헉.”
적요산은 귀찮게 구는 혈풍의 목을 날렸다.
“네, 네놈은 누구냐?”
곡찬영은 부르르 떨리는 오른손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적요산.”
“적요산? 이런 빌어먹을.”
적요산의 이름을 들은 곡찬영은 도망치지 않고 맞선 자신을 원망했다.
그 역시 듣는 귀가 있어서 적요산이 얼마나 무서운 고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정주현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그였기에 설마 멀리 떨어진 대별산까지 오지 않으리라 판단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
“살려주시게. 정말 조용히 살겠네.”
“그냥 죽어. 네놈이 납치한 백성이 백 명이 넘어. 그러고 뭘 살려달라고 빌어?”
“이 개자식아.”
곡찬영은 마지막 협상이 틀어지자,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했다.
“흥. 주제를 알아야지.”
적요산은 콧방귀를 뀌며 귀혼검을 손에서 놓았다.
동시에 귀혼검을 공중을 날아 그대로 곡찬영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헉, 이기어···. 커헉.”
곡찬영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뒀다.
“별 거 아닌데요.”
어느새 다가온 구양평이 죽은 곡찬영을 보며 툭 내뱉었다.
“이놈은 너와 백초지적이다.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어. 그러니 자만하지 말거라.”
“저도 잘 압니다.”
“가자. 위로 올라가서 청소하고 돌아가자.”
적요산이 말을 마치고 몸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삐이이이익.
날카로운 호각음이 산 아래에서 울렸고, 적요산은 그대로 멈춰 섰다.
“무슨 일이지?”
비상호출소리였기에 적요산과 구양평의 표정이 굳어진 것이다.
얼마 후.
젊은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 정주현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저희들이 이곳을 정리할 테니 서두르십시오.”
그는 급히 보고하며 서신을 꺼내 적요산에게 바쳤다.
적요산은 빠르게 서신을 읽고는 구양평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을 읽은 구양평의 얼굴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괜찮을 거야. 그분은 천하제일인이시다. 괜찮을 거다.”
적요산은 흔들리는 구양평을 달래고는 그와 함께 몸을 날렸다.
**
정주현 구양세가.
평소가 활기가 넘치던 구양세가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괜찮으십니까?”
청은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안타까운 음성을 토해냈다.
“여행이 끝나가는구려.”
힘없는 내 음성에 청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상공은 아직 젊습니다.”
난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병이 아니란 것을.
처음에 구양천의 몸에 빙의되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빙의된 이후 구양천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고, 이제는 한계에 도달해있었다.
‘하긴 내 몸이 아니니까.’
크게 슬프거나 분하지 않았다.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뤘다.
다만 청과 구양평과 좀 더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서라. 욕심을 더 부려 어쩌자는 것이냐? 곡진헌이 내 혼을 빼내 구양천으로 빙의한 덕분에 한 사십년 정도 젊음을 유지하며 살았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힘이 다해가고 있지만, 미련은 크게 없었다.
난 가만히 손을 내밀어 청의 손을 잡았다.
“내가 없더라도 평이를 잘 키워줘. 적요산이 곁에 있으면 누구도 구양세가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그런 말씀마시고 훌훌 떨고 일어나셔야죠.”
난 옅은 미소를 지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바람이 있다면 죽기 전에 구양평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죽는다는 표현도 이상했다.
이미 죽었으니까.
‘또 빙의될까?’
이 부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굳이 욕심이 나진 않았다.
다만 화운룡의 몸에서 구양천의 몸으로 빙의되었을 때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었다면, 이제는 진한 아쉬움이 들 것이다.
아무래도 가장 걸리는 건 역시 가족이었다.
“평이는?”
“곧 올 겁니다.”
전서구를 날린 지 벌써 열흘이 지났기에 청 역시 초조했다.
“아버지.”
밖에서 들리는 구양평의 목소리에 청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리로.”
청은 어두운 얼굴로 구양평의 손을 이끌었다.
구양평은 몸져누운 나를 보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녀석. 약해졌구나. 강해야 하는데.”
“이 정도는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죠.”
“때가 되었어.”
난 가만히 고개를 흔들고는 미리 준비해 놓은 작은 책자를 내밀었다.
“이제 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거기에 네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았으니 여러 번 읽고 마음에 새기거라.”
“예.”
구양평은 책자를 품에 안으며 힘없이 대답했다.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부친의 죽음이 실감났기 때문이었다.
“적요산.”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자, 문이 벌컥 열리며 적요산이 들어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구양세가를 부탁한다.”
“목숨을 걸고 구양세가를 지키겠습니다.”
“부탁하네.”
난 적요산을 가까이 불러 그의 어깨를 다독여줬고, 적요산은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나지막한 음성이 튀어나왔고, 동시에 내 영혼도 구양천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청, 구양평, 적요산이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차 그들의 울음소리가 작아지더니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또한 시야도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인가?’
이 생각을 끝으로 내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
삼개월 후.
정주현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양지바른 곳에 잘 정돈된 묘가 있었는데, 비석에는 ‘천하제일인 구양천지묘’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아버지. 지켜봐주세요. 반드시 천하제일인이 되겠습니다.”
구양평은 묘에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다짐했다.
“또 여기 있었군.”
적요산은 털썩하고 앉았다.
그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구양평은 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아버지가 형님께 그토록 부탁했는데, 이게 무슨 짓이오? 대낮부터 술이라니?”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구나.”
적요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이오. 난 이제부터 오로지 무공수련에 매달릴 생각이니 형님께서 도와주시오.”
“죽을 각오로 덤벼들어라. 난 살살 가르치는 데는 소질이 없으니까.”
“당연히.”
“녀석.”
적요산은 구양평을 손짓하여 가까이 앉게 하고는 말없이 정주현 시내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거고. 조금만 있다 가자. 다시는 입에 술을 대지 않으마.”
“형님도 많이 그립소?”
“내겐 하늘같은 존재셨다.”
적요산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구양평도 입을 다물면서 둘 사이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가자.”
적요산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더니, 묘에 큰 절을 올렸다.
‘지켜봐주십시오. 제 손으로 구양세가를 지키고, 평이를 천하제일고수로 만들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생을 마치면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적요산은 천천히 일어섰다.
절을 올린 구양평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가자. 사내자식이 눈물은. 각오해. 독하게 훈련시켜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적요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양평과 함께 힘차게 산을 내려갔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