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50화
150화. 검신 구양천.
정검문.
정주현에 난데없이 등장한 문파였는데 제자들이 20명이 채 안될 만큼 작은 규모의 문파였지만, 개파식에는 정주현의 유력인사는 물론이고 무림맹에서 청룡단주 염무상을 보낼 정도로 무림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천마교와 암흑마련에서도 절정의 고수를 보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암흑마련은 암흑사련에서 패를 추구하는 무인들이 산서성에서 설립한 문파로 순식간에 산서성의 강자로 떠올랐다.
문주 황엽은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귀빈을 맞이했다.
“처음 뵙겠소. 섭유청이요. 개파를 축하하오.”
말로만 듣던 혈마도 섭유청을 보자 황엽은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세상이 정말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다.
“혈마도 선배셨군요. 고맙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좀 더 규모가 커야 하는데.”
섭유청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장원을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저런 거물이 나타날 줄이야.”
황엽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비록 사파였지만, 섭유청은 1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전대거마였다.
한숨을 돌릴 찰나 칼끝 같은 예기를 뿜어내는 중년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한눈에 보더라도 절정무인이었기에 황엽은 바싹 긴장했다.
그는 곧장 황엽에게 다가오더니 정중하게 포권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천마교에서 축하사절로 찰극이라 합니다.”
“황엽입니다.”
황엽도 덤덤하게 자신을 소개했지만, 속으론 깜짝 놀랐다.
천마교의 실세라 불리는 다섯의 무인이 있었는데, 찰극은 그 중 한 명이었다.
찰극을 보냈다는 건 천마교에서 정검문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는 방증이었다.
황엽은 새삼 구양천의 능력에 대한 경외심이 솟았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무인들이 몰려드는군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적요산이 입을 열자, 황엽도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으며 편안하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무림맹이나 정파에서 사람을 보낼 줄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설마 천마교와 암흑마련에서 보낼 줄이야. 헛참.”
“새삼 그분의 존재감이 드러나는군요.”
“암, 괜히 천하제일인으로 추앙받으시겠는가?”
황엽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구양천이 아니었다면 정검문의 개파식은 정주현의 인사들만 모여드는 소소한 개파식에 머물렀을 것이다.
아니 독립적인 문파를 개파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아쉽군요. 구양무인이 참석했다면 좋았을 텐데.”
섭유청과 만난 찰극이 입을 열었다.
암흑사련시절에는 앙숙지간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돌아섰기에 둘의 대화는 훈훈하게 이뤄졌다.
“뭐, 이제는 자타공인 천하제일인이니까. 만나려면 우리가 구양세가를 찾아가야지.”
“좀 거만해지신 걸까요?”
찰극이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섭유청이 냉소를 쳤다.
“지위가 달라졌는데, 당연한 행동이지. 천마교를 생각해보게. 명 교주께서 함부로 움직이시는가? 외부인이 그를 만나기 위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생각해보게. 구양무인은 별다른 직책이 없으셔서 그렇지 솔직히 명 교주보다 위라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섭유청의 냉정한 지적은 어찌 들으면 천마교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비춰질 수 있었지만, 찰극은 그의 말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정확히 이해됩니다.”
“이리 개파식의 주연은 문주 황엽이지. 만약 구양무인이 참석했다면 주객전도가 되었을 것이야.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래도 좋은 현상은 아니지.”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이 사람아, 그건 다 끝나고 돌아갈 때 해야지. 흐흐흐. 나도 잘 부탁함세. 그래도 본류를 따라 올라가면 우린 한 가족 아닌가?”
“그렇지요. 한 가족이죠.”
섭유청과 찰극은 술잔을 부딪치며 깊은 대화를 나눴다.
반대편에 앉아 정파무인들과 술을 마시던 염무상은 섭유청과 찰극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예전이었다면 같은 자리에 참석하기는커녕 만나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상대였는데, 이제는 같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형식적으로 인사만 했고, 철저하게 서로를 무시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같은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만 해도 예전에 비하면 혁명적인 변화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오?”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 조금 낯설어서요.”
구령문주 충파헌의 말에 염무상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하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상상도 못했지요. 아니 솔직히 구양무인이 그렇게 강해질 줄 누가 알았겠소? 허허, 나참.”
충파헌은 헛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예전에 구양세가를 찾아갔던 시절이 떠오르자, 부끄러워졌고 그걸 숨기려고 술잔을 단숨에 비웠던 것이다.
그때 아들 충소구와 구양천이 시비가 붙었는데, 충소가 패배하여 검상을 입고 돌아오자 분노하여 쳐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한 목숨을 바쳐 천하를 어지럽히는 혈궁의 무리를 모조리 제거하여 무림을 안정시키겠다는 큰 포부는 어디로 갔습니까?
아직도 구양천이 외친 이 말이 충파헌의 귓가에 쟁쟁했다.
그는 혈궁을 토벌할 때, 큰 포부를 화운룡에게 밝혔었는데 바로 이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아직도 뇌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말이오. 구양무인은 정말로 화 맹주님을 쏙 빼어 닮았소. 아, 얼굴이 아니라 무공, 성격, 단호함 뭐 그런 거 말이오.”
염무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감정은 무림맹의 많은 무인들이 더 많이 느꼈지요. 아마도 화 맹주님께 천의검법을 사사받았고, 그분을 존경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요.”
충파헌은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두런두런 대화가 이어졌는데, 정검문의 개파를 축하하는 말이 많았지만, 구양천에 대한 내용이 절반을 이뤘다.
사실상 정검문은 척사검대였기에 여기에 모인 무인들은 정검문의 진정한 주인을 구양천이라 생각했다.
떠들썩하게 진행된 연회는 저녁 무렵 끝이 났고, 무인들은 서둘러 돌아가거나 예약한 객잔으로 돌아갔다.
“휴우.”
황엽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주님 잘하셨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못했을 겁니다.”
적요산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렸고, 오직 무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였기에 이런 부분은 맹탕이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보다 무위가 훨씬 약한 황엽이 문주라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언젠간 자네도 문주를 하려면 배워두게.”
“아이고, 싫습니다.”
적요산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이 사람아, 다른 무인들은 문주가 되고 싶어 난리인데. 어째서 싫다고 손사래를 치는가?”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계속 무공을 연마하여 죽기 전에 한번쯤은 정점을 찍고 싶습니다.”
“허어.”
적요산이 큰 꿈을 드러내자, 황엽은 부럽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자질이 부족한 황엽은 처음부터 포기했던 꿈이었다.
“내가 힘껏 돕겠네. 반드시 정점에 오르게.”
“물론입니다.”
적요산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
구양세가.
염무상은 객잔으로 가지 않고 구양세가로 향했다.
“구양무인을 만나려고 왔소이다.”
염무상은 성휘에게 정중하게 요건을 밝혔다.
성휘는 자신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성휘는 한발자국 앞장서서 염무상을 구양천의 처소로 안내했다.
“들어가시지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소.”
성휘는 염무상을 안내하고는 돌아갔다.
염무상은 긴장된 표정을 지은 채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 앉으시게.”
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십니까?”
“물론. 자네도 건강하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각에 어쩐 일이신가?”
“맹주님의 선물을 전달해드리려고 왔습니다. 내일 아침에 바로 무림맹으로 출발할 예정이어서 늦었지만,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선물이라.”
내 얼굴에 궁금함이 묻어났던 걸까?
염무상은 옅은 웃음을 짓고는 비단 보자기를 푼 후, 고급상자를 꺼내어 서탁에 올려놓았다.
길쭉한 직사각형 상자를 본 나는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검이로군.”
“그렇습니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군요. 무림맹의 보물인 천검입니다.”
“천검.”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려나왔다.
천검(天劍).
하늘이 내린 검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명검 중의 명검으로 손꼽히는 보검이었다.
무림맹에서 천검을 내게 주었다는 건 나를 무림맹의 최고 귀빈으로 대접하겠다는 의지였다.
난 천천히 상자를 열어 검을 들었다.
챙.
검을 뽑자, 맑은 소리와 함께 천검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만에 보는 자태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맹주님께서 또 하나의 선물을 하셨습니다.”
“또?”
“네. 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거부하셔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구양무인의 별호가 딱히 없는데, 맹주님께서 고심 끝에 검신(劍神)이란 칭호를 바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괜찮다면 무림맹의 이름으로 무림에 선포할 예정입니다.”
나를 대우해주려고 애쓰는 삭천혁의 진실한 마음이 느껴졌다.
전생에서 내 별호가 철혈검신이었다.
거기서 냉혹한 이미지인 철혈을 빼고 검신으로 칭하니 한결 정겹게 다가왔다.
더군다나 내 친우이자, 구양세가의 전설적인 무인인 구양의가 검제였으니, 내가 검신으로 불리는 것도 잘 어울릴 것이다.
별호란 타인이 지어주는 것인데, 무림맹에서 지어준다면 그것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고맙다고 전해주게.”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고 무림맹에서 공식적으로 중원의 모든 문파에 사람을 보내 그리 알리겠습니다.”
“낯 뜨거운 일이군. 굳이 사람을 보내서까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고맙네.”
이번 조치로 내 위상이 크게 올라갈 것이고, 동시에 구양세가는 중원의 모든 세가 중에서 으뜸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시게.”
염무상이 물러난 후, 난 천검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머릿속에 떠오른 무인은 친우였던 구양의였다.
‘이제 구양세가가 천하제일가가 되었네. 친우여. 이제 만족하시는가? 자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마음 한구석에 쌓아두었던 돌덩어리 하나를 덜어낸 느낌이야. 물론 내가 무림맹주에 올랐다면, 천마교와 암흑마련, 풍검까지 몰아내고 중원을 지배했다면 자네는 더욱 만족했겠지.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시게.’
-미안하네. 친우여. 내가 추한···모습을 보였어.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구양의가 마지막에 내 검에 가슴을 찔려 죽어가며 내게 남긴 이 말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자넨 최고였네. 내가 그때 욕심을 덜 부렸더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감이 자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어. 나중에 죽으면 저승에서 보세. 그땐 내가 사죄하겠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구양의와의 추억을 떠올렸고, 얼굴에는 저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