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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49화 (149/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49화

149화. 가족.

만월루.

염무상이 청룡단을 이끌고 청과 구양평을 호위하여 정주현으로 출발했을 무렵, 난 금노를 만나기 위해 만월루로 향했다.

“오랜만이네요.”

황보연이었다.

이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고,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를 보자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소식 들었어.”

“유모. 아이 좀.”

황보연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유모에게 맡겼다.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어요?”

“응.”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따라 만월루 팔층으로 향했다.

그녀와 추억이 깃들었던 연무장이었기에 여러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녀는 연무장을 가로질러 창가로 향했고, 나 역시 천천히 걸어 창가로 향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그녀가 입을 열어 침묵을 깨트렸다.

“저한테 할 말 없어요?”

“행복해?”

“당연히.”

“다행이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고, 또 그녀가 깼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오라버니를 원망했어요. 언니도 원망했고요.”

아마도 금노는 청이 낳은 아들이 내 아들이란 걸 나보다 훨씬 일찍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황보연을 서둘러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보냈을 테니, 그녀는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원망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미안해.”

지금에 와서 무슨 변명이 통하겠는가?

또 굳이 이 상황을 변명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천산에서 청과 마지막에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풍검의 무공을 익히고, 계속 무공을 익히면서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부질없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오직 무공밖에 모르는 무치인 내가 그런 상황에서 무공을 익히는 걸 포기하고 여자를 선택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후회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내가 저지를 일은 내가 책임질 생각이었다.

그게 이 구양천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미안해하지 말라니까요. 혼인도 내가 선택했어요.”

“그래도 미안해.”

“언니와 행복하게 살아요.”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에 대해서는 뭐든지 자신 있는데, 왠지 여자문제로 넘어오면 이건 목석이나 다름없었다.

“바보.”

황보연은 뜻 모를 말을 남기고는 연무장을 떠났다.

그녀가 떠났지만, 난 한동안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연매. 행복하게 살아. 나도 그럴 테니까.”

한참 후에 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연무장을 나와 금노가 머무르는 구층으로 향했다.

“그리로 앉으시게.”

금노는 내가 황보연과 만난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테지만, 일부러 모른척해 주었다.

“어쩐 일인가?”

“대부분 알고 계실 테니 빙빙 돌리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하게.”

“전 앞으로 정주현에서 살 생각입니다. 이전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생각도 없고요.”

“예상 밖이군.”

“그리고 당분간 무림은 평화로울 겁니다.”

“그 부분은 자세히 설명해주시겠는가?”

“간단하지요. 제가 천마교, 암흑사련의 잔당 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역시 예상대로군.”

“헛참.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딱 여기까질세. 그럼 풍검도?”

“풍검과 좋은 인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제 말을 들을 진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향을 본다면 분란을 일으키진 않겠지요.”

“무림맹을 포함한 네 개의 세력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평화가 도래한다?”

“그렇습니다.”

“무림맹이 설립된 이후 평화로운 시절이 많았지만, 이런 평화는 처음이로군. 그동안 평화는 무림맹의 압도적인 힘 아래 조성되었었는데.”

“덕분에 평화가 길지 않았고, 혈전이 자주 발생했지요. 무림맹과 뜻이 다른 세력이 많은데 그들을 인정하고 포용하기 보다는 억눌렀으니까요. 그게 순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게 옳은 일인지는 시간이 지난 후 역사가 판단해주겠지요.”

금노는 입을 다물고 말없이 나를 노려보다가 묵직한 음성을 토해냈다.

“마치 자네는 무림맹주를 역임하고 물러난 사람처럼 말하는군.”

“저도 그동안 경험을 많이 쌓았기에 생각을 정리하여 드린 말씀이지요.”

“자네 말이 맞아. 이 새로운 시도는 역사가 판단하겠지. 무엇을 원하는가?”

“앞으로 정주현을 벗어날 일이 별로 없을 테니, 정보를 부탁합니다.”

“그리하지.”

금노는 선선히 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저도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협조하겠습니다.”

“그런데 정주현에만 머무르면 답답하지 않겠는가?”

“이제 당분간은 무공에 미쳐 살던 삶을 정리하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아이의 아버지로 평범한 삶을 살아볼 생각입니다.”

“누릴 수 있을 때 누리게. 어쩌면 세상은 자네가 평화롭게 살지 못하도록 들들 볶을지도 몰라.”

“하하하. 이거 난감하군요. 그건 사절인데요.”

금노는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고, 난 그걸 귀담아 들었다.

무공에 대해서라면 내가 그에게 조언해야 하지만, 적어도 부모와 남편으로서의 평범한 삶에 대한 조언은 새겨들을 게 많았다.

금노는 단 한 번도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부분을 언급하여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다.

만월루를 나온 나는 한참 걷다가 멈춰 서서 만월루 구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삶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무림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는구나.’

금노에게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공언했지만, 고급정보를 부탁한 것은 언제든지 무림에 큰 문제가 터졌을 때 뛰어들어 조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난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뭐, 당분간은 조용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조용히 있는 다고 세상이 내버려둘 리도 없고. 편하게 생각하자.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면 그때 나서서 일을 처리하면 그뿐이다.’

**

“어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었나요?”

구양평은 정주현으로 향하는 가마 안에서 청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그는 구양천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버지일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했었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산동에서 만났을 때는 그저 강한 무인으로 생각했었는데, 불과 두어 달 사이에 그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그래. 처음부터 대단한 분이셨지.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구나. 마치 그는 천하제일인처럼 느껴졌어.”

“에이, 아버지 처음 보직이 소마각 집행인이었잖아요. 물론 그 위치가 절대 낮은 건 아니지만, 천하제일인이라는 표현은 쫌.”

“모두 그렇게 보았지. 나도 새로운 집행인을 만난다는 느낌으로 구양세가로 갔고.”

청은 마음이 진탕되어 얼굴이 붉어지자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셔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구양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달랐어. 내가 그 당시 무위가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수많은 정사고수를 보았기에 안목만큼은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그를 처음보고 큰 충격을 받았지. 분명 외형상으로는 뛰어난 고수이었지만, 난 그에게서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고수를 떠올렸거든.”

“누구요?”

“화운룡 맹주님.”

“좀 비약이 심하신데요. 아마 어머니 눈에 콩깍지가 씌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가?”

청은 구양평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저 환하게 웃고 말았다.

그녀도 그 당시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걸 어찌 구양평에게 설명하겠는가?

하지만 그에게서 화운룡의 모습이 떠오른 걸 사실이었다.

“그가 무림에 출도하자마자 세상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맹주, 제갈군사도 마찬가지였지.”

“후와, 그럼 천하제일인에 오른 건 당연한 거네요.”

“요놈아. 그게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청은 구양평의 양볼 살을 살짝 잡고 흔들며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다.

“저도 아버지처럼 반드시 천하제일인이 될 겁니다.”

“그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청은 구양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추켜세웠지만, 속내는 달랐다.

세상에서 구양평을 가장 잘 아는 이가 청이었다.

무인인 그녀는 구양평이 태어나자마자 근골을 살폈지만, 애석하게도 상급이었다.

물론 상급의 근골을 갖고 태어났다는 건 축복받을 일이었지만, 천하제일인을 노리기엔 부족한 점이 있었다.

특히 무림출도할 때부터 선풍을 몰고 왔던 구양천과 비교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은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평이는 그가 아니라 나를 닮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휴우, 무인으로 산다면 그를 닮아야 하거늘.’

청은 생각할수록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색하지 않았다.

**

정주현.

염무상은 정주현에 도착하자, 무림맹 청룡단의 깃발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대로를 가로질러 구양세가로 향했다.

수많은 무림인과 백성들이 몰려나와 이 진귀한 행진을 구경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청룡단을 따라 구양세가로 향했다.

워낙 청룡단의 기세가 등등하여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과연 가마에 누가 탔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구양세가.

나는 성휘와 수검대, 제검대를 이끌고 정문 앞에 서서 청룡단을 맞이했다.

무림맹을 대표하여 온 청룡단인 만큼 내가 직접 그를 맞이하는 게 옳았다.

“구양무인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게.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네.”

“아닙니다. 그리 힘들진 않았습니다.”

염무상은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곧 가마가 내려졌고, 문이 열리며 어린 구양평과 청이 내렸다.

“아버지.”

구양평은 나를 보자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버지란 말에 난 마음이 울컥했다.

전생을 통틀어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청은 가만히 다가왔고, 난 그녀를 함께 안았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고생했으니 쉬었다가 가시게.”

“무림맹이 매우 바쁩니다. 죄송합니다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허어.”

염무상은 씩씩하게 포권하고는 청룡단을 이끌고 남쪽으로 돌아갔다.

청룡단을 따라왔던 무인과 일반백성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제일인으로 추앙받는 내가 벌써 부인과 아들을 두고 있었으니까.

특히 내가 혼자라는 걸 알고 눈독을 들였던 몇몇 가문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청과 구양평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빼곡히 모여 있던 그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성휘는 힐끔 힐끔 청과 구양평을 쳐다보았다.

“성휘.”

“예. 공자님.”

“여기까지.”

“알겠습니다.”

성휘는 공손하게 포권하고는 수검대, 제검대를 이끌고 물러났다.

난 둘을 데리고 내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가족이 모여 있었다.

“잘 왔다. 잘 왔어.”

모용혜는 우릴 발견하자마자 달려와 청을 꼭 끌어안았다.

같은 여자로서 청이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살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진심을 다해 안아주었다.

“잘 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청입니다. 인사하거라.”

청은 구양현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구양평을 재촉했다.

“구양평입니다.”

구양평은 씩씩하게 인사했다.

“껄껄. 우리 천이 어린 시절과는 딴판이로구나.”

구양현은 대소를 터트리며 구양평을 안아 들었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모용혜는 청의 손을 잡고 안으로 향했고, 구양현은 구양평을 안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갔다.

졸지에 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서운해 하지 마라.”

형인 구양수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서운하긴. 내가 미안하지.”

“알면 됐다. 이제 효도 좀 해라. 가자.”

구양수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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