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44화
144화. 구양천의 분노.
슝. 슝.
강우충이 빠르게 경공술을 펼쳐 추격하며 연속으로 지풍을 날렸다.
“크흑.”
이미 지풍을 여러 곳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적요산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 백마산이 이제는 코앞이었다.
추격하던 강우충은 이대로 가다가는 적요산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설령 그를 잡더라도 백마산에서 잡는다면 구양천과 마주칠 확률이 있었다.
그와 일대일로 맞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에 강우충은 승부를 걸었다.
강우충은 급격하게 내공을 끌어올려 속력을 높였다.
휘리리릭.
강우충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빠르게 적요산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적요산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그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지만, 여러 곳에 지풍을 맞아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펑.
“커헉.”
적요산은 입으로 뜨거운 선혈을 뿜어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휴우, 지독한 놈이로구나. 내가 왜 네놈을 몰라봤을까?”
강우충은 쓰러진 적요산 앞에 내려서며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적요산은 강우충의 현무단주 소속대원이었었는데, 그때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었다가 구양천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후 기량이 급성장했다.
“원통하구나. 죽어서도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적요산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는 악을 썼다.
“아서라. 그런다고 구양천에게 네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강우충은 적요산을 추격하면서 구양천이 끼어들 것을 우려했고, 적요산을 제압하면서 곧바로 기파를 펼쳐 외부로 소음이 퍼져나가는 걸 막았다.
그는 더 시간을 끌어봐야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는 검을 뽑았다.
적요산은 마지막임을 인지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쉬잇.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적요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깡.
예상치 못한 이상한 소리에 적요산은 눈을 떴다.
바닥을 뒹굴고 있어야 할 자신의 머리는 여전히 몸통에 고정되어 있었고, 강우충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급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검에는 나뭇잎이 박혀 있었다.
“적엽상인.”
말로만 듣던 상승비기에 적요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충. 어째서 적요산을 공격했느냐?”
울화를 간신히 참으며 내는 섬뜩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자, 강우충은 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방어에 치중하며 입을 열었다.
“구양무인. 난 그대에게 악감정은 없소.”
그의 말이 끝날 즈음 작은 점이 점차 커지더니 사람의 형상을 띄었다.
쿵.
백마산에서 전력을 다해 달려온 나는 강우충을 노려보다 적요산에게 다가가 급히 응급조치를 취했다.
지혈한 후, 혈맥을 바로잡고 수혈을 눌러 적요산을 재운 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격했다면 내게 타격을 입혔을 텐데.”
“적어도 강우충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소.”
강우충은 급히 이리 말했지만, 괜히 잘못 공격했다가 실패하면 그때는 엄청난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적요산을 공격했는가? 같은 무림맹원을 공격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인가?”
“나도 마음이 썩 내키진 않았소. 하지만 맹주령이 발동되었기에 어쩔 수 없었소.”
강우충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구양천과 일대일로 마주한 최악의 상황이 터졌다.
그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여기서 뼈를 묻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책임을 맹주 양천린에게로 슬쩍 팔밀이를 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말에는 논리적인 오류가 없었다.
“맹주령이라. 자세히 말하게.”
아직도 분노가 내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자, 강우충은 한숨을 ‘휴’하고 내뱉고는 자초지종을 토로했다.
“허허. 나참.”
너무나도 충격적인 내용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통상 이런 상황이면 분노를 터트리는 게 정상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분노보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강우충은 슬며시 내 눈치를 살필 뿐, 감히 기습한다거나 도망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더 강해졌다.’
강우충은 매우 긴장하여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몇 달 전에 무림맹에서 보았을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럼 척사검대는 어찌 되었는가?”
“아마 모두 죽었을 것이오.”
“이런 잔인한 놈들.”
내가 분노를 표하며 손을 들자, 강우충은 급히 내력을 끌어올렸다.
슈슝.
가벼운 파공음과 함께 강기가 밀려들자, 강우충은 대경실색하며 두 손을 들어 막았다.
퍼펑.
강우충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가벼운 일장을 전력을 다해 막고도 뒤로 물러나자, 강우충의 표정은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애초에 강우충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공격을 멈췄다.
“아무리 맹주령이 내려졌다지만, 한솥밥을 먹은 자들을 그리 죽이고도 네가 단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강우충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맹주령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그것이 씨도 먹히지 않은 마당에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왼팔을 잘라 저승으로 간 척사검대원들에게 사죄하라.”
잔혹한 명령에 강우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무하오.”
“천만에. 내가 무림맹을 뒤엎으려고 생각했다면 당장 네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빌어먹을. 내가 어떻게 키우고 지켜온 무림맹인데, 양천린 이 죽일 놈이 모든 걸 망쳐놓는구나.”
전생에서 무림맹을 지키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흔들렸다.
“그린 못하겠소.”
강우충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순간 내 몸이 흐릿해졌다.
강우충은 공격으로 판단하고 검을 들었다.
쾅.
“크헉.”
검이 부딪쳤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소리와 충격파가 전달되었다.
풍검 특유의 쾌(快)와 폭(暴)이 발현되자, 강우충의 머릿속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서걱.
삼초 만에 옆구리를 베이자, 강우충의 몸은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왼팔을 자르고 사죄하라.”
난 최대한 분노를 삭이며 명령했다.
전생에서 무림맹주 시절에 어린 강우충을 키워 지금의 현무단주로 만든 게 나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분노하면서도 과거의 아련한 정 때문에 단숨에 목을 벨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옆구리를 베는 선에서 그쳤던 것이다.
강우충은 덜덜 떨면서 검을 들어올렸다.
한번 제대로 부딪치고 나자 공포가 엄습했고, 이번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대로 목이 달아나리라는 걸 직감했다.
툭.
“크헉.”
강우충은 왼팔이 잘린 부분을 지혈하며 신음성을 토해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왼팔이 잘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맹을 개혁할 것이다. 강우충. 나를 따르겠느냐?”
“매, 맹주님을 어찌할 생각입니까?”
강우충은 불안한 마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공포감으로 물든 강우충의 말투는 극존대로 바뀌었다.
“죽인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무림을 흔드는 자를 살려둘 순 없잖은가?”
“그럼 무림맹 전체를 적으로 둘 수 있습니다.”
“이는 무림맹의 내분이다. 양천린은 하극상이라 규정할 테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분일 뿐이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승자가 되면 감히 저항할 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단호하게 의지를 드러내자, 강우충은 난감해졌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의지를 밝혔다면 팔이 잘리고 반란자가 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생각을 했을 터인데, 이미 팔까지 자른 상황이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지. 현무림에서 나를 막아설 자는 없다.”
실로 광오한 표현이었지만, 직접 손을 섞어본 강우충은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그럼 주작단주도?”
“당연히.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거기에 남녀노소가 무엇이 중요한가?”
‘마치 화 맹주님 같군.’
냉철하고 단호한 나를 바라보며 강우충은 화운룡을 떠올렸다.
“잠시 기다려라.”
난 적요산을 안아들고 백마산으로 날아갔다.
그를 치료하고 안정시킨 후에 암흑사련 본단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강우충이 도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봐야 죽여야 할 적이 한 명 더 늘어날 뿐이었으니까.
“대주님.”
적요산이 힘겹게 입을 뗐다.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네가 이리 되다니.”
“매, 맹주령이 발동되었습니다. 곧 사대단을 비롯한 정예무인이 이리로 몰려올 것입니다.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세상의 누구도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쉬거라.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난 적요산의 수혈을 짚어 잠을 재우고는 진기를 불어넣어 그를 치료했다.
완벽한 치료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뒤틀린 혈맥을 바로잡고, 몸에 안 좋은 진기를 외부로 배출했기에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이다.
적요산을 모옥에 눕힌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려 백마산을 내려갔다.
강우충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주하지는 않았군.”
“이리된 마당에 도주한다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강우충은 헐렁한 자신의 왼 소매를 가리켰다.
문득 그와의 추억이 떠오르자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독해져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내가 양천린을 비롯한 무림맹원들에게 물렁하게 보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데 세상은 나를 내버려두질 않는구나.’
난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강우충이 뾰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림맹원들입니다.”
난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전부터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슈슈슈슈슉.
삼백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바닥에 내려서며 둥그렇게 에워쌌다.
그 중심에는 양천린, 온세혁 등의 장로와 단주인 삭천혁, 소양혜, 염무상이 있었다.
양천린의 기세는 실로 위풍당당했다.
이렇게 많은 무인들을 데려왔으니 내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제압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난 그런 양천린을 바라보며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천린. 여전히 네놈은 전투를 모르는구나. 만약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너는 이 자리에 나타나면 안 됐다. 어떤 조직이든 간에 수뇌부를 제압하면 전투는 금세 끝나는 법. 내가 너를 제압하면 이 전투는 끝이다.’
난 전생에서 혈천교를 상대하던 때를 떠올렸다.
기이하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우연히 혈천교주 수뇌부와 맞닥뜨렸고, 거기서 교주와 수뇌부를 모조리 죽임으로써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암흑마교와 길게 이어지던 전투도 교주 척무혁을 죽이면서 사실상 종결되었다.
무림에서 조직의 수장은 보통 가장 강력한 무인이 선정되기 때문에 그를 꺾으면 나머지 무인들은 대체로 결과를 받아들였다.
물론 끝까지 저항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대세가 꺾이는 건 사실이었다.
현 무림맹 최고고수는 당연히 양천린이었다.
양천린은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보게. 양 맹주.”
“이보게? 이놈이 천마의 무공을 익히더니 미쳤구나.”
“자네의 문제점이 뭔지 아는가?”
“허허, 나참. 뭔 헛소리냐? 내가 한참 무림의 평화를 위해 좌충우돌할 때 네놈은 태어나지도 않았어.”
“경험부족이지. 그래서 신중하질 못해. 그런데 아직도 고치질 못했군.”
“뭔 헛소리야?”
엄정하고 나직한 말에 양천린은 발끈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혈궁을 토벌할 당시 화운룡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천린.”
“예. 맹주님.”
“이대로 성장한다면 자네는 내 뒤를 잇기에 손색이 없어.”
“과찬이십니다.”
화운룡의 칭찬에 양천린은 내심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고쳐야 하네. 물론 단점이 여러 개 있지만, 이것만큼은 고쳐야 해.”
“말씀하십시오.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신중하게. 무슨 일을 할 때는 신중하게 처리하게.”
“신중하게요?”
양천린은 당혹스러웠다.
이제까지 서둘러서 일을 망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종종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 이번에 혈궁의 최정예부대인 혈랑대를 토벌할 때를 생각해보게. 그들이 위기에 몰리자, 자네를 집중공격해서 활로를 열고 탈출했네. 대장이란 말이야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으면 함부로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선 곤란해. 그게 곧 약점이 되거든.”
양천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혈랑대를 놓친 질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곡해하지 말고 듣게.”
“앞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특히 강력한 적을 몰 때는 주의하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어. 하물며 강력한 적이라면 활로를 찾으려고 눈이 시뻘겋지. 그 활로는 아주 간단해. 바로 상대의 수뇌부를 치는 것이지.”
“제가 활로를 열어주었군요. 죄송합니다.”
화운룡은 말없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양천린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
양천린은 생각을 정리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는 나를 본 양천린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몸이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