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41화
141화. 붕괴되는 암흑사련.
백마산.
“이거 불안한데.”
모용수는 백마산에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암흑사련을 들쑤셔놓고 편안하게 백마산에서 다리 뻗고 자고 있는 구양천을 보고 있자니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백마산으로 갈 때만 하더라도 최소한 암흑사련 잔당의 공격에 대비할 줄 알았는데.
“하긴 그리 강한 무위를 발현했으니, 저놈들도 많이 겁먹었겠지.”
모용수는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래도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 큰 사람이 뭘 그리 불안해하시오?”
“일어나셨소?”
“땅 꺼지는 줄 알았소.”
“허허허.”
모용수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리 대책 없이 있어도 되겠소?”
“뭐, 당하지 못하겠다 싶으면 도망치면 되니까. 모용무인도 빠르잖소?”
“아니, 그래도 천하제일인으로 추앙받는 구양무인께서 어찌 도망이란 말을 그리 쉽게 쓰시오? 자존심 상하지 않으시오? 명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으시오?”
“명성은 무슨.”
난 콧방귀를 뀌며 다시 평상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전생에서 그 명성이라는 허울 좋은 낚시 바늘에 코가 꿰어 인생을 싸움으로 소비했었다.
그땐 그게 참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곡진헌이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나설 생각은 아니었다.
“하여간 구양무인은 특이하시오.”
모용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곁에 털썩 앉았다.
“이제 어쩔 생각이오?”
“기다려봅시다. 적어도 이곳에 오는 무인들은 패(覇)를 추구하는 마인들이고, 암흑사련에 남는 자들은 사(邪)나 요(妖)를 추구하는 사인들이오. 그런 놈들은 무림맹에 토벌당해도 싸지.”
무림맹 시절에 이걸 구분해서 토벌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무림맹 반대편에 있으면 적으로 규정하고 토벌했으니 잡초처럼 끊임없이 살아나고 또 살아났던 것이다.
이번에는 무림맹 홀로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력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마침 풍검이 사천성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었다.
풍검은 사천성을 얻은 후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며 침략근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암흑사련이 무림맹에 무너진 후, 천마교, 풍검과 암흑사련에서 갈라져 나온 무리가 새롭게 세력을 구축해야해. 패를 추구하는 무리라면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무림맹의 전횡도 어느 정도 잡아줄 테고.’
“모용무인.”
“예. 구양무인.”
“천마교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훌륭하다고 생각하오. 암흑사련보다 더.”
“그런데 어째서 암흑사련에 계속 계셨소?”
“지옥혈도를 수련하는 련주가 보기 싫어서 천마교를 찾아간들 내가 무엇을 얻겠소? 여든이 넘었는데, 그래도 부련주라는 직함으로 있는 게 낫지. 난 구양무인처럼 명성에 초연하지 못하오.”
모용수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럼 암흑사련에는 그런 무인들이 많겠구려.”
“많지요. 오랫동안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며 고생했는데, 명성마저 사라진다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겠소? 정파무인은 안 그렇소?”
“똑같소.”
“역시 구양무인이 독특한 거요.”
“나도 한때는 그렇게 명성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소.”
“꼭 내 나이 또래처럼 그런 말 좀 하지 마시오.”
“하하하. 미안하오.”
난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모용수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꾸 전생이 떠오르다보니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그때와 비슷한 또래다보니 생각이나 여러 면에서 공유하는 부분도 많았기에 편했다.
“구양무인은 다 좋은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허풍은 떨지 않으셨으면 좋겠소.”
“아무튼 기다려봅시다. 분명 올 거요.”
“고우진이나 악진천 이런 자들 말이오?”
“그들 아니면 누구겠소? 아까 눈빛을 보니 그런 자들이라면 한 지역을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구양무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뭐가?”
“아니 정파무인이면 무림맹이 중원을 통일하는 게 당연하지 않소. 그런데 왜 그러시오?”
“그건 또 그거대로 부작용이 많으니까. 여러 세력이 조화를 이루고 견제하는 게 무림의 평화를 위해선 더 낫다는 판단이 들었소.”
“구양무인의 생각이 틀렸다면?”
“뭐, 그럼 또 혼란이 일어나겠지요.”
“너무 대충 대답하는 거 아니시오?”
“나 역시 정답을 알지 못하오. 다만 화운룡이 무림맹 맹주로 있던 시절 무림맹은 최절정기를 누렸소. 동시에 무림은 피가 마를 날이 없었소. 그렇기에 이번에는 조화와 견제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소.”
“이럴 때보면 늙은이가 따로 없다니까. 참나.”
모용수는 혀를 차고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무림맹에서 가만있겠소? 암흑사련을 무너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암흑사련은 무너질 것이오. 다만 패를 추구하는 무리들을 모아 세력을 다지도록 만들 생각이오.”
“만약 무림맹이 구양무인과 생각이 다르다면 어쩔 것이오?”
“설득해보고 계속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난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양천린도 암흑사련주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오.”
“맙소사.”
“하지만 제갈문현이 있으니 그런 참담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오.”
“진심이었구려. 견제와 균형.”
“그렇소. 지켜봅시다.”
“조만간 천마교에서도 구양무인께서 천마의 무공을 사용한 걸 알게 될 것이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바로 대답이 나오자 모용수는 머릿속에 뭔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천마교주 목진석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는데···이제 보니 구양무인이 목진석이었구나. 누구도 목진석의 본 모습을 알지 못하니까. 기가 막히는군. 무림이 구양무인의 손바닥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니.’
대화를 나눌수록 충격을 받자, 모용수는 입을 꾹 다물고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
그날 저녁 암흑사련.
“정말 이러실 거요?”
배원강은 고우진을 바라보며 불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불만이시오?”
“련주님께서 구양천에게 돌아가셨소. 복수를 다짐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지금 뭐하는 거요?”
“그대는 지옥혈도를 익히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오?”
“전 련주님께서 지옥혈도를 익힐 때는 아무런 반발이 없더니 이제 와서 왜 그걸 따지시오?”
“그분과 련주님은 비교하지 마시오.”
고우진은 기분 나쁘다는 인상을 찌푸리며 일갈하고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전 련주님의 혈족이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오. 그게 아니었다면 당주도 힘든 자였소. 용렬한 그를 련주로 모신 기간은 부끄러운 시간이었소.”
“말이 심하구려.”
“배 원로.”
“말씀하시오.”
“그리 충성심이 강하면 그대가 무인들을 이끌고 백마산으로 가시오. 진정한 충성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오.”
“고 원로가 협조하지 않으면 내가 무인들을 모조리 이끌고 가봐야 시체들만 늘어날 것이오.”
“말을 못 알아듣는군.”
고우진이 입술이 비틀어졌다.
“뭐요?”
“고 원로. 무인이란 말이오. 때로는 대가리가 터져 죽을 게 뻔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전장에 뛰어드는 것이오. 그대처럼 이것저것 재며 기회를 노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대와 신념이 같았다면 벌써 백마산으로 갔을 것이오. 하지만 난 척휘명을 위해 그럴 생각은 없소. 그는 련주의 자격이 없으니까.”
고우진은 련주님이란 말 대신 척휘명이라 언급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배원강은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감히 고우진에게 덤벼들진 못했고 그걸 지켜본 고우진은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평생 패를 추구한 고우진은 척휘명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배원강 같은 무인들을 더더욱 경멸했었다.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이곳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배신자 같으니라···커헉.”
배원강은 비난을 퍼붓다가 중간에 비명을 질렀다.
고우진의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공중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무인이라면 무공수련에 전력을 기울여라. 네놈같이 사술에 전념하는 무인들이 늘어나니까 무림맹에 이토록 밀리는 것이다.”
고우진은 배원강에게 일갈하고는 그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현격한 무위 차에 배원강은 감히 고우진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후회할 것이오.”
배원강은 이를 악물고 방을 벗어났다.
그때까지 침묵으로 지켜보던 악진천이 입을 열었다.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백마산으로 가자.”
“그는 정파무인입니다.”
“동시에 천마기도 하지.”
“천마요?”
“그는 단순히 천마의 무공을 사용한 게 아니야. 내가 알기로 명리종도 그 정도는 아니야.”
현 천마교주 명리종과 비교하여 구양천을 윗줄에 놓자, 악진천은 당혹스러웠다.
“어쩌면.”
“네.”
“아니야.”
고우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구양천이 목진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끝내 그걸 입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만큼 구양천이 곡진헌을 상대로 보여준 무위는 무시무시했다.
“함께 할 무인은 몇 인가?”
“총 백이십 명입니다. 모두 일당백의 용사들이죠.”
“그래. 혈천교같은 썩어빠진 무리들이 설치는 암흑사련에 더 남은 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떠나자. 일단 구양무인을 만나서 대화해보고 그와 뜻이 맞지 않으면 어디로든 떠나자. 갈 곳이 없겠느냐?”
“예. 준비하겠습니다.”
악진천은 고우진의 명령에 곧장 복명했다.
다음날 새벽.
“빌어먹을 새끼들.”
배원강은 암흑사련을 떠나는 고우진 무리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가장 강력한 무인들이 떼를 지어 떠났으니 이제 암흑사련은 핵심세력이 빠진 셈이었다.
겉모습은 그럴 듯 했지만, 만약 무림맹이나 천마교 또는 풍검의 무리가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공산이 컸다.
**
그날 오후.
고우진은 백마산에 도착하자, 악진천에게 무리를 이끌고 산 아래에서 대기하라고 명하고는 홀로 몸을 날려 산을 올라갔다.
“그리 앉으시오.”
모용수는 고우진에게 평상 한쪽을 가리켰다.
고우진은 누워있는 구양천을 흘끔 바라보더니 얌전하게 평상에 앉았다.
“거 사람이 왔으면 좀 일어나시오. 에잉.”
툴툴거리는 모용수의 잔소리를 들으며 난 자리에서 일어나 고우진과 눈인사를 했다.
전생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덤덤한 내 말에 고우진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혹 천마 목진석 아니시오?”
고우진의 질문에 모용수도 궁금함을 얼굴에 드러낸 채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려면 어떻소.”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고우진과 모용수는 내가 목진석이라고 확신했다.
“산 아래 백이십의 무인이 저를 따라왔소이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무엇을 추구하시오?”
“극강의 무위.”
“그럼 원하는 곳으로 가시오. 내가 도와주겠소. 단 장안현 인근은 피하시오. 곧 무림맹이 들이닥쳐 암흑사련을 무너뜨릴 테니까.”
“그럼 천마교와 분쟁만 피하면 되겠구려.”
“극강의 무위를 추구하겠다는 사람이 천마교를 두려워하시오? 편안대로 하시오. 양쪽 모두 극강의 무위를 추구하는 집단이니 충돌이 생겼을 때 어는 한쪽을 편들지 않겠소. 혹 전투가 커져서 중재가 필요하다면 모를까?”
“천마교에 우호적일 줄 알았는데요.”
“꼭 그렇진 않소. 지금의 그 마음 초심을 잊지 마시오. 암흑사련처럼 샛길로 빠진다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겠소.”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우린 산서성으로 갈 생각이오. 혹 나중에라도 생각이 나시면 놀러오시오.”
“그리하지요.”
고진운은 개운해진 표정으로 내게 포권하고는 몸을 날렸다.
“고진운을 수하로 받아들이고 천마교와 합치지 그러셨소? 저들이라면 천마교와 마찰 없이 지낼 터인데.”
“굳이 세력을 키울 생각은 없소. 모용무인도 떠나고 싶을 때 떠나시오. 그냥 정주현 근처에서 문파를 세우고 사셔도 괜찮고.”
“이제 어쩔 생각이오?”
“좀 더 기다려봅시다.”
“천마교를 기다리시오?”
“난주현이 이곳에서 가까우니까. 분명 누군가 올 것이오. 그들을 만난 후에 정주현으로 돌아가겠소.”
난 말을 마치고는 평상에 벌렁 누웠다.
‘참 세상 편하게 사시네.’
모용수는 싱긋 웃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