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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36화 (136/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36화

136화. 곡이량을 만나다.

척휘명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은 후, 난 암흑사련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덕분에 암흑사련으로 들어갔고, 대략적인 구조와 경계상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궁금했던 부분을 해결됐다.

‘척휘명의 말을 종합해보면 곡진헌의 사술로 내가 죽임을 당했고 영혼이 빠져나와 구양천의 몸에 들어왔단 소린데. 그럼 누굴까? 곡진헌이 무림맹에 없던 것은 확실해. 그 특유의 기운은 아무리 숨기더라도 내게 가까이 온다면 알아챌 수 있어. 그럼 누가 곡진헌을 대신하여 나를 죽였단 말인가?’

척휘명이 내준 숙제를 해결하려니 머릿속이 뻐근해졌다.

난 차분하게 내가 죽었을 당시의 무림맹 조직도를 떠올리며 내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무인들을 떠올렸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난 벌떡 일어섰다.

‘그래. 신의 곡이량이 있었어.’

의술이 워낙 출중하여 신의(神醫)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그는 내 곁에 수시로 머물렀었다.

구양천으로 환생한 이후 무림맹을 방문했을 때, 곡의량은 노환을 이유로 무림맹을 떠난 상태였었다.

그때는 조금도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채지 못했었다.

당연히 곡진헌과 곡이량의 연관관계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만큼 그에게서는 혈천교의 어떤 기운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일단 곡이량을 찾아 그를 만나 그때의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통해서 곡진헌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곡진헌을 상대하기 수월할 것이다.

그날 저녁.

모용수가 산으로 올라오자마자, 난 그에게 장안현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밑도 끝도 없이 이곳을 떠나자니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모용수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일단 둘러대기로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암흑사련주의 무위가 예상보다 높고, 암흑사련의 무인들의 수가 많소. 그래서 좀 더 그에 대해 연구한 후에 다시 이곳을 방문할 생각이오.”

“그 거지새끼는 어찌 되었소?”

“죽었소.”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척휘명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모용수는 그에게 다가가 눈을 감고 그의 몸에 손에 댄 채 한참을 살피더니 경악성을 터트렸다.

“이, 이 자가 정말로 지옥혈도의 기운을 갖고 있군요. 죽어서 미세하지만 분명 느껴지오.”

그는 나와 척휘명을 바라보며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거지를 척휘명, 련주를 가짜 척휘명으로 말할 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지옥혈도는 그 원리를 알지 못하면 절대 익힐 수 없는 비기였다.

이 비루한 거지가 갑자기 그 난해한 지옥혈도를 익혔다는 건 정말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우,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그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 남거나 정주현으로 돌아가셔도 괜찮소.”

“같이 갑시다.”

모용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로 갈 거요?”

“무림맹의 의원이었던 곡이량이란 자를 먼저 찾아야 하오. 그를 만나볼 생각이오.”

“곡이량? 곡씨니까···설마 그가 곡진헌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렇소.”

“만약 그렇다면 은퇴까지 한 그를 찾을 수 있겠소? 분명 잠적했을 터인데.”

“해보는 데까지 해봅시다. 해보지도 않고 예단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소.”

“그럼 무한현으로 갑시다.”

모용수의 제안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바로 백마산을 벗어나 무림맹이 위치한 무한현으로 출발했다.

열흘 후.

무림맹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제갈문현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몇 달 전에 제갈문현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 후, 그는 내가 화운룡의 환생한 신분이란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를 대하는 자세가 더욱 정중해졌다.

“반갑습니다.”

“급히 오신 걸 보니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군요.”

“어쩌면 나를 이렇게 만든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제갈문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퇴한 신의 곡이량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그는 무한현에 있습니다.”

“무한현요?”

문득 헛다리를 짚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곡진헌과 관련이 있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써가며 무한현에 살 이유가 있을까?

물론 자신이 저지른 짓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무림맹의 첩보를 암흑사련으로 알리고자 남아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가 무한현에 산다는 건 의외였다.

“그를 의심하는 겁니까?”

“혈천교주 곡진헌이 내게 썼던 방식을 암흑사련주 척휘명에게 사용했습니다.”

난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제갈문현은 처음 듣는 기사에 얼굴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놀랍군요. 곡이량이 정말 곡진헌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소를 드릴 테니 만나보시지요. 단, 정중하게 상대하셔야 합니다. 그는 무한현에서 꽤 인지도가 높고 존경을 받고 있으니까요.”

“잘 알고 있습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도 곡이량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기에 장안현에서 품었던 강한 확신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근처에 머무르며 대법을 시전할 사람은 곡이량 말고는 없었다.

“고맙습니다.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급하니 어서 가시지요.”

난 제갈문현과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같이 차를 마시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지만, 지금 내 마음이 그리 편하질 못했다.

모용수와 함께 무한현 남쪽에 위한 곡이량 거처로 향했다.

그의 저택은 장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풍광이 훌륭한 곳이었다.

모용수는 내 선택에 의문을 품고 있는 듯 보였지만, 입을 꾹 다물고 질문하지 않았다.

곡이량 거처.

“신의를 만나러 왔네. 난 구양세가의 구양천일세.”

“아, 그러시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총관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총관이 곡이량에게 보고하기 위해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자, 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모용수가 입을 열었다.

“혹 헛다리짚은 거 아니오?”

“그럴 수도. 일단은 만나보면 알 거요.”

“곡이량이 곡진헌과 관계없었으면 좋겠는데.”

모용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관계가 있소?”

“그건 아니오. 다만 저렇게 인품이 훌륭한 자마저 속내를 숨긴 악당이라고 생각하면 무림이 너무 팍팍한 곳이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플 거 같소.”

“아니 천하의 모용무인께 그런 여린 성정이 있었소?”

“나라고 항상 독한 놈인 줄 아시오?”

모용수는 툴툴거렸다.

함께 지내면서 ‘악독한 사파인’이란 그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그때 눈에 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곡이량이었다.

“정파무림의 떠오르는 태양 같은 분이시군요.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구양천입니다.”

곡이량이 환하게 웃으며 포권했기에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했다.

모용수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자리를 피했고, 자연스럽게 곡이량과 독대자리가 만들어졌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셨는데 은퇴를 선언하셨다니 놀랐습니다.”

“다 지나간 과거일 뿐이지요. 이제는 죽을 날을 기다리는 힘없는 늙은이에 불과합니다.”

“저, 외람된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곡이량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기에 내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화 맹주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사인이 무엇입니까?”

“자연스럽게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런 고통도 없으셨고요.”

담담하게 대답하는 곡이량의 표정을 살폈지만, 특별히 속인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혹시 화 맹주님께서 죽은 후에 환생했다는 말이 들리던데, 알고 계십니까?”

아마 이런 말을 들었다면 백이면 백 ‘이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 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범인이라면 다른 무언가가 얼굴에 나타나리라 생각했다.

“허허, 상상력도 풍부하십니다.”

곡이량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그의 눈 꼬리가 살짝 떨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가 주범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관련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저도 듣기만 해서요. 사람이 환생했다니 황당하지요. 하지만 신의시니 혹시 아는가 해서 물어봤습니다.”

“그저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의원일 뿐입니다. 죽은 자의 환생 같은 일은 제가 알 수 없지요.”

“그렇군요. 제가 쓸데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척휘명도 대법으로 영혼이 빠져나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가 안심하고 차를 입에 댈 때, 기습적으로 질문했다.

이번에도 어떤 반응을 드러낸다면 곡이량은 곡진헌과 깊은 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척휘명에 대해서는 곡진헌과 혈영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곡이량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이놈은 곡진헌과 연관이 있어. 내가 전생까지 포함하여 90년을 넘게 살았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도대체 나를 어찌한 것이냐?’

당장 곡이량의 멱살을 움켜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명성과 인품 무한현에서의 위치를 생각해서 일단 참았다.

“자꾸 이상한 질문을 쏟아내서 죄송합니다. 중원을 돌아다니다보니 이런 저런 소문을 접했는데, 환생 관련한 소문은 어디 의논할 상대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갈루주께 들으니 신의께서 혹 아실지 모른다고 추천해서 왔습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해라니요? 이 늙은이가 도움을 주지 못해 죄송할 뿐이지요. 허허.”

곡이량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후 그와 대화를 더 나누고는 저택을 나섰다.

“알아내셨소?”

“내 느낌으로는 곡이량이 범인인 게 확실하오. 그런데.”

“그의 위치를 생각하니 함부로 대하기 힘들구려.”

“그렇소. 당분간 저택을 살핍시다. 내가 척휘명을 언급했으니 분명 그쪽으로 어떤 연락을 취할 것이오.”

“증거를 코앞에 들이밀면 다른 말을 못하는 법이지. 훌륭하오.”

모용수는 내 제안에 적극 찬동했다.

그와 나는 경공술을 펼쳐 저택에서 멀리 사라졌다.

곡이량은 실내를 서성거렸다.

항상 인자한 표정이었던 그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서성거리던 그가 멈춰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알고 있다. 화 맹주 일을 언급한 것이야 넘어갈 수 있다고 치더라도 척휘명까지 언급한 건 알고 있다는 소리다. 구양천 그는 누구인가? 누구인데 이걸 알았고, 내게 왔을까? 환생을 의원인 내게 물어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곡이량은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꼼꼼하게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고, 구양천에 대해 하나씩 기억을 떠올렸다.

신의란 소리를 들을 만큼 곡이량은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기에 차분하게 기억을 떠올리자, 구양천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구양천이 천의검법과 건곤여의신공을 익혔어. 아무리 천재라도 수십 년의 고련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천의검법을 익혔어. 더군다나 그는 정주현의 망나니였다가 갑자기 각성했다는 소문도 있고. 설마? 화운룡의 영혼이 구양천에게? 아냐. 아냐. 그때 대법이 실패했어. 그렇다면 영혼은 사라져야해. 아니면 구천을 떠돌거나.’

곡이량은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화운룡의 영혼이 구양천의 몸에 들어갔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양천이 갑자기 왜 절정의 무인으로 거듭났는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천의검법을 대성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젠장할. 그놈이 의구심을 품었다면 다시 찾아올 텐데. 이를 어찌한다. 일단 아우에게 알리는 수밖에. 그리고 적당한 기회를 봐서 이곳을 떠나야겠어. 너무 오래 있었어.’

곡이량은 결심을 굳혔다.

그는 고민하다가 짧게 서신을 작성하고는 전통에 서신을 넣은 후에 전서구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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