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34화
134화. 암흑사련으로.
백마산.
“여긴 암흑사련이 아닌데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용수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척무진, 척휘명이 추악한 짓을 벌이며 지옥혈도를 수련하는 이곳은 암흑사련의 련도들에게도 철저하게 비밀로 감췄던 것이다.
“지옥혈도를 익힐 때 동남동녀를 데려왔다는 걸 알고 있소?”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는 보지 못했소.”
“당연히 못 봤겠지. 여기로 데려왔는데.”
모용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런 식으로 척무진, 척휘명이 이중생활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든 했다.
“사실이오?”
“내가 뭐 하러 거짓을 말하겠소. 아마 저 백마산에 가짜 척휘명이 있을 것이오. 아니면···.”
“아니면?”
“일단 들어가 봅시다.”
난 ‘가짜 척휘명이 사라지고 비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올라가서 확인하면 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일인데, 굳이 예측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곳이라면 경계가 엄중하지 않겠소?”
“엄중하지요. 척무진이 이곳에서 수련할 땐 암영이란 자가 경계를 서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누구일까? 확인해봅시다.”
내가 은밀하게 몸을 날리자, 모용수도 은밀하게 나를 따랐다.
비록 어두웠지만, 예전에 한번 와봤었고 길이 잘 닦여져 있었기에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숨어 있는 적을 찾으며 올라가야했기에 속력은 더뎠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척무진이 머물렀던 모옥에 도착했다.
“이곳은 버려졌군요.”
모용수의 말대로 이곳은 버려졌다.
중간에 숨어서 지키는 무인들이 없었고, 모옥도 완전히 훼손되었고 동굴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흐음.”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그것이 막상 현실이 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가짜 척휘명이 지옥혈도를 십이성 대성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암흑사련에서 대놓고 사람을 납치해 지옥혈도 수련에 이용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쩐지 예감은 후자보다는 전자로 기울고 있었기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이곳이 확실하오?”
“저 무너져 내린 동굴에서 수련했소. 모용무인이라면 음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터인데.”
“아주 극악한 기운이 느껴지긴 하는데···.”
모용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좀 살펴봅시다.”
내가 천천히 동굴 쪽으로 향하자, 모용수는 모옥 쪽으로 걸어갔다.
동굴 앞에서 서서 입구를 살폈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토사와 바윗덩어리가 입구를 꽉 막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모용수가 다가왔다.
“깨끗하오.”
“그럼 암흑사련으로 가봐야겠군. 모용무인. 그곳에 아는 무인이 있지요?”
“있긴 한데.”
“그들과 접촉하여 척휘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확인해주시오. 특히 작년의 척휘명과 요 몇 달 사이에 바뀐 척휘명에 대해서.”
“가짜가 몸을 차지했다는 그 황당한···.”
“그냥 확인만 해주시오. 그리고 느낀 점을 알려주시오.”
“알겠소. 그럼 구양무인은?”
“이곳을 조사해봐야겠소.”
“여기를?”
모용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무너져 내린 동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고,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수는 내 행동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더는 말하지 않고는 산을 내려갔다.
그가 내려가자 난 천천히 동굴주변을 배회하며 지형을 살폈다.
무너져버린 입구를 파헤치면 위에서 계속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려 시간이 끝도 없이 소요될 게 뻔했기에 측면이나 후면에서 동굴로 들어갈 방법을 찾았다.
몇 년 전에 이 동굴에 왔을 때를 기억해보면, 이곳은 거대한 자연동굴이었다.
퉁. 퉁.
오른쪽의 단단해 보이는 벽에 손을 대고 진기를 실어 가볍게 쳤다.
계속적으로 묵직한 저음이 이어졌다.
계속 이동하며 벽을 치다가 가벼운 소리로 바뀌자 난 발걸음을 멈췄다.
“얇아졌다. 이 안은 빈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가벼운 소리가 나는 곳에 표시를 하고 계속 주변을 돌며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꼼꼼하게 조사했고, 가장 암석의 두께가 얇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세 개를 선정했다.
“세 곳 모두 뚫는다.”
난 천마검을 꺼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짙은 묵빛의 검이었다.
진기를 끌어올리자, 묵빛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암흑처럼 변했고, 아지랑이처럼 검의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칼끝처럼 예리한 기운으로 바뀌었다.
퍽.
퍽.
강력한 기운을 천마검에 모아 발출하자, 벽은 가벼운 진동과 함께 파여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에 진기를 쓰는 것이 아깝긴 했지만, 확실하게 진상을 알고 싶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첫 번째로 파헤친 곳에서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어린아이도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동굴이었지만, 동굴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굴을 넓히며 들어가는 게 동굴을 뚫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기에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나도 미친놈이군. 이런 일로 기뻐하다니.”
난 헛웃음을 지으며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힘겹게 확장하며 얼마나 기어갔을까?
벽으로 막혔다.
통통.
두드려보니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얇았다.
“이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벽이야.”
팡.
진기를 실어 가볍게 손바닥을 벽에 대고 밀자, 벽은 작은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그리고 안쪽에는 예전에 들어왔었던 척무진이 수련하던 석실이 모습이 드러냈다.
“젠장할. 이건 또 무슨 악취야.”
코를 찌르는 악취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원래 냄새가 지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독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시체였다.
난 인상을 굳히고 시체로 다가가 차분하게 살폈다.
“혈천교주로군. 부패했지만, 의복을 보면 그로 추정돼.”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의 몸으로 진기를 흘려 넣었다.
비록 죽었지만, 평생 수련한 진기의 기운은 조금이라도 몸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전생에서 혈천교주와 싸운 적이 있었던 나는 혈천교 특유의 기운을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 신중하게 그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던 나는 작업을 중단하고 일어섰다.
“혈천교주가 맞아. 이곳은 척휘명이 지옥혈도를 수련하던 장소. 혈천교주는 늙은 자신의 몸을 껍데기처럼 벗어버리고, 척휘명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그러니 더는 필요 없는 이 몸은 이곳에 버려졌겠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런 짓을 했을까? 설마 내가 죽어 환생한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난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고, 주변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러 군데서 지옥혈도를 수련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수련한 흔적을 차분히 조사하던 내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적어도 십일성의 경지에 올랐다. 이 흔적은 훨씬 정교해지고 강력해. 척무진이 이곳을 사용할 당시에는 없던 흔적이니 척휘명이 십일성에 도달했다고 보면 된다. 휴우, 골치 아프군. 더는 시간을 끌면 안 되겠어. 가짜 척휘명이 만약 십이성에 도달한다면 그때는 정말 승부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일단 동굴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원하는 것을 확인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악취 때문에 코가 문드러지는 것 같아 신선한 공기를 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와 척무진이 앉던 평상에 앉은 나는 숨을 몰아쉬며 신선한 공기를 만끽했다.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단신으로 암흑사련에 쳐들어간 건 미친 짓이었다.
그렇다면 주변에 은신하고 있다가 척휘명이 밖으로 나올 때 공격하는 방안과 외부에서 암흑사련을 흔들어놓고 공격하는 방안이 있었다.
“천마교를 이용할까?”
장안현과 며칠 거리인 난주현에 위치한 천마교라면 충분히 암흑사련을 흔들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천마교와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난 이곳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했고, 동굴을 드나들며 조사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죽은 시체가 혈천교주라는 것과 가짜 척휘명의 무위가 지옥혈도 십일성에 이르렀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여기 계셨군요.”
모용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혈천교주가 죽었소.”
내 말이 뜻밖이었는지 모용수는 놀란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노환으로 죽었다고 하더군요.”
“시체는 저 동굴 안에 있었소.”
“그럼 부패했을 텐데 어떻게 확인했소이까?”
“혈천교 특유의 기운을 알고 있으니까.”
“허어.”
모용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래전에 무림에서 종적을 감춘 혈천교에 대해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구양무인은 정상이 아니니까.”
“어째 내가 미친놈이다 라는 말로 들리오?”
“미쳤죠. 무예에. 아마 역사를 통틀어도 구양무인같은 천재는 없을 것이외다.”
모용수의 말에 난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렇고. 좀 알아보셨소?”
“예.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마치 다른 사람이 척휘명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소문으로 들었을 때보다 더 심각해서 깜짝 놀랐소.”
“련도들의 반응은 어떻소?”
“일부는 대환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전의 척휘명이 보여주었던 부족한 면이 많이 사라졌으니까. 우려하는 측은 저러다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거고요. 하지만 누구도 구양무인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비정상이오.”
“알긴 아는구려.”
모용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이제 어쩔 생각이오?”
“십이성에 도달하기 전에 그를 죽여야겠소.”
“그건 어렵소.”
“암흑사련에 잠입하여 그를 죽일 생각은 없소. 그건 불가능하니까. 다만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해치울 생각이오.”
“알긴 아는구려. 난 또 암흑사련에 잠입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소. 솔직히 성공할 가능성이 0은 아니니까.”
“낮은 확률에 목숨 걸 생각은 없소.”
난 단호히 대답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곳을 폐쇄하고 암흑사련으로 갑시다. 그리고 모용무인께서는 척휘명이 외부로 언제 나오는지 확인해주시오. 분명 안에만 틀어박혀 있진 않을 것이오.”
“알겠소.”
모용무인은 내 제안을 곧바로 수락하고는 암흑사련으로 몸을 날렸다.
난 동굴 쪽으로 이동하여 동굴 안쪽으로 검강을 발출하여 완전히 동굴을 안쪽에서 무너뜨렸다.
**
모용수와 함께 암흑사련 외곽에서 지속적으로 감시를 이어갔다.
그렇게 열흘을 이어갔을까?
묘한 기운을 감지했다.
“구양···.”
“쉿.”
난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는 급히 얼굴을 역용했다.
그리고 모용수에게 삿갓을 깊숙하게 눌러쓰라고 말했다.
모용수는 내 지시를 따르며 전음을 날렸다.
-왜 그러시오?
-지옥혈도의 기운이 느껴지오. 척무진과 척휘명에게서 받았던 그 기운이.
-그럴 리가요? 척휘명은 저 안에 있는···.
모용수는 손가락으로 암흑사련을 가리키며 전음을 발산하다가 멈췄다.
-설마 그를 잡으려고 그러시오?
-글쎄. 내 생각에는 그가 기회를 만들어줄 것 같소. 그때 두 놈을 잡을 생각이오. 그러니 모용무인도 기운을 최대한 숨기시오.
-휴우, 구양무인이 아니라면 아무도 이런 무식한 계획을 세우진 못할 것이오. 알겠소.
-나를 돕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자리를 피하시오. 괜히 죽을 필요는 없으니까.
-천하의 이 모용수에게 피하라는 말을 할 무인은 구양무인밖에 없을 것이오. 이것 참. 자존심 상하는군.
모용수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내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난 은밀하게 풍겨오는 지옥혈도의 기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정신을 그쪽으로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