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33화
133화. 사고가 터지다.
3개월 후.
정주현 구양세가.
하북팽가의 일이 수월하게 풀린 덕에 난 얼마 후에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후 무림맹에 들르지 않고 정주현에 머무르며 중원의 상황을 살폈고, 다행히 중원의 세가들은 지역유지와의 밀착관계를 탈피하는 쪽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무림맹에서 맹의 지침으로 확정하면서 세가들은 불만을 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청월루.
정주현 외곽에 위치한 아담한 객잔으로 황하를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여기요.”
내가 손을 들자, 모용수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어쩐 일이시오? 식사하자고 먼저 말도 꺼낼 줄도 아시고.”
“이상한 일이 생겨서. 헛참.”
모용수가 물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혀를 찼다.
세상풍파를 많이 겪어 웬만한 세상일에는 무덤덤한 모용수가 저런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찰 정도라면 꽤 심각한 일이 터졌다는 방증이었다.
궁금했지만, 일단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식사를 먼저 하기로 마음먹었다.
“밥이나 먹고 이야기합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러죠.”
모용수는 얼굴을 펴고는 음식을 주문했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대화할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데 모용수의 표정을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여 빠르게 식사한 후 모용수와 함께 청월루를 나와 황하를 바라볼 수 있는 언덕 위에 털썩 앉았다.
“뭔데 그러시오?”
“낙양현 낙하 강변에는 예로부터 거지들이 모여 살고 있지요.”
“개방이오?”
“개방은 아니고 그냥 무공을 모르는 거지들입니다.”
“말해보시오.”
분명 여기까진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모용수의 표정을 보았을 때 큰 사건이 나올 것으로 예측되었기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낙하 강변에 살던 거지 백여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짓을.”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용수가 말꼬리를 흐렸다.
진짜는 이제부터라는 걸 난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 시체들이 마치 목내이처럼 변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들의 생체진기를 흡수했다는 뜻이군요.”
“그렇죠. 악랄한 흡성대공에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헛참.”
“왜 그러시오?”
나도 전생을 포함하면 90년 넘게 생을 살았지만, 아무래도 사파 쪽 세계의 이런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
“이상하지 않소? 통상 흡성대법에 당한 자는 어린 아이나 젊은이들이 많소.”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이런 사고가 종종 발생했고, 조사 및 결과보고를 전생에서 받았는데 그때 피해대상자는 주로 어린 아이나 젊은 부녀자였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그때는 그걸 의심하지 넘어갔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왜 걔네들이냐 하면 생체진기가 충만하기 때문이오. 그런데 거지들은 영양이 부실하고 늙은이들이 많아서 생체진기가 불량하오. 그런데 왜 그들이 모두 흡성대법의 희생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소.”
“그렇구려. 혹 살아남은 자가 있소?”
“있긴 있는데···. 몹시 충격을 받았는지 미쳤소.”
“만나 봅시다.”
“만나봐야 횡성수설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만나 보셨구려.”
“구양무인께 이렇게 말하려고 섭유청과 함께 무던히 조사했소. 하지만 나오는 게 없구려. 생존자는 왕팔이란 놈인데, 산송장이나 다름없소. 그리고 그 미친놈이···. 참나. 기가 막혀서.”
“말해보시오.”
“흡성대법을 시전한 무인이 어린 거지새끼인데, 갑자기 무인이 되더니 모두 흡성대법으로 진기를 흡입해서 죽였다고 하더군요. 더 가관인 것은 그가 자신을 척휘명이라고 했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척휘명이 뭐가 아쉬워서 거지새끼로 분장을 하고 몇 개월을 거지소굴에서 지내다가 거지들의 생체진기를 흡수하겠소? 그가 원하면 혈천교에서 상태가 좋은 어린아이나 젊은이들을 잡아다 주는데.”
모용수는 왕팔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환생을 통해 구양천으로 다시 태어난 나였기에 어쩌면 그가 진짜 척휘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휘명이 나처럼 죽음을 당한 후, 거지로 태어났다면?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걸 파헤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구양천이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는데 이 사건이 그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난 이 사건을 깊숙이 파고들어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했다.
“척휘명은 죽었소?”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똑똑해지고 강해졌소. 예전에는 오만하고 혈기왕성하여 종종 분란을 일으켰었지만, 지금은 노회하게 암흑사련을 운용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신을 차린 모양이오. 큰일인데. 척휘명이 정신을 차리고 암흑사련이 강해지면 중원무림이 어지러워질 텐데.”
모용수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조사해봐야겠소. 흡성대법을 시전한 놈이 진짜 척휘명일 수도 있소.”
“예? 아니 그는 암흑사련을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소.”
“가짜라면?”
“말도 안 되오. 수많은 고수들이 있는데 그걸 알아보지 못할 거 같소? 그건 불가능하오.”
“내 말은···.”
나는 더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고, 설명한들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암흑사련의 척휘명은 가짜고, 진짜 척휘명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지로 환생한 거지. 내가 구양천으로 환생했던 것처럼. 왜냐하면 암흑사련의 척휘명이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건 불가능하니까. 내가 구양천이 되어서 새사람이 된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오직 나만이 추리할 수 있었다.
당해본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 설명해서 모용수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미친놈소리 듣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가봅시다.”
“이미 현장은 다 치워졌소.”
“무덤이라도 파봅시다. 그 목내이를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소.”
“평소 구양무인답지 않으시오.”
“심각한 문제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 직감은 이 목내이 사건이 무림을 발칵 뒤집을 일이라고 말하고 있소. 앞장서시오.”
“거참.”
모용수는 의문이 일었지만, 속으로 삼키고는 낙양을 향해 몸을 날렸다.
**
며칠 후.
모용수와 나는 북망산 인근의 허름한 묘지 앞에 섰다.
“여기요. 잠시 기다리시오.”
모용수는 빠르게 땅을 파내려갔고, 목내이 세 구를 끄집어냈다.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도 상태가 양호했다.
난 눈을 감은 상태로 목내이에 손을 얹은 후, 내공을 운용하여 목내이의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죽은 지 오래되어 사후경직이 일어났고, 혈관이 굳어 진기를 흘려보내는 일이 매우 어려웠지만, 끈기 있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목내이 세 개를 모두 살피고 나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묻어주시오.”
모용수는 여전히 궁금했지만, 질문하지 않고 목내이를 묻었다.
내가 그 옆자리에 털썩 앉아 길게 숨을 몰아쉬자, 모용수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무엇을 알아내셨소?”
“지옥혈도의 기운이 느껴졌소.”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지요. 하지만 난 지옥혈도를 수련한 척무진, 척휘명과 비무했던 적이 있어서 그 기운을 정확하게 알고 있소. 그런데 아주 이상하오.”
“어떤 면이?”
“지옥혈도는 분명 척무진, 척휘명 두 명만 익혔다고 알고 있소. 그리고 그들의 기운은 매우 정순하고 위력적이었소. 그런데 지금 목내이에 희미하게 남겨진 지옥혈도의 기운은 아주 거칠고 조악했소.”
“그거야 지옥혈도는 암흑사련에 있으니까.”
모용수는 별 생각 없이 말을 툭 내뱉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뭔가가 확하고 지나갔다.
“그렇군요. 지옥혈도는 암흑사련의 가짜가 가지고 있고, 여기 척휘명은 거지로 새로 태어났으니 본신에 아무런 진기도 없을 것이오. 정신은 이미 절대고수인데, 몸은 완전히 초보무인. 그러니 무리하게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오. 그러니 지옥혈도의 기운도 조악했고. 지옥혈도가 없으니 더더욱 조악했겠지.”
“소설을 쓰시오?”
모용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않겠소? 내 말이 논리에 어긋나오?”
“아니, 뭐. 논리적이긴 한데. 아니 말아 안 되잖소? 무슨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옮겨가는 것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오?”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그리 추측해본 것이오.”
“이제 어쩌시겠소?”
“장안현에 가봅시다.”
“가서요?”
“가보면 답이 나오겠지요.”
“하아. 구양무인답지 않아요. 목내이 사건이 나온 이후로 구양무인은 내가 알던 구양무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오.”
“참, 왕팔이 살아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 왕팔인가 뭔가 하는 놈을 보러 갑시다. 그리고 장안현으로 갑시다.”
“알겠소. 젠장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용수는 작을 돌을 냅다 걷어차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현청의 뇌옥 안.
모용수가 간수를 뇌물로 매수했는지 무공으로 협박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쉽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왕팔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벽에 머릴 기대고 있었다.
“저런 자에게서 뭘 알아내겠소?”
모용수는 왕팔을 보고 혀를 찼다.
난 그의 말을 뒤로 하고 차분히 그를 살피다가 왼 손목을 잡고 미약하게 진기를 흘려보냈다.
“흐음. 별 게 없는데.”
왕팔에게서는 조악한 지옥혈도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왕팔.”
왕팔은 그제야 멍한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백여 명의 거지를 죽이고 너를 이렇게 만든 게 척휘명이라고?”
“으으으악. 그 아, 악마새끼. 말하지 마.”
왕팔은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흔들며 소릴 질렀다.
난 그의 혈을 눌러 급히 안정시켰다.
“다시 말해봐. 척휘명에 대해서.”
왕팔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진술을 시작했다.
차분하게 그의 진술을 듣고 몇 개의 질문을 한 후에 난 모용수를 데리고 뇌옥을 나섰다.
“아니 그런 사술은 언제 익히셨소?”
모용수는 내가 펼친 사술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전생에서 사파놈들을 때려잡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했었다.
그때 익힌 사술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우연히 익혔소. 어떻소? 내 추리가 어느 정도 맞는 거 같지 않소?”
“아니오.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데 다시 환생하겠소? 그건 말이 안 되오.”
“그럼 단 시간에 어린 거지가 고수가 되고, 흡성대법을 펼쳐 저들을 목내이로 만든 건 어찌 설명하겠소? 이게 가르친다고 단시간에 이뤄낼 수 있는 경지요? 아니오. 알고 있으니까, 경험으로 체득한 상태니까 가능한 일이오.”
“내가 알 바 아니오.”
모용수는 대답이 궁해지자,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진짜 장안현에 갈 거요?”
“가야죠. 내 직감이 말하고 있소. 장안현에 있는 척휘명은 가짜라고. 그런데 이 새끼가 어떻게 몸을 빼앗았지?”
내가 마지막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들은 모용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그리 생각하시오? 몸을 빼앗았다고?”
“그럴 수도 있지 않겠소?”
“휴우, 이거 뭔 도깨비에게 홀린 것도 아니고. 원.”
“갑시다.”
“알겠소.”
내가 몸을 날리자, 모용수도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