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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32화 (132/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32화

132화. 하북팽가.

하북팽가.

가주 팽혁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창문을 통해 남쪽을 바라보게 장탄식을 쏟아냈다.

그의 뒤로 가신들이 공손하게 시립해 있었는데,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실내는 적막감으로 가득 찼다.

“결국 이렇게 굴복해야 한단 말이오?”

팽혁기의 입에서 분노에 찬 음성이 흘러나오자, 원로 팽호선이 묵직한 음성을 쏟아냈다.

“구양천의 행동이 건방진 것은 분명하지만, 확실한 명분이 있습니다. 또 악가, 남궁가, 제갈가가 무너진 마당에 우리가 버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맹에서도 처음에는 구양천이 저러다 말겠지 하는 분위기였지만, 세가들이 차례로 굴복하자 세가와 지역유지 간의 밀착관계를 끊어내는 것으로 맹의 공식적인 지침을 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합니다.”

다른 원로 팽유가 팽호선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후 다른 가신들이 의견을 표출했지만, 팽유, 팽호선을 지지하는 의견이었기에 팽혁기는 불쾌한 마음이었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던 팽혁기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우리 팽가가 구양가에 눌릴 수는 없잖소?”

“구양가에서 검제를 배출했을 때는 천하제일가였습니다. 또 구양천이 무림맹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예전의 위상을 거의 되찾았고요. 구양가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팽호선이 차분하게 팽혁기를 설득했다.

그의 말을 끝으로 실내는 조용해졌다.

처음에 산동악가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만 하더라도 팽혁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한수 아래로 보았던 산동악가였었고, 구양천과 개인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 파악했기에 휘발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남궁가가 무너지면서 팽혁기는 위기감을 느꼈다.

하북팽가가 강력하다곤 하지만, 남궁가보다 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실리적으로 구양천과 화의하자니 체면이 서질 않았고, 그렇다고 부딪치자니 남궁가나 제갈가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좀 더 생각해보겠소.”

팽혁기는 모두 물러가라고 손짓하자, 가신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이리 오너라.”

팽혁기는 마지막에 남은 동생 팽동기를 가까이 불렀다.

“동기야.”

“예. 형님.”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제 생각이 중요한가요? 형님과 가신들이 의논해서 결정하면 따라야죠.”

“답답해서 그런다.”

“그럼 잠깐 허리를 숙이십시오.”

“허리를 숙여라? 너도 저 노인네들과 같구나.”

“남궁검, 남궁영현이 무너졌습니다. 하북팽가가 그들보다 윗줄에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만약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나서서 모두 무너진다면, 우리를 떠받들던 세가들이 우리 윗줄로 올라서려고 할 겁니다.”

“내가 그놈들을 두려워할 줄 아느냐?”

“당연히 그놈들은 가볍게 처리할 수 있죠. 문제는 그런 일이 터진다면 하북에서 수백 년 간 쌓아놓았던 팽가의 위상이 바닥까지 떨어진다는 것이죠. 제가 걱정하는 건 그것입니다. 지역유지와의 밀착관계는 일단 끊고, 무림맹의 상황을 살피다가 슬며시 부활시켜도 되니까요. 아니면 시간을 갖고 다른 방안을 찾아도 되고요. 예를 들면 팽가에서 직접 표국을 운용해도 됩니다.”

팽동기는 수더분한 표정으로 예리하게 조언했다.

그의 조언을 받은 팽혁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의 표정은 못마땅해보였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조금은 엿보였다.

“생각해보겠다.”

“내일까지는 결정하십시오.”

팽혁기는 더는 대답하지 않고 팽동기를 돌려보냈다.

며칠 후.

팽혁기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형님.”

다급한 팽동기의 부름에 팽혁기는 올 것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구양천이 왔느냐?”

“예. 어찌할까요?”

“팽가십이성을 불러라.”

“혀, 형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다. 하물며 하북팽가가 겁에 질려 항복한다면 누가 우릴 하북의 맹주로 인정해주겠느냐? 어서 준비해.”

“알겠습니다.”

팽동기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가주전을 뛰쳐나갔다.

홀로 남은 팽혁기는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결정하지 못했던 팽혁기는 결국 구양천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다소 충동적으로 결정되었지만, 팽혁기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팽가 최고의 정예인 팽가십이성을 동원해도 구양천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비루먹은 개처럼 꼬리를 말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팽가가 무너지면 누구도 구양천에게 반발하지 못하겠지.’

남궁가에 이어 팽가까지 무너진 마당에 구양천과 싸우려는 간 큰 세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팽혁기는 검을 뽑아 날카로운 예기를 확인한 후에 검을 겁집에 꽂은 후, 천천히 가주전을 나섰다.

하북팽가 정문.

“어서 오십시오. 구양무인.”

원로 팽호선이 정중하게 나를 맞이했다.

“팽호선 원로시군요. 반갑습니다.”

나도 정중하게 포권했다.

“가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어떤 방향으로 결정했습니까?”

“팽가십이성이 만반의 준비를 한 채 대기 중입니다.”

“그렇군요.”

내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팽호선의 눈이 가늘어졌다.

팽가십이성.

남궁가가 개개인의 무력을 성장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팽가는 연합진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 팽가에는 여러 연합진을 구성할 무인들이 존재했는데, 이 중 가장 강력한 연합진이 바로 팽가십이성이었다.

그들은 사파무리를 척결할 때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었고, 전생에서 그들의 전투력에 나 역시 크게 감탄했었던 적이 있었다.

“놀라시지 않는군요.”

팽호선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팽가십이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압흑십혈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암흑십혈? 설마?”

“그들과 대결한 적이 있었는데, 어렵지 않게 제압했습니다.”

동네 불량배를 제압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덤덤히 말하는 나를 보며 팽호선은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암흑사련 최정예인 암흑십혈.

팽가십이성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암흑십혈보다 한수아래라는 건 팽가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설마 거짓을 말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굳이 더는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군요. 팽가십이성과 저의 비무를 지켜보시고 제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팽 원로께서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앞장서시죠.”

여유로운 나를 보며 팽호선은 오늘 길보다는 흉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했으니.

팽호선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나를 이끌었다.

연무장.

많은 팽가무인들이 그곳에 몰려있었다.

팽혁기는 나를 보자, 먼저 포권했다.

“어서 오십시오. 구양무인.”

“반갑습니다. 팽 가주.”

둘이 정중하게 인사하고 난 다음에 팽호선은 급히 팽혁기에게 다가가 뭔가를 귓속말로 알렸고, 팽혁기의 표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팽가의 자랑인 팽가십이성입니다.”

“일초로 격파하지요.”

“팽가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여기저기서 강력한 반발이 튀어나왔다.

“무인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입니다.”

내가 일침을 가하자, 팽가십이성이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에워쌌다.

난 그들을 가만히 둘러본 후, 팽혁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초요.”

난 차분히 귀혼검을 뽑아들고 가슴 중앙에 세웠다.

“공격하라!”

팽혁기의 명령이 내려지자, 팽가십이성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숨 막히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귀혼검도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쐐애애애애액.

귀혼검은 섬전처럼 빠르게 날아가며 팽가십이성의 검을 모조리 쳐냈다.

챙챙챙챙.

푸욱.

푸욱.

열두 개의 검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일렬로 꽂혔고, 귀혼검은 얌전히 내 손에 들어왔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오른손을 감싸 쥐고 있는 팽가십이성을 뒤로 한 채 난 시선을 팽혁기에게 돌렸다.

“더 하시겠소?”

“이, 이기어검술. 믿지 않았는데 정말 이기어검술을 펼치시는구려. 그것도 완벽하게.”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팽혁기는 더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팽가의 무인을 모두 동원한다면 어쩌면 구양천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랬다가는 팽가의 무인 절반은 전멸할 것이다.

그렇게 승리한다면 무림맹을 비롯한 구파일방과 유수한 무사들은 하북팽가의 비겁함을 비난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라도 이길 수만 있다면 그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만약 구양천이 불리함을 느끼고 도주한다면 팽가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을 게 뻔했다.

“구양무인. 역시 대단하군요.”

“더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악습을 퇴치하는 일인데 어찌 망설이겠습니까? 받아들여야지요. 이렇게 팽가십이성을 내보낸 것도 구양무인에 대한 소문이 워낙 믿을 수 없는 수준이어서 실체를 평가하려고 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팽혁기는 결국 물러섰다.

그것이 팽가의 명성을 지키는 길이라 판단했다.

“훌륭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무림맹에 구양무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전서를 보내지요.”

팽혁기는 확실하게 쐐기를 박아 구양천의 의심을 피했다.

**

낙양.

“이 새끼가 묫자리를 찾아왔구나. 이 거지새끼야. 감히 이 왕팔을 배신하고 도망쳤다가 이제 나타나?”

왕팔은 몽둥이를 흔들며 사라졌다가 열흘 만에 나타난 척휘명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척휘명은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왕팔인지, 왕구인지 모르겠는데. 오늘은 네놈의 제삿날이다.”

“아니 이 새끼가 열흘 만에 무림의 고수라도 된 건가? 헛참. 거지새끼 주제에 왜 이리 건방져.”

“고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네놈은 내 손에 죽는다.”

“죽어 이 새꺄!”

부우웅.

왕팔이 휘두른 몽둥이가 척휘명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흥. 별것도 아닌 새끼가.”

왕팔은 척휘명이 바닥을 구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할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비록 무공을 익히진 않았지만, 십년 넘게 이골이 나도록 몽둥이질을 했던 그였다.

적어도 몽둥이질 솜씨만큼은 자신 있는 그였다.

빠악.

“역시.”

상큼한 소리가 들리자, 왕팔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몽둥이가 척휘명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그의 머리에서는 피가 줄줄이 흘러내렸지만, 그는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구르지 않았다.

“실로 오랜 만에 피를 보는구나.”

척휘명은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어 핥고는 섬뜩한 눈빛을 뿜어냈다.

“무, 무슨 놈의 눈빛이.”

왕팔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 몽둥이를 빼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척휘명은 몽둥이를 빼앗아 손바닥에 탁탁 쳤다.

“감히 거지새끼 주제에 이 척휘명에게 몽둥이질을 해?”

퍽. 퍽. 퍽.

“으허헉. 왕팔이 살려.”

왕팔은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러댔다.

거지소굴에 들어와 죽도록 맞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자, 왕팔은 공포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사, 살려줘.”

“뭔 헛소리야. 감히 이 척휘명을 건드리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척휘명이라니?”

왕팔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거지새끼의 이름은 소구였다.

왜 그가 자신을 척휘명이라고 하는지 왕팔은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퍽. 퍽. 퍽.

그 와중에도 척휘명의 모진 매질은 계속 되었고, 내공이 실린 척휘명의 매질을 견디지 못한 왕팔은 생을 마감했다.

“퉷!”

척휘명은 피 묻는 몽둥이를 집어던졌다.

“엿 같은 기분이네.”

척휘명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지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있었다.

“뭐야? 이 거지새끼들이 나를 왕초로 받드는 거야? 내가 할 게 없어서 이런 거지새끼들의 왕초···.”

척휘명은 분통을 터트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겨우 이류인 지금 그가 밖으로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동안 이곳에서 숨어 지내면서 무공을 익히고, 세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척휘명이라 말한 것은 모두 잊도록. 만약 척휘명이란 이름이 튀어나온다면 그때는 이놈처럼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왕초.”

거지들은 자연스럽게 척휘명을 왕초로 받아들였다.

척휘명은 왕팔의 시체를 치우라고 명령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나치게 흥분했어. 내가 척휘명이란 게 알려지면 분명 암흑사련에서 살수를 보낼 것이다. 겨우 이류인 난 그들을 당해내지 못해. 어떡해야 하나?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척휘명은 단시간에 강자가 될 방법을 찾아내자 섬뜩한 미소를 머금었다.

비록 지옥혈도는 없었지만, 타인의 생체진기를 빼앗아 단숨에 내공을 늘리는 혈천교의 대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으드득. 혈천교의 수법을 쓰려니 엿 같지만, 방법이 없다. 기다려라. 곡진헌. 네놈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 반드시.’

척휘명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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