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30화 (130/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30화

130화. 풍운에 휩싸이는 암흑사련.

무림맹.

제갈문현은 정보루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맹주전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길래···.”

맹주 양천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갈문현을 바라보았다.

통상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그였고, 불시에 방문한다면 무림에 심각한 일이 터졌을 때뿐이었다.

그런데 제갈문현의 표정은 평온해보였기에 양천린은 의아했던 것이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그러니 왔겠지. 그리 앉으시게.”

양천린은 제갈문현에게 자리를 권했다.

“말해보게.”

“구양무인이 중원의 각 세가를 돌며 지역유지와의 부정적인 유착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양천린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가의 진정을 받은 지부에서 보고가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남궁검이 무례하게 자신을 압박했던 과거를 떠올린 양천린은 그 보고를 무관심하게 받았을 뿐, 그에 대해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산동악가, 남궁세가, 제갈세가가 그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세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무림맹에서 세가와 지역유지 간의 부적절한 유착관계를 끊으라는 지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무림맹의 권위와 힘을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구양천이 차려 놓은 밥상 위에 숟가락을 얹자는 제갈문현의 제안에 양천린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남궁검에게 당했던 수모가 떠오르자 그의 웃음은 환하게 바뀌었다.

그동안 남궁세가를 비롯한 명문세가의 발언권은 매우 컸었기에 양천린도 그들의 힘이 줄어드는 부분은 대환영이었다.

“그러면 세가들의 욕을 내가 다 먹을 텐데.”

“지금도 그들은 맹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구양무인이 설치는데 내버려둔다고요. 지침을 내리셔서 빠르게 정리하는 게 낫습니다.”

“조금만 더 추이를 지켜보세. 하북팽가마저 무너지면 그때 지침을 내리도록 하지. 그때는 세가들도 군말 없이 맹의 지침을 받아들일 거야.”

양천린은 말을 끊고 제갈문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설마 구양무인이 하북팽가에 무너지진 않겠지?”

“단신으로 암흑사련도 뒤집어놓을 패기를 지녔고 중원 제일의 무위를 지닌 자입니다. 비록 하북팽가가 강하다곤 하지만, 그를 어쩌긴 어려울 겁니다. 결국 하북팽가도 남궁세가의 뒤를 따르겠지요.”

“그럼 그때 처리하도록 하지. 그런데 말이야.”

“예.”

“좀 변했군.”

양천린이 툭 내뱉은 말에 제갈문현이 고개를 들었다.

“자네 말이야.”

“그렇습니까? 저는 그전과 다르지 않습니다만.”

“얼굴이 환해졌어. 좋은 일 있는가?”

“글쎄요. 그간 세가의 문제는 맹의 종양덩어리였는데 그게 해결될 기미가 보여서 그런 거 같습니다. 다른 일은 없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양천린은 손가락을 흔들며 제갈문현의 대답을 부정했지만, 더는 따지지 않았다.

“말하기 싫은 모양이군. 때가 되면 말해주게. 또?”

“없습니다.”

“알겠네.”

제갈문현은 양천린에게 포권하고는 맹주전을 나섰다.

‘벌써 구렁이가 다 되셨군.’

제갈문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정보루로 향했다.

정보루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육영서를 호출했다.

육영서가 도착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동안 제갈문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육영서는 내 심복이지만, 구양천의 진짜 정체를 알려줄 순 없어. 하긴 알려준다고 한들 누가 믿겠는가? 내가 오히려 미친놈 취급당하겠지. 나야 그와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었지만.’

“육영서입니다.”

“들어오게.”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제갈문현은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입을 열었다.

“구양무인은 하북팽가로 향할 것이네.”

“진정 대단합니다. 설마 세가와 지역유지 간의 유착관계가 해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북팽가를 넘어서야 해. 남쪽에 남궁세가가 있다면 북쪽에는 하북팽가가 있으니까.”

“잘될 겁니다. 하북팽가가 남궁세가를 넘어선다고 볼 수 없으니까요.”

“그래.”

제갈문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육영서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또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 사람이 눈치만 늘었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부루주인 제가 루주님의 마음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긴 하군. 껄껄.”

제갈문현은 기분이 좋은지 대소를 터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재개했다.

“하북팽가를 무너뜨린 후, 구양무인이 암흑사련의 상층부를 공격할 걸세.”

“놀랍군요.”

“놀랍지. 그가 상층부를 공격해 암흑사련을 흔들어놓으면 그때 무림맹은 정예무인을 동원하여 암흑사련을 토벌해야 하네.”

“가능할까요?”

“해볼 만해. 그의 무위는 감히 역대최강이라 말할 수 있네.”

“예? 감히 화 맹주님을 두고 어찌 그런 말씀을···.”

“그렇군. 이런 실언을 했어. 껄껄.”

제갈문현은 껄껄 웃었고, 육영서는 마음속에서 의문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화운룡과 제갈문현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육영서였다.

그렇기에 구양천이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더라도 그를 화운룡보다 앞에 놓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 사람아. 너무 그러지 말게. 그의 기세가 워낙 대단하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던 것뿐이야.”

“예.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만약 그가 실패하면 어떡합니까?”

“실패하더라도 상층부가 큰 타격을 입을 거야. 그러니 그대로 시행해야지.”

“알겠습니다.”

육영서는 곧장 복명했다.

제갈문현은 서신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구양무인께 전달해주게. 아직 무한현에 있네.”

제갈문현은 자세히 구양천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육영서는 즉각 복명하고는 물러났다.

홀로 남은 제갈문현은 창을 열고 북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북팽가를 처리한 후에 때를 기다리자. 구양천의 능력이면 충분히 암흑사련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흔들릴 때 맹의 정예를 이끌고 급습하면 무너뜨릴 수 있어. 설령 련주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중상만 입힌다면 맹의 승리야.’

제갈문현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암흑사련을 제압하겠다고 다짐했다.

**

장안현 백마산.

과거 척무진이 지옥혈도를 수련했던 이 곳.

지금은 그의 손자 척휘명이 지옥혈도를 완성하기 위해 맹렬하게 수련 중이었다.

척휘명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렵군요.”

“그래도 십일성에 다다르지 않았는가? 좀 더 집중하시게.”

혈천교주가 인자한 표정으로 조언하자 척휘명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리 잘해주십니까?”

“잘해주다니? 허허. 우리는 무림맹에 복수를 해야 해. 혈천교 홀로 어쩔 수 없으니, 내가 자네를 돕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무림맹을 무너뜨려주시게. 내 죽기 전에 그걸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네. 허허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상태로도 무림맹의 양천린 쯤은 적수가 아닙니다.”

“그런가?”

혈천교주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가 담담해졌다.

“전 련주만큼 무위가 올라 왔는가?”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할아버지를 뛰어 넘었습니다. 지금 상태라면 화운룡이 살아온다 하더라도 자신 있습니다.”

“화운룡은 불사신 같은 자야. 너무 자신하지 말게.”

“그때는 지옥혈도가 없었지요.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척휘명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혈천교주는 눈빛을 반짝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구양천은?”

구양천이 언급되자 담담하던 척휘명의 얼굴이 휴지조각처럼 일그러졌다.

새삼스럽게 구양천에게 대패하고 쫓겨 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신 있습니다.”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닌가?”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무인도 아니었습니다. 지옥혈도를 익히고 나서야 진정한 무공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니까요. 이번에 구양천을 만난다면 반드시 모가지를 꺾어버릴 것입니다.”

척휘명은 손가락 관절을 꺾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무섭게 소리쳤다.

“암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혈천교주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척휘명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격려했다.

“그런데.”

“말하게.”

“지옥혈도를 수련하는 내내 혈천대법을 펼쳐주셨지 않습니까? 덕분에 빠르게 십일성에 올랐고요. 혈천대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지옥혈도를 익히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랬지. 굉장히 힘든 관문이었는데 자네가 잘 버텨냈어.”

“네. 그 부분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부작용이 있나요?”

“부작용?”

“네. 요즘 들어 환영이 자꾸 보이더군요.”

“어? 허허. 지옥혈도가 깊은 한이 서린 물건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네. 뭐하면 혈천대법을 그만둘까?”

“아뇨. 힘들더라도 버텨봐야죠. 십이성 대성하여 무림맹을 비롯하여 천마교, 풍검도 모조리 제압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구양천의 모가지도 따야 하고요.”

척휘명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세.”

혈천교주의 조언에 척휘명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혈천교주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왼손을 척휘명의 정수리에, 오른 손은 거궐혈에 대었다.

숨 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 주문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혈천교주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척휘명의 몸에서 손을 떼고는 몇 걸음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댄 채 척휘명을 지켜보았다.

‘어린놈이라 방심하면 안 되겠어. 척무진은 워낙 노회하여 혈천대법을 거부했지만, 척휘명은 욕심에 혈천대법을 받아들여 됐구나 싶었는데, 이놈이 가슴속에 의문을 품고 있을 줄이야. 십이성 대성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릴 순 없지.’

담담했던 혈천교주의 눈빛이 점차 사악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척휘명.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너희 조손을 도왔으니 이 정도를 바라는 게 도둑놈의 심보는 아닐 것이다. 무림은 암흑사련이 아니라 혈천교가 통일할 것이다. 혈천교가.’

혈천교주는 잠시 척휘명을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밖으로 나온 혈천교주는 심복인 혈영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혈영이 고개를 숙이자, 혈천교주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전음을 날렸다.

-때가 되었다.

-아직 십이성은 안 된 걸로···.

-서둘러야겠어. 저놈이 낌새를 눈치 챘어.

-설마요?

-확실히 혈천대법이 어떤 건지는 모르는 눈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어. 괜히 미적거리다가 눈치라도 채는 날이면 모든 게 끝이야.

-십일성이면 나중에 혹 문제라도···.

-어쩔 수 없지. 내가 도전하여 십이성에 오르는 수밖에.

-그럼 언제로?

-내일.

-알겠습니다.

혈영은 즉각 복명하고는 물러났다.

홀로 남은 혈천교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섬뜩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음날.

척휘명은 밤새도록 운기조식을 한 후, 눈을 떴다.

‘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혈천대법을 통해 지옥혈도를 수련하면서 빠른 성취도를 보였지만, 동시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고통이 동반되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두통이 줄어든 대신 몸이 붕 뜨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에는 공중에 떠서 수련에 매진한 자신의 몸을 직접 보기도 했다.

실로 섬뜩한 광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곧 십이성이야. 그때까지만 참자.’

척휘명은 불길한 느낌을 지우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