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28화
128화. 제갈세가.
남궁세가가 변화하고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중원으로 퍼져나갔다.
호북성.
안휘성에 남궁세가가 있다면 호북성에는 제갈세가가 있었다.
제갈세가는 지략이 뛰어난 무인이 배출되는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현 가주 제갈서는 정도무림에서 손꼽히는 무인이었을 만큼 무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무림맹의 군사를 역임하고 있는 제갈문현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강력한 무가’라는 인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제갈세가.
제갈서는 외부 잡인을 통제하고, 가주전 근처에 아무도 들이지 않을 것을 명령했다.
“이보시게. 아우.”
“예. 형님.”
제갈서는 제갈문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남궁세가의 일이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괜한 객기로 구양천과 맞서지 말게.”
“형님. 저도 소문을 들었는데 구양천의 무위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습니다. 검강과 이기어검술을 자유자재로 펼치려면 막강한 내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내공이 보이지 않았다고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공을 숨겼다면 천하의 남궁검이 그걸 몰랐겠습니까?”
“아우는 그와 맞서려고 하는가?”
“길고 짧은 건 대봐야죠.”
제갈서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갈문현은 제갈서를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어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림에서 구양천이란 무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나라고 생각하네.”
“그거야 무림맹에서 같이 생활했으니까요.”
“그렇지. 그는 원래 강했었지만, 천산에 다녀온 이후로 더욱 강해졌네. 아우는 천산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마교의 성지 아닙니까?”
“그렇지. 지금 감숙성과 청해성을 움켜쥐고 있는 천마교의 발원지가 천산이지. 그리고 사천성을 얻은 풍검의 고향이기도 하고.”
“무엇을 말씀하고 싶은 겁니까?”
“어쩌면 구양천은 천마, 풍검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네. 그가 최근에 중도를 걷는 것만 봐도 그렇고.”
제갈문현의 폭탄발언에 제갈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약 다른 무인이 이런 발언을 쏟아냈다면 욕을 한 사발 쏟아 부었을 것이다.
“형님. 그 무슨···. 말도 안 됩니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게.”
“그가 만약 천마의 유품을 얻었다면 천마교에 있겠지요. 풍검의 진전을 얻었다면 사천성에 있을 테고요.”
“천마교가 발호했을 때 교주는 목진석이었네. 그런데 얼마 후에 명리종으로 바뀌었지. 그 목진석이 지금 어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계속하시죠.”
“이상한 건 목진석이 항상 역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이상하지 않은가? 천마교주란 자가 뭐가 두려워서 항상 역용을 했단 말인가? 그건 목진석이 가명이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무인이었다고 생각하면 해결되네.”
“그럼 풍검은요?”
“천마교는 암흑사련에 막혀 동진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는데 반해, 풍검은 사천성을 점령한 것에 만족하고 있어. 실제로 풍검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을 때, 그는 욕심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어. 그러니 구양천과 풍검은 그저 친분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네.”
“으음.”
제갈서는 신음성을 흘렸다.
“이건 굉장한 기밀이군요.”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추정일 뿐이지.”
“맹주님도 아십니까?”
제갈문현은 고개를 가로로 흔들며 대답했다.
“이 사실이 맹주님께 알려진다면, 그는 구양천을 죽이려고 들 걸세. 이건 확실해.”
“그럼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와 맞서지 말게. 대신 그와 비밀리에 비무를 갖게. 그리고 그의 무위의 원천을 파악해보게. 남궁검이 파악하지 못한 비밀을 아우라면 파악할 수 있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우린 지역유지와 유착관계가 크지 않으니 타격은 크지 않을 겁니다.”
제갈서는 순순히 제갈문현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처음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에 비하면 의외였다.
사실 제갈서가 처음에 반발했던 것은 구양천과 승부를 벌여보고 싶은 무인으로서의 호승심 때문이었다.
비록 비밀리에 승부를 벌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만약 비무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면요?”
“그럼 내가 착각한 것이겠지. 자네 눈을 속일 정도라면 누구도 진실을 알아내지 못할 테니까.”
“그가 목진석이라면요?”
“휴우, 제발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그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으니까.”
제갈문현의 표정은 단번에 어두워졌다.
“지금은 천마교가 암흑사련을 견제하니 적이 아닐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적이라 이 말이시죠?”
“그렇지. 천마교가 암흑사련을 제압한다고 생각해보게. 천마교의 염원은 중원정복이야. 절대 무림맹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존재란 말이지. 하지만 풍검과 관련이 있다면 그건 괜찮아. 풍검의 성향을 보았을 때 타협할 여지는 충분히 있거든.”
제갈문현은 말을 마친 후에 차를 들어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가시게요?”
“이 이야기를 하려고 왔네. 워낙 바빠서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둘 수가 없군.”
“쉬엄쉬엄하십시오. 건강을 잃으면 안 됩니다.”
제갈서의 진심어린 걱정에 제갈문현은 옅은 미소를 짓고는 가주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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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곧바로 호북성 제갈세가로 향했다.
제갈세가를 마무리하면 하북성의 팽가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아마도 팽가까지 마무리하면 나머지 세가는 더는 반발하지 않고 대세를 따르리라 생각했다.
‘모용수와 섭유청은 잘했나 모르겠군. 아니지 둘이 갔으니 당연히 잘되었을 거야. 그리고 악정후는 악소흔과 대척점의 관계이니 큰 문제없이 해결되었을 거야.’
난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공술의 속력을 높였다.
제갈세가.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문에는 제갈세가 총관 제갈후가 나와 기다리다가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 깜짝 놀랐지만, 제갈세가가 제갈문현의 본가란 걸 기억해내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문현이 미리 귀띔을 해줬다면 이런 상황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럼 안내해주시겠습니까?”
“가주께서는 대화를 나누기 전에 비무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비밀리에 비무를 신청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지요.”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난 그의 요청을 승낙했다.
무리한 요구를 하러 온 마당이었기에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또 비무를 통해 제갈서를 꺾는다면 좀 더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다.
“따라오십시오.”
제갈후는 앞장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걷는 내내 제갈서의 생각을 읽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기에 생각을 떨쳐내고 오직 비무를 어찌 할지에 대해 생각을 이어갔다.
가주전 뒤쪽에 위치한 연무장은 아담했다.
그리고 통제를 확실하게 했는지 이곳에는 제갈서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제갈후는 정중하게 포권하고 물러났다.
“어서 오십시오. 구양무인.”
“반갑습니다.”
제갈세가의 모든 무인이 정중하게 나를 대했기에 나 역시 정중하게 그를 대했다.
“혹시 검이 아닌 권장으로 비무를 요청해도 괜찮겠습니까?”
제갈서의 요청은 무례했다.
난 전생에서부터 검만 사용했고, 이번 생에서도 검의 고수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권, 장, 각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제갈서와 같은 고수를 상대로 검을 쓰지 않고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문득 제갈서도 검의 고수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상하군요. 제갈가주께서도 검이 훨씬 유리할 텐데, 어째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가려고 하십니까?”
“구양무인은 천하의 고수시니 색다른 방법으로 비무하여 배우고 싶을 뿐입니다.”
부쩍 의심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제갈서에게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봅시다.”
난 짧게 대답하며 자세를 잡았다.
비무를 하다보면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차앗.”
제갈서가 경쾌하게 보법을 밟으며 공격했다.
독수리처럼 움켜쥔 그의 왼손이 가슴을 쓸어갈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연이은 그의 공격을 피하며 난 제갈세가에 가졌던 편견을 머릿속에서 뽑아버렸다.
‘세상의 소문이 헛소문이었구나. 제갈서는 검뿐만 아니라 권장에도 조예가 깊어.’
쾅.
계속 그의 공격을 피하던 나는 손을 뻗어 그의 권을 막았다.
동시에 강력한 폭발음이 일었고 그와 나는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제갈서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하더니 진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다시.”
제갈서는 힘찬 기합을 넣으며 빠르게 보법을 밟았다.
그의 손은 청색강기로 덮였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강력한 고수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난 침중하게 표정을 굳히곤 손에 진기를 모았다.
쩌저저정.
두 손바닥은 아교를 붙여놓은 것처럼 달라붙었다.
서로 다른 두 진기가 얽히면서 손바닥은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고, 주변은 진기의 회오리가 크게 일었다.
“흐아압.”
제갈서가 기합과 함께 진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모습이 일었다.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단전에 숨겨두었던 진기를 끌어올렸다.
콰콰콰쾅.
전혀 이질적인 진기가 뻗어나오며 강력한 반탄진기가 형성되었고 제갈서는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멀리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쿨럭. 역시 대단하시군요.”
제갈서는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괜찮습니까?”
“사정을 봐주신 덕분에.”
제갈서는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구양무인께서 왜 이곳에 오셨는지 잘 압니다. 제갈세가는 구양무인의 요청을 따를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역유지와 유착관계가 심하지 않아서 남궁세가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그거 고마운 일이로군요. 무림을 위한 결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문서로 작성해드릴까요?”
“아닙니다. 제갈가주를 믿겠습니다.”
너무 싱겁게 일이 해결되자, 오히려 당혹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제갈서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인은 명성에 집착한다고 할 정도로 매우 신경을 쓴다.
제갈서의 무림 내 위치는 매우 높으니, 자신의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리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제갈세가는 지역유지와 유착관계가 심하지 않으니 더 쉬울 것이다.
“뭘까?”
제갈세가를 나온 나는 객잔으로 들어가 방에 누운 후 중얼거렸다.
너무 쉽게 일이 처리된 것도 그렇고 검이 아닌 권, 장, 각으로 비무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리 저리 구르며 생각하던 나는 벌떡 일어섰다.
‘설마 나의 내력을 조사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제갈서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굳이 장심을 맞대고 내공대결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제갈서는 그리했었다.
덕분에 단전에 숨겨 두었던 내공을 전부 끌어냈다.
쉽게 이겼지만, 만약 제갈서가 내력을 알아내는 게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제갈군사의 의도겠군. 나를 가장 잘 아니까. 또 천산에 다녀온 후 완전히 변했으니 그 부분을 파악하고 싶었을 테고. 당했군.’
제갈서가 완벽하게 내력을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질적인 무언가를 파악했으리라.
‘조만간 제갈군사가 나를 찾아오겠군.’
난 더는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평생 숨기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단전의 진기는 여러 가지 기운이 뒤섞여 있었기에 이걸로 하나의 무공을 특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제갈문현은 만만치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고는 빠르게 무림의 고질병인 세가와 지역유지 간의 밀착관계를 끊어내는 데 전력을 집중하리라 마음먹었다.
벌써 남궁세가, 제갈세가가 내 요청을 받아들였으니 조만간 중원무림은 좀 더 깨끗하게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