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25화
125화. 악소흔의 최후.
-저놈들이죠?
-그래.
모용수는 섭유청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술잔을 들이켰다.
정주현에 머무르고 있던 섭유청을 데려오자고 제안한 이는 모용수였다.
악소흔 정도의 잔챙이들은 둘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구양천을 설득했다.
-지금쯤 구양무인은 남궁세가에 도착하셨겠죠?
-흐흐흐. 남궁 늙은이 얼굴이 볼만하겠군.
-그런데 이거 너무 판을 크게 벌리는 거 아닐까요? 구양무인의 무위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제가 당해봤으니 제일 잘 알죠. 하지만 이는 정도무림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일입니다.
-전체긴 하지만 각개격파이기도 하지.
-그러다가 구양무인이 힘에 부쳐서 패배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어떻게 장담하세요?
모용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나중에 구양천으로부터 ‘입이 싸다’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국수국물을 들이켰다.
-아무튼 구양무인은 숨겨둔 비기가 있어. 그거도 엄청나게.
-그렇게 강한데 또 있다고요?
섭유청은 깜짝 놀라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칠칠맞기는. 쯧쯧.
-세상 불공평하네. 나도 한때는 추앙받는 존재였는데, 구양무인 앞에서는 달빛 아래 반딧불 신세라니. 에혀.
-그런데 저 새끼들 언제까지 마시려고 저러냐?
-그러게요. 악정후한테 박살나더니 정신이 나갔나본데요.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군.
-그래도 우리 손으로 끝장내야죠. 저 새끼들 평소에 정도무인이라며 목에 힘주고 다니며 우리를 얼마나 핍박했습니까? 그런데 속을 까보니 우리보다 더 추악한 놈들입니다. 죽일 놈들 같으니라고.
섭유청은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냉정해라. 원래 어떤 조직이든 쓰레기 같은 놈들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우리 사파인 중에서도 상종하지 못할 놈들이 있잖아.
모용수의 조언에 섭유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전음으로 대화하는 걸 멈추고 소면을 먹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를 마쳤음에도 악소흔의 무리는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모용수는 섭유청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잔뜩 술에 취한 악소흔의 무리가 주점에서 몰려나왔다.
얼마나 떠들썩하게 몰려나왔는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누구냐?”
한참을 떠들썩하게 걷던 악소흔이 인상을 굳히고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그걸 신호로 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무리 술을 먹었다지만, 어찌 저리 감이 둔하단 말인가? 약 일각 전부터 눈치 좀 채라고 기를 은폐하지도 않았거늘.”
모용수가 혀를 차며 삿갓을 벗었다.
“너, 너. 모용수?”
“모용수라니? 내가 네놈보다 나이나 항렬이 한참 위인데.”
“여, 여긴 어쩐 일이냐?”
악소흔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끝을 봐야지. 난 찜찜한 일은 그냥 넘어가는 성미가 아니거든.”
모용수의 냉혹한 발언에 악소흔은 급히 그의 옆 무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 모인 무인이 한꺼번에 덤벼도 모용수를 어찌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옆 무인이 누구인지 중요했다.
“내가 궁금한 모양이군.”
섭유청이 싱긋 웃으며 삿갓을 벗었다.
“헉, 네, 네놈은 섭유청?”
악소흔은 혼절할 지경이었다.
한때 암흑사련의 부련주였던 모용수에 이어 악명이 자자한 전대거마 섭유청까지.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악소흔이 고래고래 소릴 지르기 시작했다.
“이 사파놈들아! 여기는 정파의 중심인 산동성이다! 네놈들이 감히 악가장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악소흔이 고래고래 소릴 질렀지만, 모용수와 섭유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끝내자.”
촹.
촹.
모용수가 검을 뽑자, 섭유청도 검을 뽑았다.
“이런 빌어먹을!”
악소흔은 협박이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검을 뽑으며 명령했다.
“공격하라! 어서!”
악소흔의 명령에 악은혁은 침중한 표정으로 무리를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 죽느니 싸워보기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공격하고 있을 때, 악소흔은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다.
“이런 개자식을 보았나?”
모용수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게 믿어지지 않았다.
설마 악소흔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섭유청. 악소흔을 잡아. 여긴 내가 처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악소흔의 행태에 잔뜩 분노가 일었던 섭유청은 눈앞에 있는 무인들을 향해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 쫓아내고는 그대로 경공술을 최대로 펼쳐 악소흔을 추격했다.
“이런.”
악소흔은 가공할 속력으로 추격해오는 기운을 느끼고는 더욱 속력을 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경공술을 펼쳤지만, 점차 간격은 좁혀지고 있었다.
슝.
악소흔은 손끝에 진기를 모았다가 거리가 좁혀지자 기습적으로 발출했다.
“흥.”
하지만 섭유청은 콧방귀를 뀌며 지풍을 튕겨냈다.
워낙 강호경험이 풍부한 섭유청이었기에 비열한 악소흔이 한번쯤 이런 짓을 하리라 예상하여 대비하고 있었다.
“젠장할.”
기습이 무위로 돌아가자, 악소흔은 욕설을 내뱉으며 더욱 속력을 내어 달렸다.
슈우우우웅.
“헉.”
섭유청이 공중으로 도약하여 악소흔의 앞을 막아서자, 악소흔은 기겁하여 급히 멈춰 섰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나랑 원한도 없는데 왜 이리 핍박하시는 거요?”
“네가 사라져 줘야겠어. 난 너 같은 놈이 제일 싫거든.”
섭유청은 구양천의 지시라고 말하긴 꺼림칙했기에 일부러 둘러댔다.
발설하더라도 어차피 악소흔을 죽일 테니 비밀이 유지되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최고였다.
“돈이라면 드리겠소. 그러니 한번만 봐주시오.”
“야, 이 새끼 진짜 개자식이네. 그건 아까 말했어야지. 지금 네 부하들은 모조리 죽어나가는 판국인데 너 혼자 살겠다고 이러냐? 양심에 찔리지 않냐?”
“부하들은 이럴 때 쓰려고 그동안 대우해준 것이오.”
섭유청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의 머릿속에는 암흑사련주 척휘명이 떠올랐다.
‘그래. 그 자식도 악소흔처럼 부하들을 생각했겠지? 젠장할.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군.’
“빨리 끝내자.”
“나를 죽이면 무림맹이 추적에 나설 것이오.”
“시체라도 찾아야 추적에 나서든···. 에이 귀찮게시리.”
파아아앙.
섭유청의 검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악소흔이 급히 몸을 틀었지만, 왼쪽 어깨위로 혈선이 그어지며 핏방울이 튀었다.
그는 급히 오른손을 들어 섭유청의 옆구리를 찔렀다.
촹.
섭유청은 빠르게 검을 쳐내고는 집요하게 악소흔의 가슴과 배를 노렸다.
짧고 빠른 공격에 악소흔은 하늘이 노래질 지경이었다.
비록 구양천, 모용수에 비하면 격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는 섭유청이었지만, 악소흔에게는 천신처럼 가공할 무위를 뽐내고 있었다.
서걱.
서걱.
“으헉.”
옆구리를 두 번이나 베인 악소흔의 얼굴은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이 개자···.”
서걱.
채 말을 끝내지도 못했는데 섭유청의 검이 악소흔의 목을 베어 버렸다.
섭유청은 악소흔의 옷을 이용해 검에 묻은 혈흔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나도 꽤 하는데. 어휴, 내 주위에는 괴물들만 드글드글거리니까 마치 내가 삼류무사가 된 기분이로군.”
섭유청은 툴툴거리며 악소흔의 시체를 옆구리에 끼고 몸을 날렸다.
처음의 위치로 돌아왔을 때, 이미 싸움을 끝이 난 상태였다.
“이제 어쩔까요?”
“악정후에게 알려. 그가 뒤처리를 한다면 무림맹의 조사도 형식적으로 이뤄질 거야.”
“알겠습니다.”
섭유청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악가장.
섭유청은 은밀하게 장원을 파고들었다.
호위무사를 따돌리고 가주실로 들어섰을 때, 놀랍게도 악정후는 정좌하고 앉아 섭유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소?”
“그건 아니고. 악가장으로 들어설 때 알았소.”
“허참, 여기 또 괴물이 있었군. 그런데 왜 악소흔 같은 비열한 놈이 가주가 된 거야?”
섭유청은 툴툴거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누군지 혹 아시겠소?”
“혈마도 섭유청. 비록 오래되었지만, 어찌 모르겠소.”
“그렇군. 할 말이 있어서 왔소.”
“말하시오.”
“악소흔의 무리와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났소. 그리고 그들을 모조리 죽였소.”
덤덤하게 말하는 섭유청.
악정후는 단순한 시비가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악소흔을 위해 시시여부를 따지고 싶진 않았다.
“그렇군요.”
“뒤처리를 부탁하오.”
“그리하지요.”
“너무 쉽게 승낙하는 거 아니오? 악소흔이 멍청하긴 하지만, 그래도 악가의 후예인데.”
“악가가 둘로 쪼개지는 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하니까요. 내겐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한 마리보다 악가의 중흥이 더욱 중요하오.”
악정후는 힘을 주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악소흔의 무리들을 어찌 처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섭유청이 대신 처리해주었다고 속이 후련했다.
“그럼 부탁하겠소.”
“잠깐.”
섭유청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악정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왜?”
“구양무인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면 반드시 돕겠다고.”
“허참.”
섭유청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짓고는 그대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
안휘성 천주산 남궁세가.
무림맹보다는 작지만, 중원의 대문파와 비교했을 때 뒤지지 않는 위용을 자랑하는 규모를 자랑했다.
“오랜만이로군.”
남궁세가 정문 앞에 선 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장원을 바라보며 감탄을 쏟아냈다.
“누구십니까?”
정문을 지키는 위사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평범해보였다면 큰 소리를 쳐서 내쫓았겠지만, 기도를 개방한 나를 보고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가주를 뵙고 싶네. 구양세가의 구양천일세.”
“구, 구양천?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위사는 깜짝 놀랐다.
급히 대답한 그는 안쪽으로 사람을 보내고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안절부절했다.
“아까 구양대인의 이름을 부른 건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난 그에게 더는 신경 쓰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마 후.
남궁검의 아들 남궁현이 나타났다.
“구양무인. 처음 뵙겠습니다. 남궁현입니다.”
“반갑네.”
벌써 사십에 이르는 남궁현을 잘 알고 있었다.
“말씀이 짧군요.”
“무림에서 배분은 내가 훨씬 높으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남궁현은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 역시 세가 안팎에서 무림의 배분을 따지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속이 뒤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공을 잃으셨다고 하던데.”
“보시다시피.”
난 싱긋 웃었다.
남궁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3~40년의 내공으로 보이는데 풍기는 기운은 남궁검 못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무례한 부탁하나만 하겠소.”
“무례한 걸 알면 하지 말게.”
“가르침을 받고 싶소.”
남궁현은 이를 악물고 인상을 쓰며 포권했다.
자존심과 호승심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남궁검을 만나 담판하기 전에 남궁현을 꺾어 놓는다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덤비시게.”
“검을 뽑지 않으시오?”
“필요하면 알아서 뽑지 않겠는가?”
봐주는 듯한 말투에 남궁현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그제야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후회가 일었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검에서는 청색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점차 실처럼 모양을 굳혀갔다.
“검사. 훌륭하군.”
“여전히 검을 뽑지 않으시는 구려.”
난 싱긋 웃고 말았다.
쐐액.
짧고 강렬한 소리와 함께 남궁현의 검이 내 머리에 떨어졌다.
엄청난 쾌검.
그의 검이 내 머리를 반으로 쪼갤 찰나 내 두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이럴 수가?”
놀랍게도 검은 두 손바닥 사이에 잡혔고, 남궁현은 알 수 없는 힘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남궁세가를 흔들어놓기로 마음먹었기에 숨기지 않고 무위를 개방한 결과였다.
난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려 공중에서 버둥거리는 남궁현을 살짝 바닥에 내려놓았다.
“더 하시겠는가?”
뒷짐을 짓고 선 나를 본 남궁현은 귀신을 본 얼굴이었다.
“이, 이게 무, 무슨 무공입니까?”
어느새 그의 말투는 극존칭으로 바뀌었다.
“글쎄. 지금은 설명해도 알기 어려울 걸세. 적어도 검강의 단계를 넘어서야 이야기가 통할 테니까. 가주께 안내해주겠는가?”
“따라오십시오.”
남궁현은 씩씩하게 허리를 숙였다.
비무에서 패배하자, 깔끔하게 결과를 인정하는 남궁현을 보고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쩐지 남궁세가와의 담판은 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