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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13화 (113/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13화

113화. 정주현으로 간 제갈문현.

무림맹 정보루.

육영서와 제갈문현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는데, 몹시 큰 충격을 받은 듯 말이 없었다.

길게 이어지던 침묵은 육영서에 의해 깨졌다.

“루주님.”

“말하게.”

“구양천이 내공을 잃은 게 아니라 우릴 속이는 게 분명합니다.”

“왜 그런 짓을 할까? 그래서 얻는 게 없는데. 또 여중명이나 삭천혁은 그의 내공이 10~20년 수준이라고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어.”

제갈문현은 담담하게 육영서의 말을 반박했지만, 웬일인지 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하지만 구양천이 새로운 무공을 익혔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휴우.”

제갈문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며 며칠 전에 양천린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구양천이 내공을 일부러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허, 이 사람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말이 안 되다니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기인기사가 존재하는데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자네가 무공을 제대로 수련했다면 절대 이런 말을 꺼내지 못했을 거야. 내공을 숨기고 속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과 같은 급이거나 하수에게 통하는 거지. 그리고 절정에 이르면 정말 속이기 어려워. 특히 목숨을 걸고 비무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양천린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더군다나 구양천은 10~20년 정도 내공이라고 하였어. 그런 상황이면 여중명과 삭천혁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 그럼 비무 도중에 구양천은 순간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고 그때 눈치 채겠지. 20년으로 사용하다가 50년으로 늘려도 바로 알 수 있네.”

제갈문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천성에 진출한 풍검이란 절대고수가 있습니다.”

“알고 있네.”

양천린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천성은 암흑사련 영역이라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의 무공이 중원의 무공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마치 내공이 없는 듯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제야 양천린의 얼굴에 호기심이 일었다.

“아무래도 구양천에 관련한 보고가 이상하여 사천성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럼 암흑사련은 풍검과 구양천의 상태를 알고 있을까?”

“적어도 풍검에 대해서는 무림맹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풍검이 사천성에 입성했을 때, 암흑사련과 전쟁이 벌어졌으니까요. 이후에 본단에서 직접 정예무인을 보내기도 했고요. 우린 몇 단계 건너뛰어 첩보를 얻고 있지만, 저들은 직접 교전하여 정보를 얻었으니 그들의 정보가 더 정확하겠지요.”

“제갈군사.”

“예. 맹주님.”

“확실한 정보를 얻을 때까지는 애먼 추측을 삼가게. 그리고 자네 말이 옳다고 나중에 밝혀지면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알겠습니다.”

양천린이 전향적으로 돌아서자, 제갈문현은 더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

“루주님.”

육영서의 부름에 제갈문현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사천성에 사람을 보냈으니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세.”

“풍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구양천의 상태를 정확히 알려면 풍검을 조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은가? 자네 말대고 그가 우릴 속이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제갈문현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함께 무림맹을 이끌며 정이 많이 들었던 구양천이었기에 만약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매우 실망감이 클 것이다.

“휴우, 답답하군요. 꽤 시간이 걸릴 텐데, 그 사이에 암흑사련에서 뭔 일을 저지르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우린 최선을 다하고 있네. 여중명, 삭천혁은 무림맹 최상급의 고수야. 그런 자들이 구양천을 어쩌지 못했다면 암흑사련에서 보낸 살수도 그를 어쩌지 못할 걸세. 그러니 그 부분은 안심해도 될 거야. 나 역시 처음에는 암흑사련에 당해 절세무공을 빼앗기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삭천혁을 이길 정도면 암흑사련도 그를 어쩌기 힘들어.”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말씀하시게.”

“만약 구양천이 원래 내공을 숨긴 게 확실하다면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날카로운 질문에 제갈문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육영서를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뜻을 주장했다.

“만약 그게 맞다면 구양천은 무림맹의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뇨? 무림맹에 위협이 된다면 제거해야 합니다.”

육영서의 단호한 태도에 제갈문현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전에도 구양천은 최강이었어. 그런데 오랜 시간을 수련하고 돌아온 그가 더 약해졌겠는가? 더 강해졌겠는가? 어찌 생각하는가?”

“더 강해졌겠지요. 적은 내공을 가지고 삭천혁을 이겼으니까요.”

“그런데 제거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는가?”

제갈문현의 냉정한 눈빛을 접한 육영서는 실언했다는 걸 깨닫고는 곧바로 잘못을 인정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자네의 열정적인 행동은 이해하네만 앞으론 말조심하게. 구양천의 무위가 예전과 같더라도 제거는 거의 불가능해. 만약 그가 분노하여 암흑사련과 손이라도 잡는 날이면 무림맹은 큰 위협에 처하게 될 걸세.”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는 정파무림 소속이고 암흑사련을 증오하고 있는데요.”

“무림맹에서 제거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그가 안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런가?”

육영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정도 배신감을 느꼈다면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설 테고, 그럼 암흑사련과 손을 잡는 무모한 결정도 가능할 것이다.

육영서는 섬뜩함에 머리털이 쭈뼛하고 서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구양천을 만나봐야겠어. 휴우, 할 일은 많은데 왜 이리 일이 꼬이는지 모르겠군. 오늘은 여기까지.”

제갈문현은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장안현 백마산.

척휘명은 몸을 날려 백마산 중턱까지 빠르게 올라왔다.

척무진의 거처였던 모옥이었는데, 마당의 평상에는 웬 늙은이가 앉아서 척휘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녕하셨습니까?”

놀랍게도 척휘명은 그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했다.

“죽지 못해 살고 있지. 훌훌.”

“더 오래 사셔야지요. 암흑사련과 혈교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영광은 무슨. 나이가 들면 죽어야지. 혈교주도 아랫사람에게 넘겨줘야 하는데 내가 욕심이 많아서 이러고 있다네. 훌훌”

“아직 정정하십니다.”

놀랍게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 늙은이는 혈교주였다.

도저히 몇 살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그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다.

원래 주름이 많았었지만, 척무진이 죽은 이후 척휘명이 지옥혈도를 속성으로 익히는 데 애를 쓰다 보니 더욱 늙어버렸다.

그런 혈교주를 보자 척휘명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훌훌. 이 사람아. 내 할 일을 하는 것뿐일세.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에서 마지막 소원이라면 지옥혈도의 완성이지. 그것만 본다면 더는 세상에 미련이 없어.”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지옥혈도를 완성시키겠습니다.”

“그래야지. 훌훌.”

혈교주는 척휘명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했다.

“그런데 십성까지는 빨리 올라왔는데 요즘에는 벽에 막힌 느낌입니다.”

“전 련주님께서도 그랬었지. 좀 더 독하게 밀어붙이세.”

독하게라는 말이 나오자 척휘명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악독하다는 평가를 받는 척휘명이었지만, 지옥혈도를 위해 수많은 동남동녀를 갈아 넣는 수련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방식으로 수련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복수.

혈교주가 말한 독하게는 더 많은 동남동녀를 갈아 넣겠다는 뜻이었기에 미간을 찌푸렸던 것이다.

물론 척휘명은 더 강해지기 위해 뭐든지 할 용의가 있었다.

다만 혈교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자신은 없었다.

방금 전에 일었던 안쓰러운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속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여간 지독한 늙은이야. 나도 독하다는 소릴 듣지만, 이 늙은이는 악마야. 악마 그 자체라고. 재수 없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지옥혈도만 완성되면 이 늙은이도 없애야겠어.’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척휘명은 본심과는 다르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훌훌. 자, 시작해보세. 자네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니까.”

짝짝.

혈교주는 말을 마치며 손바닥을 쳤고, 열 명의 동남동녀가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끌려왔다.

어떤 방식으로 제압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저항도 없이 혈교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그럼 시작해볼까?”

혈교주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밝았고, 그 목소리를 들은 척휘명은 속에서 살기가 솟구쳐 올랐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라고.’

척휘명은 혈교주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

정주현 만월루.

“허어,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요. 제갈루주께서 본루를 다 방문하시고.”

금노는 제갈문현의 방문이 의외였지만, 전혀 놀라지 않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자, 이리로 앉으시지요.”

금노는 제갈문현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주변을 물렸다.

둘만 남게 되자 제갈문현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의뢰한 건 어찌 되었습니까?”

“그게 쉽지 않군요.”

“그거 실망이군요. 그래도 만월루의 정보력을 믿었는데요.”

“무림맹에서 파악하지 못한 정보를 만월루에서 알아내는 게 쉽지 않지요.”

금노는 담담하게 말하고는 서랍을 열어 한 장의 종이를 꺼내 제갈문현에게 건넸다.

“그게 전부입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종이를 본 제갈문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풍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무림맹의 정보력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만월루에 의뢰했었다.

차분히 읽은 제갈문현의 눈이 실망이 어렸다.

“실망스럽습니까?”

“예. 좀 더 자세한 정보를 기대했습니다만.”

“풍검은 신비에 쌓여 있는 자입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얼마 안 되고,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건 암흑사련의 공격을 물리칠 때였죠. 이 정도 정보를 얻은 것도 천운이었습니다.”

제갈문현은 종이를 서탁 위에 내려놓고는 금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구양천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군요.”

“만약 그가 풍검의 무학을 익혔다면 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완전히 무학의 원리가 다른 무공인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가정일 뿐입니다. 일단 제가 직접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볼 생각입니다. 그럼 진실을 알게 되겠지요.”

“너무 자극하지 마십시오. 그는 변했습니다. 적어도 그가 무림맹에 등을 돌리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약속대로 그와 만나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면 만월루에도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당연히.”

제갈문현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노와 헤어진 제갈문현은 곧바로 구양세가로 향했다.

구양세가에 도착한 제갈문현은 감회가 새로웠다.

검제 구양의가 죽고 화운룡과 무림맹의 견제로 바닥까지 떨어졌었던 구양세가였는데 구양천의 등장으로 이제는 하남성을 대표하는 무가로 거듭난 상태였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던 제갈문현이었기에 구양세가의 부활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부디 그와의 만남이 좋은 결과로 이어져야 할 텐데. 만약 구양천이 내공을 잃은 게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면···세상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어쩌면 구양천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 휴우, 만약 그리된다면 죽어서 화 맹주님을 어찌 뵐꼬.’

제갈문현은 답답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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