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07화
107화. 이것들이 나를 호구로 봐?
“그랬단 말이지.”
예상했던 대로 섭유청과 청파검은 내 무공을 노렸다.
암흑사련의 수뇌부가 이 부분을 반대하다가 허락했다는 말을 듣고 척휘명을 다시 판단하게 되었다.
“척휘명이 적어도 바보는 아니로군.”
그전에는 척무진이 죽어 어수선한 암흑사련을 무림맹이 왜 공격하지 않나 했었는데, 척휘명의 존재감을 알고 나니 그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강한 취조를 통해 암흑사련의 핵심적인 내용을 모조리 알아냈다.
‘그건 그렇고 이걸 어쩐다?’
모진 취조를 받고 매우 지쳐서 잠든 섭유청과 청파검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예전이었다면 당연히 무림맹에 넘겼을 테지만, 무림맹이 내게 저지른 행동도 매우 실망스러웠기에 절로 고민이 일었다.
그렇다고 살려 보내자니 이들의 무위가 걱정되었다.
비록 내게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지만, 이들은 절정고수였다.
“귀찮게 되었군.”
난 머리를 긁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결국 죽여야 하나?”
“살려주십시오.”
어느새 깨어난 섭유청이 내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는 급히 구명을 요청했다.
“아니 그 정도 살았으면 됐지. 뭘 더 살려고 그리 비굴하게 구는가?”
“전 살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내게 당했고, 이번에 또 당하자 섭유청은 감히 내게 저항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납작 엎드렸다.
청파검은 눈을 뜨고 일어나 상황을 지켜보더니 바로 엎드려 구명을 청했다.
두 놈이 욕심만 많은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생존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살려만 주시면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섭유청과 청파검을 본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러다가 목이 부러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오만했던 둘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구명하는 모습은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적어도 이 정도 고수라면 이런 상황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놈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건가? 어이가 없군.’
“내가 네놈들을 어떻게 믿고 쓰냐? 목숨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네놈들은 또 위기에 처하면 배신할 텐데.”
정곡을 찔리자, 둘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한때 악명이 중원에 자자하게 퍼졌었던 혈마도 섭유청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솔직히 독하게 마음먹으면 이 둘을 통제할 방법은 있었다.
전생에서 82년을 살면서 평생을 사마세력과 싸웠고, 그들의 무공을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기에 괴이하고 악랄한 무공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들을 암흑사련으로 돌려보내고, 첩자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그렇다면 앞으로 암흑사련의 움직임을 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젠장할.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또 무림에 깊숙이 개입할 생각을 하다니. 왜 무림맹은 쓸데없이 나를 건드려서 일을 이렇게 귀찮게 만들어.’
고개를 돌리자, 섭유청과 청파검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살려준다고 치자. 그럼 암흑사련으로 돌아가면 척휘명이 널 가만히 내버려두겠냐?”
“당연히 징계를 받겠지만, 죽지는 않고 강등당할 테니 그렇더라도 대인께 쓸모는 있을 겁니다.”
“대인이라···어이가 없군.”
싸울 때까지만 하더라도 ‘네놈’이었는데,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자 ‘대인’이라며 납작 엎드리는 섭유청을 보자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좋아. 살려주지. 대신.”
“예.”
섭유청과 청파검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금제를 해놓아야겠어.”
“그, 그야 다, 당연하지요.”
섭유청과 청파검은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금제는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애초에 이 둘을 믿지도 않았지만, 이런 꼴을 보니 확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내 그 생각을 떨쳐냈다.
파파파팍.
손끝에 진기를 끌어 모아 둘에게 금제를 가했다.
“세 달마다 해혈을 하지 않으면 혈이 막혀서 죽게 될 것이다.”
“그, 그럼 세 달에 한 번씩 정주현으로 찾아와야 합니까?”
“내가 장안현으로 가지. 이곳에 오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랬다가는 척휘명에게 의심을 살 게 뻔하니까. 그때 암흑사련의 상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야 할 거야. 정보의 값어치가 떨어진다면 내가 굳이 장안현에 갈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섭유청과 청파검은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가봐.”
내가 손짓을 하자, 섭유청과 청파검은 쭈뼛거리더니 그대로 몸을 날렸다.
내공을 제약한 게 아니었기에 그들은 경공술을 펼쳐 순식간에 사라졌다.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고, 난 그 자리에 앉아 그걸 지켜보았다.
“이게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모르겠군. 이 멍청이들이 내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열심히 정보를 모을 테고, 그렇지 않다면 혈맥이 터져 죽겠지. 척휘명에게 그대로 보고하려나? 뭐, 또 보내면 모조리 죽여주지.”
난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집에 도착하자, 성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반겼다.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말 안 듣는 늙은 개 두 마리를 혼내주고 왔지.”
“역시.”
“뭐가?”
성휘는 주변을 살피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낮게 말했다.
“무공을 숨기고 계시죠?”
“내공이 사라졌다는 걸 너도 확인했잖아.”
“그렇긴 하죠. 하지만 공자님과 비무하면서 확신했습니다. 내공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걸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요놈 봐라?”
“이거 왜 이러십니까?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저는 세가에서부터 무림맹까지 계속 공자님을 모셨습니다. 저만의 감이 있죠.”
“내 몸을 지킬 정도니 오해하지는 말거라.”
“예!”
성휘는 과장된 자세로 포권하며 대답했다.
“가서 쉬어. 나도 쉴 테니까.”
난 싱긋 웃고는 욕간으로 들어가 씻고는 잠을 청했다.
정오 무렵.
밖이 소란스러워져서 잠이 깼다.
“공자님. 성휘입니다.”
“들어와.”
이불을 개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성휘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무림맹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추혼검대주 여중명입니다.”
“헛참. 정말 왔군.”
“그런데 무림맹이 이렇게 가까웠나요?”
“아마도 모종의 이유로 인근에 있다가 명령을 받고 왔겠지. 무한현에서 출발했다면 이렇게 빨리 올 리가 있나? 내가 정주현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쩌실 겁니까? 저들은 공자님을 무림맹으로 모셔가겠다고 하던데요.”
“모시긴 뭘 모셔. 인질로 잡아가려는 속셈이지.”
이 상황에서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계속 터져 나왔다.
제갈문현을 비롯한 무림맹의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한때 목숨을 걸고 지켰었던 조직이었기에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만나봐야겠군.”
“불러올까요?”
“그래. 그전에 비하면 내가 이빨 빠진 호랑이겠지만, 여중명이 나를 만나러 오는 게 맞아.”
“알겠습니다.”
성휘가 물러나자, 난 이불을 개키고 문을 열어 환기시킨 후 자리에 앉아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공이 없으면 편하게 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순진한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강한 무위를 보여줘서 예전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적당히 보여줘야 하는데. 이것 참. 왜 자꾸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거야?’
내가 고민하고 있을 무렵, 여중명은 구양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제, 구양수도 이 자리에 참석하여 신중한 표정으로 여중명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는 맹주님의 명령입니다. 저 또한 한때 구양무인을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조치를 행하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그가 암흑사련이나 불순세력에 납치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무림맹의 고급정보는 물론이고 천의검법을 비롯한 절세무공이 그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럴 순 없잖습니까?”
“허어, 그렇다고 천이를 평생 무림맹에 붙잡아두는 건 심한 처사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는 무림의 평화에 관련된 일입니다. 가주님께서 허락해주십시오.”
여중명은 살짝 머리를 조아렸다.
성제와 구양수는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구양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입장은 이해하겠소.”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천이에게 뜻을 물은 후에 집행하시오. 그가 무림맹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면 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를 지킬 것이오.”
단호한 구양현의 태도에 여중명은 깜짝 놀랐다.
설마 구양세가가 무림맹을 상대로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아마도 구양무인은 허락할 겁니다. 그는 누구보다 무림의 정세를 잘 알고 있고, 그의 무공이 외부로 유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요.”
여중명은 구양현에게 포권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괜찮겠습니까?”
성제가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구양현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쩌겠는가? 일단 천이의 대응을 지켜봐야지.”
“무림맹과 맞서면 안 됩니다.”
“안 되지. 이런 사안이면 무림맹도 절대 물러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말이야. 난 천이의 아버지야. 아버지인 내가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만약 천이가 절대 무림맹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 내 아들을 지킬 생각이네.”
구양현은 손바닥으로 서탁을 내리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나치게 흥분하셨습니다. 잠시 쉬십시오.”
구양수는 급히 구양현을 진정시키고는 성제에게 방을 나가라고 눈짓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조언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제는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여중명은 곧장 내 거처로 달려왔다.
“여중명입니다.”
“들어오시오.”
위엄 있는 목소리에 여중명은 과거 위맹했던 구양천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몸을 움찔했다.
‘이제 구양천은 평범한 무인일 뿐이다. 우리가 보호해줘야 하는.’
여중명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구양천을 바라보다가 서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정말 내공을 잃으셨군요.”
“약간은 남았소.”
“세상이 험하고 무섭습니다. 불순한 세력이 구양무인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와 무공을 노릴 것이 자명합니다. 이에 무림맹에서는 구양무인의 그간의 공을 생각하여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봤습니다.”
“그러니까 나보고 무림맹으로 가야한다.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설마 평생?”
“위험이 상쇄되면 그때 돌아오시면 됩니다.”
난 가만히 여중명을 바라보았다.
지금 보니 무림맹이나 암흑사련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처음에는 나를 보호하겠지만, 이들도 곧 내 무공에 욕심을 드러낼 것이다.
“여 단주께서도 내 무공을 원하시오?”
“그럴 리가요.”
“내가 무림맹에 가더라도 내 무공을 넘겨주는 일은 없을 것이오.”
단호하게 말하며 여중명을 살폈다.
뭔가 불만인 듯한 여중명을 보니, 아마도 무림맹에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여 단주의 표정을 보니 어떤 식으로든 내 무공을 얻어내려고 하겠구려.”
“그 무공은 원래 무림맹의 것입니다. 구양무인께서도 화 맹주님께 배우셨지 않습니까? 이제는 돌려주셔야 합니다.”
여중명은 본색을 드러냈다.
“그게 목적이면 내가 천의검법과 건곤여의신공을 필사하여 드리겠소. 그럼 되겠소?”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여중명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그를 떠보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가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기다렸다.
여중명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무림맹에 가셔야 합니다.”
“무공을 필사해 드리면 여 단주께서 말한 대로 무공을 돌려드리는 거잖소.”
“그래도 무공이 구양무인의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까요. 그것이 다른 불순세력에게 전파되는 걸 무림맹에서는 원치 않습니다.”
“이래서야 무림맹과 암흑사련의 다른 점이 뭐요?”
“무림맹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비난하지 않게 생겼소? 화 맹주님께서 내게 무공을 전수할 때 무림맹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말씀은 없으셨소.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무공은 원래 화씨세가의 것이었소. 그런데 무림맹에서 이걸 가지고 왈가불가하니 몹시 불쾌하구려.”
“화씨세가도 무림맹 소속입니다. 이제 가시죠. 추혼검대를 모두 데려왔으니 저항은 소용없습니다.”
“후우.”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82년 동안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나직한 탄식에 여중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독하게 다그쳤다.
“가시죠.”
그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려다가 두 손을 휘저으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그는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사술을 익혔습니까?”
“이게 사술로 보이는가?”
“그럼 내공이 거의 없는데 무슨 짓을 한 거요?”
“적어도 이 한 몸을 지킬 힘은 있으니 물러가시게.”
더는 여중명과 말도 섞기 싫었기에 단호하게 말했다.
여중명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빠르게 손을 뻗어왔다.
난 가볍게 손을 쳐냈다.
그는 오른손이 제지당하자, 왼손을 뻗어 마혈을 찍었다.
“됐다.”
퉁.
그 순간 강력한 반탄진기가 일었고, 여중명은 왼손목이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이럴 수가.”
여중명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게서는 적은 양의 내공만 감지될 뿐이었다.
“썩어도 준치란 말인가?”
“썩 돌아가게. 아무리 내공을 상실했다지만, 난 구양천일세.”
여중명은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일단 물러나겠습니다.”
그는 내게 포권하고는 물러났다.
“후우, 골치 아프게 되었군. 호랑이가 사라지니 그 밑에 있던 여우, 늑대들이 설치고 있어.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무림맹, 암흑사련 뿐만 아니라 별 떨거지들이 다 설치겠군. 나원 참.”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