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06화 (106/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06화

106화. 이 정도 쯤이야.

정주현.

무림맹 하남성 지부.

2년 전에 이곳 지부장으로 발령받은 철검 팽호량은 전형적인 무골이었다.

“구양무인. 이리 앉으시오.”

팽호량은 무뚝뚝한 말투로 내게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더는 나를 무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표정과 말투였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의 말투가 딱딱했을 뿐이지 예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고맙소.”

“맹에서 추혼검대를 보내겠다고 하였소.”

“추혼검대라···.”

“제갈군사께서 보내셨는데 직접 읽어보시오.”

팽호량은 전서구를 통해 날아온 서신을 건네주었다.

암호로 가득한 전서를 확인한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난 무림맹에서 보호를 받으며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소.”

“지금 맹의 명령을 무시하겠다는 거요?”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게는 이곳에 머무를 자유가 있소. 지금 서신의 내용을 보니 무림맹에서 평생 연금될 텐데, 그게 사람 사는 것이오?”

“구양 무인. 경고하겠소. 맹의 명령을 따르시오.”

“그만합시다.”

난 팽호량의 냉혹한 경고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방을 나섰다.

‘설마 이리 돌아가리라곤 생각 못했군. 내 머릿속에 있는 무공구결과 경험, 무림맹에 대한 지식이 문제겠지. 제갈문현은 그게 암흑사련을 비롯한 다른 조직에 넘어갈까 걱정하는 것이고. 쯧쯧. 편하고 자유롭게 살려고 했는데 어째 더 꼬이는 느낌이로군.’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지부를 나섰다.

천천히 걷던 나는 중간에서 멈춰 섰다.

누군가가 은밀하게 따라붙고 있었다.

‘팽호량이 보냈군. 정파의 기운이야.’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세가로 돌아온 나는 곧장 성휘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내공을 잃었다고 세상에 알려진 후, 나를 바라보는 많은 무인들의 시선이 차가워지고 변했지만, 성휘만은 예전그대로였다.

“휘야.”

“예. 공자님.”

“넌 여전하구나.”

“네? 아아, 공자님은 제게 영웅이니까요.”

“짜식. 앞으로 내가 외출할 때는 함께 가자.”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다니시면 위험해서 걱정했습니다.”

“그 말은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뜻이냐?”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그래. 예전의 네가 아니지.”

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성휘는 하남성에서 알아주는 무인이 되었다.

척사검대에서 고된 수련과 비무를 거치며 실력이 일취월장하기도 했지만, 무림맹이라는 큰물에서 놀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만약 나를 공격하는 무인이 나타났다면 어찌하겠느냐?”

“모조리 저승으로 보내버리겠습니다.”

“너보다 강한 놈이 나타나면?”

“제가 막는 사이에 도망치십시오.”

성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이런 대답을 하려면 조금 생각을 하고 말해야 하는데, 곧장 튀어나온 걸 보니 그동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느껴져서 감격스러웠다.

“오늘부터 너를 좀 더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구나.”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성휘는 바로 부복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무림맹에 머무르며 내가 어떤 위치에 있었고, 내 무공이 어땠는지를 몸으로 체험했었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가르친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이리 감격한 것이다.

“많이 힘들 것이다.”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이 정도는 버텨내야죠.”

성휘는 싱긋 웃었다.

그날 이후.

난 성휘를 강하게 훈련시켰다.

풍검을 만나고 천산에서 홀로 수련하면서 깨우친 방식으로 그를 인도했다.

특히 운기조식하는 방법을 바꿨고, 그와 대련을 통해 검로를 수정했다.

“많이 달라졌네요.”

“예전의 내가 아니니까. 지금은 내공을 대부분 상실했고.”

“내공이 거의 실리지 않은 검이지만,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내가 바보가 되었을 줄 알았느냐?”

“그래도 내공을 잃었는데···이런 수준이란 건.”

성휘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의 내공이 실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 검은 예리했고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혹시 내공이 되살아난 건 아닌가 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기에 성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수련에 집중해.”

난 검을 검집에 꽂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죄송합니다.”

성휘는 곧장 마음을 바꿔먹고는 전력을 다해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

하남성지부.

팽호량은 장년의 무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더냐?”

“구양천은 내공을 완전히 상실하진 않았고, 한 십년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거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아닙니다. 성휘와 대련하는 걸 지켜봤는데 검의 예리함이 상상이상이었습니다. 천하를 떨어 울렸던 영웅이었던 만큼, 비록 대부분의 내공을 상실했어도 매우 강했습니다. 이 정도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쯧쯧.”

팽호량은 혀를 차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암흑사련에서 자객을 보낸다면 애송이를 보내겠는가? 아주 강한 놈을 보내겠지.”

“그래도 성휘라면···.”

“한 놈이 아니라 몇 놈이 오면? 성휘가 다 막아 주리라 생각하느냐?”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도 구양천이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니 다행이로구나. 무림맹으로 가라면 갈 것이지. 왜 이리 고집을 피우는지. 원. 뭐, 여중명이 와서 설득하면 따라가겠지.”

팽호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는데, 어째 태풍의 한가운데 위치한 느낌이었다.

“자네가 잘 지켜봐. 문제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혹 그쪽에서 눈치 채지는 않았는가?”

“멀리서 지켜보았으니 모를 겁니다.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팽호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하여 무인을 내보냈다.

“귀찮은 일만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혈마도 섭유청은 청파검과 함께 정주현에 도착했다.

둘 다 절정의 고수였기에 굳이 거추장스럽게 부하들을 대동하지 않았다.

“구양천이 약간의 내공을 가졌을 테니, 아주 맹탕은 아닐 것입니다.”

청파검의 말에 섭유청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봤자, 우리에게는 맹탕이나 다름없지. 10년, 20년 내공 가지고 뭘 하겠는가?”

“그렇긴 하죠. 아무튼 구양천에 대해서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러지.”

섭유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파검이 구양천을 제압하면 고문을 통해 그의 절정무공구결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대신 성휘는 확실하게 제압해주십시오.”

“성휘쯤이야.”

섭유청은 거만하게 대답했다.

전대노마인 섭유청에게 신진고수로 떠오른 성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가자.”

“예.”

둘은 경공술을 펼쳐 빠르게 자리를 떴다.

다음날.

구양세가 근처의 객잔.

“귀찮은 혹이 붙었는데.”

섭유청은 팽호량이 감시를 붙여놓은 무인을 생각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청파검의 표정 역시 굳어진 상태였다.

감시하는 무인이 누군지 몰랐지만, 무림맹의 무인이란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암흑사련에서는 아직 무림맹과 일전을 겨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섭유청과 청파검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놈도 함께 제거해버리죠. 그리 강한 놈으로 보이지 않던데요.”

“그러다 잘못되면?”

“구양천이 밖으로 나오면 감시하는 놈을 먼저 제거하고 곧바로 구양천을 제압합시다.”

청파검은 구양천의 무공이 욕심나서 무리수를 두었다.

섭유청은 청파검을 말려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욕심이 그걸 막고 있었다.

“그 정도는 간단히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증거만 남기지 않는다면 무림맹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섭유청의 눈빛이 냉혹하게 변했다.

“그래. 절세의 무공을 얻는데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결국 섭유청도 욕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최대한 멀리서 감시해. 그놈에게 발각되면 더 골치 아파지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청파검은 히죽 웃으며 술잔을 들었고, 섭유청도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둘은 욕심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구양세가.

‘또 감시가 붙었다. 이번에도 정파무인인데···. 이상하군. 왜 팽호량이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붙였지?’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묘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 따라붙었던 무인보다 나중에 따라붙은 무인의 무위가 훨씬 고강했고, 매우 조심스러웠다.

‘두 놈은 서로 다른 놈들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말인데. 그 노리는 놈이 암흑사련도 아니고 정파라? 기가 막히는군. 일단 확인해봐야겠어.’

결심을 굳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밖은 어두워진 상태였지만, 상관없었다.

성휘를 데려갈까 생각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슈욱.

미세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집을 나온 나는 경공술을 펼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엇? 저놈이 언제 나왔지?’

청파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집안에 있었는데 밖에 나온 것이다.

나오는 걸 보지 못했기에 청파검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제대로 추적해. 감시하는 놈은 내가 제압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섭유청의 지시에 청파검은 정신을 차리고는 구양천을 은밀하게 미행하기 시작했다.

구양천은 계속해서 걸었고, 어느 순간 골목길로 들어서더니 사라졌다.

“젠장할. 어디 간거야?”

청파검이 달려왔지만, 막다른 골목이었고 구양천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뒤를 조심해!”

섭유청의 경고에 청파검이 급히 검을 뽑아 휘두르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곧 그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못 보던 놈인데.”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파검을 살피고는 어둠속을 향해 외쳤다.

“숨어있는 놈 나와.”

“크흐흐흐.”

섭유청은 음산한 웃음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맹탕은 아니었군. 하지만 그런 기습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교묘한 속임수로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섭 늙은이였군.”

“마음대로 지껄여봐. 오늘이 네 제삿날이니까.”

“그건 그렇고. 나를 감시하던 친구는 자네가 제거했는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하는 나를 보며 섭유청의 머릿속에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어. 내공이 부족한 놈이 그걸 어떻게 간파했단 말이냐?”

“내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주변에서 지레짐작하고 그렇게 말한 것이지.”

“거짓말.”

“하긴 네놈의 실력으로 그걸 알 리가 없지. 일단 제압부터 해야겠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몸이 사라지자, 섭유청은 깜짝 놀라 진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팡.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는 그의 옆구리를 공략했다.

“크흑.”

속수무책으로 당해 물러나는 섭유청을 따라붙으며 온몸이 녹신하도록 구타를 했다.

제대로 내공을 실었다면 단 한방에 끝났을 테지만, 일부러 내공을 적게 실은 후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이어갔다.

“제발. 그만.”

섭유청은 애처롭게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절정에 오른 이후 이토록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당한 적은 없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날아오는 주먹이 뻔히 보이는데 피하지 못하고 맞고 있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럼 우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볼까?”

난 섭유청의 마혈과 아혈을 짚은 후, 두 놈을 양 옆구리에 끼고 몸을 날렸다.

정주현 외곽의 공터.

털썩.

청파검과 섭유청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마혈과 아혈을 풀어주었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 대신 그때는 진짜 죽도록 맞을 각오하고 도망쳐.”

흠씬 두드려 맞은 섭유청이나 그걸 고스란히 지켜본 청파검은 공포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 왜 정파무인이 암흑사련과 어울리는 것이냐? 개소리하며 거짓말하지 말고.”

청파검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퍽. 퍽. 퍽.

무자비한 주먹이 날아들었고 청파검은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섭유청. 네가 말해봐. 이놈 누구야?”

“변했군요.”

“그럼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난 주먹을 흔들며 대답했다.

섭유청은 이 치욕스러운 상황에 분통이 터졌지만,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억울하면 덤벼보시던가?”

“아닙니다.”

“말해봐. 이놈 누구야?”

“청파검입니다.”

“청파검? 무림맹에 있던 놈인데···. 아하, 이제 알겠군. 첩자였군. 제갈문현이 대대적으로 단속하니까 암흑사련으로 도주한 것이었어. 너희들 내 무공이 탐나서 왔냐?”

섭유청과 청파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간 상대는 무공이 약하다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올라섰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정무인을 개 패듯 두드려 팰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너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다 불어야 할 거야.”

우두두둑.

내가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다가서자, 섭유청과 청파검은 절망의 표정을 지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