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02화
102화. 비무.
천산.
“그가 이리로 오고 있다고?”
“예.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정말 시간 맞춰 돌아오는군요.”
“그러기에 의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풍검은 짐짓 울리우수를 타박하는 듯한 말을 쏟아냈지만, 싱긋 웃고 있었다.
“그가 이번 여행으로 뭘 얻었을까요?”
“나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겠지. 그렇지만 특별한 건 얻지 못했을 거야.”
“처, 처음부터 아셨습니까?”
“알긴 뭘 알겠는가? 시간이 지난 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 이제 돌아가게. 어서 비무를 마쳤으면 좋겠군. 그래야 마음이 후련해지겠어.”
“저···.”
“말해봐. 뭘 주저하는가?”
“만약 승부를 내지 못하면···어쩌실 겁니까?”
울리우수는 감히 패배라는 말을 꺼내진 못하고, 이렇게 질문했다.
조심스러운 그의 반응과는 달리 풍검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비무는 비무일 뿐이다. 그것과 우리가 중원진출하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혹 그가 막지 않을까요?”
“우리가 암흑사련처럼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다면 목 공이 아니라 누구라도 막겠지. 하지만 난 그런 바보짓을 할 생각이 없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돌아가.”
“예. 알겠습니다.”
울리우수는 개운해진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풍검은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반드시 이겨야지. 승부를 내지 못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진석을 꺾어야 비로소 조사님의 한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명리종 따위를 꺾은 것만으로는 한을 풀 수 없어.”
풍검은 뒷짐을 지고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복수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했던 초대 풍검의 유언이 문득 떠오르자, 풍검의 눈빛이 매우 사나워졌다.
‘그 미친 늙은이 때문에···.’
그는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 없었다.
이틀 후.
난 경공술을 펼치지 않고 천산을 올라 풍검이 머무는 모옥에 도착했다.
“잘 다녀오셨소?”
“덕분에.”
“이리로 앉으시지요. 따뜻한 차나 한잔 합시다.”
풍검은 평상에 앉아 뜨거운 찻주전자를 들어 찻물을 따른 찻잔을 건네주었다.
“고맙소. 그렇지 않아도 추웠는데.”
“허어, 춥다고요?”
풍검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삼갑자의 내공을 지닌 절대고수가 추위를 탈 리는 없었다.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걸어 올라왔더니 땀이 식으면서 춥더군요.”
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호로록 소리를 내며 차를 마셨고, 뜨거운 찻물이 몸 안으로 들어가자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풍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로 목 공과의 인연이 끝날 것이오.”
“중원으로 진출하면 암흑사련의 전철을 밟지 마시오. 부탁하겠소.”
“인생이 유한한데 그리 불쌍하게 살아서야 되겠소? 난 명예를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이오.”
난 풍검의 눈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이 넘쳐 오만함으로 비춰지는 풍검이 내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만든 무림방파는 무림맹이나 암흑사련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중원은 평화를 찾을지도 모르겠군. 세 개의 견고한 세력이 서로를 견제한다면. 아니 천마교까지 합하면 네 개의 세력인가? 어쨌든 어느 한 세력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긴 힘들겠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오?”
“잠시 중원에 대해 생각했었소.”
“때가 되면 목 공께서는 암흑사련주를 죽이고 천마교로 돌아가시겠지요?”
“글쎄요. 지옥혈도를 내 손으로 없앨 생각이니 암흑사련주는 죽여야겠지요. 하지만 천마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소이다. 이제는 양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기 싫어서.”
“허어, 목 공께서 버린 무거운 짐을 난 짊어지려고 하는군.”
“비무하시죠.”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풍검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귀혼검을 뽑은 후, 검집을 집어던지며 담담히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소.”
“바라던 바이오.”
풍검의 표정은 상기되었다.
그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귀혼검이 짙은 적색강기로 뒤덮인데 반해 풍검의 검은 옅은 청색강기로 뒤덮였다.
통상 강기의 색이 진할수록 위력이 강력했지만, 풍검의 표정을 보았을 때 옅은 청색강기는 매우 위력적일 게 틀림없었다.
확실히 중원의 무학과 궤를 달리하는 게 틀림없었기에 바싹 긴장이 되었다.
나와 풍검을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절정에 이른 고수였기에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사사삭.
풍검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보법은 현란할 정도로 빨랐는데, 절정에 이른 나조차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괜히 별호에 풍(風)을 넣은 게 아니었군.’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풍검의 공격에 대비했다.
슈욱.
공간을 찢으며 검이 옆구리를 찔러왔다.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기에 급히 몸을 틀어 귀혼검으로 검을 쳐냈다.
찌이이잉.
단순한 공격으로 보였는데 놀랍게도 검을 떨어뜨릴 뻔 했을 만큼 강력한 힘이 내포되어 있었다.
검을 내질렀던 그는 다시 사라졌다.
반격하는 게 옳았지만, 그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나는 방어에 집중했다.
슈욱.
챙챙.
슈욱.
챙챙.
풍검은 연속적으로 공격을 퍼부었고, 난 힘들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공격이었기에 막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호오, 대단하군. 진심이오.”
공중에서 풍검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다른 무인이 그런 말을 쏟아냈다면 비아냥거림이라 생각했겠지만, 풍검이었기에 그대로 믿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말의 진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슈욱-팟!
번쩍이는 빛과 함께 그의 검이 내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급히 몸을 뉘이며 피했지만, 앞선 공격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고 패도적이었다.
서걱.
앞섬이 베어져나갔다.
굉장히 위협적인 초식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동시에 처음으로 반격했다.
적색강기가 허공을 갈랐다.
“으음.”
처음으로 공중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놀랍군.”
풍검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의 옆구리 부분이 옷이 찢겨져 바람에 펄럭였다.
“어찌 알았소?”
“강하게 공격하려면 당연히 진기의 흐름이 강해지겠지요. 난 풍검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진기의 흐름을 보고 공격했을 뿐이오.”
“대단하오. 진심이오. 이제야 초대 풍검의 마음을 이해하겠소. 설마 진기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반격할 줄이야. 그럼 이제 보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겠군.”
풍검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 만만했다.
“이제부터 진짜로 공격하겠소.”
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눈을 속이는 동작을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가장 강력한 초식을 꺼내들 것이다.
그리고 그 초식은 쾌(快)와 강(强)이 결합된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방금 전처럼.
쐐애애애액.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제공격에 나섰다.
천의검법 일초식인 섬전벽력이었는데, 육갑자로 펼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위력적이었다.
그가 대비할 틈을 주면 안 되었기에 가장 빠른 초식을 선택했다.
챙. 챙. 챙.
그는 검을 들어 섬전벽력을 막았다.
나는 계속해서 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섬전벽력을 펼치는 한편, 왼손으로 뇌정지탄을 날렸다.
펑펑.
놀랍게도 뇌정지탄은 그의 호신강기에 막혔다.
급히 뒤로 물러나며 이기어검술을 펼쳤다.
쐐애애애액.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귀혼검은 풍검의 목을 노렸다.
풍검의 표정이 굳어졌다.
챙.
강하게 받아쳤지만, 귀혼검은 약간 방향을 바꿨다가 다시 그를 노렸다.
이기어검술을 처음 접했는지 풍검의 손발이 조금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기어검술로도 풍검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긴 어려웠고, 점차 나는 한계로 치달았다.
삼갑자의 정순한 내공을 지녔지만, 풍검을 상대로 줄기차게 내공을 쏟아내다 보니 단전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촤앙.
부르르.
“커헉.”
되돌아오는 귀혼검을 간신히 잡아챘지만, 단전이 크게 흔들려 울컥하고 피를 토했다.
입술을 닦으며 고개를 들자, 풍검의 안색은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선공을 가하길 잘했군. 나도 풍검을 모르지만, 그도 내 무예를 모르니까. 가장 강력한 초식을 쓰고 싶은데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풍검이라면 그 빈틈을 노리고 들어올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섬전벽력과 뇌정지탄, 이기어검술 말고는 사용할 초식이 없었다.
범위를 넓혀 천마교의 무학을 뒤져봐도 소용없었다.
강력한 초식은 많았지만, 풍검처럼 쾌를 중시하는 무인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초식이었다.
‘숙제를 받았군. 더 빠르게 초식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더 빠르게. 이제까지는 풍검같은 무인을 만나지 못했기에 그게 통했지만, 더는 이대로 둘 수 없다.’
“대단하군.”
풍검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증거였다.
난 마지막 진기를 짜내어 귀혼검에 실었다.
-내게 맡겨라.
목영청의 말에 나 두 귀를 의심했다.
그때 풍검이 빠르게 달려오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힘을 빼.
동시에 내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라운 괴사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나는 마음을 비우고 몸에서 힘을 뺐다.
챙챙챙.
목영청은 부드럽게 귀혼검을 운용하여 풍검의 공격을 차단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속으로 곪고 있었다.
내공의 차이가 현격했고, 난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였기에 검이 부딪칠 때마다 몸이 울려 죽을 지경이었다.
슈욱.
십여 초를 방어만 하던 목영청은 불쑥 풍검에게로 몸을 날렸다.
-위험합니다.
서걱.
풍검의 검이 옆구리를 베고 나갔다.
이걸로 승부가 났다고 생각한 순간.
사각.
뭔가 베어지는 작은 소리가 울렸다.
툭.
풍검의 상투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의 오른쪽 귀가 반이 찢어져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기까지. 이제 비무는 끝났다. 쉬고 싶군.
목영청이 사라지자, 난 현실로 돌아왔다.
풍검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과 나를 돌아보더니 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옆구리를 치료하시오. 상처가 깊소.”
“귀는 괜찮소?”
“목 공에 비하면야.”
풍검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귀를 지혈하고는 우수수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려 대충 묶었다.
그 사이에 나는 옆구리를 지혈했다.
신음이 절로 흘러나올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걸 바르시오. 외상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오.”
“고맙소.”
난 그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외상약을 받아 상처에 발랐다.
그는 털썩하고 내 옆에 앉았다.
“목 공은 참으로 대단하오.”
“비무가 더 이어졌다면 풍검께서 이겼으리라 생각하오만.”
“상투가 잘렸다는 건 목이 떨어진 거나 진배없지요. 그런데 비무를 더해 무슨 의미가 있겠소.”
“그럼 비무는 무승부로 해야겠군요.”
풍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사실 이 비무는 내가 이기리라 확신했소. 비록 목 공께서 각고의 노력을 통해 삼갑자의 내공을 되찾았고, 진기가 정순해졌다고 하지만, 난 칠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오. 또 초식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난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비무는 내 예상대로 흘러갔소. 이기어검술을 막는 게 힘들었지만, 결국 막아냈으니까. 또 내공에서 우위였기에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하지만 마지막 공격은 정말 예술이었소. 그런 공격은 상상도 못했소. 목 공.”
“말씀하시오.”
“이대로 정진한다면 목 공은 내게 강력한 호적수로 떠오를 것이오. 장담하오. 어쩌면 목 공의 검에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소.”
“그럼 어째서 비무를 중단하셨소. 계속했다면 내가 죽었을 터인데.”
“치졸하게 살기엔 이 풍검이란 이름이 그리 가볍지 않소. 부디 정진하시오. 그리고 내가 잘못을 저지르며 찾아와서 응징하시오. 기다리고 있겠소.”
“응징이 아니라 무학을 탐구하는 비무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덕담을 건네자, 풍검은 옅은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이 지긋지긋한 천산을 떠나겠소. 모옥에는 목 공에게 남기는 선물이 있소. 무운을 빌겠소.”
풍검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 난 목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죽을 뻔했군. 난 내공이 바닥난 상황이지만, 풍검은 여전히 내공이 충만했어. 그가 바른 인성을 가졌다는 게 내겐 축복이었어. 조사님. 조사님.”
급히 목영청을 찾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에 몇 번 더 불렀지만, 목영청은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