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97화
97화. 방법을 찾다.
나는 천산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운기조식에 매달렸다.
밤이 되어 온도가 더 내려가면 풍검이 다가와 운기조식을 중단시켰다.
“밤새도록 이곳에서 운기조식한다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소.”
“고맙소. 집중하다보니 밤이 되는 줄로 몰랐소.”
“내려갔다가 집에서 쉬고 아침에 올라오시오.”
풍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처음으로 익히는 극음신공이었고, 자칫하면 부작용으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었기에 경험이 많은 나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렇기에 풍검의 조언을 반박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추위와 싸워가며 절벽 아래서 운기조식에 매달렸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진기를 일으키지 않고 천의검법 기수식을 펼치며 굳었던 관절과 근육을 풀었다.
열흘의 수련을 마친 나는 천산을 내려와 고비사막으로 향했다.
지옥 같은 추위가 몰아쳤던 천산과는 달리 고비사막은 가마솥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런 뜨거운 장소에서 극음신공을 수련하라고?’
당혹감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 정해진 장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뜨거운 열기에 극음신공을 수련하려니 한 시진이 지나도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았다.
풍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밀고 나갔다.
해가 지자, 고비사막은 온도가 급격히 하강했다.
이제 극음신공을 제대로 수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 풍검이 찾아왔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난 순순히 그의 의견을 따랐다.
다음날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저녁이 되자 풍검은 다시 천산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천산.
천산으로 올라가자 지독한 추위가 몰려왔다.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조용하시구려.”
“이제 시작했는데 해보지도 않고 내 생각을 앞세우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소.”
“현명한 생각이오. 이걸 반복하며 극음신공을 수련하다보면 내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오. 적어도 3개월 이내에.”
풍검은 말을 마친 후, 힐끔 나를 바라보다가 천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 때를 지나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 포기하시오.”
“시간을 정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소?”
“곧 그대의 몸 안에서는 점차 증가하는 극양진기와 극음진기가 충돌할 것이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의도를 짐작해야 하오. 그걸 깨닫지 못한다면 이 고생을 할 필요가 없으니 천산을 내려가시오.”
풍검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했고 냉철했다.
“나를 무정하다고 생각하셔도 상관없소. 이는 매우 위험한 시도이기에 그 정도 관문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만두는 게 그나마 목숨이라도 보전하는 방법이니까.”
“반드시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리겠소.”
“기대하겠소. 이제부터는 스스로 하시오. 할 수 있겠소?”
“물론이오.”
나 역시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강한 내 의지를 전달했다.
이후 천산에서 열흘, 고비사막에서 이틀을 수련하는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런 식으로 세 바퀴 돌았을 무렵,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그들은 서로 다르게 움직였지만, 때로는 거세게 충돌했다.
‘이것이 풍검이 말한 그것인가? 그에게 물어볼까? 아냐. 좀 더 고민해보자.’
이대로 쪼르르 달려가 풍검에게 질문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은 서로 다른 성질의 두 진기가 충돌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진기를 운용했다.
운기조식을 이어가면서 두 개의 진기는 급격히 늘어났고 조심하느라고 조심했지만, 두 개의 진기가 충돌하는 빈도는 더욱 잦아졌다.
“크흑.”
악문 이 사이로 선혈이 흘렀다.
진기가 충돌하면서 단전이 크게 흔들렸는데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난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진기를 다스리려 노력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 후, 신중하게 극음진기를 대주천하며 운기조식에 집중했다.
다섯 바퀴째.
이제는 충돌할 때마다 단전이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그동안 어떻게든 진기의 충돌을 막고 단전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기에 난 운기조식을 중단하고 풍검을 찾았다.
“내가 왜 왔는지 아시겠지만···.”
멋쩍음에 나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예상했던 시간에 왔소. 처음 느꼈소?”
“정확히는 24일 전에 느꼈소. 어떡하든 충돌하는 진기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소.”
“호오, 정말 놀랍소. 겨우 세 바퀴를 돈 시점에서.”
풍검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서둘러 온 것은 아니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소. 그 고통은 참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헛참. 인내심이 참으로 대단하오.”
“처음에는 진기가 충돌하는 걸 다스릴 수 있었는데, 갈수록 두 진기의 양의 늘어나면서 이제는 통제하기 힘들어졌소.”
“대단하오. 진심이오.”
“그럼 이제 어떡하면 좋겠소.”
“천산과 고비사막의 수련기간을 동일하게 맞춰서 수련하시오.”
“하나만 묻겠소.”
“말씀하시오.”
“뜨거운 고비사막에서 극음신공을 연마하는 이유를 알려주시겠소?”
“간단하오. 극양진기가 미쳐 날뛰는 걸 막으려고 그런 것이오. 이틀 동안 고비사막에서 극음진기를 수련했을 때, 오히려 극음진기가 모이지 않고 흐트러지는 걸 느꼈을 것이오. 그건 외부의 요건도 문제지만, 극양진기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오. 내 말 이해하시겠소?”
그의 말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쥐를 몰 때 도망칠 구멍을 주고 몰라는 말과 같소?”
“비슷하오. 계속 차가운 곳에서 극음진기를 수련하여 단전에 쌓는다면 겉으로는 극음진기가 크게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억눌린 극양진기는 폭발직전까지 몰릴 것이오. 고비사막에서 극음진기를 수련하는 건 폭발직전의 극양진기를 달래는 것이오.”
“알 듯 모를 듯하군요.”
“평생을 극양진기를 수련하셨던 목 공께서 이런 원리를 단번에 깨우친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 내 말대로 하시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또 오시오.”
“고맙소.”
난 그에게 정중히 포권하여 감사를 표하고는 물러났다.
잠시 후.
울리우수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풍검을 찾았다.
“어르신. 울리우수입니다.”
“들어오게.”
풍검이 허락하자, 울리우수는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앉게.”
“예. 어르신.”
울리우수는 풍검의 앞에 앉았다.
“실로 목 공이 대단해. 내 예상을 가볍게 넘어서는군.”
“날개 꺾인 용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는 게 아닙니까?”
“딱 맞네. 그가 훨훨 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네.”
“저 죄송하지만···.”
울리우수가 말을 잇지 못하자, 풍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랬다가 내가 패배하면 어쩌냐? 그리 걱정하는 것인가?”
“그, 그럴 리가요?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겠습니까?”
“아냐. 그럴 가능성이 커. 그가 잃어버린 내공을 되찾는다면 솔직히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워.”
“그럼 왜 이리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풍검이 어느 위치인지 알고 싶어서. 나 역시 그와 함께 하면서 무위를 십성까지 끌어올렸어. 이미 명리종을 꺾으면서 선조께서 묶어놓은 족쇄는 풀어졌네. 이제 남은 건 진정한 풍검의 무위야. 그래서 목 공을 돕는 것이네.”
풍검의 단호한 대답에도 울리우수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가?”
“목 공께서 우리 앞길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가 천마교로 되돌아가 우리 앞길을 막는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현재 그의 목표는 암흑사련의 몰락이야. 그가 천하를 안정시킨 후에 우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거하려고 할지도 몰라.”
“그런데 왜?”
“목 공과 천마교가 그 정도까지 성장할 동안 내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런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으니까. 누가 천하를 움켜쥐었든 간에 나를 제거하려고 할 거야. 그러니 우리가 강해지는데 집중하게.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돌아가게. 올해 안으로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야.”
“예. 어르신.”
울리우수는 즉각 복명하고 물러났다.
홀로 남은 풍검은 몸을 뉘이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시작할 때는 성공확률이 희박해 보였는데, 그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극음신공을 처음 수련하는 자가 그것도 극양진기가 들끓는 가운데 이렇게 차분하게 수련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고통에 못 이겨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구나.”
풍검은 울리우수 앞에서 대범한 모습을 보였지만, 솔직히 그의 성공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성공을 기원했다.
무림인으로서 최고를 가리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었다.
“재밌군.”
풍검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명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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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살다 살다 이런 고통은 처음이로군.”
난 몹시 지친 표정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절벽에 등을 기댔다.
처음에는 너무 차가워서 닿기만 해도 얼어 죽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집안에서 벽에 기대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 이 정도 추위는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문제는 극양진기와 극음진기의 충돌이 심해진다는 건데.”
풍검의 말대로 천산과 고비사막 수련시간을 동일하게 맞추면서 사라졌던 진기간의 충돌은 사라졌었다.
하지만 고비사막 수련시간이 늘며 극양진기가 더욱 강력해지면서 다시 충돌하기 시작했고, 그 고통은 더욱 극심해졌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목영청의 목소리에 난 얼른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내 앞에 나타났다.
“조사님. 방법을 찾았습니까?”
“쉽지 않구나. 극음진기가 강해질수록 극양진기가 강해지는 꼴이라니. 나도 이런 괴사는 처음이다. 지옥혈도가 모든 걸 망쳐놓았어.”
목영청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난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적어도 이런 싱거운 말을 꺼내려고 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까지 극음진기를 키우고 극양진기는 억누르려고 했었는데, 극양진기를 그대로 놓아두면 어떻겠느냐?”
“그럼 계속 충돌할 텐데요.”
“충돌한 후를 생각해 봤느냐?”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이제까지 어떡하든 극음진기를 키우고 두 진기가 충돌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수련에 임했었다.
하지만 충돌한 두 진기가 어찌 되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단전의 밑바닥에 새로운 진기가 쌓이고 있다. 양이 많지 않아 네가 느끼지 못하지만, 분명 순수하고 강력한 진기다. 아마 풍검이 원한 건 이게 아닐까?”
“휴우, 갈 길이 멀군요.”
목영청의 말을 듣고 차분하게 단전을 살펴보니 미량의 이질적인 진기가 발견되었다.
결국은 진기를 계속 충돌시켜 새로운 진기를 만들라는 말인데, 진기충돌로 인한 고통을 생각하니 하늘이 노래졌다.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만큼 진기가 충돌하는 고통은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건 어떤 진기일까요?”
“글쎄. 나도 처음이라 대답해줄 말이 없구나.”
목영청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궁금하면 풍검을 찾아가서 물어봐.”
“일단 조사님의 말씀대로 시도해본 다음에 풍검을 만나겠습니다.”
“고집은.”
“자존심입니다. 한때 천하제일인이었던 접니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 내공을 되찾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쪼르르 달려가 묻기엔···휴우. 아무튼 해보겠습니다.”
“그래. 끈기와 집념. 넌 반드시 성공할 거다.”
목영청은 내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사라졌다.
눈을 뜬 나는 장탄식을 쏟아냈다.
끈기와 집념.
말은 쉽다.
저걸 실천하는 순간 정말 지옥 같은 나날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운기조식을 강하게 이어가자 두 진기는 서서히 충돌하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과는 다르게 두 진기의 충돌을 막으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
그러자 진기는 더욱 강하게 충돌했고,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보다 더 강한 고통이 밀려왔다.
“젠장할.”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강하게 충돌할수록 이질적인 진기가 단전에 쌓이는 게 느껴졌다.
제대로 충돌하게 놓아두니 쌓이는 양도 그전보다 훨씬 많았다.
콰쾅.
두 진기가 백회혈까지 올라가서 충돌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