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95화
95화. 풍검의 진심.
난주현.
펑.
“으윽.”
찰극은 가슴을 부여잡고 주르륵 밀려났다.
“저놈을 잡아라!”
탑성의 외침에 천마교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만. 자중하시게.”
찰극은 급히 탑성을 제지하고는 눈앞의 장년인을 바라보았다.
무공을 익힌 흔적이 보이지 않는 그였기에 당혹감이 밀려왔다.
특히 일장을 맞았을 때는 최소한 중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급히 진기를 운용해 살펴보니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저 자가 자네를 죽이려고 했는데.”
“아닐세. 그게 아니야. 모두 물러나.”
“찰극.”
“그리고 우리 모두가 덤벼들어도 이길 수 없어.”
찰극은 손짓을 하여 급히 천마교인을 물렸다.
탑성은 찰극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경고를 무시하진 못했다.
소란을 들은 오로, 목제 등이 몰려왔다.
백여 명에 이르는 천마교인에게 둘러싸였지만, 장년인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천마를 만나고 싶다.”
“누구시오?”
찰극이 대표로 정중하게 묻자, 장년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풍검일세.”
“풍검?”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풍검에 대해 알려고 했지만, 결국 알 수 없었기에 당혹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그때 명리종이 공중에서 내려섰다.
‘이 자는 전 천마나 암흑사련주 못지않은 무위를 지녔구나.’
명리종은 단숨에 풍검이 구양천이나 척무진에 비견되는 무위를 지녔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천마요.”
“약하군.”
“시비를 걸려고 오셨소?”
“시비라니? 네놈들 때문에 천년 동안 고생을 했는데, 부활한 수준이 겨우 이 모양이란 말이냐?”
불같이 화를 내는 풍검을 바라보다가 명리종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천마교의 비사가 떠올랐다.
“서, 설마. 목의천 조사님과 무승부를 펼쳤던 그 풍검의 후예이시오?”
풍검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몰라 뵈었소.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천마 명리종이외다.”
“풍검이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명리종의 언행이 정중하자, 풍검도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말투를 부드럽게 바꿨다.
이런 상황을 감지한 명리종은 정중하게 풍검을 교주전으로 안내했다.
풍검은 그런 명리종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순순히 그를 따라 교주전으로 향했다.
명리종은 다른 무인들을 물리고는 풍검과 교주전에서 독대를 했다.
“부하들과 연합해서 나를 공격하지 않은 건 옳은 선택이었소.”
풍검은 오만하게 말하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말을 이어갔다.
“정말 그대가 천마 명리종이 맞소? 내가 알기로 천마는 목씨 성으로 알고 있는데.”
“맞소이다. 하지만 교주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이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오.”
“그럼 임시로 대행하고 있다 그 말이오?”
“그렇소.”
“헛참. 금시초문이로군. 목 공에게서 그런 말을 듣지 못했는데.”
풍검은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명리종이 급히 질문했다.
“목진석 교주님을 만나셨소이까?”
“그는 교주직을 내려놓았고, 천마교를 떠났다고 했소.”
“분명 제게도 그리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제가 교주를 맡을 재목은 아니고, 오직 그분만이 교주직을 수행할 자격이 있소이다. 지금도 그분께서 돌아오신다면 교주직을 돌려드릴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호오. 목 공께서 사람을 제대로 다룰 줄 아시는군요.”
풍검은 감탄을 쏟아냈다.
솔직히 내공을 대부분 상실했고 되찾을 가능성이 적은 목진석이었기에 명리종이 이런 반응을 드러내리라곤 예상치 못했었다.
동시에 천마교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호감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소?”
명리종은 풍검이 악감정을 갖고 천마교를 찾지 않았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사람일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천마와 비무하려고 왔소.”
오랫동안 고립을 자초하며 지냈던 풍검은 확실히 거리낌이 없었다.
이미 찰극과의 대결을 통해 천마교인의 무위를 파악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몰랐다.
반면 명리종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간신히 부활한 천마교였기에 풍검에 의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또한 종적을 감춘 전 교주 구양천이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이런 상태라면 굳이 비무할 필요는 없겠소.”
실로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명리종은 발작하지 않았다.
“인내심이 대단하구려.”
“나 명리종 개인을 모욕한다면 참겠소. 하지만 천마교를 무시한다면 절대 참지 않겠소. 이는 밖에 대기하고 있는 모든 천마교인의 생각이오.”
“이보시오. 명 교주.”
“말씀하시오.”
“나와 비무를 하시겠소? 물로 싸우지 않고 패배를 인정해도 괜찮소. 패배를 인정한다면 난 이곳을 바로 떠날 생각이오.”
“이곳에는 우리밖에 없소. 여기서 내가 패배를 인정한다손치더라도 나중에 아니라고 부정하면 어쩌시려고요?”
“상관없소.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어서 결정하시오.”
풍검은 반드시 승패를 가려야만 물러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명리종은 이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곤혹스러워졌다.
“비무를 하되 천마교인을 해치지 마시오.”
“그들이 내게 덤벼들지 않는다면.”
“그럼 교주전에서 단 둘이 비무를 하면 어떻소?”
풍검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명리종은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으로서는 풍검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일 생각이었다.
명리종이 필살의 무공인 암연혈뢰장 기수식을 펼쳤지만, 풍검은 얇은 검을 꺼내 내렸을 뿐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암연혈뢰장이로군.”
풍검의 입술이 비틀어지며 말이 쏟아져 나왔다.
쿠아아아앙.
명리종의 장심에서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적색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풍검은 그제야 검을 들어 적색강기를 갈라냈다.
반으로 쪼개졌던 적색강기는 그대로 풍검을 지나쳤다.
“헉.”
풍검의 입에서 놀람이 터졌다.
갈라졌던 적색강기가 다시 합쳐져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평온했던 풍검의 눈빛이 매서워졌고, 그의 검은 청색강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자의 무위는 실로 놀랍구나. 뜻이 이르면 진기가 흐르는 경지라니. 이 정도면 전 교주가 내공을 되찾더라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콰콰콰콰쾅.
“커헉.”
적색강기와 청색강기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엄청난 폭발음이 발생했고, 청색강기를 당해내지 못한 적색강기는 사방으로 흩어져 교주전을 뒤흔들어 놓았다.
“교주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찰극을 비롯한 이들이 급히 들어왔다.
“물러가! 어서!”
명리종은 단호하게 명령하여 그들을 내쫓았다.
그는 직접 문을 닫은 후,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고는 풍검에게 포권했다.
“졌소.”
“아직 싸울 힘이 남은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한번 겨룸이면 족하오. 더 미련을 갖고 싸우는 건 무의미하오. 이제 약속을 지켜주시오.”
“허무하군.”
풍검은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지만, 짙은 허무감이 밀려오자 곤혹스러웠다.
‘겨우 이딴 결과를 얻으려고 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겨우 이딴 결과를 얻으려고?’
갑자기 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생각 같아서는 눈앞의 명리종을 죽이고 천마교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당연히 약속을 지키겠소. 다시 묻겠소. 패배를 인정하오?”
“인정하오. 나 천마 명리종은 풍검에게 패배했소.”
풍검은 곧바로 돌아섰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명리종이 입을 열었다.
“진정한 천마는 전 교주님이시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분이 무위를 되찾았을 때 비무를 하시오.”
“고맙소.”
풍검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문을 열고는 몸을 공중으로 날려 천마교를 떠났다.
“교주님.”
찰극은 탑성, 오로, 목제, 극립과 함께 급히 교주전으로 뛰어 들어왔다.
“성급하구나. 교인들은?”
“그들은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풍검과의 비무에서 패배했을 뿐이다. 그게 전부니 소란 떨지 말거라.”
“소란 떨지 말라뇨? 이게 조용히 넘어갈 사안입니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쫓아가서···.”
“못난 놈. 천년을 기다려 부활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무너지잔 말이냐?”
명리종의 엄정한 추궁에 거칠게 말을 쏟아냈던 탑성이 입을 다물었다.
“더는 말을 하지 마라. 만약 풍검이 악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천마교는 회복하기 어려운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그의 무위는 절대 전 교주의 아래가 아니었다. 돌아가. 어서.”
명리종은 엄하게 그들을 단속한 후 물렸다.
**
바람의 마을.
풍검은 불과 삼일 만에 난주현을 다녀왔는데, 호흡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내 불안한 얼굴을 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살생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명 교주와 비무를 통해 우위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소.”
“고맙소.”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자, 풍검은 싱긋 웃더니 평상에 털썩 앉으며 내게 앉으라고 권했다.
내가 따라서 앉자, 그는 천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공을 되찾고 싶소?”
“그렇소.”
“석탈수와 대화를 나눈 후 무얼 느꼈소?”
“의심하지 말아라. 중간에 포기하면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하다.”
“하하하.”
풍검은 유쾌하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목 공.”
“말씀하시오.”
“솔직히 그대가 두렵소. 척무진을 죽일 만큼 뛰어난 천마의 무공을 익혔는데, 지금 그걸 과감히 포기하고 풍검을 배우려고 하지 않소?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본 건 아지만, 그대 같은 무인은 정말 흔치 않을 것이오. 안 그렇소?”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소.”
“내가 풍검의 무학을 가르쳐주지 않겠다면?”
풍검의 도발적인 발언에 내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이 자가 지금까지 나를 가지고 놀았단 말인가? 이럴 거면 뭐 하러 지금까지 이곳에 붙잡아두었단 말인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풍검의 무학을 전수하지 않겠소.”
단호한 풍검의 표정을 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달려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 풍검의 무학은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학인데, 이리 쉽게 내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간절하오?”
“그렇소.”
“왜?”
“암흑사련을 해체하지 않으면 무림은 앞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오. 척무진의 손자인 척휘명이 지옥혈도를 익힐 텐데, 지옥혈도수련은 반드시 많은 수의 동남동녀의 희생을 요구하오. 또 그들이 복수를 내건다면 무림은 대혼란에 빠져들 것이오. 난 그걸 막고 싶소.”
“편히 쉬면 될 일이잖소. 굳이 힘들게 일한다고 세상 사람이 목 공의 뜻을 알아주겠소?”
“알아주길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오.”
“정말 못 말리겠군. 이해하기도 어렵고.”
풍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역시 풍검을 전수하긴 어렵겠소. 대신.”
“대신?”
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내공을 되찾도록 도와주겠소.”
“그게 가능하오?”
“확률은 오할이오. 도전해보겠소?”
“당연히.”
“그럼 약속해주시오. 내공을 되찾으면 나와 비무해주겠다고.”
그제야 왜 풍검이 이런 행동을 취하는지 이해되었다.
그는 진심으로 풍검의 무학이 천마교의 무학보다 위에 있음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목 공을 이겨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을 거 같소. 명 교주는 너무 실망스러웠소. 겨우 이런 상황을 위해 천년을 참고 버틴 거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소?”
“내공을 회복하면 최선을 다해 상대해드리리다.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도록.”
“암, 그래야지. 그 정도 독기도 없이 어찌 내공을 회복한단 말이오?”
풍검은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 후 몸을 돌렸다.
“오늘은 푹 쉬시오. 내일부터는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할 테니까. 아주 힘들 테니 각오를 단단히 하시오.”
그는 말을 마치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자리에 남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드시 내공을 회복한다. 반드시.’
난 주먹을 꽉 말아 쥐며 속으로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