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90화
90화. 요동치는 무림-3.
연공실로 들어간 나는 문을 잠그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오랜만에 듣는 목영청의 목소리였기에 반가움이 일었다.
“예. 조사님.”
혹시 그가 좋은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그의 말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목영청은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척전숭은 실로 지독한 놈이다. 이런 악랄한 방법을 동원하다니.”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난 대답하지 않고 그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얼마나 악랄한지는 직접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었다.
“척전숭이 지옥혈도를 만들 때 한이 서려있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하지만 내가 놓친 게 있었어. 난 그가 천마교를 무너뜨리겠다는 깊은 한으로 천마교를 능가하는 무공을 만들 것으로 생각했었다. 휴우.”
목영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실책이었어. 그 역시 천마교의 무인이니 강함을 추구할 테고, 더 강함으로 천마교를 억누를 줄 알았다.”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군요.”
“그래. 그는 요사한 방법으로 지옥혈도를 왜곡시켰어. 당시 천마교에서는 마(魔), 패(覇)가 주류였고, 사(邪), 요(妖)는 천대를 받으며 뒤로 밀렸지. 지옥혈도는 철저히 사(邪)의 무학이며, 더 자세히 말하면 혈(血)의 무학이다.”
“그럼 혈천교?”
“아마도 그렇겠지. 혈(血)은 술법적인 측면이 강해서 가장 천대를 받았어. 하지만 그게 지금에 와서 천마교의 발목을 잡을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다 지나간 일입니다. 이걸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요? 혹 영약이 통할까요?”
“영약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최선의 방법은 처음부터 다져나가는 것이다.”
“영약을 쓰지 않고요?”
기가 막혔다.
영약 없이 내공을 늘린다면···.
생각만 해도 깝깝했다.
평범한 무인이 1년 고행하여 1년의 내공을 쌓는다면, 나는 건곤여의신공을 대성했었었기에 그보다 훨씬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1년 고행하면 3년의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굉장한 건 분명했지만, 육십년을 고행해도 삼갑자였다.
“죽으란 말과 똑같군요.”
내공을 쌓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꼭 그건 아니다.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게 뭡니까?”
급히 되물었지만, 목영청은 연달아 한숨을 내쉴 뿐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음을 짐작한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대답이 나오길 기다렸다.
목영청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책했다.
여러 번 안색이 바뀌더니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사실 처음부터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젠장할.
알고 있으면 알려줄 것이지.
속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내색하진 못했다.
목영청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그 해결책을 듣지 못한다면 나만 손해니까.
“경청하겠습니다.”
“네가 이제까지 배운 모든 무공을 포기해야 한다. 천마교의 무공까지 포기해야 하니 더는 천마교의 교주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 고생을 해서 천마교주가 되었는데 그걸 포기하란 말인가?
더군다나 기존의 모든 무공을 포기한다면 무림맹의 척사검대주란 직위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무림맹주까지 오르려고 했었기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 당혹감을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녀석. 많이 성장했구나.”
“사실 속이 탑니다.”
“속이 타겠지. 사람인데.”
목영청은 애틋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지옥혈도는 철저하게 천마교의 무공을 파훼할 목적으로 탄생한 무공이다. 그러니 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위를 끌어올린다손 치더라도 결국에는 지옥혈도에 잡아먹힐 것이다. 지난번에 척무진이 갈등하지 않았다면 위험했다.”
“인정합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겠더군요.”
“네 무공은 직간접적으로 천마교의 무공과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에는 옛 무위를 되찾더라도 지옥혈도에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모두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럼 소림사나 무당의 무학이라도 익히라는 건가요?”
“그들이 진산절예를 내주겠는냐?”
“그럴 린 없겠지요.”
난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포기할 생각이 있느냐? 그럼 방법을 알려주마. 그것부터 결정해라.”
“포기하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어차피 방법이 없잖습니까? 평생 지옥혈도를 피해 숨어살 수도 없고요.”
“허허, 그놈 참. 성격이 불같구나.”
목영청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껄껄 웃었다.
“무림역사상 최강의 무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3대 천마 목의천조사님인가요?”
“틀린 말은 아니다. 천재중의 천재라는 척전숭을 꺾었고, 그 당시 그분과 대적하여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구나.”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전설속의 달마조사나 장삼봉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목영청이 천 년 전에 죽었으니, 천 년 전의 인물 중에서 찾아야 한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그럴 거야.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그다지 유명한 무인이 아니었으니, 내가 질문한 거 자체가 잘못이었다. 혹시 풍검(風劍)이라고 들어봤느냐?”
난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풍검은 이름 그대로 바람의 검이지. 3대 천마와 한 시대를 누볐던 무인이다. 3대 천마께서 중원에 진출했을 때, 수많은 정파무인들이 도전장을 냈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만큼 그분의 무위는 독보적이었지.”
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풍검은 그분과 싸워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무인이다. 그는 명문정파의 무인이 아니었다. 그저 풍검이라 불렸을 뿐,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다.”
“그런 무인이 있었군요. 역시 3대 천마께서는 대단합니다.”
“대단하지. 당시 그분은 천마교의 무공을 대성한 상태였으니 적수가 없는 건 당연했어. 그런데 풍검이 대등하게 싸웠으니 그 역시 최강의 무인이라 평할만 하다. 그의 무공을 익혀야 한다.”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신장의 고비사막 어딘가에 그의 후예가 살 것이다.”
“설마 그게 다는 아니죠?”
“이게 다다. 스스로 찾아봐. 그의 후예가 풍검의 무학을 익혔다면 내가 알 수 있다.”
고비사막을 뒤지라는 말에 하늘이 노래졌다.
끝도 없이 넓은 고비사막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지옥 같은 곳이었다.
천산산맥에서 만년빙설이 녹은 물이 내려와 고비사막에 수많은 마을을 만들었다.
그 마을을 모조리 뒤져야 할 것이다.
“휴우, 정말 지독하군요.”
“어쩔 수 있겠느냐? 지옥혈도를 외면할 거라면 몰라도 그걸 꺾으려면 천마교의 무공은 버려야 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풍검이 최상의 선택이야. 네가 비록 내공을 잃었지만, 웬만한 무인을 꺾을 수 있지 않느냐?”
“그렇죠. 없어도 가능한데, 내공이 십년은 있으니까요. 독하게 마음먹으면 명리종도 이길 수 있습니다. 대신 저도 죽겠죠.”
“그럼 시작해라. 지루하고 긴 고행의 시간이 될 것이다.”
목영청이 사라졌다.
지루하고 긴 고행의 시간이라니?
말만 들어도 아득했다.
‘천마교와 무림맹의 지위는 포기해야겠군. 그건 그렇고 이제까지 익힌 무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풍검의 후예를 찾아 그의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난 고개를 흔들며 일어섰다.
숨어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무위를 되찾아서 지옥혈도를 꺾으리라 다짐했다.
목표가 확고하게 설정되자, 천마교와 무림맹의 지위를 포기하고 이제까지 익힌 무공을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르르륵.
연공실을 나온 나는 곧장 명리종과 다섯의 무인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교주님.”
명리종이 대표로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오늘부로 교주직을 포기하겠소.”
“교, 교주님. 대리를 내세우고···.”
명리종이 다급히 말렸지만, 내 의지는 확고했다.
“난 천마교를 떠날 생각이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오. 아니 돌아올지 그렇지 않을지도 장담할 수 없소. 그런 상태에서 대리를 내세운다는 건 참으로 무모한 일이오. 총관.”
“예.”
“내가 떠나면 최대한 교세를 키우되 암흑사련과 대결은 자중하시오. 만약 척무진의 후예가 지옥혈도를 수련하여 나온다면 특히 조심하시오. 지옥혈도는 천마교의 무공만을 전문적으로 와해시키는 묘용을 갖고 있소. 내가 그 증거요.”
“그럼 어찌 합니까?”
“나도 방법을 찾기 위해 천마교를 떠나는 것이오. 정파의 무공을 익히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 그간 정파나 중도무학비급을 모아두었을 것이오. 그게 약탈이든 뭐든 말이오.”
내 말을 들은 명리종과 다섯 무인의 표정은 참담함으로 일그러졌다.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운을 빌겠소.”
“교, 교주님.”
“난 더 이상 교주가 아니오. 천마교의 무공을 상실했고, 남아 있는 무공도 모조리 머릿속에서 지울 생각이니까. 다음에 인연이 되면 봅시다.”
난 명리종과 다섯 무인과 일일이 눈을 마주쳐 인사하고는 교주전을 나섰다.
내가 떠난 교주전은 정적이 감돌았다.
“저, 총관님. 교주직은 한시라도 비워둬서는 안됩니다.”
“휴우. 이걸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찰극의 권유에도 명리종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전 교주님께서 다 내려놓고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천마교를 부활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제쳐두고 이제부터는 강력한 천마교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탑성이 진언을 올리자, 다른 이들도 일제히 명리종에게 교주에 오를 것을 주장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천 년 만에 간신히 부활한 천마교가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만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명리종을 압박하는 것이다.
명리종 또한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종당에는 그걸 받아들여 교주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
신장 온숙현.
“휴우, 경공술을 펼쳐 이틀이면 올 거리를 무려 보름 만에 도착했군.”
이제는 내공을 아껴 써야 했기에 그전처럼 무리하게 내공을 사용하여 경공술을 펼칠 순 없었다.
온숙현에 들어선 나는 안가 근처의 작은 객잔에 들어섰다.
손님이 적어서인가 비교적 조용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면을 시켜 먹고 있을 때, 청이 급히 들어왔다.
난 가볍게 왼손을 들었다.
그녀는 빠르게 달려와 내 앞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되신 거예요?”
걱정이 되었는지 그녀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미안. 보다시피 이렇게 멀쩡해.”
“뭐가 잘못되었나요?”
역시 청이었다.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그녀였기에 지금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듯했다.
“예전의 내가 아니야. 내공도 십년으로 줄었고.”
“영약을 복용하면···.”
“불가능해.”
내가 고개를 젓자, 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눈물을 한 방울 떨궜다.
“어떡해요? 그럼 무림맹에서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텐데요. 저, 잘 말씀드리면 고문이나 원로로 추대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아냐. 깨끗이 포기하려고. 이제 여행을 떠날 생각이야.”
“여행요?”
“응.”
“돌아오실 거죠?”
“글쎄. 그럴 생각인데, 언제 돌아온다고 장담할 수 없어. 얼마나 걸릴지 나도 모르니까. 그리고 무림맹에 전해. 지옥혈도는 천마교에 특화된 무공이라고. 그러니 정파의 무공을 대성한다면 지옥혈도를 상대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혹시 척무진을 죽이셨나요?”
난 대답하지 않고 소면을 먹고는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비밀로 해줘.”
“세상에.”
“소면 괜찮은데. 먹을래?”
“네. 술도 한잔 하실래요?”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속에서 여러 개의 서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건네줘.”
“네. 맡겨주세요. 황보소저는 직접 만나시지 않고요?”
“난 참 이기적이야.”
이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울한 표정을 본 청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로했다.
“오늘은 진탕 마시고 속에 쌓인 걸 풀어내요.”
“그래.”
나 역시 애써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