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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89화 (89/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89화

89화. 요동치는 무림-2.

무림맹 정보루.

척무진이 죽으면서 가장 바빠진 곳은 다름 아닌 정보루였다.

제갈문현은 세작을 색출해 체포하고, 중원의 암흑사련 잔당을 격멸하고 추방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암흑사련은 척무진의 죽음이후, 급속도로 위축되며 무림맹과의 전면전을 자제하고 북쪽으로 후퇴했기에 무림맹은 수월하게 중원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중원에는 아직도 많은 사파무인이 남아 있었는데, 이들을 안정적으로 포용하는 건 무림맹의 숙제였다.

뇌옥.

정보루 지하에는 거대한 감옥이 존재했는데, 견고하게 지어졌고 출구마다 강철문을 설치한 후 보초를 세웠기에 이곳을 탈출한 무인은 수백 년의 무림맹 역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최근 오십 년 간은 누구도 이곳을 탈출하지 못했다.

제갈문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는 뇌옥 특유의 음산한 냄새가 싫었는지 가끔씩 왼손으로 코를 쥐곤 했다.

천천히 걷던 그는 독방 앞에 멈춰 섰다.

허연 머리를 늘어뜨리고 얼굴은 주름으로 뒤덮여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직도 희망을 품고 계시오?”

제갈문현이 툭 내뱉은 말에 죽은 듯 앉아 있던 노인이 눈을 뜨고 힘없이 말했다.

“천벌을 받을 것이다.”

“천벌이라···그건 암흑사련의 세작으로 살아온 상관현 당신이 받아야지. 안 그렇소?”

놀랍게도 이 볼품없는 늙은이는 전 맹주이자, 원로원주였던 상관현이었다.

제갈문현의 반문에 상관현은 몸을 부르르 떨며 반박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한때 맹주였던 내가 뭐가 아쉬워 세작질을 한단 말이냐?”

“나도 그게 궁금하오. 왜 그랬소?”

“몇 번을 말해야 알겠느냐? 난 한 번도 세작질을 한 적이 없다고.”

“원로원의 원로가 세작질을 했소. 그런데 원주께서 몰랐다는 게 말이 되오? 더군다나 그는 당신이 세작이라고 증언했소.”

“그렇게 따지면 세작이란 누명에서 벗어날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맹주를 만나게 해주게. 이는 모함이야.”

“맹주의 허락이 있었소.”

“양천린이 허락했다고? 나를 잡아들이는 걸?”

상관현은 힘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그러니 어서 모든 걸 실토하시오. 그렇게 버텨봐야 방법이 없소.”

“난 세작이 아니다.”

끝까지 부인하는 상관현을 바라보던 제갈문현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까지 심문을 이어나갔지만, 상관현은 세작이 아니라는 지금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다른 세작들은 엄정한 심문에 하나둘씩 자백한데 반해 상관현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제갈문현이 고개를 흔들고는 몸을 돌렸을 때, 상관현이 소릴 질렀다.

“내가 이곳을 나가면 제갈문현 네놈의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한이 어린 상관현의 저주에 제갈문현은 멈칫했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뇌옥을 나왔다.

밖으로 나와 따사로운 햇빛을 접한 제갈문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다녀오셨습니까?”

부정보루주 육영서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별일 없지?”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요즘만 같다면 살만합니다.”

육영서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평화는 우리 힘으로 얻은 게 아니야.”

“무림맹 타격대와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비롯한 정파무림의 힘으로 암흑사련을 비롯한 사파무리를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천마교주가 암흑사련주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리 쉽지 않았을 것이야.”

“그렇더라도 정파무림인의 노력을 폄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지.”

제갈문현은 입을 다물고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육영서는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

집무실로 들어온 제갈문현은 육영서를 자리에 앉혔다.

“상관현을 만나고 왔네.”

“아직도 그대로입니까?”

“그래.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상관현은 본시 오만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당했지. 그건 맹주에서 물러나 원로원주가 된 이후로도 변함이 없었고. 그런 자가 왜 세작질을 했을까?”

“이미 세작들이 상관현이 세작이라고 토설했습니다.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제갈문현은 찜찜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상관현의 변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참, 붕정(崩正)은?”

“아직 못 잡았습니다. 상관현이 아닐까요?”

육영서는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정보루는 세작들을 심문하여 무림맹에 퍼져 있던 세작들을 잡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수장으로 의심되는 붕정을 비롯한 상층부에 심어진 세작은 오리무중이었다.

점조직으로 운영되었기에 세작들을 심문해도 소용없었다.

그저 붕정이라는 이름만 알아냈을 뿐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제갈문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관현은 붕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작이라는 확고부동한 증인이 있었기에 잡아들였지만, 직설적이고 오만한 상관현은 세작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붕정은 제 손으로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쉽지 않을 거야.”

“그렇겠죠. 세작들을 총 관리하는 놈이었는데요. 상관현이 아니라면 정말 의외의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외부적인 일은 잘 풀리는데, 내부적인 일이 문제로군. 붕정이라. 붕정.”

제갈문현은 붕정을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밀려왔다.

무림맹을 비롯한 오대세가, 구파일방에서만 백 명이 넘는 세작들이 추포되었다.

강도 높은 심문 끝에 나온 대표적인 인물이 상관현이었고 붕정이 나왔지만, 누구도 붕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누군지, 언제 들어왔는지 모든 게 장막에 가려져 있었다.

“나가보게. 좀 쉬고 싶군.”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잘 될 겁니다.”

“그래야지.”

제갈문현은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육영서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며칠 후.

제갈문현은 맹주 양천린을 찾았다.

“상관현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태도만 보면 아무런 죄가 없어 보일 정도로 당당합니다. 다만 그를 세작이라고 지목하는 확실한 증인이 있습니다.”

“휴우, 피곤하신 분이야.”

양천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상관현은 그에게 골칫거리였다.

죄를 인정한다면 빨리 처리해버렸으면 좋겠는데, 저리 완고하게 나오니 답답했다.

“곧 토설하겠지요.”

“그 이야긴 그만하세. 참, 구양 대주는?”

“아직도 천산에 있습니다.”

“허어, 벌써 그곳으로 출발한 지 세 달이 지났어. 한 번은 무림맹에 들러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양천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래도 열흘에 한 번은 소식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금 모든 정파무림인이 하나가 되어 암흑사련의 주구들을 몰아내고 있네. 그런 상황에서 어찌 구양 대주는 그리 한가하단 말인가? 더군다나 만년화리의 내단까지 복용해놓고.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잠시 그걸 멈추고 돌아와야지. 암흑사련을 중원에서 완전히 몰아낸 후에 다시 천산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던가?”

제갈문현이 입을 다물자, 양천린이 명령을 내렸다.

“무림맹에 들르라고 하게. 이건 맹주의 명령이야. 정 바쁘다면 잠시 들렀다가 다시 천산으로 돌아가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제갈문현은 양천린의 지시에 복명했다.

그 역시 구양천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청을 통해 전해지는 구양천의 소식은 너무나도 간결해서 그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암흑사련의 주구들은 섬서, 산서로 대부분 도주했다고?”

“예. 하지만 그들을 따르던 사파무리들은 대부분 남았습니다. 그들은 예전부터 지역에 자생하던 무리들입니다.”

“그자들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조치해놓게.”

“예. 알겠습니다.”

“구양 대주에게 어서 연락을 넣게.”

“알겠습니다.”

제갈문현은 짧게 복명하고는 맹주전을 물러났다.

**

난주현 천마교.

천마교 본단은 건축중이었기에, 암흑사련 난주지부가 천마교의 본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교주전.

명리종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난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내가 내공을 잃으면서 명리종은 언행을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외인 것은 그가 나를 교주에서 쫓아낼 생각을 조금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총관.”

“예.”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해주시겠소?”

“뭐든 하명하십시오.”

“내가 듣기로 천마교는 강자지존의 논리가 있다고 들었소. 맞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논리에 비춰보았을 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맞소?”

내 질문에 명리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척무진과의 싸움이후 내공을 잃었을 당시는 어떡하든 내공을 되찾으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 시도가 모조리 실패했고,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강자지존.

비단 천마교뿐만아니라 모든 무림조직에서 통용되는 단어였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교주자리에 앉아 있는 게 옳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명리종에게 교주자리를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성인군자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괜히 뒤통수 맞고 저들에게 끌려 내려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지금 명리종이 나를 쫓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공을 상실한 나는 명리종은 물론이고 오로, 탑성 등도 상대할 수 없었다.

“왜 대답을 하지 못하시오?”

“교주님.”

“말씀하시오.”

“척무진을 죽여 천마교를 부활시킨 교주님의 공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교주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초원에서 양을 치면서 살았겠지요.”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좀 달라졌지요.”

명리종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을 듣고 내가 우려했던 일이 천마교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총관. 우리 솔직히 말해봅시다.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죄송합니다.”

명리종은 대답대신 고개를 떨궜다.

그 뜻이 뭔지 짐작이 되었기에 난 입을 다물고 그를 지켜보았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명리종이 입을 열었다.

“옛 무위를 되찾으실 때까지 연공에 전념하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제가 대리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그러면 더는 잡음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명리종은 매우 조심스럽게 대답했고, 그 말에서 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떡하든 내가 교주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면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울 생각이었다.

“차라리 총관께서 교주가 되는 게 어떻소?”

“소인은 그 정도 그릇이 아닙니다. 또 교주님께서 천마교를 부활시켰는데 그걸 잊으면 안 되지요. 저라면 끝까지 교주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교주님 말씀대로 강자지존이란 교리가 있으니, 대리를 세우고 연공에 전념하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이를 대리로 세우셔도 됩니다. 전 교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조만간 결정하리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소인을 용서하십시오.”

명리종은 결국 눈물을 한 방울 떨궜다.

“괜찮소. 강자지존은 무림인의 자연스러운 생리. 나 또한 그걸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소. 혼자 있고 싶소.”

“그럼 편히 쉬십시오.”

명리종이 물러나자, 난 눈을 질끈 감았다.

무엇을 위해 이리 힘들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무림맹주에 오를 때, 상관현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자지존에 논리에 밀려 결국 상관현은 내게 맹주직을 넘겨주고 원로원주가 되었다.

내가 그 논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건 내가 고집을 부린다고 해결할 수 없는 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러날 때가 되었군. 차라리 잘 되었어. 어디 한적한 곳에 처박혀 내공을 되찾을 생각이나 해야지. 그래도 총관이 나를 생각해주니 고맙군.”

세상사의 모든 시름을 잊고, 내공을 회복하는데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역경이 닥쳤지만, 집요한 노력으로 끝내 길을 찾았던 나였다.

이번에도 반드시 그 길을 찾으리라 확신했다.

“절대 지지 않는다. 절대로!”

난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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