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87화
87화. 용호상박(龍虎相搏)-2.
키요우우우우.
지옥혈도는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한 도에서 흘러나온 옅은 홍색기운이 척무진을 감싸자, 척무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눈빛이 섬뜩하게 변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눈빛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척무진과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나이가 많은 척무진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젊은이의 목소리였다.
“천마교주.”
“희한한 놈이로구나. 젊은데 젊지가 않아. 네놈의 몸 안에 도대체 몇 놈이 사는 것이냐? 크크크크.”
“당신이야말로 늙었는데 늙지 않았구려.”
“내가 세상에 나왔으니 네놈은 오늘 죽는다. 특히 천마교의 종자라면 누구도 예외 없다.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 다음에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주마.”
고오오오오오.
척무진은 기운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고, 주변의 작은 돌과 나뭇가지가 솟구쳐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런 척무진을 바라보며 난 선공을 자제했다.
한번 기습적으로 붙어봤을 때의 척무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고, 그런 그가 어떤 무공을 펼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알지 못하는데 무모하게 공격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오늘 싸움은 시시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 하나는 여기서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면 최소 중상을 입어야 싸움이 끝나리라 생각했다.
그게 내 마음을 격동시키고 있었다.
“말이 길다. 덤벼라.”
내가 일갈했지만, 척무진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가 어떤 사공을 펼치려고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공을 끌어올려 공격에 대비했다.
-묘하구나. 지금의 상황만 본다면 척무진은 지옥혈도에 잡아먹혔어. 아니 지금은 거기에 저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호재인지 악재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구나.
-그럼 지금 공격할까요?
-잠시만. 저러다가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아, 제대로 싸워보고 싶었는데요.
목영청의 말을 들은 내 표정은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이 좋은 기회가 그냥 날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옥혈도가 완전히 척무진을 삼켰다면 네가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말이 잘도 나오는구나.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 싸울 뿐입니다. 구양의, 척무혁과 싸울 때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가 있었죠.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이번 싸움도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켜줄 겁니다.
-늙은 놈이 아직도 혈기가···쯧쯧.
목영청은 내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혀를 차더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난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척무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전히 몸을 떨고 있는 척무진을 보니 목영청의 말대로 척무진이 지옥혈도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았다.
‘이대로 공격하면 쉽게 끝낼 거 같은데.’
제대로 된 싸움을 할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에 절로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마음을 바꿨다.
마냥 기다리기도 힘들었고, 이대로 암흑사련을 끝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이것도 승부니까.”
쿠오오오오.
내가 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척무진보다 더욱 짙은 홍색기운이 천마검에서 발산되었다.
“가랏!”
강기에 휩싸인 천마검을 이기어검술을 이용해 날렸다.
쐐애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성이 일며 천마검은 눈 깜빡할 사이에 척무진에게 날아갔다.
천마검이 척무진의 가슴을 뚫을 찰나.
콰콰콰쾅.
엄청난 반탄강기에 천마검이 비틀거리더니 무서운 속도로 되돌아왔다.
“흐윽.”
천마검을 잡으며 나도 모르게 신음성을 터트렸는데, 그 정도로 천마검에 담긴 힘은 무지막지했다.
약간의 내상을 입었는지 뜨거운 무언가가 치고 올라왔는데 그걸 억지로 삼켰다.
“커헉.”
반면에 척무진은 이기어검술을 막아냈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는지 피를 토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그가 입은 타격이 더 큰 거 같았다.
“이것 봐라?”
난 내공을 다시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천마검을 이기어검술을 이용해 날렸다.
카카캉.
방금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척무진은 더욱 많은 피를 토해냈고 강력하게 되돌아온 천마검을 잡느라 나 역시 내상을 입었다.
희한한 싸움이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싸움이었기에 목영청의 말을 듣고 좀 더 기다릴 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가슴속 밑바닥에서 절대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다시!”
다시 내공을 끌어올려 천마검을 날렸다.
무리를 해서 내공을 끌어올리자 천마검은 지난 두 번의 공격보다 더욱 강력해진 속도로 척무진에게 날아갔다.
“커헉.”
척무진은 그걸 막아냈지만,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일장이나 뒤로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으음.”
강력하게 돌아오는 천마검을 억지로 잡느라 단전이 크게 흔들렸다.
바닥에 넘어진 척무진을 보고 바로 공격해 목을 잘라버리고 싶지만, 어쩐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세 번을 공격했는데, 그는 무방비 상태에서 모두 막아냈다.
근접전을 펼치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흐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원거리 전투를 이어갔다.
쿠오오오오오.
천마검을 들고 폭풍참륜을 일으켰다.
방금 전에 단전이 흔들린 탓인지 강기륜은 여섯 개가 아닌 다섯 개가 만들어졌다.
섬뜩한 적색기운을 뿜어내던 적색강기륜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면서 척무진을 향해 날아갔다.
척무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지옥혈도를 움직여 강기륜을 막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강기륜을 조정하는 내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이제는 물러날 수 없었다.
물러나는 쪽이 중상을 입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다.
상대를 죽이거나 내가 죽어야 하는 싸움이었다.
키요오오오오.
지옥혈도가 괴상한 소리를 다시 토해내더니 강기륜을 모조리 쳐냈다.
“커헉.”
“쿠에에엑.”
사방으로 비산하는 강기륜을 급히 회수하느라 단전이 크게 흐트러졌고, 입으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간신히 피를 닦고 흔들리는 단전을 진정시키며 척무진을 바라보니, 안쓰러울 정도였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입으로 토해낸 피는 옷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끝장을 내주마. 내가 오만했어. 지옥혈도가 척무진 네놈을 삼킨다면 세상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다.”
처음에 품었던 생각은 이제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모든 것을 동원해 척무진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내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혈맥이 찢겨나가는 고통이 수반되었다.
그때였다.
이제까지 수세적인 행동을 취하던 척무진이 처음으로 공세로 전환했다.
“죽···인다.”
캉캉캉.
지옥혈도는 정교하게 급소를 찔렀지만, 난 천마검을 이용해 완벽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무시무시한 공격이었지만,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더욱 가열차게 맞받아쳤다.
지옥혈도와 천마검이 부딪칠 때마다 단전이 크게 요동쳤고, 혈맥은 들끓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억누르고 더욱 강하게 진기를 끌어올려 척무진을 몰아붙였다.
강력한 공격을 이어가던 척무진은 힘이 빠졌는지 밀리기 시작했다.
“쿠어억.”
결국 척무진은 내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뒤로 물러났다.
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붙으며 천마검을 그의 가슴에 쑤셔 박았다.
부르르르.
척무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연민, 회한, 두려움,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죽어라.”
이를 악물고 천마검을 비틀어 그의 심장을 헤집어 놓았고, 부르르 떨던 척무진의 몸은 축 늘어졌다.
척무진이 바닥에 쓰러졌고, 난 그의 심장이 완전히 망가져서 더는 소생하기 어렵다는 걸 확인하고는 이장 정도 뒤로 물러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 된 일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내공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공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까 지옥혈도와 부딪쳤을 때 단전이 요동치고 혈맥이 들끓었던 상황이 떠올랐다.
‘지옥혈도의 저주인가?’
슈우우욱.
슈우우욱.
사방에서 무인들이 이곳으로 날아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암흑사련의 무리와 천마교의 무리일 것이다.
난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공을 일으킬 수 없다는 상태란 걸 들키면 나와 천마교인들을 몰살당할 가능성이 컸다.
“역시 교주님이십니다.”
명리종과 다섯 무인은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에 섭유청을 비롯한 암흑사련 무인들은 척무진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들은 살기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절대고수인 내게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미 내가 그들 중 열 명을 죽인 전력이 있으니, 저런 마음을 먹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교주님. 감히 청합니다. 련주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가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안됩니다. 저자들을 이 자리에서 모조리 참해야 합니다.”
섭유청이 예를 갖춰 부탁하자, 명리종이 강하게 반발했다.
섭유청이나 명리종은 내가 내공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태란 걸 눈치 채지 못했다는 방증이었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근엄하게 섭유청에게 명령했다.
“장안 서쪽인 감숙성, 신장성, 청해성의 암흑사련 지부를 폐쇄하게. 그럼 허락하지.”
“그, 그건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
“그럼 이 자리에서 죽든가?”
매몰차게 섭유청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섭유청은 동료들과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들은 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겠습니다.”
“약속은 지키는 게 좋을 거야. 한 달 후에도 지부가 남아있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모조리 부숴버릴 테니까.”
“지킬 것입니다.”
“돌아가.”
섭유청 등은 내 눈치를 보며 척무진의 시체를 메고는 장안현으로 몸을 날렸다.
“교주님.”
“쉿. 조용.”
난 명리종을 돌아보지 않은 채 조용하라고 일침을 가하고는 가만히 서서 멀어져가는 암흑사련 무리를 지켜보았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정한 시간이 흘렀다.
“커헉.”
더는 참지 못한 나는 입으로 핏덩이를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교주님.”
“목소리 낮춰.”
“어, 어찌 된 겁니까?”
명리종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부축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는데 내공을 운용할 수 없소. 정말 천운이 따랐어. 만약 저놈들이 교주의 죽음에 눈이 뒤집혀서 공격했으면 우린 다 끝났을 것이오.”
“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당분간 쉬어야겠소. 명 총관.”
“예. 교주님.”
“저들은 내가 두려워 당분간 천마교를 넘보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암흑사련교주를 죽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시오. 그러면 망설이던 천마교인이 이곳으로 모일 것이오. 이 기회에 세를 빠르게 확장해야 하오.”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이제 암흑사련도 별 거 아닌 신세가 되었군요.”
명리종의 말에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척무진과의 싸움은 너무나도 기괴한 싸움이었다.
척무진이 죽었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지옥혈도를 빼앗고 싶었다.
그럼에도 암흑사련의 무인들에게 지옥혈도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암흑사련주의 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척무진이 죽었는데 신물도 회수하지 못한 채 돌아간다면 저들은 이제까지 쌓은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그러면 저들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돌발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적당히 타협했던 것이다.
만약 한 놈이라도 발악하며 내게 장풍을 쏘았다면 난 그걸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내 몸의 상태가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