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80화
80화. 당랑거철(螳螂拒轍)-2.
암흑사련 감숙지부.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 같은 사내가 흑철호 앞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사철심.”
“예. 지부장님.”
“준비는 되었는가?”
“그렇습니다. 낭리도 번궁이 낭인무사 일백을 모았습니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본련의 제자 열 명을 낭인무사로 위장시켜 투입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저놈들은 살펴보았는가?”
“별거 없더군요. 명리종은 늙은이일 뿐이고, 그의 수하들 다섯이 좀 거슬리긴 한데 대단한 고수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명리종이라···.”
흑철호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무림인 중에서 명리종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신장무림의 새외고수라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명단에서도 명리종은 없었다.
“그 수하들은 어떤 놈이라 그랬지?”
“찰극, 탑성까지는 알아냈는데 나머지 셋은 이름도 모르겠습니다.”
찰극, 탑성 역시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기에 흑철호는 안심이 되었다.
“중원인은 아니겠군.”
“명리종이 데려왔으니 신장출신이겠지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버거우면 낭인무사를 이용해 차륜전을 펼치면 됩니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차륜전 앞에 장사 없지. 그리고 신장에 그런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대단한 놈들은 아닐 거야.”
흑철호는 고민이 생기는 듯 서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 시작해. 싹 쓸어버려. 자네가 직접 지휘해.”
“알겠습니다.”
“반드시 명리종과 그의 부하 다섯을 죽이고, 모조리 불태워버려. 뒤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예. 지부장님.”
“이것만 제대로 완수하고 돌아오면 큰 포상을 하겠네.”
“반드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사철심은 즉각 복명하고는 물러났다.
‘귀찮은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
홀로 남은 흑철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번 일이 성공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만약 어렵다고 생각했다면 포기했거나 인원을 더 보충시켰을 것이다.
‘신장무림에서 좀 이름 좀 날렸나본데, 그런 촌구석의 무공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마.’
흑철호는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소월객잔.
오로는 객잔 근처의 나무위로 올라가 주변을 정찰하고 있었다.
그는 필요한 용무를 해결할 때만 나무 아래로 내려갔을 뿐, 나머지는 이곳에서 지내며 주변을 정찰했다.
“드디어 움직이는군.”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던 낭인무사들이 소월객잔으로 모여들었다.
오로는 기척을 완전히 죽이고 은밀하게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완전히 불살라 버려. 눈에 거슬리는 놈은 죽이고.”
사철심은 번궁에게 은자가 담긴 상자를 건네며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현청에서 문제 삼진 않겠죠?”
“그러면 잠시 난주를 떠났다가 돌아오면 되잖아. 진씨세가를 몰살시켰을 때도 현령은 대충 우리 짓임을 눈치 챘어.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유야무야되었지. 암흑사련을 믿게. 난주현에서 암흑사련이 곧 국가고 법이야.”
“아무렴요. 저희가 암흑사련이 아니면 누굴 믿겠습니까?”
번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철심이 번궁의 어깨를 다독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나 역시 따라갈 생각이네.”
“사 대인께서요?”
“아무래도 확실히 해야지. 강한 놈이 나오면 내가 나서서 도와줄 테니, 마음 놓고 싸우게.”
“알겠습니다.”
번궁은 힘차게 대답했다.
사철심과 암흑사련 무인들이 함께한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번궁은 낭인무사들을 모아 작전을 설명한 후, 은자를 나눠주었다.
“임무가 완수되면 나머지 반을 나눠줄 것이다. 상대 무인은 겨우 다섯. 그리고 이름난 무인은 없다. 그러니 힘을 내서 쓸어버리자. 그리고 잠시 난주현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된다. 자, 가자.”
번궁의 명령에 낭인무사들은 섬뜩한 눈빛을 뿜어냈다.
그것은 살욕과 탐욕이었다.
번궁과 함께 낭인무사들은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했고, 사철심도 암흑사련 무인 열 명을 데리고 함께 이동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오로는 나무를 살짝 찍은 공중으로 우아하게 비상하여 북쪽으로 향했다.
사철심, 번궁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놀라운 경공술이었다.
하긴 오로의 삼갑자 내공은 번궁은 물론이고 사철심도 언감생심 넘볼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경공술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
사철심은 느낌이 좋지 않았기에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번궁은 낭인무사를 지휘하느라 사철심의 말을 듣지 못했다.
-낭인무사들이 몰려온다.
오로는 건축 중인 장원 밖에서 대기 중인 탑성에게 전음으로 전달했다.
탑성은 곧바로 장원 안으로 들어가 명리종을 비롯한 천마교인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들은 처음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번궁이 낭인무사 백 명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 장원은 깊은 어둠에 쌓인 채 조용했다.
“시작해.”
사철심의 지시가 떨어지자, 번궁은 불을 피우더니 기름 묻은 헝겊에 불을 붙인 횃불을 낭인무사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낭인무사들은 한손에 검을 들고 한손에는 횃불을 들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번궁이 마지막으로 장원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사철심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강력한 반발이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이거 괜히 낭인무사를 백 명이나 고용했군.”
사철심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천 명을 고용했어야지. 물론 그것도 부족하겠지만.”
“누구냐?”
핑-
사철심은 몸을 돌리면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단도를 날렸다.
퍽.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간 단도는 무엇에 꽂히는 소리를 냈다.
“별 것 아니군.”
“미안하군. 실망시켜서.”
오로는 단도를 집게손가락과 중지손가락 사이에 끼고 나타났다.
사철심은 안색이 대변해서 급히 부하들에게 손짓했고, 그들은 오로를 에워쌌다.
“누구냐?”
“오로.”
“오로? 뭐하는 놈이냐?”
“그래. 이쯤에서 알려줘야겠지. 곧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야 할 텐데, 네놈들로 인해 더 빨리 알리게 되었어.”
“뭔 개소리냐?”
“개소리가 아니야. 우린 천마교니까.”
“처, 천마교?”
사철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제야 의문이 모두 풀렸다.
암흑사련의 영역인 난주현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대규모건축공사를 하고, 표국을 짓는 게 의아했었다.
상인들은 철저하게 이익을 따지기 때문에 난주현에 진출하기 전에 암흑사련을 방문하여 의사타진하곤 했었는데, 이번처럼 암흑사련을 무시하고 들어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천마교의 후예라고 생각하니 그런 걸 따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놈만 빼고 모조리 죽여주마.”
오로는 마치 친구처럼 부드럽게 말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쳐라!”
사철심이 먼저 공격명령을 내렸다.
슈슈슈슈슉.
동시에 열 명의 부하들이 일제히 오로를 선제기습했다.
파라라라랑.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건 오로의 연검이었다.
과연 사람을 벨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흐느적거리는 연검이었지만, 그 위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캉캉캉.
“으악.”
“커헉.”
순식간에 세 명의 무인이 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일곱의 무인이 움찔하며 한걸음 물러나자, 오로는 혀로 연검에 묻은 피를 핥았다.
“암흑사련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겨우 이 정도였더냐?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이 감히 천마교를 무너뜨렸단 말이지?”
서걱.
서걱.
오로의 연검이 다시 맹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맹렬은 연검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딱 들어맞았다.
일곱의 무인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만큼 오로와 그들의 실력차이는 매우 컸다.
“이리와.”
오로는 사철심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죽을 자신 있으면 자살해. 그전에 하나만 알아둬. 우린 천마교야. 정파놈들이야 방법이 없을지 몰라도 우린 방법이 있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오로의 협박에 사철심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철심이 머뭇거리자 오로가 손바닥을 쫙 폈고, 사철심은 질질 끌려갔다.
‘이, 이럴 수가? 지부장님보다 내공이 높잖은가? 지부장님의 내공이 이갑자가 넘는데. 어찌?’
턱.
오로는 왼손으로 사철심의 멱살을 움켜쥔 채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그때 장원 안에서는 애를 끊는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저 안으로 들어간 놈들은 모조리 죽을 거야. 그동안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니, 다 자업자득이겠지. 물론 암흑사련도 곧 저들의 뒤를 따를 테지만.”
쾅.
사철심은 진기를 끌어올려 오로를 공격했다.
기습공격이었기에 승리를 확신했다.
한방 맞은 오로의 몸은 붕 떠오르더니 바닥을 뒹굴었다.
“크크크크.”
오로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고, 사철심의 머릿속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기습공격을 가했는데도 오로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 네놈은 쓰레기로구나.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이냐?”
오로는 비웃음을 날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이럴 수가?”
“뭐가 이럴 수가야?”
슈우우욱.
오로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더니 사철심을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복날 개 패듯 두드려 패는 구타에 사철심은 생전 처음으로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다.
“쿠어어어억.”
사철심은 바닥에 엎드려 그날 먹을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일어서.”
나지막한 오로의 명령에 사철심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쭈뼛거리며 일어섰다.
“흑철호가 시켰지?”
“모, 모릅···.”
빡.
“다시. 누가 시켰느냐?”
사철심은 정말 맞아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가 입을 열지 않자, 오로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구타를 이어갔다.
속수무책으로 두드려 맞던 사철심이 급히 소릴 질렀다.
“지, 지부장님이 시켰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주모자가 흑철호란 말이지?”
다른 목소리가 들렸기에 사철심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리종이 무인 넷을 거느리고 나타난 것이다.
그저 돈 많은 노인으로 생각했던 명리종의 몸에서는 감히 근접하기도 어려운 패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오로보다 훨씬 높았다.
‘낭인무사는 모두 죽었구나. 이건 함정이야.’
사철심은 몸을 부르르 떨뿐 감히 반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총관님께서 물었는데 어찌 대답이 없느냐?”
“그, 그렇습니다. 흐, 흑철호지부장이 시켰습니다.”
오로의 협박에 사철심은 급히 대답했다.
“왜?”
“청룡방의 부탁 때문입니다.”
사철심은 알고 있는 대로 술술 털어놓았다.
그는 살려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처분만 기다렸다.
“무림에 천마교의 등장을 알릴 좋은 기회야. 어차피 암흑사련과는 양립하기 어려운 관계니 이 기회에 암흑사련 난주지부를 멸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러면 암흑사련이 어찌 나올지 궁금하군.”
“이제 난주지부는 지도상에서 사라지겠군요.”
“총관님. 청룡방도 처리해야합니다.”
“그렇지. 오로.”
“예. 총관님.”
“청룡방을 감시해. 만약 청룡방주가 도망칠 기색을 보이면 죽이진 말고 사로잡아.”
“알겠습니다.”
사철심은 지금의 상황이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난주의 무림인과 백성들은 암흑사련을 매우 두려워하여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했다.
그런데 이들은 암흑사련은 동네 똥개취급하고 있었다.
“찰극.”
“예. 총관님.”
“앞장서라. 암흑사련 난주지부로 간다. 주요 간부는 제압해. 나머진 쓸어버리고. 그동안 조사해보니 살려둘 가치가 없는 놈들이야. 그리고 흑철호는 내가 직접 처리한다.”
“예. 알겠습니다.”
“시작해.”
명리종의 명령이 떨어지자, 오로와 찰극이 몸을 날렸다.
“가자.”
명리종은 탑성, 극립, 목제를 데리고 암흑사련으로 몸을 날렸다.
“따라와.”
탑성이 사철심을 바라보며 짧게 명령하고는 명리종의 뒤를 따랐다.
사철심은 도망을 생각했지만, 이내 접었다.
도망쳤다가 다시 잡히는 날이면 진짜 지옥을 보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애를 끊는 비명이 넘실거리던 장원은 정적 속에 파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