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79화
79화. 당랑거철(螳螂拒轍)-1.
난주현 외곽.
명리종은 높은 단 위에 앉아 직접 건축을 진두지휘했다.
“꽤 멋지군요.”
“왔는가?”
명리종은 상기된 얼굴로 찰극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십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네. 무려 천 년 만에 세상에 나왔어. 이제 다시는 음지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난주현이 마음에 드십니까?”
“천산이나 이리합극에 비하면 아주 훌륭하지. 솔직히 장안, 낙양이 부럽지 않네. 아주 좋아.”
명리종은 활짝 웃었다.
“왜 왔어?”
“어떤 자들이 낭인무사들을 대거 모으고 있습니다.”
“낭인무사를?”
“예. 원래 낭인무사를 모으면 어수선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목적은 아주 지저분하고요.”
“그래. 또 어떤 못된 놈이 사고를 치려는 모양이군. 쯧쯧. 천박한 놈들 같으니라고. 무인이면 오직 힘으로 승부를 볼 생각을 해야지.”
명리종은 혀를 차다 말고 미간을 찌푸리며 찰극을 바라보았다.
이런 한가한 보고를 하겠다고 찰극이 여기까지 올라오진 않았을 것이다.
“설마 그 대상이 우리인가?”
“청룡방주 위해산이 암흑사련 감숙지부를 다녀왔고, 그 이후에 낭인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청룡방이나 감숙지부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우리가 표국을 세웠을 때 가장 피해볼 곳이 청룡방이니 그 대상이 우리일 확률이 높습니다. 감숙지부장 흑철호는 욕심 많고 악명이 높은 자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나 원 참, 이제는 하다하다 파리 떼까지 꼬이는군.”
명리종은 헛웃음을 터트렸을 뿐, 긴장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총관님께서는 계속 이곳에 앉아 건축을 진두지휘해 주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배후를 찾아내. 그놈의 모가지를 내가 직접 따 버릴 테니까.”
“저, 만약 암흑사련의 감숙지부장이면 어쩝니까?”
“이곳은 천마교의 성전이야. 어느 놈이든 간에 성전을 공격하면 반드시 목을 벤다. 예외는 없어. 그때는 내가 직접 움직이지.”
명리종이 살기를 일으키자, 찰극은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여느 시골에서 봄직한 평범한 인상의 명리종이었지만, 무려 사갑자의 내공을 지닌 무시무시한 고수였다.
특히 그의 무공은 잔혹하고 패도적인 암연혈뢰장이었다.
“굳이 총관님께서 나서실···.”
“아냐. 이건 경고야. 어떤 놈이든 감히 천마교에 대항하면 어찌된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렇다고 교주님께서 나설 순 없잖은가?”
“그럴 순 없지요. 그건 교주님께 불충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서겠다는 말일세. 녀석들의 목표가 이곳이라면 깊숙이 끌어들여. 그리고 일망타진한 후에 확실하게 배후를 밝혀.”
“저.”
“말해봐.”
“만약 암흑사련의 지부장을 죽이게 될 경우가 발생하면 교주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당연히 할 걸세. 그리고 그분께서는 반드시 허락해주시리라 확신하네.”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암흑사련 지부가 있는 난주현으로 왔어. 설마 눈치 보려고 오셨겠는가?”
“그렇군요.”
“어서 움직여.”
“알겠습니다.”
찰극은 정중하게 포권하고 물러났다.
홀로 남은 명리종은 살기를 거두고 다시 건축현장을 지휘하는데 몰두했다.
장원 밖.
찰극이 나오자 탑성, 오로, 극립, 목제가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어찌 되었는가?”
탑성이 급히 물었다.
“공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후를 알아내라고 하셨네. 배후를 알아내면 총관님께서 직접 목을 베겠다고 선언하셨어.”
“오오.”
“그리 조치하시면 이제 감히 천마교를 업신여기는 놈들은 없겠군.”
찰극의 말이 끝나자마자 넷은 일제히 환호성과 긍정적인 답변을 쏟아냈다.
마의 종주를 자처하는 천마교였지만, 이제까지 음지에서 숨죽여 지냈기에 명리종의 강경한 발언을 듣자 모두 피가 끓어올랐다.
“낭인들이라면 우리로 충분하잖아.”
괄괄한 극립이 자신감을 드러내자, 신중한 성격인 오로가 입을 열었다.
“내가 낭인집단을 감시하기로 하지. 나 혼자 충분하니까, 너희들은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일망타진해.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출도이후 첫 임무인데 어설프게 처리하면 교주님께서 실망하실 거야.”
“그럴 순 없지.”
“맞아. 오히려 이번에 제대로 처리하면 천마교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거야.”
탑성과 목제가 굳은 표정을 대답했다.
“자자, 모두 힘내자고. 오로가 저들을 감시하는 동안 우리도 임무를 나눠야 해. 목제, 탑성은 바깥쪽 경계를 맡아. 공격은 나와 극립이 맞기로 하지.”
“좋아. 절대 차질 없이 진행하자고.”
그들은 손을 맞잡고 서로를 격려하고는 물러났다.
**
소월객잔.
난주현 북쪽에 위치한 중간규모의 객잔으로 평소에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일층이 손님으로 가득 찼다.
“사고나 터지지 말아야 할 텐데.”
소월객잔 주인 소우청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반 손님이었다면 그리 걱정하진 않았을 테지만, 지금 일층을 가득 메운 손님은 낭인무사들이었다.
무림인들도 낭인무사와 얽히는 걸 싫어할 정도로 그들은 매우 거칠었다.
그렇기에 객잔의 종업원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음식을 나르며 시중을 들었다.
“주인장.”
“예.”
얼굴에 길게 자상이 그려진 강퍅한 인상의 사내가 손짓을 하자, 소우청은 급히 달려가 허리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
“그럼요. 한 번도 의심한적 없습니다.”
“그런데.”
“예. 예.”
소우청은 등골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음식 맛이 형편없군.”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인가?”
‘이 새끼야. 그럼 어쩌라고?’
소우청은 자신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거렸다.
맛이 없다면서 음식 그릇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진짜 맛이 없어서 먹지 않고 항의했다면 소우청도 인정했을 것이다.
“자네 이 따위 음식을 내놓고 돈 받을 생각은 아니겠지?”
소우청은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럼요.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누군가 소우청의 손을 잡고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사과했다.
소우청의 아내 진미설이었다.
“이 자는 죄송하지 않은 거 같은데.”
그는 소우청에게 딴죽을 걸었다.
진미설이 급히 소우청의 옆구리를 찌르자, 소우청도 결국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음식 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들었지? 자, 신나게 먹고 마시고 먹고 가자고.”
그들은 ‘우와’하고 함성을 지르고는 떠들썩하게 마셔댔다.
염치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을 보며 소우청은 살기가 솟구쳤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진미설은 소우청을 이끌고 객잔 뒤로 데려왔다.
“잘 참았어요. 저놈들 천벌을 받을 거예요.”
“천벌은 무슨. 누가 저놈들을 건드려? 뒷배가 암흑사련인데. 젠장할.”
소우청은 발을 동동 굴렀다.
난주현에서 암흑사련이 낭인무사들의 뒤를 봐준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낭인무사들이 몰려다니면서 난리를 쳤지만, 누구도 그들을 어쩌지 못하고 벙어리냉가슴 앓듯 끙끙댔고 소우청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미설은 소우청을 달래는 한편 사고치지 말라고 엄히 단속하고는 손님을 시중들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보시오. 주인장.”
“젠장할 또 뭐요?”
소우청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낭인무사가 아니라 청의를 입은 흰 얼굴의 무인이 옅은 미소를 짓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소우청은 인상을 누그러뜨리며 사과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괜찮소. 낭인무사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들었소.”
소우청은 청의무인을 바라볼 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난 저들과 관련이 없소이다. 내 말투를 보면 모르겠소?”
“그러고 보니 서쪽에서 오셨군요.”
“그렇소. 신장에서 왔소.”
“그럼 북쪽에 거대한 장원을 짓고 있는···.”
“그렇소. 우린 명 대인과 함께 왔소.”
청의무인은 바로 오로였다.
“그, 그렇군요. 조심하시오.”
“조심하라고요?”
“휴우, 낭인무사들이 명 대인을 노리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오.”
“나라의 법도가 있는데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오?”
“헹, 여기서는 암흑사련이 곧 나라고, 흑철호의 말이 곧 법이오.”
소우청은 우발적으로 다 털어놓았다.
평소였다면 절대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을 테지만, 낭인무사들로 인해 극도로 분노한 상태였기에 거침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쏟아내고 나니 슬슬 걱정이 앞섰다.
오로가 고변을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걸 눈치 챈 듯 오로가 소우청을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난 체질적으로 저런 지저분한 놈들을 싫어하니까.”
“난주현을 떠나시오. 이제까지 저놈들의 표적이 되어서 살아남은 자가 없었소. 진씨세가도 결국에는 저놈들에게 무너졌소.”
“이제는 다를 거요. 명 대인은 아주 무서운 분이시거든요.”
소우청은 오로의 표정에서 강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암흑사련과 낭인무사들을 누가 연결하고 있소?”
오로의 은근한 질문에 소우청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 까지 말하면 뒤탈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의 무공이 아주 강한가보구려.”
오로는 싱긋 웃더니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비록 명리종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 역시 삼갑자의 내공을 지닌 고수였다.
후우우우웅.
소우청은 무시무시한 무위를 드러내는 오로를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압박감은 태어난 이후 처음이었다.
낭인무사를 은연중에 지휘하는 낭리도 번궁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소? 나를 믿고 아니 명 대인을 믿고 말씀해주시겠소?”
“도대체 무엇을 하시려고?”
“이 일과 관련된 자들은 모조리 지옥의 맛을 볼 것이오. 그것이 암흑사련이더라도. 만약 흑철호가 연결되었더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소. 내게만 말해주시오.”
고민하던 소우청은 결국 아는 대로 토설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하던 그였지만, 일단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암흑사련과 청룡방, 낭인무사들의 관계를 자세하게 고변했다.
“알겠네. 기다리게. 곧 후련한 소식이 들려올 걸세.”
오로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몸을 날려 사라졌다.
“젠장할.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소우청은 평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큰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쌓인 게 많았기에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야. 저놈들이 무전취식하는 바람에 객잔이 문을 닫게 생겼다고.’
**
오로는 소월객잔외 다른 객잔을 돌며 상황을 파악한 후에, 곧바로 명리종을 찾아 보고했다.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자 명리종의 눈빛은 매섭게 변했다.
“알았다. 계속 감시하도록!”
“예! 총관님.”
오로가 물러나자, 명리종은 경공술을 펼쳐 북쪽으로 날아갔다.
난주현 북쪽은 험준한 산악지대였는데, 반시진 정도 경공술을 펼친 그는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바위산 앞에 섰다.
‘언제 봐도 흑애산의 위용은 정말 대단하구나.’
명리종은 내공을 끌어올린 후 거의 수직으로 솟은 흑애산의 절벽을 올랐다.
중턱까지 올랐을 때, 명리종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비록 사갑자의 내공을 지닌 그의 얼굴이 상기될 만큼 흑애산 절벽은 매우 가파르고 거칠었다.
“어찌 오셨소?”
“교주님을 뵙습니다.”
명리종은 급히 포권했다.
난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명리종은 자리에 앉으며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산발한 머리와 멋대로 자란 수염.
허름한 의복.
제대로 씻지 못해 풍기는 악취.
여기까지만 본다면 상거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 눈빛을 보고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요한 가운데 폭발적인 기운이 일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명리종은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꼴이 우습지요?”
“저, 시중들 하인을 보낼까요?”
“괜찮소. 있어봐야 번거롭기만 하니까. 무슨 일이 있소?”
“암흑사련에서 본교를 눈엣가시로 보고 공격할 낌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흐음. 공격준비가 이렇게 알려질 정도라면 저들이 거리낌 없이 대놓고 준비한다는 말로 들리는구려.”
“그렇습니다. 저들이 본교의 실체를 모르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마음에 안 드는 자들을 이렇게 대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내가 가만히 듣기만 하자, 명리종이 배에 힘을 주고 진언했다.
“감숙지부장 흑철호까지 연결된 걸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관련된 자들을 모두 엄벌할 생각입니다. 흑철호까지.”
“그리하시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암흑사련과 본교는 양립할 수 없소. 저들이 본교를 친 이상 조금도 물러서지 말고 강하게 대처하시오. 어설프게 대처한다면 난 총관에게 실망할 것이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장안의 암흑사련 본단 움직임을 세밀하게 파악하시오. 그곳의 고수 특히 련주가 온다면 내가 상대해야 하니까. 그때는 반드시 내게 보고하시오. 총관은 그를 당할 수 없소.”
“알겠습니다.”
명리종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신공 연마는 어떻습니까?”
“십일성에 이르렀소.”
“오오. 감축드립니다.”
“아직 대성한 것도 아닌데 그런 칭찬을 받다니 부끄럽소. 암흑사련 본단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총관께서 알아서 하시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온숙현으로.”
“예.”
명리종은 익숙한 표정으로 서신을 받았다.
그는 정중하게 포권하고는 흑애산을 내려왔다.
산 아래에 멈춰 서서 중턱을 바라보던 명리종이 중얼거렸다.
‘벌써 천마여의신공을 십일성이나 익히다니. 교주님은 실로 하늘이 낸 기재로구나. 암흑사련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국은 무너질 것이다. 암흑사련주 또한 교주님께 죽임을 당할 것이다.’
명리종의 눈에는 천마교의 밝은 미래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