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72화
72화. 진정한 천마가 되는 길.
명리종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묵직한 음성을 쏟아냈다.
“진심으로 모든 천마교인의 지지를 받으려면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말씀하시오.”
“본교의 성지인 천마동으로 가셔서 초대조사께서 남겨놓으신 안배를 취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천마가 되고 본교의 교주가 되십니다. 천마여의신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천마동에 있습니다. 특히 교주님께 꼭 필요한 천마교의 정체성을 체득하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천마교의 정체성이란 말을 들으며 그간 천마나 천마교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명리종이 진정으로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이들은 천마재림이라는 명령하나만 믿고 천년을 기다린 사람들이었다.
앞으로는 좀 더 심사숙고하여 언행해야 할 것이다.
“암흑마교의 반란으로 본교가 무너졌다고 들었소. 그런데 천마동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소?”
“그렇습니다. 천마동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천마의 정통 후계자들에게만 전달되는 천마동의 위치를 천한 척가놈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명리종은 이를 바드득 갈면서 말했다.
그가 직접 척씨들에게 당하진 않았지만, 뼛속깊이 한이 서려 있었다.
천마교가 무너진 것보다 천년이나 기다려야 했던 상황이 더 화가 나지 않았을까?
“좋소. 안내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흩어져 있는 본교의 후예를 모아주시겠소?”
“일단 외부에 알리겠습니다. 다만 그들까지 진심으로 굴복시키려면 천마동의 안배를 얻으셔야 합니다.”
“알겠소. 천마동은 어디 있소?”
“아극타산입니다. 본교가 있던 천산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지요.”
명리종은 창문을 열어 만년설이 쌓인 산 중에서 뾰족하게 높이 솟아있는 산을 가리켰다.
“저 산이 아극타산입니다. 이 천마검을 가져가십시오. 천마동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명리종은 품속에서 흑색 윤기가 도는 단검을 꺼내 바쳤다.
날이 무뎌진 단검은 의전용으로 보였다.
“조심해서 다루십시오. 매우 위험한 물건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날이 무뎌 보이지만, 천마여의진기를 주입하면 더 없이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냅니다. 호신강기도 깨뜨릴 수 있는 마검입니다.”
키키키키키.
천마여의신공을 일으켜 진기를 주입하자, 귀신의 웃음소리 같은 섬뜩한 소리가 났다.
“아직 천마여의신공을 대성하지 못하셨군요. 십성에 도달할 때까지는 귀신소리가 더욱 커지고 섬뜩하게 변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소리만으로도 상대를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지요. 대성하면 소리는 사라집니다.”
진기를 거둬들이자, 천마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음에 드는군. 천마검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려.”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할 때는 단검인 이 천마검이 훨씬 유용할 것이다.
섬뜩한 귀성과 호신강기를 베어버릴 예기 그리고 극의에 다다른 내 무위와 풍부한 경험을 합친다면 적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며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림맹 소속으로 움직일 때는 귀혼검으로 천의검법을, 천마로 움직일 때는 천마검을 이용해서 싸우면 되겠군. 천마동에서 그에 맞는 검법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뭐, 없다면 척무혁의 혈뢰구강검술을 써도 충분하고. 그리고 천마동에서 천마교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천마검을 옆구리에 찼다.
천마검은 일반 쇠붙이처럼 덜렁거리는 게 아니라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이것만 봐도 천마검이 명검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천마검이 천년만에 주인을 찾았군요. 무림인들은 절대 이 단검이 천마검인지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일견하기엔 매우 평범한 단검으로 보이니까요.”
“고맙소. 그럼 빨리 다녀오리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반드시 초대천마의 안배를 얻기 바랍니다.”
명리종은 간절한 기원을 담아 예를 올리고는 커다란 혁낭을 건네주었다.
“천마동에서 먹을 벽곡단과 물입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부족하면 다시 천마동을 나와 음식과 물을 구한 후, 재입동해야 합니다. 꼭 천마의 안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고맙소. 반드시 진정한 천마가 되어 돌아오겠소.”
그의 예를 받은 후 곧장 아극타산으로 몸을 날렸다.
이후 탑성을 비롯한 이들이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총관님. 어찌 되었습니까?”
찰극이 그들을 대표하여 질문했다.
“진짜 천마가 되려고 천마동으로 가셨네. 부디 그곳의 난관을 극복하여 모든 교인에게 추앙받을 수 있는 교주님이 되셔야 할 텐데.”
대답하는 명리종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천마동 관문은 그만큼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통과하시겠지요. 그래야 이탈한 교도들이 돌아올 겁니다. 더 강해지셔야 할 텐데.”
찰극이 애써 밝게 대답했지만, 명리종을 비롯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천마조사가 남긴 안배를 얻으려면 목숨을 걸어야했는데, 천년만에 찾아온 천마가 죽는다면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구양천이 반드시 천마동에 남긴 초대천마의 안배를 얻길 간절히 희망했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벗어나고 싶었다.
**
무림맹 정보루.
제갈문현은 문을 닫고 육영서와 목소리를 낮춰 대화했다.
“알아보았는가?”
“의심할만한 정황이 조금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더 깊숙이 조사하면 뭔가 나올 거 같은데···.”
“그건 안 돼. 만약 그렇게 조사했는데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때는 우리가 정말 곤란해져. 상대는 전전 무림맹주이자 원로원주야.”
제갈문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원로원주 상관현이 의심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대놓고 조사를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넘어갈 순 없지 않습니까? 원로 한 명이 세작으로 밝혀졌는데요.”
“상관 원주가 영리하게 꼬리를 잘라냈어. 맹주님께서도 불편해하는 마음이었고.”
맹주 양천린에게 상관현은 거산이었다.
무림맹의 주요 고수는 상관현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었다.
그렇기에 양천린은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상관현을 자극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루주님. 그럼 조사는 계속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은밀하게 조사하게. 그리고 조심하게.”
“알겠습니다.”
육영서를 돌려보낸 제갈문현은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꼭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야.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군. 휴우. 어서 구양 대주가 돌아와야 할 텐데. 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제갈문현은 그동안 구양천에게 크게 의지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제갈문현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고 어두워졌다.
그 시각.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육영서에게 추단성이 급히 다가왔다.
그는 육영서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임대홍이 자신의 저택에서 자살했습니다.”
“뭣이?”
육영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추단성을 돌아보았다.
첩자라고 추정했던 자는 상관현의 심복이었던 임대홍이었다.
하지만 추적이 시작되자 일시적으로 종적을 감췄던 임대홍은 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아무런 정보도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임대홍이 자살하며 상황이 꼬이자, 육영서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사실입니다. 부루주님께서 루주님과 대화하고 계실 때, 정보가 들어왔고 직접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것도 자기 집에서요. 집행각에서 조사하고 있으니 결과를 지켜보시지요.”
육영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살했든 자살로 위장했든 간에 타살증거를 찾긴 어려울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육영서 역시 이쪽 분야에서 오래 근무했기에 그 정도 감은 갖고 있었다.
상대는 음지에서 은밀하게 움직인 만큼, 만약 그들이 움직였다면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임대홍이 죽었으니 어쩐다?”
“임대홍이 죽기 전에 방문한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육영서는 눈을 반짝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빠르게 서류를 훑어 내려가다가 한쪽에서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자는 원로원주의 사람 아닌가?”
“그렇습니다.”
“혹 조사해보았는가?”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임대홍과 친분이 있어서 같이 술을 마셨을 뿐이라고요. 실제로 둘은 꽤 잘 어울렸습니다. 또 그의 위치가 매우 높기도 했고,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에 더는 조사할 수 없어서 풀어줬습니다.”
“그렇겠지. 둘 다 원로원주의 심복이었으니까.”
육영서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눈앞에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상관현의 측근을 몰아세웠다가는 거센 반격을 받을 게 뻔했다.
더군다나 풀어준 그는 육영서 못지않은 높은 지위였다.
“젠장할. 골치 아프군.”
“이제 어떡할까요?”
“최대한 은밀하게 방문자들을 조사하게. 서류상으로 조사하고, 비리가 있는지도 확인해. 큰 비리를 저질렀다면 타협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조사하면서 기다리면 기회가 올 거야. 반드시. 조심해. 저쪽에서 반격할 수 있으니까.”
“그런다면 오히려 기회죠. 우릴 공격하는 순간 저들이 노출될 테니까요.”
“그래도 조심해.”
“알겠습니다.”
육영서는 추단성을 돌려보내고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발로 걷어찼다.
그는 요즘 들어 암흑사련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화운룡이 겉으로 드러난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동안 살아남은 잔당은 음지로 숨어들었고, 시간을 두고 조금씩 자신의 편을 만들어갔다.
음지에서 독버섯이 피어나는 것처럼 그들은 곳곳에 마수를 뻗쳤다.
점조직으로 은밀하게 움직였기에 말단 몇몇을 잡아 심문했지만, 상층부에 파고든 첩자를 알아낼 순 없었다.
**
아극타산.
멀리서 바라봤을 때 그저 아름답게 느껴졌던 눈 덮인 아극타산은 가까이 다가가자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온통 흰 눈과 바위투성이로 이뤄진 산을 보자, 명리종의 말이 떠올랐다.
-천마동의 위치를 천한 척가놈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다.
설마 천산에서 멀리 떨어진 아극타산에 천마동이 있었다는 걸 알긴 어려웠을 것이다.
설령 아극타산에 천마동이 있다는 걸 알았더라도 이 산을 모두 뒤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인근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바위위에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목영청을 호출했다.
“훌훌훌. 수고했다.”
“이정도야. 이 천마검이 어떻게 길을 안내합니까?”
“천마여의신공을 운용하여 천마검을 공중으로 띄우거라.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내력을 주입해. 그러면 천마검이 소리를 내며 안내할 것이다. 영물이지. 분명 생명이 없는데,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움직이니까.”
“신기하군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군요.”
“나도 자세히는 몰라. 듣기로는 그걸 만드는데 백 명에 달하는 동남동녀가 제물로 바쳐졌다고 하더군. 모두 열 살이 채 안되었다고 들었어. 쯧쯧. 정말이지 그때는 왜 그 짓을 했는지.”
“으헉.”
그 순간 천마검에서 시작된 전율이 손을 타고 머리끝까지 전해져왔고, 깜짝 놀라 털썩 주저앉았다.
그 역시 수많은 사파의 무인들과 싸워 죽였지만,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친다는 건 상상도하지 못했었다.
혈천교와 사황련을 제압할 때 동남동녀를 제물로 바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설마 그 결과물을 자신이 갖게 될 줄이야.
“섬뜩한 물건이군요.”
“척은광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천마교는 패(覇), 마(魔), 사(邪), 요(妖), 혈(血)의 무공이 다양하게 존재했으니까. 천마는 그 모든 걸 주관했고. 그러니 이런 천마검을 만들 생각을 했겠지.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바로 천마의 신물인 것을. 지나간 일이니 그러려니 하게.”
“그래야지요. 제가 천마가 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겁니다.”
“그렇지. 이미 사, 요, 혈은 암흑사련이 가지고 갔어. 누구도 네가 정한 노선에 반기를 들지 않을 것이야. 솔직히 패, 마면 충분하지. 당장은 강력한 무위를 얻는데 최선을 다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모든 면에서 잘 통하는 목영청을 만난 건 실로 행운이었다.
아니 그와의 만남은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마동에 들어가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건 직접 들어가 봐.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제가 위험할 수도 있잖습니까?”
“훌훌훌. 천마동에 입동하는 자는 천마의 자격이 있는 이십에서 사십대의 무인이지. 거기에 맞게 안배가 되어 있어. 그런데 자네는 무려 82년을 살았지 않은가? 그리고 경험도 정말 풍부하고. 솔직히 자네가 입동하는 건 반칙이야. 훌훌훌.”
목영청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감이 솟구쳤다.
“수고하게. 대신 지나친 자신감에 실수하진 말고. 정말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재밌겠군요. 신중하게 대처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
목영청은 이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난 천천히 눈을 떴다.
문득 허리에 찬 천마검에 시선이 옮겨갔고,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천마검을 손바닥 위에 띄운 상태에서 천마여의신공을 운용하여 진기를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검은 살짝 떨기 시작하며 빙빙 돌더니 서쪽 방향을 가리켰다.
난 그 방향으로 경공술을 펼쳐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