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65화
65화. 생각을 바꾸다.
청과 함께 정주현에 도착했을 때, 구양현은 구양씨 일가를 이끌고 무림맹 하남성지부로 옮긴 상태였다.
아마도 전서구를 통해 위험을 인지하자마자 곧장 옮겼을 것이다.
하남성지부.
“괜찮은 것이냐?”
모용혜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달려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천이가 이제 무림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소.”
“그걸 누가 모르나요?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돼 그렇지요. 내 눈에는 아직도···.”
“지금 천이를 위태롭게 할 무인은 많지 않소. 그렇지 않느냐?”
구양천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렇습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뻔뻔스럽긴 하지만, 아버지 말이 맞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렇게 이사한 것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맹에서 선제적으로 조치한 것뿐입니다. 별일 없을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다소 위험한 상황인 건 분명했지만, 모친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짧게 한숨을 쉬었다.
여인의 직감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허, 부인. 그만하시오.”
구양현이 적극적으로 모용혜를 설득했다.
“저녁은 먹고 갈 거지?”
“당연하죠. 며칠 머무를 생각입니다.”
“자, 놓아줍시다. 천이는 이제 우리만의 자식이 아니오. 자랑스러운 무림의 자식이오.”
구양현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검제가 죽은 이후 서러운 시간을 보냈던 그였다.
그렇기에 지금 모두가 구양세가를 주목하는 이 순간이 짜릿하고 행복했다.
또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이제 구양세가가 예전의 영광을 어느 정도 되찾았습니다.’
그는 부친인 검제 구양의를 떠올리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이내 하늘로 고개를 돌리고는 눈물을 닦아냈다.
모용혜는 구양현의 마음을 짐작했기에 더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구양현과 모용혜의 모습을 본 나는 마음이 짠해졌다.
구양세가가 고생한 데는 전생의 내 역할이 컸기 때문에.
난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하남성지부장을 찾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척사검대주 구양천입니다.”
“참마도(斬魔刀) 우석용(禹晳勇)입니다.”
우석용은 정중하게 포권하고는 내게 자리를 권했다.
거대도를 이용한 도법이 일품인 우석용은 전생에서 나와 함께 사마외도를 토벌한 경험이 있는 무인으로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와 맞붙은 무인은 거대한 톱니에 몸이 썰려나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구양세가를 잘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우석용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서로 정중하게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잠시 차를 마시며 정적이 흘렀다.
우석용이 먼저 정적을 깼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강해지신 겁니까?”
모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나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주현에서 직접 구양세가와 교류했었던 그에게는 더욱 경이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기연을 만났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허어, 구양 대주의 등장은 정주현을 넘어 무림의 축복입니다.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오르시더라도 정주현을 잊지 마십시오.”
오랫동안 무림맹에 재직했던 우석용은 내가 높이 오르리라 확신했다.
“지부장님.”
“예.”
“암흑사련에서 하남성지부를 공격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아예 없다고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경비에 좀 더 집중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가에는 제검대, 수검대가 있지 않습니까? 성제 또한 뛰어난 고수이고요. 거기다가 하남성지부 고수들이 있으니 저들이 전면전을 치르자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공격은 힘들 겁니다.”
우석용의 마지막 말에 나 역시 동의했다.
하남성지부의 무력이 암흑사련의 공격을 억제할 정도로 막강하지는 않았다.
다만 여길 공격하면 무림맹과 암흑사련의 전면전이었기에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석용과 대화를 나누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날 저녁.
우석용과 대화를 끝내고, 가족과 저녁을 먹은 후 홀로 연공실에 들어섰다.
운기조식을 통해 약간 소모된 진기를 보충한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목영청을 떠올렸다.
한시진전부터 목영청이 나를 부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렇네.”
목영청의 목소리는 침중했다.
평소와는 달랐기에 나는 조용히 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지난번에 떨거지들에게 암습을 당했지 않은가?”
떨거지라니?
그들은 무림에 피바람을 몰고 올 전대거마들이었다.
“제가 모두 보내버렸죠.”
목영청에게 지기 싫어 강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었네. 그런데 말이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음 암습은 심상치 않을 거 같단 말이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암흑사련주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저를 어쩌진 못할 겁니다.”
“자신감은 좋은데 자만감은 갖지 말게.”
목영청은 짐짓 나무라는 말투로 조언했지만, 길게 경고를 이어가진 않았다.
“조언해주신다면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일단 허리를 숙여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훌훌. 그 자세야.”
목영청은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터트리고는 속 이야기를 꺼냈다.
“저들은 분명 다시 습격에 나설 테고 그때 련주가 등장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그의 제자나 측근이 나설 가능성이 커.”
나 역시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토 달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들의 무공은 처음에 공격했던 자들이 사용했던 무공과는 완전히 다르겠지. 다시 말해 암흑마교 본류의 무공일 가능성이 크단 말일세. 특히 천마교를 무너뜨리고 암흑마교를 설립했을 당시의 무공.”
“저는 암흑마교주 척무혁도 무너뜨린 적이 있습니다.”
“자네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아. 천년 동안 무공이 발전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난 대답하지 않고 목영청을 주시했다.
목영청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척무혁을 힘겹게 물리쳤고 중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척무혁은 암흑마교 초창기의 강력한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고 봐야하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이 아주 높아.”
“무공이 실전될 걸까요? 척무혁은 암흑마교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렸던 자입니다.”
“척무혁의 성격은 자기주관이 뚜렷한 자인가?”
“아주 고집이 셌죠. 뭐든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한번 고집을 부리면 절대 꺾지도 않았고요.”
“그래. 그랬겠군. 척무혁은 의도적으로 암흑마교 초창기 무공을 배제했을 것이네.”
“왜 그랬을까요?”
“그 무공은 무위는 매우 강력하지만, 익히는 방식이 아주 사악하거든. 척은광 그놈이 천마교를 무너뜨리고 무공을 취할 때 그런 무공만 가져갔어. 일단 무위는 아주 강력했으니까. 금단의 마공이었지.”
“그렇다면 척무혁은 이게 아니더라도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겠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련주나 그의 제자 또는 측근은 그 무공을 익혔을 테고요.”
“그렇지. 척무혁이 자네의 손에 쓰러졌으니, 그가 취한 방법은 잘못되었다. 예전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되었겠지.”
목영청은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널 곤경에 빠뜨릴 무공은 몇 개 안 돼. 그 중에서 조심해야 할 무공을 알려줄 테니, 자네가 고민해보게.”
“감사합니다.”
“첫 번째는 지옥혈도일세.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건 나도 몰라. 정말 지옥혈도라는 보물이 있는지, 아니면 무공이름인지 몰라. 다만 지옥혈도가 주인을 택한다고 들었을 뿐이지. 그 이상은 몰라.”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훌훌훌. 그 자세 좋아. 두 번째는 혈신도법(血神刀法)일세. 익히는 과정에서 동정남녀 일백을 갈아 넣어야 할 만큼 아주 악랄한 도법이네. 대신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해. 대성한다면 천의검법보다 윗줄에 놓인다고 장담하네.”
난 척무혁을 떠올렸다.
자기주관이 강하고 고집이 셌던 그는 모든 무림인에게 경외심을 심어준 위대한 무인이었다.
그런 척무혁이었다면 저런 식의 수련방법은 거부했으리라.
그러고도 나와 생사대결을 할 만큼 강해졌으니, 실로 척무혁의 자질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 다음이 생사사검(生死四劍). 아마도 척무혁이 이걸 익혔을 거야. 이건 익히는 방법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거든. 물론 혈신도법보다 사악하지 않다는 것뿐이지, 이것도 방법이 사악하지.”
“처음 듣습니다. 척무혁은 혈뢰구강검술(血雷九罡劍術)을 익혔거든요. 정말 지독하게 강한 검법이었습니다.”
“처음 듣는군.”
목영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계속 듣게. 그 다음이 지난번에 시연해준 수라소수마공이야.”
“기억납니다.”
“내가 지금부터 혈신도법, 생사사검, 수라소수마공을 차례대로 펼쳐 보일 테니 집중해서 보게. 완벽하진 않지만, 그 묘리는 꿰뚫고 있으니 도움이 될 걸세.”
목영청은 나와 간격을 벌리고는 검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기수식을 취한 것만으로도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웬만한 무인은 그 기운에 진기가 흔들릴 정도여서 매우 놀랐다.
차례대로 펼쳐지는 혈신도법, 생사사검을 보며 나는 전율하고 또 전율했다.
만약 암흑사련주가 저 무공을 대성했다면 전생의 나였더라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가?”
“조사님의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충격적이게 강하군요.”
“그 시대는 정파보다 사파가 더 강했으니까.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무림은 천마교아래 놓였겠지.”
분하지만, 목영청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라소수마공을 펼쳐 보이겠네. 이번이 두 번째 시연이고, 혈신도법, 생사사검을 봤으니 다른 느낌으로 와 닿을 걸세.”
난 그의 동작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처음에 목영청이 수라소수마공을 시연했을 때는 사악하고 강하다는 느낌만 받았었는데, 이제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천의검법으로 상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뚱맞게 척무혁과의 비무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에 잠기자, 목영청은 빙그레 웃으며 시연을 멈추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자리에 털썩 앉았다.
‘참으로 자질이 뛰어난 아이로구나. 그저 알려줬을 뿐인데,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가고 있어.’
목영청은 천마교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던 것일까?
눈을 떴을 때, 목영청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에 흠칫 놀라며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세 시진일세. 세 시진.”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그래. 얻은 게 있는가?”
“적어도 수라소수마공은 천의검법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척무혁의 혈뢰구강검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혈뢰구강검술이 언급되자 목영청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그걸 생각하였는가?”
“척무혁의 천재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접니다. 그런 천재가 혈신도법, 생사사검, 수라소수마공을 쓰지 않고 혈뢰구강검술을 익혔습니다. 물론 익히는 과정이 매우 사악해서 그게 맞지 않아 익히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계속해보게.”
어느새 목영청의 얼굴에는 조금 흥미가 돌기 시작했다.
“결과로만 본다면 그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제게 패배했으니까요. 또 냉정하게 보더라도 혈신도법이나 생사사검이 혈뢰구강검술보다 윗줄에 있고요.”
“그렇지.”
“그런데 문득 세 개의 무공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해보니 놀라운 점이 보이더군요. 혈뢰구강검술은 미완성의 무공입니다.”
“미완성의 무공으로 천의검법을 상대했다? 그것도 극의에 다다른 네게?”
“그러니 척무혁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아마 그때는 저도 그도 몰랐을 겁니다. 저 역시 정말 대단한 무공이라는 생각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혈신도법, 생사사검을 보니 알겠습니다. 척무혁은 두 무공을 깊이 연구했고 그것을 능가하는 무공을 창안했다는 것을요. 정말 대단한 놈입니다.”
난 흥분하여 크게 소리쳤다.
혈뢰구강검술을 통해 천의검법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천마를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목영청의 얼굴에 실망이 스쳐지나갔다.
“그럴 리가요. 천마가 되겠습니다. 무림맹주도 되고 천마도 되겠습니다. 다만 외부에서는 무림맹주와 천마가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어야겠지요. 조사님의 무공이 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뛰어난 무공을 접하면서 전생에서 막 무림맹주에 올랐던 때가 떠올랐다.
겁이 없던 시절이었고, 무공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때였다.
전생의 말년에는 끊임없이 출몰하는 사마외도를 척결하느라 지쳐서 새로운 무공을 익힐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새롭게 구양천으로 태어나고도 그저 천의검법을 다시 회복할 생각만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제는 화운룡이 아니라 구양천으로 살 생각입니다. 화운룡을 잊고 구양천의 시대를 여는 것이죠.”
“훌훌훌. 내가 네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호랑이를 깨웠구나. 그것도 좋지.”
목영청은 껄껄 웃고는 사라졌다.
난 곧장 명상에 잠겼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