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64화
64화. 물러서지 않는다.
무림맹 정보루.
부루주 육영서는 급히 제갈문현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
“척사검대주가 은밀히 루주님께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빨리요.”
“척사검대주가?”
“그렇습니다.”
“장소는?”
“무한현 외곽의 청풍루입니다.”
“으음, 청풍루라···.”
제갈문현은 신음성을 터트렸다.
“급한 일로 출타했던 그가 어찌 돌아왔단 말인가?”
“일단 가보시지요. 매우 중요한 일인 듯합니다.”
“그렇겠지.”
제갈문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루를 나와 청풍루로 향하는 그의 표정은 당황이 살짝 드러났다.
‘청풍루는 웬만한 무인은 알기 어려운 작은 주점인데. 더군다나 그곳은 전 맹주님과의 추억이 어린 곳이잖은가? 어허, 어찌 구양 대주가 청풍루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여러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청풍루.
무림맹 외곽에 위치한 작은 주점.
난 소면을 시켜 먹으며 제갈문현을 기다렸다.
바로 무림맹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이곳에서 그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인데요. 이곳에서 만자자고 할 줄이야.”
“앉으세요. 이곳 음식이 꽤 정갈합니다.”
내가 의자를 손짓으로 가리키자, 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빼고 앉고는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곳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도 무한현에 온 지 꽤 되었으니까요. 이곳 말고도 몇 군데 좋은 곳을 압니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제갈문현은 눈에는 의문이 일고 있었다.
이 시골구석의 작은 주점 청풍루는 전생에서 제갈문현과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어려운 현안에 대해 편안하게 토론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하던 추억이 어린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그를 불렀다.
또 원로 청명검이 관련되어 있다 보니 무림맹으로 들어가는 게 찜찜하기도 했다.
-군사님.
워낙 중요한 이야기였기에 식사하면서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네. 말씀하세요.
-무림맹을 나선 지 이틀 만에 기습을 당했습니다. 혈겸 늙은이들과 천구와 개떼, 흑산삼귀까지.
-무시무시한 자들이군요.
-모두 죽였습니다.
제갈문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볼 때 내 무위라면 충분히 그들을 죽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럼에도 미간이 찌푸려졌던 것은 전대거마들을 동네 파락호 취급하는 여유로운 태도 때문이었다.
특히 혈겸 늙은이라고 할 때는 어느 정도 안면이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은거한 지 십년이 훌쩍 넘은 혈겸삼웅과 이십대 중반의 구양세가 차남이라면 물리적으로 인연이 만들어지기 힘들었다.
제갈문현은 의문을 배제하고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군요.
-역시 놀라지 않는군요.
-척사검대주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청명검이 마지막으로 암습에 참여했습니다.
-청명검? 설마 무림맹 원로?
-그렇습니다.
-휴우, 그래서 무림맹으로 들어오지 않았군요. 알겠습니다. 은밀하게 원로원도 조사해보겠습니다.
-청명검을 심문했는데, 그가 ‘상관···’이란 말을 꺼내다가 죽었습니다. 아마도 주모자 이름을 말하려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웬 놈이 지풍을 날려 그의 입을 막은 것이지요.
-괜찮습니까?
-뭐가요?
-그 정도의 지공실력을 가진 자라면 대주를 노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
-헹, 그 정도로 대단한 놈은 아니었습니다. 보아하니 청과 비슷한 놈이더군요. 경공술, 은잠술이 뛰어나고 거기에 지공이 특화된 놈이었죠. 먼 거리에서 지풍을 날리고 그대로 도주했습니다. 추격하기엔 너무 멀어서 포기했죠.
-그걸 어찌 자신하십니까?
-웬만한 지공으로 이백년의 내공을 보유한 저를 어쩌진 못합니다. 만약 그가 나를 죽이려고 작정했다면 매우 가까이서 최대한 강력한 지공을 날렸어야 합니다. 멀리서 은밀한 지풍을 날려선 어림도 없지요. 청명검은 완전히 탈진하고 내공이 흩어졌으니 당한 것이지요.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조금만 더 주변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쳤다.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넘겨야지 과거에 자꾸 집착하면 일이 꼬이는 법이었다.
-대주께서는 혹 원로원주 상관현을 의심하십니까?
-솔직히 원로 청명검이 배신한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원로원주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무림맹에서 큰 파열음이 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청명검이 죽었으니 증인도 사라진 상태고요. 제가 최대한 다방면에서 은밀하게 조사해보겠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이 술만 마시고 다시 출발해야겠군요.
-암습에 실패했고, 청명검을 살해한 자가 도주했으니 분명 더 강한 고수가 암습에 나설 겁니다.
-뭐, 그거야 제가 알아서 할 일이고. 시체는 저들이 치웠겠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증거를 내버려둬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면을 먹는데 집중했다.
-척사검대를 데려가십시오.
-사적인 일에 그들을 동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거부하자, 제갈문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청을 데려가십시오.
-매우 위험한 일이라···.
-그녀는 보기보다 매우 강합니다. 적어도 위험에 처했을 때 제 한 목숨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대주께서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아마도 내가 연락이 끊어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난 그 생각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또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요구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척사검대는 정보루 직속 타격대니 제갈문현의 이런 요구를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그녀를 데려가면 정말 편할 것이다.
다만 천마교와 관련된 일인데,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그녀는 입이 무거우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주께서 사적으로 중요한 일인 듯한데, 그녀라면 믿고 데려가셔도 됩니다. 저 역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추궁할 생각은 없고요.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될 겁니다. 데려가세요. 그래야 내가 안심이 될 거 같습니다.
-명령이군요.
-네. 설마 직속상관의 명령인데 거부하진 않겠지요?
제갈문현은 껄껄 웃었다.
평소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보니 꽤 불안했나보다.
-그리고 곧장 구양세가에도 전서구를 날리겠습니다. 저들의 손길에 구양세가에 뻗쳤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하남성지부로 거처를 옮겨야겠지요. 저들도 하남성지부를 어찌하진 못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제갈문현의 꼼꼼한 배려에 감동받았다.
사실 내가 먼저 부탁하려고 했었는데, 그가 선제적으로 조치해주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역시 제갈문현이었다.
이런 제갈문현이라면 천마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림맹과 천마는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니까.
‘나중에 말할 기회가 오겠지.’
-청을 데려가지요. 그리고 수시로 보고하겠습니다.
-역시.
그제야 제갈문현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갈문현이 돌아간 후, 난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호되게 고생했고, 잠을 청하진 않았지만, 운기조식을 취한 것만으로도 피로는 싹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주점 앞을 거닐었다.
익숙한 느낌에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청.”
“어떻게 아셨어요? 저, 무공 많이 늘었는데요.”
청은 곧바로 포권하며 물었다.
“모를 뻔했지. 지난번보다 훨씬 은잠술이 발전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가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 은잠술로는 나를 속이지 못해.”
“다정님의 무위는 정말 상상이상이군요. 여기인가 싶으면 훨씬 더 높이 올라가 있으니까요.”
-청. 정주현에 들렀다가 천산으로 간다. 매우 어려운 일의 연속일 것이고, 내가 네 목숨을 보장해줄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돌아가려면 돌아가라. 말리지 않겠다.
일부러 냉정하게 명령투로 경고를 날렸다.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청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람은 절대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또 깨달았다.
고운 얼굴과 여리여리한 몸매를 지닌 그녀가 이런 깡다구를 지녔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빠르게 이동할 테니, 따라오도록!”
난 싱긋 웃으며 명령하고는 몸을 날려 북쪽으로 향했다.
“좋죠.”
그녀 역시 빠르게 몸을 날려 내 뒤를 따랐다.
확실히 그전보다 그녀의 경공술은 발전한 상태였다.
**
며칠 후.
장안 암흑사련.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척 공자가 분노를 터트리자, 방안은 갑자기 엄동설한의 겨울처럼 차갑게 식었다.
이에 만통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몸을 낮췄다.
“그들로 실패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추노(追老)도 두려워 그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 보시면···.”
만통지는 최대한 차분하게 추노가 보낸 서신을 분석하여 상황을 설명했다.
척 공자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구양천이 천의검법을 익혔다는 것도 이상하고, 설령 그랬다손치더라도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이르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그들이 모두 죽다니. 휴우,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군. 구양천 이놈이 튀어나온 이후로 모든 게 꼬이고 있어.’
“저어.”
“말씀하세요.”
척 공자의 말투는 조금 누그러졌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공자께서 직접 나서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무래도 구양천이 다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 구양천의 무위는 다정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다정이 산서성에 나타났을 때, 힘겹게 혈마도 섭유흔과 암흑일혈을 물리쳤는데, 지금은···.”
척 공자는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역시 마음속으로는 구양천과 다정이 동일인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말도 안될 만큼 강력해지자,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일었다.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천라지망을 펼치고 마지막은 척 공자께서 끝장을 내시지요.”
“굳이···.”
“정말 이런 불길한 느낌은 오랜만입니다. 화운룡이 흑도련을 무너뜨렸을 때 받았던 그 느낌이었습니다.”
흑도련 출신인 만통지는 화운룡에 의해 무너졌던 흑도련을 생각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척 공자 역시 찜찜했기에 구양천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문제는 만통지가 언급한 천라지망이었다.
소수의 정예무인을 데리고 갔다가 실패하면 모양이 빠지지만 수습할 수 있었다.
만약 천라지망을 치고도 실패한다면?
‘할아버지가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뱀처럼 차가운 분이시니까.’
척 공자는 암흑사련주를 생각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좀처럼 부하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촌로 같은 모습으로 편하게 대해줬기에 암흑사련의 무인들은 그를 존경하며 따랐다.
하지만 척 공자는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사악한 존재인지를.
“공자.”
“정예로 열 명을 추리시오.”
“공자. 그가 홀로 북상한다는 소식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는 절대로 홀로 움직이지 않을 테고, 그럼 그를 제거할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암습을 받고도 홀로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무위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반드시 천라지망을 펼쳐야 합니다. 그는 암흑사련의 가장 큰 위협입니다.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만통지는 절규하듯 조언했다.
고민하던 척 공자는 서탁을 두드리며 명령했다.
“최강의 무인 열 명을 추리세요. 암흑사련 최강무인 열 명이 구양천을 못 당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당장 추려서 보고하세요. 이번에는 내가 직접 그들을 이끌고 나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만통지는 더는 조언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는 조언을 그만두었다.
“저, 구양세가는···.”
“내버려두세요. 련주께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알겠습니다. 곧 준비해서 보고하겠습니다.”
“서두르세요.”
만통지가 포권하고 물러나자, 척 공자는 두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투명하고 흰 손이었다.
“구양천 네놈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구성에 이른 수라소수마공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십이성 대성을 이루지 못했지만, 구성이면 충분해. 더군다나 열 명의 고수와 함께 하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 척휘명이 구양천 네놈의 목을 반드시 취해주마. 반드시.”
척 공자 즉 척휘명은 주먹을 꽉 말아 쥐며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