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63화
63화. 내 앞을 막아서면 죽는다.
“오늘 네놈은 죽는다.”
청명검의 입에서 잔혹한 말이 튀어나왔다.
“맹을 배신한 가증스러운 놈. 내가 무슨 검법을 펼쳤는지 알 텐데. 네놈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난 그의 확신에 코웃음을 날렸다.
“천의검법. 정말 지긋지긋한 검법이지. 하지만 네놈이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네놈이 화운룡 수준으로 천의검법을 이해했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천재라도 연륜과 경험은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니까.”
청명검은 냉담하게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청명검, 천구 둘이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못할 것도 없지.”
“푸하하하. 개새끼 두 마리가 감히 이 화운룡에게 대들겠다?”
“이, 이 놈이 미쳤구나. 제가 화운룡이라 생각하다니? 그것도 단단히 미쳤어.”
청명검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짓더니 천구에게 눈짓을 했다.
동시에 천구는 몸을 움직여 내 뒤에 위치했다.
난 천구의 움직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청명검을 주시하며 말했다.
“너 같은 놈을 믿고 사마외도 토벌에 나섰던 과거의 내 행동이 원망스럽구나.”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죽어라!”
청명검이 호통치며 검을 뻗어 찔러오자, 천구 역시 검을 뻗어 등을 찔렀다.
나는 두 개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따땅.
동시에 두 개의 검을 쳐냈다.
마치 검을 쥔 몸이 두 개로 늘어나 검을 쳐내는 듯한 착각이 일었을 만큼 빠른 반격이었다.
“으헉.”
“으음.”
천구가 좀 더 충격을 받은 듯 쿵쿵 소리를 내며 네 걸음이나 물러났고, 청명검은 몸을 휘청거렸다.
난 천의검법 이초식인 쾌폭격살을 날렸다.
섬전벽력이 쾌(快)에 중점을 둔 초식이라면 쾌폭격살은 쾌에 중(重)을 더한 초식으로 내공의 소모가 훨씬 많았다.
쾅. 쾅.
귀혼검에 내공을 실어 연속으로 내리치자, 마치 거대한 망치로 쇠판을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걸 간신히 막아내는 청명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퉁퉁.
쾌폭격살을 날리면서 천구의 움직임을 느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왼손을 뒤로 뻗어 느껴지는 상대의 기운을 향해 직감으로 뇌정지탄을 날렸다.
“으악.”
몸의 일부가 관통 당했는지 천구의 입에서 구슬픈 비명이 터졌다.
그걸 본 청명검의 얼굴에 비로소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 이놈. 이제 보니 본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혀를 깨물지 말게. 그런다고 죽지 않아. 또 내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청명검은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옷은 찢어질 듯 크게 부풀어 올랐다.
나 역시 검을 똑바로 세웠고, 폭풍참륜을 떠올렸다.
세 개의 강기륜이 생겨났다.
“포, 폭풍참륜.”
청명검의 입에서 힘 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내 나이를 알기에 천의검법을 익혔어도 폭풍참륜은 익히지 못했다고 판단했던 듯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쿠우우우웅.
전력을 다해 폭풍참륜을 펼치자, 세 개의 강기륜은 세상을 박살내듯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청풍검을 향해 날아갔다.
마혁기에게 펼쳤을 때와는 위력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크어어어억.”
쿠쿠쿠쿠쿠.
모든 것을 부술 듯한 강기륜의 위력에 강철같이 단련된 그의 몸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완전히 탈진 직전에 이르렀음을 확인한 나는 강기륜을 회수했다.
청명검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난 몸을 틀어 천구를 바라보았다.
천구의 두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졌고, 검을 든 오른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감히 덤벼들지 못했고 도망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였다.
폭풍참륜으로 청명검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얼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퉁퉁.
뇌정지탄을 날려 마혈, 아혈을 그대로 찍은 후 몸을 돌렸다.
청명검은 대항할 의지를 드러내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믿어지지 않는군.”
“뭐가?”
“도대체 어떻게 수련했길래 화운룡만큼 성취를 이뤘단 말인가? 내공이 부족할 뿐이지 성취도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구나.”
“알 필요 없다. 네놈을 무림맹으로 끌고 가겠다.”
난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뇌정지탄을 날려 마혈과 아혈을 찍었다.
또 청명검은 부상이 심해 출혈이 있었기에 외상치료를 했다.
이 둘을 심문하면 무림맹의 핵심부에 숨어있는 세작을 잡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청을 데려왔으면 편했을 텐데.’
아쉬움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청명검과 천구를 양 옆구리에 끼고는 무림맹으로 몸을 날렸다.
전투가 일었던 공터에는 을씨년스러움만 남았다.
**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무림맹으로 달려갔다.
중간에 누군가가 막아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방해자는 없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아직 이틀은 더 달려가야 무림맹이었다.
‘이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군. 하긴 그들이 생각하는 나는 뛰어난 무위를 지닌 척사검대주일 테니까. 내가 화운룡 급의 무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전대거마를 싹 끌어 모았을 것이야. 어쩌면 련주가 나타났을지도 모르고. 소름이 끼치는군.’
난 계속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경공술을 펼쳤다.
‘젠장할. 큰 길을 따라 이동할 걸.’
뒤늦은 후회였다.
최단시간으로 가고자, 무림맹을 출발하여 인적이 드문 평원을 직선으로 날아갔는데 이들이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돌아올 때도 인적이 드문 평원을 지나야 했다.
그렇기에 또 다른 매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웅.
세 명의 무인이 포위하며 공중에서 내려섰다.
털썩.
난 청명검과 천구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들을 응시했다.
복면을 썼지만,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실로 대단했다.
“설마 우리까지 나서게 하다니···실로 놀라운 놈이로구나.”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눈에서 자신감이 읽혀졌다.
‘내가 폭풍참륜으로 청명검을 제압하는 과정을 봤다면 절대 이런 자신감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곳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가 명령을 받고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 호흡이 매우 안정된 것만 보더라도 이 근처에 있던 자들이 틀림없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단숨에 전력을 쏟아 부어 이들을 제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쩌어어어어엉.
쒜에에에에엑.
“헉. 이, 이기어검술.”
바람 빠지는 소리가 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들은 급히 검을 들어 막으려고 시도했지만, 이기어검술로 운용되는 귀혼검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퍽. 퍽.
투툭.
두 명의 몸을 관통한 귀혼검은 마지막 남은 자의 목을 날렸다.
크게 선회한 귀혼검은 얌전히 내 손에 쥐어졌다.
난 그 자리에서 재빨리 일주천하여 들끓어 오르는 진기를 진정시켰다.
아직은 마음 놓고 이기어검술을 펼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그런지 지금처럼 과하게 펼치고 나면 속이 뒤집어지곤 했다.
일주천하다 공격받으면 굉장히 위험한데, 그리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거나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랐기에 최대한 빨리 일주천하고 살아남은 자에게 다가갔다.
쉭. 쉭.
귀혼검이 몇 번 허공을 가로지르자, 그들의 복면이 찢겨져 날아갔다.
“흑산삼귀.”
귀주성 흑산일대에서 활동했던 전대거마였다.
내가 전생에서 사마외도를 뿌리 뽑겠다고 난리칠 때는 어둠속으로 숨어들었던 자들이었다.
확실히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이들은 들판의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박멸되지 않고 살아났으니까.
“네, 네놈은 누구냐?”
“척사검대주 구양천. 알고 오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고 누가 사주했느냐?”
“모른다.”
“그럼 죽어.”
퉁. 퉁.
그대로 뇌정지탄을 날려 두 명의 목숨을 날렸다.
또 추격자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이들을 취조할 시간도 없었고, 이미 천구와 청명검을 확보했으니 현재 이들은 쓸모가 없었다.
그렇기에 단숨에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
“컥. 컥.”
청명검이 몸을 떨며 피를 토했다.
급히 마혈을 풀어주자, 그는 몸을 새우처럼 웅크렸다가 펴기를 반복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내상과 외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데려왔고 바닥에 내려놓은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더 데려가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청명검에게 필요한 건 안정이었다.
“아는 대로 말하라. 누구냐?”
“내가 말할 것 같으냐?”
“말하게 될 거야.”
지체 없이 그의 혈을 찍어 분근착골을 시행했다.
동시에 혀를 깨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아혈과 마혈을 동시에 찍었다.
“말할 준비가 되면 눈을 깜빡여. 그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버텨봐야 너만 손해야. 약속하지. 불고나면 깨끗하게 죽여주겠다고. 끝까지 거부하면 죽을 때까지 분근착골을 겪어야 할 거야.”
난 무심한 표정으로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
살벌한 경고에 청명검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청명검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고통을 그의 의식을 억죄어갔다.
결국 그는 눈을 깜빡였다.
혈을 찍어 고통을 멈추게 했다.
“말하라. 누구냐?”
“제발 이대로 죽여다오.”
“약속하지. 말하라.”
“상관···.”
퉁.
퍼퍽.
지공이었다.
청명검이 힘없이 죽었다.
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감을 극도로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젠장할.”
상대는 멀리 도망치고 있었는데,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였다.
또 누가 매복해있을지도 모르고, 도망친 놈이 나를 유인하는 계책일 수도 있었기에 추격을 포기했다.
‘상관이라? 설마 상관현?’
원로원주 상관현.
내가 전생에서 무림맹주가 될 때, 상관현은 맹주직을 내놓고 원로원주가 되었다.
현재 그는 100세가 넘은 고령이었지만, 여전히 왕성한 체력으로 원로원주를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명검이 원로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가 말하려던 인물은 상관현일 가능성이 컸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무림맹에 첩자가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전 무림맹주이자 원로원주인 상관현이 첩자라면 일이 심각해진다.
전 무림맹주이며 원로원주인 그가 뭐가 아쉬워서 암흑사련과 손을 잡았을까?
‘그는 무림맹에 불만을 품고 있다. 겉으로 그걸 드러내지 않았지만, 분명히 불만을 품고 있어.’
상관현은 자의로 무림맹주직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선의로 나를 무림맹주로 추대하고 원로원주로 물러났었다.
하지만 그건 무림맹의 여론이 그를 떠나 내게로 향했고, 버텨봐야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상황이 되자 그리 한 것이다.
솔직히 그 이후에도 상관현과 나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다.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신중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무림맹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퉁퉁.
뇌정지탄을 날려 천구를 죽인 후, 곧바로 무림맹으로 몸을 날렸다.
청명검과 천구를 양 옆구리에 끼고 경공술을 펼쳤을 때는 다소 늦었었다.
하지만 이들을 버리고 전속력으로 경공술을 펼치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휘유, 어마어마한 놈이었군. 오판을 했어.”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속에서 비쩍 마른 노인네가 툴툴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구양천이 사라지고 한참 뒤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애초부터 이곳에 숨어 있었거나 청명검을 죽인 놈일 가능성이 컸다.
또한 발각되지 않은 걸 볼 때, 경공술과 은잠술에 특화된 무인으로 볼 수 있었다.
그는 무림맹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굉장하구나. 설마 혈겸을 죽이고 천구와 청명검, 흑산삼귀까지 제압했을 줄이야. 천의검법에 이기어검술이라···. 이거야 원, 화운룡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군. 심각해. 그것도 아주 많이. 이건 척 공자께서 직접 나서셔야해.”
그는 음울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다.
실로 놀라운 경공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