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59화
59화. 선순환.
주작단주실.
“무슨 일이죠?”
주작단으로 돌아온 소양혜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현무단주 강우충을 보자 경계심을 바싹 드러냈다.
무림맹 사대단주로서 친분이 있었지만, 이렇게 강우충이 저녁때 홀로 찾아올 만큼 친분이 깊진 않았다.
“할 이야기가 좀 있소.”
강우충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소양혜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 차를 내주었다.
“제가 바빠서요. 용건만 짧게 말하세요.”
“그가···도움을 주었소?”
“무슨 말이에요?”
“구양 대주에게 무공에 대한 조언을 받으러갔잖소? 그의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되었냐 이 말이오.”
소양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강우충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알 바 아니잖아요.”
냉랭한 그녀의 반응에 강우충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겠소. 소 단주께서도 그간 무공이 정체되어 있어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소. 그래서 구양 대주에게 조언을 구했을 것으로 추측했고. 나 역시 무공에 대해 고민이 많소. 그래서 소 단주께서 의견을 구하려고 이렇게 왔소.”
“강 단주의 이런 모습 의외네요.”
“나라고 소 단주와 별반 다르지 않소. 만약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 역시 그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오.”
“그럼 가면 되잖아요.”
“소 단주와 삭 단주는 직접 그와 비무를 했으니 뭔가를 느꼈을 테고, 염 단주는 그가 무공을 펼쳐 보였소. 하지만 그는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소. 그래서 망설여지오. 하지만 소 단주가 그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준다면 찾아가 도움을 청할 생각이오.”
강우충은 힘을 주어 말했다.
그에게서 강해지고 싶다는 의지가 읽히자, 소 단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가봐요. 도움이 될 거예요.”
“소 단주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소?”
“솔직히···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폭렬홍살장은 물론이고 내공심법까지 정확히 알고 조언해줬어요. 수련해서 과실을 따내는 건 제 몫이겠죠. 결과를 떠나 조언 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요.”
“잘 모르겠다는 뜻이 무엇이오?”
“그분이 한 조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죠. 물론 가야할 방향을 잡았으니,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제 말이 도움이 됐나요?”
“고맙소.”
강우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소양혜에게 포권하고는 그녀의 집무실을 나섰다.
“의외네. 강 단주가 저렇게까지 움직일 줄은 몰랐어. 구양 대주님의 등장으로 무림맹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야. 이 소양혜가 밀려날 순 없지.”
소양혜는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고는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 연공실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강우충은 척사검대를 방문했다.
“기다리고 있었소.”
난 싱긋 웃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무림맹주로 재직하면서 사대단주의 성격과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삭천혁이나 염무상보다 강우충이 먼저 오리라 확신했다.
물론 이렇게 빨리 오리라곤 예상치 못했지만.
“내가 올 줄 알았소?”
“그렇소. 최근에 무공이 정체되어 고민이 많다고 들었소.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소.”
“허어, 무한현 시내에 나가 돗자리를 깔아도 되겠소.”
“하하하하.”
강우충의 툴툴거리는 말을 들으며 난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충은 내가 크게 웃자, 미간을 찌푸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그걸 풀었다.
“아, 오해는 마시오.”
“삭 단주와 염 단주의 검법을 구양 대주께서 시연해보일 때, 그들이 매우 놀랐소. 나 역시 그렇고. 그래서 말인데···.”
“강단주의 무공도 잘 알고 있소.”
“정말이오?”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강우충을 향해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고 있소?”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림에서 내가 모르는 무공은 거의 없소. 사파의 무공도 중요한 부분은 꿰뚫고 있고. 특히 정파의 무공은 나만큼 해박한 사람도 드물 것이오.”
강우충은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만약 이런 말이 다른 자에게서 나왔다면 욕설을 퍼부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 전적을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사대단주의 무공을 직접 펼치는 걸 보았기에 멀뚱히 쳐다보며 반박하지 못했다.
“일단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그대의 독문검법인 낙일검법(落日劍法)을 펼쳐 보이겠소. 그 다음에 이야기해봅시다.”
조언을 구하러 온 강우충보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암흑사련과의 전투가 언제 벌어질지 몰랐기에 이 기회에 강우충에게도 한 단계 올라서도록 조언해줄 생각이었다.
강우충은 내가 펼치는 낙일검법이 어떨지 매우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귀혼검을 뽑아든 나는 천천히 낙일검법을 펼쳤다.
낙일검법은 석양이 질 때 생기는 노을을 보며 착안한 검법으로 매우 화려했다.
쉬이이이익.
슝. 슝.
귀혼검은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고, 무언의 적을 날카롭게 찔렀다.
빠르고 화려한 검초는 열개로 늘어났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환상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오오.”
강우충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쏟아냈다.
완벽한 낙일검법이었는데, 강우충은 그걸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완벽하게 낙일검법을 펼치려고 노력했고, 그걸 바탕으로 현무단주에 올랐다.
매우 강력한 검법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변화를 주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었다.
한데 타인이 자신의 독문검법을 완벽하게 펼쳐 보여주자, 그간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일검법 하나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난 충분히 강하다. 낙일검법도 그렇고.’
강우충은 본인이 사마외도의 무리가 되어 낙일검법을 상대해야한다고 생각해보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리 강력한 낙일검법을 놓고 괜한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내가 펼치는 낙일검법 시연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얍.”
마지막 초식이 펼쳐졌다.
난 공중으로 도약하며 귀혼검으로 가상의 상대 머리를 쪼갤 듯 내리쳤다.
매우 빠르고 강력한 초식으로 강우충이 펼쳤을 때,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대단합니다.”
강우충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내 검법이 아니라 그대의 검법이오. 낙일검법은 강 단주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오. 초식의 화려함이 강력함을 덮고 있기에 평가가 박했고, 강 단주 역시 세인들이 만들어 놓은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소. 자신감을 가지시오. 이게 내 조언이오.”
“참으로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가슴속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강우충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했다.
그 역시 소양혜처럼 말투가 정중하게 바뀌었다.
그건 강자에 대한 존중의 표시였다.
나도 그에게 포권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떻게 무공을 이리 많이 알고 있느냐? 이런 질문은 하지 마시오. 설명하기 힘드니까.”
강우충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왜 소 단주와 제게 큰 도움을 주십니까?”
“무림맹이 위기에 처했으니까.”
“겨우 그것뿐입니까?”
“내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없소. 강 단주는 충분히 강하니, 무공에 확신을 가지시오. 의심하지 말고. 그러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을 것이오.”
강우충에게 무공의 장단점을 지적해주기 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을 조언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강우충은 생각이 많았다.
고수의 비무는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기에 생각이 많다는 건 안 좋은 요소였다.
그래서 빠르게 결단할 수 있도록, 좀 단순해지도록 조언을 해주었다.
“아아, 이거 부끄럽습니다.”
강우충은 고개를 숙였다.
“비무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좋소.”
난 그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하고는 귀혼검을 뽑아들었다.
강우충은 긴장한 표정으로 내 맞은편에 섰다.
내가 펼치는 낙일검법을 보고 확신을 얻었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에서 생각이 많이 사라졌고, 이기겠다는 강력한 의지만이 드러났다.
“하압.”
강우충의 검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코앞으로 밀려들어왔다.
화려함 속에 숨은 쾌초.
순간적으로 검의 내 얼굴을 베고 지나갔다.
동시에 귀혼검의 그의 가슴을 찔러갔고, 강우충은 놀라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는 비로소 내 얼굴을 벤 게 아니라 허상을 베었음을 깨달았다.
‘평범한 보법이 아니다.’
강우충은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잠시 강우충은 다시 달려들었다.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망설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척사검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건물 위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둘은 멀리 떨어진 척사검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삭천혁과 염무상이었다.
“굉장하군요. 구양 대주가 저 정도라니.”
“그것보다 강 단주를 보게. 구양 대주가 뭘 어떻게 조언했는지 몰라도 망설임이 사라졌어.”
“그렇군요.”
염무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비록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둘은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비무의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어제 강 단주의 행동이 수상쩍더라니. 결국 구양 대주를 찾아가 조언을 구할 심산이었군요.”
“어쨌든 그게 성공한 듯 보이는군.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낙일검법은 대단해. 화려함에 쾌, 강을 갖췄다니. 비록 천하십대검법에 드는 검법은 아니지만, 대단한 검법임에는 틀림없어.”
“그렇죠.”
둘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시선은 비무에 고정되어 있었다.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들의 눈빛은 매우 날카롭게 빛났다.
“자신감을 찾은 걸까요?”
“그렇다고 봐야지. 망설임이 줄었잖아.”
“조심하십쇼. 강 단주가 대형의 자리를 노릴지도 모르니까요.”
“사대단주의 수장이란 자리에 미련은 없네. 나보다 강한 자가 있다면 물러나야지.”
삭천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염무상은 힐끔 삭천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절대 강우충이 삭천혁을 넘어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의 시선은 다시 비무로 향했다.
‘대형은 구양천이 칠할을 숨겼다고 말했었어.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실로 놀라운 자다. 도대체 저 어린 나이에 뭔 짓을 했길래 이런 경지에 올랐을까?’
생각할수록 답답해지는 염무상이었다.
“끝났군.”
염무상이 시선을 돌리니 비무는 끝난 상태였다.
“이제 어떡하죠?”
“뭘 어떡해? 자네도 조언을 구하고 싶으면 시간을 내서 찾아가봐.”
“대형은요?”
“난 이미 겪어봤잖아.”
담담히 말하는 삭천혁을 보며 염무상은 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구양천을 극구 추켜세우는 삭천혁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심정이 이해되었다.
‘아마도 구양천은 대형보다 한수위일 것이다. 대형도 강우충이나 소양혜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해결해주지 못했어. 자존심 강한 저 둘이 순순히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건 구양천의 무위가 절대적이란 말이다. 어떻게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저 경지에 올랐을까? 타고난 천재는 어쩔 수 없단 말인가?’
염무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삭천혁이 그의 등을 다독이며 격려해주었다.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게.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그건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될 뿐이야.”
“제가 뭐라고 했나요? 이거 괜히 혼나는 아이가 된 기분이군요.”
“하하하. 그렇다는 거지. 자, 비무도 끝났으니 돌아가세. 구양 대주를 찾아가려면 찾아가고.”
삭천혁은 몸을 날려 적호단으로 돌아갔다.
염무상은 적호단과 척사검대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얼마 후.
그는 몸을 날려 건물 위에서 내려온 후, 천천히 척사검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