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57화
57화. 천외천(天外天)의 고수.
“나, 척사검대 부대주 마혁기요.”
마혁기는 초췌해진 얼굴로 급히 무림맹 패를 내밀었고, 그는 무림맹 정문을 유유히 통과하여 사람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도법을 수련하던 그는 무한현 시내로 나왔다가 우연히 구양천과 소양혜의 비무소식을 전해 듣고는 만사를 제쳐두고 무림맹으로 달려왔다.
급하게 달려오다 보니 그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비무대.
무림맹 중앙의 연무장에 비무대가 설치되었고, 주변에는 무림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직 구양천과 소양혜가 도착하지 않았기에 무림인들은 서로 대화하며 누가 유리할지 점쳤고, 심지어 내기를 걸기도 했다.
“요즘 구양 대주님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권장으로는 소 단주님에게 안 되지.”
“하긴 괜히 사파무리들이 혈나찰이라 부르면서 치를 떨겠어. 내가 작년에 무림맹에서 혈궁토벌할 때 참전한 적이 있거든. 그때 소 단주님이 싸우는 걸 봤는데···옆구리가 뜯겨나가고···어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 이번 비무는 무조건 소 단주님의 승리야.”
“왜 권장으로 대결한대? 검으로 하면 구양 대주님이 유리한데.”
“요즘 잘나가잖아. 자신감이 지나쳐 오만해진 거지.”
“하긴. 이번에 높던 콧대가 좀 꺾이겠군. 갑자기 굴러들어왔잖아.”
단 소속으로 보이는 무인들은 저마다 의견을 냈는데, 대부분 이와 유사했다.
특히 소양혜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무인들은 무조건 소양혜의 승리를 외쳤다.
삭천혁과 구양천의 비무를 지켜보았던 무인들도 권장대결이라는 말을 듣고는 소양혜가 승리하리라 생각했다.
‘불안한데.’
마혁기는 구양천을 믿었지만, 부정적인 말을 듣다보니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
그 역시 소양혜가 얼마나 독종이고 뛰어난 무위를 지녔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되었다.
‘검을 들고 싸우면 무적이신데···하아, 왜 하필 권장으로. 도대체 대주님은 무슨 생각이신 거야? 왜 쉬운 길을 내버려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셨는지.’
마혁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 부대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마혁기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황엽이 그를 알아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맞군요. 어떻게 오셨소이까? 조금 늦으신다고 들었는데요.”
“아, 황 부대주셨군요. 비무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달려왔소이다.”
마혁기는 포권하고는 황엽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째서 이런 비무가 이뤄졌소?”
“어제 소 단주님께서 찾아오셨고 즉석에서 비무를 약속했소. 대주님께서는 어제 하루 종일 비무를 대비하여 연공실에 계셨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자신감이 넘치시는 표정으로 연공실에서 나오셨으니까.”
황엽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자 마혁기는 안심이 되었다.
구양천을 가장 잘 아는 황엽이었기에 강한 신뢰가 생겼다.
“마 부대주께서는 무공이 고강하시다고 들었는데, 어찌 불안해하시오? 대주님을 믿지 못하시는 것이오?”
“그건 아니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치는 게 싫을 뿐이오.”
황엽은 마혁기를 다시 보았다.
그는 그저 무공이 강할 뿐, 거칠고 독선적인 성격이라 상대하기 거북한 무인이란 소문이 났다.
그렇기에 황엽도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부드럽고 여린 구석이 있었다.
이것에 황엽의 마음을 움직였다.
‘역시 대주님께선 사람을 볼 줄 아는군. 척사검대에 큰 힘이 되겠어.’
둘은 더 대화를 나누지 않고 비무대로 시선을 옮겼다.
휘리리릭.
소양혜가 우아한 동작으로 비무대에 내려섰다.
“우와와와!”
고강한 무위.
예쁜 얼굴과 몸매.
주작단주.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무인들은 그녀의 등장에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그녀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행동했다.
“헛참. 저 성격은 여전하군.”
마혁기가 혀를 쯧쯧하고 찼다.
황엽은 그를 말리려다가 내버려두었다.
주위에서 마혁기에게 눈을 부라렸지만,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후우우웅.
그때 나는 소양혜의 반대편에 내려섰다.
“주작단주. 오래 기다리셨소?”
“아뇨. 방금 전에 왔어요. 그건 그렇고 괜찮으시겠어요? 구양 대주는 검에 특화되었잖아요. 지금이라도 검을 쓰시겠다고 하면 받아들일게요.”
소양혜는 배시시하고 웃으며 마치 적선하듯 말했다.
그녀는 일각에서 터져 나오는 불평등한 비무라는 의견을 억누르고, 그녀 자신이 관대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또 이 제안을 내가 절대로 수락하지 않을 것이란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녀의 속내가 훤히 보였다.
“여기 계신 무인들께서는 권장비무를 보기 위해 모이셨소. 또한 척사검대의 대주로써 어찌 약속한 것을 번복할 수 있겠소? 난 검을 포기하고 권장으로 비무하겠소.”
“역시 척사검대주께서는 멋진 무인이세요.”
좀 얄밉긴 했지만, 난 싱긋 웃고 말았다.
여기서 다른 말을 꺼내봐야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대신 확실하게 소양혜를 무너뜨려서 단주들을 휘어잡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는 화운룡이 펼쳤던 무위의 칠할은 회복한 상태였기에, 독하게 마음먹으면 소양혜를 꺾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이기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겠다. 짧은 시간에 도전의지를 꺾어주마. 암흑사련의 발호가 임박했는데, 이런 식으로 푸닥거리며 시간을 끌 순 없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상대란 걸 알려주마.’
적당히 소양혜를 물리쳤을 때, 그녀가 다시 도전하거나 다른 단주들이 도전이 이어진다면 매우 피곤해질 것이다.
또 제갈문현의 말대로 암흑사련과 전투가 벌어지면, 이들을 이끌고 대장이 되어 출전해야 했다.
그렇기에 천외천의 무공을 보여주어 감히 반발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복종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하오.”
난 정중하게 포권하고는 오른손으로 뒷짐을 지고 왼손을 살짝 앞으로 뻗었다.
이런 행동을 예상치 못했는지 소양혜의 얼굴이 찌푸려졌고, 무인들은 술렁거렸다.
삭천혁은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끝났군. 저건 오만함에 기반하여 나오는 자세가 아니야. 소양혜 정도는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지. 여기서 무너지면 소양혜를 비롯한 우리 네 개 단주는 앞으로 구양천에게 큰소리치기 힘들 것이다.’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자, 강우충과 염무상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둘도 구양천이 이런 방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권장의 대가인 소양혜를 상대로 허세를 부린다?
목숨이 몇 개가 아닌 이상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구양천의 모습은 자신감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삭천혁을 비롯한 단주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 것이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물론 가장 당황한 이는 소양혜였다.
“왼손만으로 상대하겠소. 그런 의미에서 오른손을 뒷짐 진 것이오.”
여유로운 내 대답에 소양혜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물들었다.
이제까지 누가 그녀 앞에서 이토록 오만하게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본녀를 기망하지 마세요.”
“비무해보면 기망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오. 먼저 들어오시오. 아니면 내가 들어가겠소.”
“용서하지 않겠어요!”
그녀의 쌍장이 타오를 듯 붉게 물들더니 날카로운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폭렬홍살장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폭렬홍살장(爆烈紅殺掌).
소양혜의 독문장법으로 마치 검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와 손을 감싸는 특징이 있다.
소양혜는 이런 점을 십분활용하여 적 속으로 파고들어 근접전을 펼쳤고, 상대하는 적의 옆구리를 비롯하여 몸을 닥치는 대로 뜯어내곤 했다.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쾌에 중점을 둔 그녀의 보법은 둔탁했지만, 눈으로 쫓기 힘들만큼 빨랐다.
동시에 그녀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팡. 팡.
난 날카롭게 쏟아져 들어오는 그녀의 강기를 여유롭게 쳐냈다.
그녀의 수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내공에서 그녀를 앞섰기에 적어도 강기대결에서 밀릴 일은 없었으므로 방어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부우우욱.
그녀의 왼손이 갈고리처럼 오므려지더니 오른쪽 옆구리를 훑었다.
그러면서 옷이 찢겨져 나갔다.
“이럴 수가?
당한 건 나였지만, 놀란 건 그녀였다.
찢겨진 옷 사이로 백색피부가 드러났는데,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작심하고 상대의 옆구리를 노려서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방어에만 집중하던 내가 공격으로 전환했다.
퉁퉁퉁.
뇌정지탄을 연속으로 날리자, 소양혜는 대경실색하여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어 강기를 날렸다.
펑펑펑.
“윽.”
소양혜는 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받으며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지공에 밀리자, 그녀는 대경실색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들어 나를 찾았다.
순간 공중으로 떠오른 나를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이 떠올랐다.
‘빠르다.’
비무에서 공중에 몸을 띄우는 것은 금기였다.
공격에 매우 취약해지기 때문이었다.
소양혜도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모든 불리함을 상쇄하는 빠르기에 그녀는 다시 강기를 날렸다.
장심에 내공을 끌어 모아 제대로 발출해야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쿠아아아앙.
그럼에도 그녀의 강기는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나 역시 피하지 않았다.
그대로 왼손을 쭉 뻗었다.
왼손에서는 날카로운 예기가 가득 담긴 홍색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설마? 마, 말도 안 돼!”
소양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콰콰콰쾅.
두 강기가 부딪치면서 공중에서 대폭발이 일어났고, 내가 발출한 홍색강기는 그녀가 발출한 강기를 집어삼킨 후, 그녀의 몸을 덮쳤다.
“꺄아아아악.”
소양혜는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막으려고 했지만, 홍색강기는 너무나도 강했다.
홍색강기를 정통으로 맞은 소양혜는 그 충격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입으로 피를 흘리며 기절했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지며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슈우우욱.
누군가가 급히 몸을 날려 그녀를 받아냈다.
삭천혁이었다.
“승부가 났소.”
“알고 있소.”
난 천천히 공중에서 내려왔다.
“우와와와와!”
“구양 대주님. 천세!”
내가 승리하자 척사검대원을 중심으로 크게 함성이 일었고, 이는 곧바로 주변의 무인들에게 전달되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무인들도 곧 ‘구양천’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열세라 생각했던 내가 판정우세승이 아니라 그녀를 기절시키며 확실하게 승리하자, 그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던 것이다.
“으으음.”
삭천혁이 응급조치를 취하자, 소양혜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녀의 시선을 내게로 향했다.
“구양 대주. 지금 펼친 무공이 포, 폭렬홍살장. 맞나요?”
그녀의 질문에 주변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타인의 무공을 훔쳐 배우는 건 금기 중의 금기였다.
“구양 대주. 사실이오?”
삭천혁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질문했다.
“사실이오.”
“이럴 수가? 무공을 도둑질하다니.”
주변이 크게 술렁거리자, 염무상이 발끈하고 나섰다.
“어찌 척사검대를 맡은 자가 무공을 도둑질한단 말이오? 그러고도 당신이 무림맹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염 단주. 똑바로 들으시오. 폭렬홍살장은 처음부터 소 단주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 훔쳤다고 단정하시오. 또 내가 훔쳤다는 증거가 있으시오?”
“그렇지 않다면 어찌 폭렬홍살장을 펼쳤단 말이오?”
“이걸 보시겠소?”
난 왼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멀리 있던 귀혼검이 날아와 내 손에 잡혔다.
경악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으헉.”
염무상은 너무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내가 삭천혁의 독문검법은 물론이고 염무상의 독문검법을 완벽하게 시연했기 때문이었다.
시연을 마친 나는 귀혼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나를 그대들의 틀 안에 가둬놓고 판단하려고 하지 마시오. 그대들에겐 절세의 무공이겠지만, 내게는 그저 여러 무공 중 하나일 뿐이오.”
“어, 어찌 그걸 익혔소?”
“검을 섞거나 한번 보고 나면 익힐 수 있소. 구결을 모르니 완벽하다곤 할 수 없지만, 위력은 비슷하오. 물론 절세신공이라면 어렵소. 하지만 이 정도의 무공은 이렇게 흉내 낼 수 있소. 이제 이해가 되셨소?”
염무상과 강우충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들은 삭천혁이 말이 옳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그 이상의 천외천고수란 걸 알아차렸다.
삭천혁의 표정은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이번 비무에서 소양혜가 패배하면 동급이 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되고나니 받들어 모시게 생겼다.
그만큼 오늘 큰 충격을 받았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소양혜는 힘겹게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하고 패배를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