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51화
51화. 대처방안을 논의하다.
맹주전의 분위기는 비장했다.
화운룡 맹주가 이끌 당시에 비하면 다소 약해졌다곤 하지만, 이제까지 사마외도의 발호를 모조리 물리쳤던 무림맹이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무림을 이끄는 무림맹원이라는 자부심이 서려있었다.
“제갈 군사.”
양천린이 근엄한 표정으로 나직하게 부르자, 제갈문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무인들을 둘러보고는 벽에 걸린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중원지도가 내려와 벽에 걸렸다.
“장안현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암흑사련은 암흑마교, 혈천교, 흑도련, 사황련의 연합체로 규모가 매우 방대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들은 낙양을 기준으로 서쪽과 북쪽에 세력을 펼치고 있지만, 련주의 정체를 비롯하여 조직체계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현재 파악 중에 있습니다.”
제갈문현은 혈삼악을 취조하여 상당한 첩보를 알아낸 상태였지만, 다른 첩보와 비교하여 유용한 정보를 만들어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암흑사련의 중요하고 확실한 부분만 짚었다.
무인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제갈문현에게 집중했다.
“현재 암흑사련이 우세한 지역은 장안현이 위치한 섬서성을 비롯해 산서성, 감숙성, 청해성 일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갈문현은 장안현을 중심으로 둥글게 배치된 네 개 성을 짚었다.
“이 네 개 성은 험준한 산악지대와 거대한 분지로 구성되어 중원에서 접근이 힘들어 예로부터 사마외도의 세력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청해성에는 곤륜파, 감숙성에는 공동파, 섬서성에는 종남파, 화산파가 있습니다. 좀 무리한 분석 아닙니까?”
적호단주 삭천혁이 의문이 표시했다.
제갈문현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개 성의 중심은 섬서성입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섬서성에 사황련, 흑도련이 존재했었지요. 암흑마교와 혈천교는 청해성이고요. 그들의 세력이 매우 강성했을 때, 삭 단주께서 언급한 문파가 무너진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주도권은 사마외도에게 넘어갔음을 부정하진 못할 겁니다.”
“으음.”
“이번에도 그와 비슷합니다. 암흑사련의 출범을 계기로 이제까지 음지로 숨어들었던 사마외도의 무리들이 양지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그들을 어찌 대처할 생각이십니까?”
“아직 저들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만큼, 전면전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들도 무림맹의 힘을 알고 있기에 함부로 나서지 못할 테고요. 당분간은 암흑사련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면서 사마외도의 무리들이 발발하지 못하도록 억누르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무인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여기에 모인 무인들은 화운룡과 함께 사마외도를 척결하는데 앞장섰었다.
그들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루면서 그 참혹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절로 표정이 굳어져버렸다.
하지만 누구도 좌절하거나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무림맹원이라는 자부심으로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무림맹이 있는 호북성에도 사마외도의 무리가 문파를 개설할 겁니다. 눈엣가시처럼 거슬리겠지만, 그들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한 공격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암흑사련이지 각지에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자잘한 사마외도의 무리가 아닙니다.”
제갈문현은 마지막으로 당부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무림맹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자잘한 사마외도문파는 금방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문파를 치더라도 무림맹도 일정한 손실이 불가피했기에 온전한 전력을 유지하고자 이런 당부를 한 것이다.
실내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화 맹주님이 계실 때는 사마외도 세력이 발발하면 곧바로 정예부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갈 군사께서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괄괄하기로 소문난 청룡단주 염무상이 나섰다.
하지만 제갈문현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반박에 나섰다.
“염 단주께서는 광검자, 혈마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비록 그들과 싸워본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않았습니다.”
“저 역시 염 단주와 그들의 실력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싸운다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지요. 문제는 암흑사련에 그런 전대거마나 정사지간의 거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제갈문현의 논리적인 설득에 염무상은 입을 다물었고, 염무상을 따라 반발하려던 강경파 무인들도 입을 다물었다.
제갈문현은 이후 그들을 다독여 기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결국에는 우리 무림맹이 승리할 겁니다. 이제까지 발호했던 세력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당시 천하를 떨게 만들었지만, 결국 무림맹에 의해 궤멸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여러분들께서는 수련을 통해 힘을 기르는데 집중해 주십시오. 그들을 파악하면 그때부터 우리의 공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나는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많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들은 강력한 의기를 품고 있었다.
양천린은 손짓하여 제갈문현을 앉히고는 입을 열었다.
“제갈 군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오. 암흑사련을 격멸하려면 장안현의 본단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우리는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오. 그 전에 발호했던 세력과 암흑사련을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있소. 이전에는 자신 있게 모습을 드러내고 싸웠다면, 이번에는 모든 걸 숨기고 있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연전을 선택했소. 여러분들께서는 수련에 박차를 가해주시오. 그게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오. 기회가 왔을 때, 한 번에 저들을 꺾어 버립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인들은 일제히 맹주령에 복명했다.
양천린은 다소 침체될 수 있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그들을 격려한 후에 돌려보냈다.
“척사검대주.”
모두 물러갈 때, 양천린이 나를 불러 세웠다.
“부르셨습니까?”
내가 공손하게 포권하자, 양천린은 가까이 불러 앉혔다.
“웬만한 무인은 한마디씩 하는데, 어째서 조용히 있으셨는가? 여기서 자네만큼 발언권이 강한 자가 누가 있다고.”
“글쎄요.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적절하게 결심하셨으니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듣기만 했습니다.”
양천린은 뭔가 미적지근한 느낌을 받았다.
“혹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노회한 양천린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암흑사련을 무너뜨리는 일은 매우 길게 보고 치밀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럴 생각이네. 이번에도 무인들에게 그런 취지로 말했지 않은가?”
“암흑사련주의 무위는 전 맹주님과 비슷한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동조하는 세력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면전을 피하는 게 무림맹에 도움이 되기에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양천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양천린과 무인들은 언제든지 암흑사련을 상대할 수는 있지만, 아직 정보가 부족하니 신중하게 대처하자는 논리를 펼쳤다.
그 논리의 기저에는 언제든지 암흑사련을 물리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자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자네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전면전을 벌이면 우리가 암흑사련에게 패배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배제하면 안 됩니다. 저들은 단순히 암흑마교, 혈천교, 흑도련, 사황련의 연합체가 아니라 련주를 중심으로 하나의 조직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네 개의 이질적인 거대한 세력이 하나로 뭉친다?
양천린은 내심 ‘그건 불가능해!’라고 외쳤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이 싹텄다.
그는 불안감을 털어내기 위해 강하게 소리쳤다.
“그래봐야 전임맹주에게 모조리 무너진 잔당의 연합체일 뿐이야.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배타적인지 자네도 알잖은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무위가 군계일학이었다고 평가받았던 전임맹주님께서도 암흑마교주 척무혁을 쓰러트릴 때 무림맹의 피해가 매우 컸지요. 절대 만만한 자들이 아닙니다. 오만하면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무림맹이 냉정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린 충언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구양 대주의 생각이 그리 깊은지 몰랐군.”
양천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렇더라도 무림맹이 약하다곤 생각하지 말게.”
“물론입니다. 언제든 저들을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을 경계하자는 말이었습니다. 자신감은 절대 잃지 말아야합니다.”
“알겠네. 앞으로 자주 보세.”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난 그에게 포권하고는 맹주전을 나섰다.
그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갈문현이 나를 잡아 세웠다.
“어떤 대화를 하셨습니까? 아, 오해는 마세요.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암흑사련을 얕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얕본다면 필패라고 강력하게 조언했습니다.”
“허어.”
제갈문현은 탄성을 터트리며 나를 바라봤다.
“역시 척사검대주께서는 냉정하시군요. 무림맹과 암흑사련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전력이 드러나 있고, 저들의 전력은 대부분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가장 큰 차이죠. 전임 맹주님 같은 강력한 무인이 맹에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만약 암흑사련주가 전임맹주 급이라면 우린 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습니다. 전 그게 걱정됩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시는군요.”
“저들은 무림맹의 강력한 조직력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니라 전임맹주의 강력함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죠.”
“무림맹에는 전임맹주 만큼 강력한 무인이 없고, 암흑사련에는 있다?”
“저도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갈문현은 다소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빛으로 바라봅니까?”
“제가 척사검대주를 너무 몰랐군요. 무림맹에서 가장 정확하게 저들을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사람도 그게 걱정되었지만, 혹여 무인들의 기를 꺾을까 저어되어 말을 꺼내지 못했거든요.”
역시 제갈문현은 말이 통했다.
“군사님. 이런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말씀하세요.”
“영약을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더 부탁합니다. 현재 암흑사련주를 막아설 무인은 저밖에 없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갈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군사님께서도 저를 믿지 않는군요.”
“아뇨. 믿습니다. 내공을 끌어올린다면 대주님께서 암흑사련주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약이란 게 천운이 따라야 합니다. 특히 대주께서는 웬만한 영약으로는 내공을 증진시킬 수 없습니다. 노력할 테니, 기다려보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갈문현의 말대로 내 무공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천고의 영약이 필요했다.
이미 공청석유와 만년화리의 내단으로 내공을 늘린 내 몸은 웬만한 영약에는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난 제갈문현을 믿고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영약을 구하는 것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내가 포권하고 물러나자, 제갈문현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전임맹주님을 보는 듯 했어. 젊은 무인으로부터 이런 위압감을 받다니. 그래. 암흑사련주를 상대할 무인은 그밖에 없다. 휴우, 어마어마한 숙제를 받았군. 노력해보자. 이제까지 쉬운 일이 있었더냐? 반드시 암흑사련을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반드시.’
제갈문현은 이내 고개를 흔들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