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38화
38화. 척사검대(斥邪劍隊).
짧고 굵게 끝난 무승부에도 이를 관전하던 무인들은 아낌없는 격려의 함성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내 검이 삭천혁의 현철강기를 조금이나 깨트렸는데, 그들은 그 부분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이제까지 많은 비무가 있었지만, 삭천혁의 무복이 찢기고 현철강기로 둘러싼 몸에 상처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삭천혁은 무림맹의 상징 같은 존재였기에, 이번 비무는 구양천이란 이름을 무인들의 뇌리에 새겨 넣기에 충분했다.
“자자, 구양 소협께서는 피곤할 테니, 오늘은 쉬게 해줍시다. 앞으로 무림맹에 거주할 테니, 시간을 두고 차차 교류하면 됩니다.”
무인들이 내게 몰려들자, 조진량이 나서서 말렸다.
황성원은 조진량의 행동이 짜증났다.
여기서 구양천은 소마각 소속 다정이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 부하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는데, 조진량이 대놓고 자기 부하인양 나서서 저러는 꼴을 보려니 속이 뒤집혔다.
“구양 소협. 숙소로 돌아가서 쉬시게. 오늘 비무에 대해 명상도 하고, 운기조식도 하여 내공도 보충해야지.”
“감사합니다. 맹주님.”
양천린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주자, 무인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길을 터주었다.
난 그들에게 포권하고는 성휘에게서 검집을 받아 검을 꽂은 후, 허리에 차고는 천천히 숙소로 걸어갔다.
-축하드려요. 마지막에 지공은 천의검법의 뇌정지탄으로 보이던데 맞나요?
-글쎄.
-어? 아니었어요.
-나도 몰라.
정말 그 무공이 뭔지 나도 몰랐다.
암흑칠혈, 섭유흔의 부하들을 상대할 때 뇌정지탄을 지공으로 변형하여 펼쳤으니 청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뇌정지탄은 아니었다.
뇌정지탄은 원래 검초였기에, 지공으로 전환하려면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이번엔 위기에 처하자 반사적으로 지공이 발출되었다.
분명 뇌정지탄의 형태와 유사했으니 청이 오해할만 했지만, 그걸 생각하고 발출한 게 아니니 뇌정지탄은 아니었다.
‘이거 설마?’
-청. 아무 말도 걸지 마.
난 그대로 몸을 날려 숙소로 향했다.
문을 닫아걸고 명상에 잠긴 나는 삭천혁과의 비무를 복기했는데, 지공을 발출했던 상황을 중점적으로 복기했다.
한참을 복기하던 나는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의식 속에 잠재되었던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어. 이게 얼마만인가? 35년 전에 검제를 물리친 후에는 사실상 적수가 없어서 사라졌던 감각인데. 이번에 삭천혁과의 비무에서 위기에 몰리자 감각이 살아난 거야.’
감격스러웠다.
내가 전생에서 천하제일인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타고난 재능, 각고의 노력, 행운 등이 있었지만, 위기 속에서 발현되는 무의 감각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암흑교주 척무혁, 검제 구양의와 대결할 때 감각은 최고조에 달했었다.
천의검법을 봉해놓고 구양검법으로 싸우면서 삭천혁의 강력한 공격에 놓이며 위기에 처하자, 감각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번 지공은 뇌정지탄의 변형이었다.
명상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아침이 되었을 때, 뇌정지탄을 준비동작 없이 지공으로 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큰 무기를 얻었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휴우, 밤새도록 아무런 말씀도 없으셔서 송장 치우는 줄 알았습니다.”
“녀석.”
난 싱긋 웃고 말았다.
“비무를 통해 배운 게 있어?”
“글쎄요. 저와 수준 차이가 엄청나서요. 비무를 보고 있노라니 심장이 막 뛰어서 억제하느라 혼이 났습니다.”
“그만큼 비무에 몰두했다는 거야. 그럼에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건 너의 무공수위가 낮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 없어지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니까.”
“언제 그걸 꺼내 쓸 수 있을까요?”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네 마음속에 어떤 형상으로 떠오르겠지.”
“공자님은 모르시는 게 없네요.”
“자식.”
더는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제갈문현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하자, 그 역시 환하게 웃으며 포권했다.
“어제 정말 굉장했네. 무림맹의 모든 무인들이 깜짝 놀랐어.”
“실망시켜드리지 않아 다행이군요.”
“타격대 창설이 승인되었네. 규모는 추혼검대급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대원은 어떻게 선발합니까?”
“무림맹 네 개 단에서 각각 10명씩 차출해서 보내줄 생각인데, 혹시 다른 생각이 있는가?”
추혼검대는 정보루 휘하의 직속 타격대였고, 네 개 단은 무림맹의 주력이었다.
적호단, 청룡단, 현무단, 주작단.
추혼검대는 약 50명, 적호단을 비롯한 단은 200명 내외였다.
“제가 직접 선발해도 되겠습니까?”
“음, 한번 단주들과 의논해보겠지만, 반발이 심할 걸세. 자네가 단에서 가장 훌륭한 무인 10명씩 뽑아 가면 곤란해질 테니까.”
“그럼 이렇게 하시죠. 각 단주가 10명을 추려서 뺀 상태에서 제가 10명씩 선발하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10명씩 차출하라고 지시를 내리면 그래도 괜찮은 자들이 선발될 텐데. 이런 식이면 자칫하면 평범한 타격대가 될 테고, 그럼 타격대를 만드는 의미가 없어져.”
제갈문현은 걱정을 드러냈다.
“무인을 선발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세. 어쩌면 쭉정이만 가져올 수도 있어. 오죽하면 무인을 선발하는 일은 달빛 아래서 미인 찾기란 말이 있겠는가?”
“하하하. 매우 적절한 비유군요. 현재의 능력과 잠재력까지 모두 알아보려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도 제가 직접 선발하고 싶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을 무인인데, 남에게 의존하기 싫습니다.”
“사람 고집하고는. 알겠네. 내가 단주들과 이야기해서 자네에게 일정을 통보하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네를 보좌할 유능한 부대주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도 제가 직접 선발하고 싶습니다. 부대주 후보를 모아 주십시오.”
“휴우, 이건 개인적인 궁금함인데.”
“말씀하십시오.”
“무림맹의 무인을 잘 모를 텐데, 어째서 직접 선발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가?”
“감각에 의존해서 선발할 생각입니다.”
제갈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무림맹에서 많은 무인들을 만나봤지만, 단순히 감각으로 무인을 선발한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무림맹을 무시하는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이건 굉장히 좋은 기회인데, 스스로 기회를 발로 걷어찰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갈문현은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고집을 부리는데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즉시 말해주게.”
“알겠습니다.”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제갈문현의 성의를 생각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타격대 이름은 생각해두었는가?”
“척사검대(斥邪劍隊). 어떻습니까?”
“괜찮군. 아무튼 자네는 좀 특이해. 작명법도 남다르고. 이곳에서 기다리게. 곧 연락을 통지하겠네.”
“기다리겠습니다.”
제갈문현을 손을 흔들고는 자리를 떴다.
정보루.
제갈문현의 소집요구에 네 개 단주는 정보루에 모였다.
적호단주 철검룡 삭천혁.
청룡단주 봉황도 염무상.
현무단주 일검살 강우충.
주작단주 월명인 소양혜.
넷은 제갈문현으로부터 설명을 듣고는 의아함을 동시에 떠올렸다.
그들은 제갈문현과 질의응답을 통해 척사검대 선발원칙을 정확히 이해했다.
제갈문현이 물러나고 넷만 남게 되자, 괄괄한 성품인 염무상이 껄껄 하고 대소를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적호단주와 무승부를 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로군. 감각으로 무인을 선발하겠다니, 나참. 이게 뭐하는 짓인지. 원.”
“차라리 잘 됐어요. 10명씩 추려주면 아주 괜찮은 부하 몇 명을 넘겨줘야 하잖아요. 이건 구양천이 나이가 어려서 실수한 것 같아요.”
소양혜가 실리적으로 따지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때 듣고만 있던 삭천혁이 입을 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무슨 말이에요. 느낌이 좋지 않다니?”
셋의 시선이 일제히 삭천혁에게로 향했다.
삭천혁은 가장 연장자였고, 무위가 고강하여 은연중에 이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와 비무를 하면서 충격을 받았지. 이후 그와 비무했던 장면을 몇 번이나 떠올렸네. 그때 뭘 느꼈는지 아는가? 그건 노회함일세. 말도 안 되지만, 그는 매우 노회한 무인일세.”
“대형. 그게 말이 되오? 알아보니 그는 작년까지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망나니였다고 들었는데요. 기연을 만나 갑자기 강해진 것이죠. 물론 이것도 이상하지만.”
강우충이 반발하자, 염무상과 소양혜도 그를 거들었다.
“그래. 나도 내 말이 이상하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그와 비무할 때 정말 노회한 무인과 싸우는 느낌이었어. 특히 그는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직접 검을 부딪친 나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네.”
“원래 삼 푼 정도는 실력을 숨기지 않습니까?”
“그 정도가 아니었어. 단숨에 나를 제압할 수 있는 무공과 실력이 있지만, 일부러 숨기는 느낌?”
“네? 그게 말이 됩니까? 맹주님도 그러지 못할 겁니다. 애송이가 생각보다 강하니, 대형께서 그를 높게 하시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그건 아닙니다. 계속 비무가 이어졌다면 구양천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맹주님께서 중간에 중재하고 나선 것도 그걸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치사하게 지공으로 기습하지 않았다면 그는 낭패를 봤을 겁니다.”
염무상이 삭천혁을 추켜세웠지만, 삭천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정도 강한 지공을 날리려면 미리 준비해야 해. 그런데 그는 순간적으로 위기가 닥치자 바로 지공을 날렸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그래서 노회한 무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 걸세.”
삭천현은 구양천과의 비무를 떠올렸다.
눈빛.
위기에 처했어도 냉정한 구양천의 눈빛이 매우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봤지. 분명 매우 익숙한 눈빛인데. 저런 눈빛은 절대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야. 중원의 절대자라면···. 화 맹주님밖에 없는데. 허허, 어이가 없군. 그런 애송이를 화 맹주님과 비교하다니.’
삭천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세 명의 단주를 보며 당부했다.
“아무튼 그를 애송이 취급하지 말게. 나부터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겠네. 일단 제외할 10명을 신중하게 선발하게. 그를 무시하고 대충 선발했다가 당하면 자네들만 손해야.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 우리와 동급이니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하고.”
“알겠습니다. 대형.”
조심하자는 말에 셋은 일제히 대답했다.
추혼검대가 창설될 때도 그렇고, 호표대가 창설될 때도 그랬다.
항상 네 개 단에서 추천을 받아 선발했었다.
이번 척사검대도 추혼검대처럼 진행하려고 했는데, 구양천이 계획을 바꿔버리자 그들은 당혹스러웠다.
동시에 유능한 부하들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대주 중에서 부대주를 선발할 텐데, 그땐 아쉽더라도 받아들이게. 제대로 된 부대주가 있어야 척사검대를 이끌어갈 테니까.”
단은 5~7개의 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삭천혁은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대를 이끄는 대주는 단의 핵심전력이었기에 단주들은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삭천혁의 말대로 척사검대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뛰어난 대주를 선발해서 부대주로 임명해야 했다.
늘상 있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표정은 다시 덤덤하게 돌아왔다.
“자, 돌아가서 준비하자고. 바빠.”
삭천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단주들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심히 키운 단원들을 보내는 일은 슬픈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