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35화
35화. 검법에 대한 고민.
정주현을 출발한 나는 성휘와 함께 빠르지 않게 이동했다.
성휘가 동행하자, 청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필요한 사항은 전음으로 전달했다.
낮에는 경공술을 펼쳐 달렸고, 어둑해질 무렵에는 객잔으로 들어가 식사하고 씻은 후, 사색에 잠겼다.
구양검법에 대해 사색했는데, 전체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 방식에 맞게 뜯어고치는 중이었다.
무의 극의를 깨닫지 못했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고난이도 작업이었다.
내가 하도 엄숙한 표정으로 사색에 잠기니 성휘는 내 신경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밖으로 나가자.”
정주현을 출발한 지 육일째 되는 새벽이었다.
“완성하셨습니까?”
“글쎄. 일단 펼쳐봐야지. 네가 보고 조언해다오.”
“제가요? 전 무위가 그리 높지 않은데 조언할 수 있을까요?”
“괜찮아. 구양검법을 잘 알고 있으니, 어찌 보면 네 조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어 공터로 향했다.
-제 생각도 말씀드려도 될까요?
-뭐야? 설마 밤에도 내 곁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거야?
-아뇨. 다정님이 전음이 전달될 가까운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쉴 때는 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군. 그럼 부탁해. 솔직하게 평가해줬으면 좋겠어.
-정말 기대되는데요.
-훗. 너무 기대하지 마. 그럼 실망이 두 배야.
-기쁨이 두 배일 수도 있겠죠. 다정님이라면 분명 실망보다는 기쁨을 줄 거예요. 말이 쉽지 무학을 뜯어고친다는 건 웬만한 무인은 상상도 못하니까요.
청의 전음에 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공터.
이제 막 동이 터 오르고 있어서인지 주변에 인적은 없었다.
나는 기감을 끌어올려 혹시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지 여부를 살폈다.
그런 자가 없다고 판단이 서자, 천천히 귀혼검을 꺼냈다.
성휘와 청은 내 검에 집중했다.
“하앗!”
짧은 기합을 넣으며 검에 내공을 불어넣고 새로운 구양검법을 펼쳤다.
날카로운 예기가 사방을 뒤엎었고, 그 안에서 살을 찢을 듯한 살기가 빛처럼 빠르게 허공을 베어갔다.
이후 귀혼검은 두 개, 세 개로 늘어났다.
실제로 검이 늘어날 수는 없었지만, 워낙 빠르게 움직이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후우.”
일각정도 구양검법을 전력으로 펼친 후, 길게 숨을 내쉬고는 귀혼검을 검집에 꽂았다.
콰드드드득.
쾅.
고개를 들어보니 약 오장거리에 있는 거목이 쓰러지고 있었다.
가까이 있었던 잡목과 풀은 낫으로 깎아놓은 듯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거목은 나뭇가지가 모조리 베어졌고, 기둥 밑부분이 톱질한 것처럼 매끈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굉장해요.
성휘가 입을 딱 벌리고 경악에 빠진 사이에 청이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그녀는 내가 펼치는 구양검법, 천의검법을 모두 보았기에 빠른 의견제시가 가능했다.
-확실히 기존의 구양검법을 넘어섰지만, 천의검법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야 당연한 거고. 또?
-천의검법이 일격필살의 검법이라면 지금의 구양검법은 화려한 변초 속에 숨은 쾌초와 살초가 일품입니다. 최상급의 고수를 만나지 않는 한, 구양검법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정확해.
청의 평가에 난 감탄했다.
그녀는 무림맹에 한발을 걸치고 살며 많은 검법을 접했을 것이다.
그러니 냉정한 평가를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여중명을 상대로도 통할까?
-당연히.
-시간 나는 대로 계속 연구해서 발전시킬 거야.
-예? 지금도 굉장히 위력적인데요.
난 싱긋 웃고는 시선을 성휘에게 돌렸다.
“휘야. 네 의견도 말해보거라.”
“진짜 구양검법이 맞습니까?”
“맞다. 조금 변형시켰지.”
“완전히 다른데요. 공자님. 이 검법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이놈이 평가를 해 달랬더니 엉뚱한 데 욕심을 내는구나.”
난 성휘를 짐짓 꾸짖고는 대소를 터트렸다.
그가 이렇게 욕심을 내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변형한 구양검법이 얼마나 위력적으로 변모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자꾸나.”
“저는 얼마나 배워야 공자님처럼 뛰어난 무위를 보일 수 있을까요?”
“계속 노력해봐. 자꾸 높은 곳만 바라보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네가 생각했던 위치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조언 감사합니다.”
“잘 봐.”
난 차분히 구양검법을 끊어서 펼쳤고, 그것을 반복했다.
틀은 구양검법을 그대로 유지했기에 성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했다.
“알겠어?”
“일단 머릿속에 집어넣었습니다.”
“한번 펼쳐봐.”
성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검을 뽑아들고 공터 중앙에 섰다.
“하앗!”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성휘의 검이 검로를 따라 움직였다.
-흐음, 많이 배워야겠는데요.
-청, 성휘라면 이길 수 있겠어?
-글쎄요. 보는 눈이 높은 거지, 잘 싸우는 건 아니니까요.
하긴 은잠술과 경공술에 특화된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검술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보다 고수의 비무를 계속 접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마 청도 그런 과정을 밟고 있을 텐데, 그녀 자신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다정님.
-말해봐.
-저도 배워도 될까요?
-그래.
너무 쉽게 승낙하자, 청은 깜짝 놀랐다.
-정말 괜찮아요?
-왜? 문제 있어?
-변형된 구양검법은 매우 뛰어납니다.
-청은 내게 중요한 사람이니까.
전생에서 너무 냉정하게 살았기에 지금처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있다면 제갈문현정도?
다른 무인들은 모두 나를 경외하고 두려워했었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서는 내 주변사람을 잘 챙겨줄 생각이었고, 청에게도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고 구양검법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객잔으로 돌아가 식사를 한 우리는 다시 무한현으로 향했다.
구양검법을 변형했지만, 만족하는 건 아니었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객잔에서 쉴 때는 공터에서 성휘를 가르치고, 방안에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이건가?”
나와 성휘가 객잔으로 들어갔을 때, 흑의무복을 입은 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검을 뽑은 후 구양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술은 실로 놀라웠다.
단연코 성휘보다는 한수위의 실력이 분명했다.
변초는 아직 다듬을 데가 많았지만, 쾌초는 정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한동안 검술을 펼치던 청은 바닥에 털썩 앉았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셨어. 내가.’
그녀는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얼굴에 옅은 홍조가 일었다.
**
무한현.
정주현을 떠난 지 보름 만에 무림맹에 도착했다.
성휘는 웅장한 무림맹을 보고는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두리번거렸다.
정주현은 무한현 못지않은 대현이었지만, 무림맹 같은 웅장한 장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정님.
-말해.
-다른 문으로 들어가야 해요.
-알았어. 이따 보자고.
그녀의 기운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아주 미세한 기운이었기에 나도 간신히 눈치 챘다.
은신한 채 정문을 통과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청은 성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자, 우회로를 택했다.
소마각의 연락책만이 드나드는 문은 따로 개설되어 있었다.
소마각.
소마각주 황성원은 청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직접 독대했다.
그녀는 황성원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전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황성원은 그런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맹의 규칙이었다.
-다정은?
-막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그건 알아. 지금 그의 상태는?
-각주님께서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천의검법을 사용하지 않고 구양검법만으로도 추혼검대주를 넘어섰습니다.
-추혼검대주 여중명을 넘어서?
황성원의 표정에 당혹감이 일었다.
구양검법으로 여중명을 넘어섰다는 말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맹주님께서 그를 확인해본다고 하셨어. 직접 나서실 수도 있고, 적당한 자를 보내어 확인할 수도 있겠지.
-그리 전할까요?
-그래.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황성원이 다시 대화를 재개했다.
-천의검법과 구양검법을 비교하면?
-처음에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천의검법이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다정님께서 이곳으로 오시면서 꾸준히 구양검법을 변형발전시키면서 지금은 그래도 비교할 수준은 됩니다.
-무, 무슨 소리야?
황성원은 기가 막혔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도 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현실입니다.
-다정. 이 자식의 정체가 도대체 뭐야?
황성원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제갈문현은 황성원과 조진량에게 다정과 구양천이 동일인임을 알렸다.
특급 기밀이었지만, 이들과 새롭게 창설될 구양천의 타격대가 긴밀하게 협조해야했기에 알린 것이다.
또 이들은 제갈문현이 직접 하급무관일 때부터 직접 선발하여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자들이었다.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기밀을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황성원은 지금의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십대 중반의 무인 구양천이 벌써 이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직접 보시면 알겁니다. 그러니 미리 속단하지 마십시오.
-부끄럽군. 그래 속단하면 안 되지.
-그럼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수고하게.
청의 기운이 사라지자, 황성원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열었다.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모르겠군.”
무림맹주 양천린이 구양천의 무위를 확인하겠다고 했을 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양천린은 제갈문현의 보고만 받고도 구양천의 놀라운 무위를 간파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황성원은 양천린을 다시 보았다.
그저 화운룡보다 무위가 낮지만 운이 좋아 무림맹주에 올랐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정을 바라보는 그의 안목을 보니 실로 놀라웠다.
‘정말 다정의 무위가 기대되는군. 아니 공식적으로 타격대를 이끄는 사람은 다정이 아니라 구양천이지. 구양천이라? 무림에 큰 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분명해.’
그 시각.
나는 성휘와 함께 숙소를 배정받았다.
아직 무림맹에서 구양천이라는 이름은 무명이나 다름없었기에 평범한 숙소를 배정받았다.
‘눈에 띄게 하지 않으려는 제갈군사의 지시가 있었겠지.’
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욕간에서 물을 끼얹어 씻은 후, 깨끗한 청의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성휘 또한 단정한 흑의무복으로 갈아입었다.
“공자님. 너무 담담하시네요.”
“놀랄 일도 없잖아.”
“정주현에는 이런 웅장한 건축물이 없잖아요. 솔직히 공자님도 놀랄 줄 알았는데, 너무 담담해하시니 좀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런 웅장한 건축물을 처음 보고도 담담할 수 있다니요.”
성휘의 말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건축물인데 어찌 감탄이 터져 나오겠는가?
“휘야. 그럴 생각할 시간에 구양검법을 연마하거라.”
“알겠습니다.”
성휘는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곧장 검을 들고는 방을 나섰다.
좀 단순하긴 했지만, 확실히 행동력은 좋은 놈이었다.
난 편안하게 앉아 운기조식을 취해 경공술을 펼치느라 소모된 내공을 보완했다.
그 후, 구양검법과 천의검법, 그리고 내가 상대했던 검법을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