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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31화 (31/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31화

31화. 도움을 청하다.

며칠간 태봉문 일처리에 대해 고민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천하의 태봉문주라도 힘으로 꺾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일이 해결되기는커녕 꼬일 게 분명했기에 고민이 깊어졌다.

답답하여 연공실에서 천의검법을 수련하고, 운기조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정님.

청의 전음이었다.

반가웠다.

난 운기조식을 갈무리하고 연공실을 나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워.”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좀 어둡네요.”

그녀는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살폈다.

“별일 아냐.”

난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다시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자리에 앉았다.

“또 명령이 내려왔어?”

“지난번에 추혼검대주와 독대하셨잖아요.”

“그랬지.”

“혹시 맹의 제갈군사와 만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만나주겠대?”

“우와, 우리 다정님 배포가 보통이 아니네요. 제갈군사님을 다 만나려고 하고.”

“난 심각해. 만나주겠대?”

“네.”

청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하도 많이 놀랐기에 제갈군사와의 만남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무한현으로 떠나야겠군.”

무림맹은 무한현에 있었기에 난 이렇게 말했다.

“아뇨. 제갈군사께서 곧 정주현으로 오실 거예요.”

이해가 되지 않아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갈문현이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닌데, 겨우 소마각 집행인을 만나기 위해 정주현까지 온단 말인가? 물론 내가 뛰어난 무위를 보여준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저도 잘은 모르는데, 벌써 암흑혈천마교 산서성지부일대를 다녀오신 것 같아요. 그곳과 정주현이 가까우니까요.”

“그렇군.”

겉으론 동의했지만, 속으론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이 부분은 제갈문현을 만나 직접 물어보면 될 테니까.

“그럼 그때 다시 연락 줘.”

“네. 그리고 포상금 삼만오천냥이 나왔어요. 만월루 금노에게 전할까요?”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청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그녀의 모습도 사라졌다.

희망이 생겼다.

이번포상금까지 합하면 금노에게 맡긴 돈이 오만냥은 될 것이다.

빌린 돈을 갚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돈을 갚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게 분명했기에 제갈문현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제갈문현이라면 태봉문을 중재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자문제를 놓고 중재한다는 게 영 자세가 안 나오긴 했지만, 하남성에서 태봉문의 위상을 보았을 때는 가능하면 중재하는 게 옳았다.

태봉문주도 제갈문현의 중재라면 받아들일 것이다.

며칠 후.

정주현 청월객잔 칠층에서 제갈문현을 만났다.

정주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탁 트인 방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 제갈문현은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게. 문현. 날세. 화운룡.

이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삼켜야했다.

그는 내 기척을 눈치 채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예전보다 수척해진 얼굴과 더 많아진 주름, 흰 머리카락을 보니 안쓰러웠다.

아마도 맘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다정입니다.”

“오오, 요즘 위명이 쟁쟁한 다정무인이시군요. 이 사람은 제갈문현이외다. 반갑소이다.”

제갈문현은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기에 난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오?”

“야위었군요. 아닙니다.”

순간 제갈문현의 눈빛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늙은이가 늙은 게 당연하지요. 그건 그렇고 정주현의 풍경이 아름답군요.”

그는 나를 데려가 창밖이 잘 보이는 위치에 앉혔다.

곧 미리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제갈문현은 다른 이들을 모두 밖으로 보내고 나와 독대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놈들의 흔적을 살필 겸해서 하남성까지 오게 되었소.”

그와 나는 꾸준히 대화를 이어갔지만, 대화는 조금씩 겉돌았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십시오. 아는 선에서 최대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용을 벗어주실 수 있겠소?”

“이건 소마각과 참마각의 집행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갈군사께서 직접 만들고 맹주님이 승인한 규칙입니다. 그걸 깰 생각이십니까?”

“껄껄껄.”

그가 대소를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무림맹에 대해 훤히 알고 있군요. 믿지 않았는데.”

“저를 의심하십니까? 세작으로.”

“상황이 그러니까요. 하지만 세작은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군요.”

“어째서요?”

“눈빛이 제가 아는 그분과 너무 닮았습니다. 평생 정의를 위해 살아오신 분이지요. 이 늙은이가 사람을 좀 볼 줄 아는데, 다정무인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눈빛을 가졌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일 그런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오.”

“그렇군요.”

“천의검법이오?”

또 불쑥 들어왔다.

갑자기 화제를 바꿔 불쑥 들어오는 그만의 화법은 늘 상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평범한 대화내용에서 갑자기 중요한 내용으로 바꿔서 치고 들어오면 얼굴에 당황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맞습니다.”

선선히 시인하자, 오히려 제갈문현이 놀란 눈치였다.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소?”

제갈문현은 목이 타는지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를 속여야 한다는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금노에게 했던 그대로 거짓말을 했다.

아니 진실을 섞어 애매하게 대답했다.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면 제갈문현은 그걸 알아차릴 것이다.

“저는 전 무림맹주님과 인연이 깊습니다.”

“인연이라고요?”

제갈문현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쳐지나갔다.

맹의 모든 일을 계획했고, 화운룡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안다고 자부하는 제갈문현이었다.

그러니 천의검법을 전수해줄 만큼 인연이 있는 나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제갈군사께서는 모르셨을 겁니다. 그분께서 혈궁을 토벌하시려고 정주현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저와 며칠간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천의검법은 며칠간의 사사로 익힐 수 있는 보통 검법이 아닙니다.”

“때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저처럼요. 제가 그분과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어찌 천의검법을 알겠습니까? 천의검법은 그분의 독문검법인데요.”

“으음.”

제갈문현은 대답이 궁해졌다.

내 말을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인연을 강조했을 뿐, 검법을 사사받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제갈문현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내 영혼이 구양천의 몸으로 들어왔으니 이게 보통 인연인가?

제갈문현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검법을 시연해 보이지요.”

제갈문현은 침묵으로 허락했다.

난 귀혼검을 뽑아들고 중앙에 서서, 건곤여의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건곤여의진기···.”

제갈문현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제갈문현이었다.

한눈에 건곤여의진기를 알아본 이는 제갈문현이 처음이었다.

쐐애애애애액.

섬전벽력을 펼치자, 그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그만. 됐소이다. 더 펼치면 이곳이 부서질 것이오.”

“이제 일초식을 펼쳤을 뿐입니다.”

“일초식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전 맹주님께서 사사받은 게 맞군요. 그렇지 않다면 이리 완벽하게 섬전벽력을 펼칠 수 없을 테니까요. 또 그대의 천재성도 엿볼 수 있었고요. 자, 이리로 앉으세요.”

제갈문현은 어느새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또 궁금한 게 있습니까?”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제갈문현이 신중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누구시오?”

“소마각 집행인의 신원은 보장된다고 들었는데요.”

“물론. 내가 그걸 만들었는데 어찌 모르겠소. 다만 그대에게 소마각의 집행인과 별개로 새로운 직위를 내리고 싶소. 아실지 모르겠지만, 중원무림은 전대미문의 위험에 처했소. 암흑혈천마교 말고도 다른 단체가 준동하고 있소.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추혼검대주 정도의 위치요.”

“필요할 때 마구 부려먹으시려고요?”

“미안하오. 무림의 상황이 어려우니 부탁하겠소.”

“휴우, 그럼 제갈군사만 알고 계십시오.”

“당연히.”

난 진기를 운용해 역용을 풀었다.

“헛. 거, 검제.”

제갈문현은 내 얼굴에서 검제 구양의를 발견하고는 대경실색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구양세가의 차남 구양천입니다.”

“그랬구려. 세상인연이 참으로 기기묘묘합니다. 전 맹주님께서 구양공자를 제자로 삼으시다니요.”

“저도 그분과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줄 몰랐습니다.”

“역용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군요.”

제갈문현을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부탁하나 하지요.”

“태봉문을 중재해달라는 것입니까?”

그는 내가 구양천임을 확인하자, 곧바로 넘겨짚었다.

하여튼 평생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임무를 해서 그런지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마도 정주현으로 오면서 이곳의 정보를 입수해서 분석했을 테고, 그때 자잘한 것도 모두 훑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하남성에서 가장 중요한 무가인 태봉문과 전국적인 정보단체 만월루 그리고 지금은 몰락했지만, 한때 검제를 배출한 위대한 가문 구양세가가 얽힌 문제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정확합니다. 하남성에서 태봉문과 만월루의 위치를 생각하면 골치 아픈 문제지요.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욱. 방법이 있습니까?”

“나형린은 진짜 상사병이 아닙니다. 황보소저에게 흑심을 품었다가 퇴짜를 맞고 나니 화가 났던 것이지요. 나 문주는 아들이 저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군요. 나 문주가 의외로 아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같은 생각입니다.”

“내가 나 문주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고, 나형린을 맹으로 데려갈 생각입니다. 나형린은 허영심이 많으니, 적당한 직책을 주면 좋아할 겁니다.”

현실적이고 깔끔한 방책이었다.

이는 제갈문현에게도 손해는 아니었다.

나형린에게 일정한 직책을 부여해주는 대신 태봉문을 손아귀에 꽉 움켜쥘 테니까.

역시 제갈문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책을 내었는데, 동시에 그는 무림맹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래서 내가 제갈문현을 신뢰했었다.

“구양무인은 무림의 홍복이오. 그렇지 않아도 답답했었는데, 구양무인과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힘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제갈문현은 내 두 손을 잡고 흔들며 기쁨을 표현했다.

청월루를 나와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나자 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풀렸어요?”

“응. 다행히.”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무림맹에서 직책을 내려줄 거 같아. 한 추혼검대주 급으로. 아마 타격대를 이끌 거 같아.”

“아, 결국 소마각을 떠나시는군요.”

청의 눈이 붉어졌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난 깜짝 놀라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변명했다.

“아냐. 소마각을 떠나는 게 아냐. 당분간은 동시에 두 직책을 수행할 거야.”

“정말이죠?”

“그럼.”

“다정님.”

와락.

그녀는 내게 덥석 안겼다.

“정말 그만두시는 줄 알았잖아요.”

“진정하라고. 당분간 소마각을 떠날 일은 없으니까.”

난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녀는 얼른 내게서 떨어졌다.

“죄송해요.”

“냉정한 청에게 이런 감성적인 면이 있다니 의외네.”

“앞으로 이런 실수 없을 겁니다.”

청은 마음을 숨기려고 일부러 딱딱하게 대답했다.

“가자. 할 일이 많아. 아마 소마각 이외의 직책관련된 일도 청을 통해 지시가 내려올 거야.”

“네. 실수 없이 처리할게요.”

난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날렸다.

청은 두 손바닥을 펴서 바라보며 방금 전의 느낌을 떠올리자, 얼굴에 홍조가 살짝 떠올랐다.

곧 그녀의 몸도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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