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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30화 (30/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30화

30화. 태봉문.

하남성 정주현.

오랜만에 세가에 돌아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집안의 분위기는 조금 묘했다.

뭔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기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섰다.

“다녀오셨습니까?”

성휘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달려와 포권했다.

“그래. 집안 분위기가 왜 이래?”

“태봉문주가 가주님을 뵙고 있습니다.”

“태봉문?”

태봉문은 하남성 제일 문파였다.

검제가 살아있을 때는 구양세가가 최고의 문파였지만, 검제가 죽고 무림맹의 견제로 구양세가의 위세가 줄어들자 태봉문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최고문파 자리에 올라섰다.

“저들이 왜? 아아.”

황보연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태봉문의 자식 중 한 명이 황보연을 잊지 못해 상사병이 걸렸다고 했던가? 그녀가 장난으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나?’

만약 그런 상황이면 골치 아팠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이거 잘못하면 태봉문과 사이가 크게 틀어질 것이다.

구양세가가 태봉문과 맞서기엔 아직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암흑혈천마교를 비롯하여 움츠렸던 사마외도 세력들이 기지개를 켜는 이 시점에서 태봉문의 역할은 막중했다.

그들의 기세를 꺾어버리거나 척을 진다면 사마외도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공자님. 황보소저께 들으셨나 보군요.”

그래도 혹시나 다른 일이었으면 했는데, 성휘가 쐐기를 박아 버렸다.

“태봉문주의 표정은?”

“상당히 비장했습니다. 장남이 상사병으로 앓아누웠으니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그럼 만월루로 가야지. 왜 여기로 와.”

“이틀 전에 만월루에 갔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잘 안 풀렸으니 여기로 왔겠죠?”

“그렇겠지.”

어째 이번 인생은 골치 아팠다.

전생에서는 무공을 연마하고, 사마외도를 물리치며 살아온 비교적 단순한 삶이었다.

그때도 여자가 있었지만, 최고의 위치에 오른 후에 만났기에 동등한 관계라기보다는 수직적인 관계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여자 때문에 크게 골머리를 앓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물론 연인관계였던 그녀의 가문이 무림맹 권력을 탐하면 가차 없이 쳐내버렸다.

사랑이 아닌 정략적으로 만난 여인들이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수많은 미인들 역시 스스로 안겨왔었다.

‘이게 정상적인 삶이겠지. 전생의 삶이 비정상적인 것이고.’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안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걸어왔는데, 아버지와 태봉문주 그리고 성제와 태봉문의 무인들이었다.

태봉문주는 나를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칠살검(七殺劍) 나조웅(羅調雄).

태봉문을 일으킨 무인 나조웅은 쾌검의 대가였다.

별호에서 보여지듯 그는 검을 뽑으면 반드시 칠초 이내에 상대를 제압했다.

그래서 칠살검이었다.

그가 대단한 무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무적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당대의 뛰어난 무인과는 비무하지 않았다.

나조웅은 나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세가를 나섰다.

나는 그를 개의치 않고 아버지에게로 걸어갔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참으로 고생이 많았구나.”

“나 문주는 왜 왔습니까?”

“휴우.”

아버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를 재촉하지 않고, 그 스스로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별일 아니다.”

“별일 아니라뇨? 연매와 관련된 일입니까?”

“이 아비가 비록 힘은 없지만, 절대 태봉문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넌 걱정하지 말거라.”

구양현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어렸고 매우 자존심이 상한 듯 했다.

부모는 자식의 일에 민감해지는 법이다.

태봉문에서 그걸 건드렸으니 구양현으로서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나를 찾았다.

그녀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어머니.”

“그래. 너는 알아야겠지. 이 어미의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네.”

“태봉문주가 여기 온 이유는 너도 짐작했겠지만, 만월루의 황보연 때문이다. 태봉문의 장남 나형린이 그녀를 잊지 못해 상사병으로 앓아누웠다는구나.”

“열병을 앓고 있군요. 그 병엔 약도 없다던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다만 황보연을 연모하는 마음이 아주 큰 건 사실이야. 이리 저리해도 안 되니 일부러 드러누운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사병에 걸려 죽느니 사느니 할 정도면 태봉문과의 관계악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형린이 꾀병을 부리는 거라면 관계를 개선할 여지는 충분했다.

‘하긴. 연매를 보면 그런 꾀병을 부려 가문의 위세를 앞세워서라도 차지하고 싶겠지.’

충분히 나형린의 젊은 혈기를 이해했지만, 황보연을 뺏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 역시 그녀의 이성적인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만월루의 정보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앞으로 창궐하는 사마외도의 무리를 격파하는데 만월루의 정보력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황보연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물론 그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이 성격에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씁쓸한 표정의 그녀에게서 커다란 문제를 직감했다.

“문제는 자금이야. 세가가 상당히 어려웠을 때, 태봉문이 도움을 많이 주었다. 이자 없이 빌려준 자금만 대략 오만냥이야. 만약 물러서지 않는다면 그걸 내놓으라는구나. 그래서 그이가 고민이 많아.”

그녀는 솔직히 말해주고는 나를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가문이 힘들다고 아들에게 연인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만큼 못난 부모는 아니니까. 뭐, 구양세가 장원을 팔고 이것저것 팔면 얼추 그 정도 자금은 마련될 것이다.”

“제가 마련해볼게요.”

“네가? 어떻게?”

“일단 만월루에도 들려보고···.”

“그 수전노가 오만냥을 빌려줄까?”

금노를 수전노라고 표현하는 어머니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생각해보니 그와 잘 맞았다.

어쩌면 중원최고의 거부일지 모르는 금노였지만,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는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쉽지 않겠죠. 하지만 저도 인맥이 꽤 넓어요. 일단 장원매각은 생각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누. 대견하구나.”

그녀는 내 등을 쓰다듬더니,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

“네. 그럴게요.”

“한 달 정도 말미를 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리고 태봉문주와도 제가 대화를 나눠볼게요. 아무래도 당사자인 저와 대화를 나눠야 문제가 풀리지 않겠어요?”

“우리 때문에 황보연을 포기할 생각이라면 난 절대 반대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보겠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내 두 눈을 응시했다.

“우리 아들의 말만 들어도 듬직하구나. 다시 말하지만, 무리하지 마.”

“네.”

그녀의 방을 나온 나는 욕간에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황보연을 만나려니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깨끗한 흑의로 갈아입은 후에 만월루로 향했다.

일단 황보연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 다음에 돈으로 해결하든 무위로 찍어 눌러 해결하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든 이번에 해결할 생각이었다.

“오라버니.”

그녀는 나를 보자 활짝 웃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그녀가 웃을 때는 항상 빛이 났다.

그러니 나형린이 꾀병을 부려가면서까지 그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녀는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녀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얼굴이 핼쑥해졌어요. 얼마나 고생한 거예요?”

“뭐, 조금. 이 정도는 괜찮아.”

“맛있는 거 먹으러가요.”

“연매와 할 이야기가 있는데.”

“쉿.”

그녀는 앙증맞은 집게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았다.

“하여튼 이렇게 눈치가 없다니까. 내가 목석이랑 연애를 하지.”

그녀의 핀잔에 난 머리를 긁적였다.

섭유흔, 암흑구혈을 상대할 때도 조금도 망설여지거나 두려움이 일지 않았는데, 황보연과 만날 때면 조금 긴장을 했다.

특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더더욱.

연애라?

정말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였다.

그토록 전생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그동안 저를 기다리게 했으니, 오늘은 제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해요. 알았죠?”

“알았어.”

“가요.”

그녀는 내 팔짱을 끼고는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전에 만났을 때는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거리를 지나는 남자들의 눈에서는 질투와 분노의 화살이 날아와 내 몸에 꽂혔다.

아마도 그녀는 나형린과 태봉문을 꽤나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분명히 나형린에게 ‘꿈 깨라’고 시위하는 것이다.

만월루.

맛있는 음식도 먹고, 멋진 곳도 구경했다.

이후 저녁이 되어서야 만월루 7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구천현검법을 열심히 익혔다면서 자랑스럽게 검법을 시연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어딘가 어설펐다.

솔직히 말하면 진보가 아니라 퇴보했기에 실망스러웠다.

아마 태봉문과의 문제로 속앓이를 하면서 마음에 잡념이 생긴듯했다.

“오라버니도 들으셨죠? 태봉문.”

“나형린이 맹랑하더라고. 꾀병으로 앓아누울 생각을 다하고.”

“그러게 말이에요. 누가 누굴 넘봐요. 참나.”

“왜 태봉문이라면 괜찮은데.”

“오라버니!”

“아, 미안. 농담이야.”

“저 심각해요. 농담할 기분 아니란 말이에요.”

이러니 그녀와 연애할 때는 항상 주도권을 그녀에게 빼앗긴다.

“나형린 그 자식에게 연매를 빼앗기지 않을 거야.”

“어떻게요? 솔직히 할아버지도 난감하신가 봐요. 태봉문과는 사업적으로 많이 얽혀 있거든요. 물론 할아버진 제 뜻을 존중하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겠지.”

“태봉문에서 구양세가를 압박했어요?”

“응. 빌려간 돈 오만냥을 한 달 이내에 갚으라고 최후통첩을 하고 갔어.”

“세상에. 오만냥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진짜 태봉문주가 나형린을 보고 눈이 뒤집혔나 보네요.”

그녀의 찰진 대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항상 즐거웠다.

“오만냥은 있어요?”

“만들어봐야지.”

“할아버지는 빌려주지 않을 거예요.”

“빌리려고 마음먹으면 빌릴 곳은 있어. 그리고 나형린이 진짜 상사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라 꾀병이라니까 태봉문을 찾아가서 태봉문주를 만나서 담판을 지어봐야지.”

“꾀병이라도 꽤 심각한가 봐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워요.”

“솔직히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었겠냐? 다만 만월루의 눈치를 보느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연매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면 모두 상사병에 걸리겠지.”

“우와, 오라버니 입에서 이런 말도 나오다니. 감격스러워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에 반응을 드러내는 그녀였다.

“나만 믿어.”

“그런데 태봉문주가 칠살검이에요. 하남성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다는 소문도 있어요. 괜히 그가 분노해서 검을 뽑으면 어떡하려고요?”

“칠살검. 나도 잘 알지. 하지만 그는 무적이 아냐. 보통 허명이 높은 무인이 있는데, 나 문주는 그쪽에 가깝지.”

“그런데 왜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을까요? 무림인들이 그쪽은 엄청나게 예민하잖아요.”

“돈이 많으니까. 또 여기저기 연줄이 많으니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거든.”

“그렇군요. 오라버니만 믿을게요.”

황보연은 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애틋함.

간절함.

걱정.

기대감.

다양한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믿을게요. 이젠 오라버니를 믿을 수 있어요.”

결국 다양한 감정은 믿음으로 귀결되었다.

“믿어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는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계속 내 품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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