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27화
27화. 생명을 구하는 일.
“어때요?”
“많이 좋아졌어. 자, 빨리 움직이자···.”
청의 물음에 난 무심코 대답하며 일어서다가 멈칫했다.
전생에서처럼 오직 임무에만 충실하려는 내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못해 눈이 벌게지고 피곤이 가득한 청의 얼굴을 보자 안쓰러움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쉬어. 그동안 무리하면 몸 축나.”
“괜찮아요. 젊잖아요. 요기거리라도 사올까요?”
“아냐. 내가 움직이지.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
난 단호하게 말하며 일어섰다.
“그래도 제가···.”
“청. 네가 내 연락책이지, 내 부하는 아니잖아. 좀 쉬어. 나도 바람 좀 쐴 겸 다녀올 테니까.”
그녀를 방에 두고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이른 새벽이었고, 마을에서 떨어진 폐가였다.
이 정도면 저들이 추격에 나섰더라도 오늘 여기까지 추적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설령 여기까지 찾아오더라도 청의 은잠술과 경공술이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주변을 둘러보다가 곧바로 시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삐걱.
살짝 방문이 열리더니 청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대청마루에 앉아 시내 쪽을 바라보더니 짧게 중얼거렸다.
“바보.”
그녀는 하늘을 찌를 듯 힘차게 솟아오른 태행산맥을 바라보았다.
실로 멋지고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멋지네.”
**
시내에서 요기거리를 사와 그녀와 나눠먹었다.
물과 야채, 돼지수육, 만두가 전부였다.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이걸로도 충분해요. 감사해요.”
우린 말없이 음식을 뱃속에 집어넣었다.
몹시 허기가 졌기에 음식을 먹겠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곡원현 외곽.
난 청과 함께 과감하게 폐가를 나와 철무의가 은신하고 있는 동굴로 찾아갔다.
이갑자의 내공을 다시 찾은 만큼 자신감이 생겼기에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이곳이야?”
“예.”
“의외로 싸웠던 장소와 가까운 곳이네.”
“멀리 도망칠 수 없었어요.”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인정하고는 천천히 걸어갔다.
문득 저들이 철무의를 데려갔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사사삭.
수풀을 헤치자, 작은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행히도 철무의는 그곳에 누워 있었다.
“청 호위를 부탁해. 철무의를 살펴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난 청을 믿고 몸을 숙여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내공을 살짝 끌어올려 철무의의 몸을 살폈다.
상태는 심각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특히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전력을 끌어올려 싸웠는데, 그게 결정적으로 몸 상태를 악화시켰다.
“난 틀렸소.”
“바보 같은 놈. 천하의 철무의가 겨우 이 정도란 말이냐?”
“누, 누구시오?”
“그건 알 바 없다. 반드시 살려낼 테니, 정신 차려라. 아무리 힘들어도 이 악물고 버티란 말이다.”
낯익은 호통에 철무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 차려. 내가 내공을 일부 나눠줄 테니까 받아들여. 그럼 한동안 버틸 수 있을 거야.”
“자, 잠깐···.”
후우우우웅.
내공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자, 철무의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가 일주천하도록 돕느라 난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휴우.”
겨우 대주천을 시켜놓자, 철무의 스스로 내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됐어요?”
“일단 응급조치만 했어. 조금 후에 내가 철무의를 업고 폐가로 갈 테니까, 네가 시내로 가서 의원을 데려와.”
“암흑교도를 살피는 건···.”
“그건 철무의를 살린 후에. 저들의 본거지가 발이 달려 어디로 도망치는 것도 아니잖아.”
“알겠어요. 그런데 저 사람 알아요? 무림맹에서 꽤 지위가 높아 보이던데. 아까 막 호통치고 그랬잖아요.”
“그냥 모른척하고 넘어가줘.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면 서로 피곤하지 않겠어?”
“그렇네요. 죄송해요. 다녀오겠습니다.”
청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너무나도 단호하게 그녀가 몸을 날렸기에 좀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피곤해서 그런가? 좀 예민해 보이는데.”
난 그녀에 대한 상념을 떨쳐내고, 살짝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주로 무림맹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난 구양천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아직도 화운룡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벗어나야 하는데. 자꾸 말려드네.’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을 때, 뒤에서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끄응.”
철무의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동굴을 나와 내 옆에 앉았다.
“이 은혜 잊지 않겠소. 은 공의 이름은 무엇이오?”
“다정.”
“다정이라? 처음 듣는···. 설마 소마각의 집행인?”
“그렇소.”
철무의는 눈이 튀어나올 듯 동그래지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내가 좀 특별한 편이니까, 더는 알려고 하지 마시오. 그건 그렇고 몸은 괜찮소?”
“약간 움직일 수 있소. 어서 이곳을 떠납시다.”
“무리하지 마시오. 그러다 무공이 폐해질 수도 있소. 청이 의원을 데리고 온다고 했으니, 안가로 갑시다. 자, 내 등에 업히시오.”
철무의 망설이다가 내 등에 업혔다.
난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샤사사사샥.
풀끝을 살짝 밟으며 달리는 초상비를 펼치며 폐가로 향했다.
몸을 공중으로 띄워 이동하는 것이 훨씬 빨랐지만, 그건 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컸고 내공소모가 심했다.
하여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공소모가 극히 적은 초상비를 펼쳐 이동한 것이다.
사실 초상비도 내공소모가 큰 경공술이었지만, 무의 극의를 깨달은 나였기에 최소한의 내공으로 펼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철무의는 내가 펼치는 초상비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철무의 역시 경공술에 특화된 무인이었고, 경공술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자신을 업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경공술을 펼치는 나를 보며 철무의는 좌절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반드시 경공술을 갈고닦아 나를 넘어서겠다고 다짐했다.
폐가.
난 그를 업은 상태에서 기감을 최대로 끌어 올려 적이 숨어있는지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를 대청마루에 눕혔다.
“고맙소.”
“별말씀을.”
“그런데 초상비를 펼치시던데···.”
“웬만한 절정고수는 초상비를 펼치잖소?”
“그게 아니라 수준이 달랐소. 최소한의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굉장히 빠르게 움직였는데 풀의 흔들림이나 소리가 매우 작았소. 나도 경공술의 대가란 소리를 들었지만, 그대의 경공술을 보고는 참으로 부끄러웠소.”
“몸은 어떻소?”
난 대답이 궁해졌기에 화제를 돌렸다.
“여기 저기 결리긴 한데, 괜찮소.”
“잠시 운기조식이라도 하든가? 몸이라도 풀면서 기다리시오. 곧 청이 의원을 데려올 것이오.”
“그건 그렇고 아까 내 질문···.”
“그대의 깨달음이 올라가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는 나를 보며 철무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간 철무의는 소마각의 집행인을 소모품 정도로 여겼었다.
실제로 소마각에서 집행인이 두각을 드러내면 곧바로 참마각으로 이동했기에, 소마각의 집행인은 가능성이 큰 신입무인이 많았기에 ‘햇병아리’란 별명이 있었다.
철무의가 가졌던 고정관념은 나를 만나면서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대는 마치 대종사같소. 풍기는 기운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여기까지 합시다.”
난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무의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청이 의원을 데리고 나타난 건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그녀는 은밀하게 의원을 찾느라 힘들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음식을 꺼내놓았다.
물과 만두, 수육에 불과했지만, 우리 셋은 그걸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밤새 치료를 받고 약까지 처방받은 철무의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그가 운기조식에 빠진 걸 확인하고 청을 밖으로 불러냈다.
“무림맹에 연락했어?”
“네. 자세히 적어 전서구로 알렸으니, 아마 삼일 후면 알게 되겠죠.”
“이제 어떡할까? 명령을 기다려야 하나?”
“당연히 그래야죠.”
“더 조사해보고 싶은데 아쉽군.”
“이미 충분히 하셨어요. 정주현에 추혼검대가 도착해 있어요. 추혼검대는···.”
“알아.”
“정말 무림맹에 대해 모르는 게 없네요.”
“아냐. 모르는 게 아주 많아. 소마각도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차차 알아가야지.”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녀가 입을 열어 그것을 깨트렸다.
“일단 이곳에서 쉬세요. 아마도 육일정도 지나면 추혼검대가 출동하여 산서성지부를 무너뜨릴 거예요.”
“여중명이 이끄는 추혼검대라면 믿을만하지.”
“지금 다른 생각하고 계시죠? 안 돼요. 독단적인 행동을 저지르면 후에 무림맹에서 분명 문제 삼을 거예요.”
“지금까지 한 행동이 무림맹의 지시는 아니었잖아?”
내 반박에 청은 입을 다물었다.
무림맹의 지시는 단순했다.
-암흑혈천마교의 산서성지부를 감시하여 정보를 얻어내라는 것. 가능하면 철무의를 구할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솔직히 소마각 집행인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가능하면’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그게 일혈, 칠혈, 섭유흔과 암흑교도 이십 명을 넘게 해치우고 구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내일이면 철무의를 홀로 보내도 충분히 정주현까지 갈 수 있을 거야. 그때 산서성지부를 확인해보자고. 힘들면 빠져도 되고.”
“누가 힘들대요?”
청이 발끈했다.
항상 냉정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였기에 당황스러웠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집행인과 연락책은 함께 있어야 해요. 이건 반드시 지켜야하는 규칙입니다.”
청은 내 눈길을 외면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험준하지만 아름다운 태행산맥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 역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철무의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그간 감사했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소.”
철무의는 내게 정중하게 포권했다.
“고마움을 표하려면 이쪽에. 혼절하여 쓰러진 그대를 전장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겨 은폐하고 살려준 이는 청이니까. 그 조치가 없었으면 그대는 거기서 죽었소.”
“감사하오. 반드시 보답하겠소.”
“보답을 바라고 한 게 아닙니다. 괘념치 마세요.”
청은 다소 쌀쌀맞게 대답했다.
철무의는 청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며 소마각에 대해 편협한 선입견을 떨쳐냈다.
“정주현까지 조심해서 가시오. 난 암흑혈천마교 산서성지부를 확인해야겠소.”
“고맙소. 조심하시오.”
난 철무의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날렸다.
곧바로 청도 몸을 날려 내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철무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소마각이 무림맹에서 잡일이나 하는 하찮은 조직이라고 평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구나. 철무의야. 더 노력하고 정진하자.”
철무의는 자신을 다그치고는 몸을 날려 정주현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자 폐가에는 을씨년스러움만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