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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7화 (17/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7화

17화. 금노의 눈물.

무림맹.

청이 보낸 전서구는 곧바로 소마각에 도착했다.

소마각은 최근 들어 매우 활기차게 움직였다.

항상 참마각에 억눌려 지냈던 것을 단번에 보상이라도 하듯 그들의 행동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맹주실.

소마각주 황성원은 청이 보낸 첩보를 바탕으로 정보를 만들어 암흑혈천마교에 대해 보고했다.

맹주 양천린이 굳은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는데 반해 참마각주 조진량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을 찡그린 채 듣고 있었다.

“맹주님. 다정에게 포상금으로 일만냥을 내려주십시오. 아직 암흑혈천마교가 암흑마교의 후신인 것을 밝혀내진 못했지만, 혈마도 섭유흔이 포섭된 걸로 보아 매우 큰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작년에 전임맹주께서 토벌한 혈궁 정도로 추정합니다.”

혈궁은 하남성을 중심으로 크게 발호한 사파의 무리였는데, 맹주 화운룡이 무림맹과 오대세가의 정예를 이끌고 출동하여 무려 육개월에 걸쳐 무너뜨린 거대조직이었다.

“혈궁이라···.”

“좀 더 조사해봐야 압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조진량은 슬쩍 어깃장을 놓았다.

하지만 양천린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조 각주. 전 무림에 암흑혈천마교에 대해 알리시오. 특히 마혈을 제압해도 움직일 수 있으니, 그 부분을 강조해서 전파하시오.”

“예. 맹주님.”

“큰일이로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 가며 실험을 했기에 마혈을 찍혀도 움직이는 사술을 개발했단 말인가?”

“맹주님.”

“그래. 황 각주 말해보시오.”

“마혈을 완전히 푸는 정도는 아닌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고에 의하면 마혈을 찍힌 자가 움직일 때는 속도가 다소 느려졌고, 괴물의 울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주 위험한 일이야. 황 각주 고생했네. 그리고 다정에게 일만냥을 지급하게.”

“알겠습니다.”

“조 각주. 암흑마교와 혈천교가 손을 잡았을 수도 있으니, 그 부분도 신경 쓰게.”

“맹주님. 혈천교를 암흑마교와 비교하는 건 무리입니다.”

“알아. 하지만 마혈을 찍었는데도 무공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접하니 의심스러워서 그래.”

“예. 알겠습니다.”

조진량은 양천린의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띠며 복명했다.

이에 반해 황성원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동안 일만냥 이상의 포상금은 주로 참마각 집행인이 주로 수령했었다.

하여 황성원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정이 일만냥을 수령하자, 참마각을 이겼다는 생각에 후련함마저 들었다.

맹주실을 나왔을 때, 조진량이 황성원을 붙잡아 세웠다.

“황 각주. 다정에게 참마각 입각제의를 넣을 생각이오. 그래도 황 각주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뭐요? 소마각에 입각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우리 집행인을 욕심내시오?”

“난 제안만 할 뿐이고 선택은 다정이 하는 것이지. 뭘 그리 펄쩍 뛰시오?”

조진량은 싱글싱글 웃었다.

황성원은 그런 조진량의 면상에 주먹을 꽂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았다.

“원래는 입각한 지 일년이 넘지 않은 신입 집행인에 대해서는 욕심내지 않았잖소?”

“다정은 예외라. 대물이란 느낌이 드오. 대물. 껄껄껄.”

“이런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듣기 좋은 말이군. 대물이라면 욕심을 내야지. 그리고 대물을 품고 있기엔 소마각이 너무 좁지 않소?”

조진량은 대소를 터트리며 참마각으로 이동했고, 황성원은 그의 등짝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조진량의 마지막 말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거물 다정을 참마각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은 어디까지나 다정의 몫이었기에 황성원은 애가 탔다.

“젠장할.”

결국 황성원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소마각.

황성원은 소마각에 돌아오자마자 청에게 전서구를 날렸다.

다정을 설득해서 소마각에 남게 해달라고.

**

산서성에서 하남성 정주현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암흑혈천마교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속도가 느려졌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잠시 앉아 쉬던 나는 머리를 툭치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맹 최대의 적 암흑마교의 위세가 워낙 강했었기에 오직 그곳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약 50년 전에 혈천교가 존재했었다.

물론 이 조직도 내가 정예무인을 이끌고 출진하여 섬멸시켰었다.

암흑마교가 극강의 패도를 추구했다면 혈천교는 다양한 사술을 발전시켰었다.

‘누가 주축인가? 암흑마교의 후예인가? 아니면 혈천교의 후예인가?’

이건 굉장히 중요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둘이 손을 잡았다면 매우 강력한 무인이 나타났다는 방증이었다.

암흑마교의 후예가 주도권을 쥐었다면 앞으로의 싸움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혈천교의 후예가 주도권을 잡았다면 사태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난 혈천교와 싸웠던 때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땐 정말 행운이었어.’

그랬다.

무림맹주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혈천교를 토벌하기 위해 출병했기에 무척 긴장했었다.

그들과 전투를 치르면서 기괴한 사술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치열한 전투 중에 길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했는데, 헤매다 우연히 혈천교주와 마주쳤다.

그때 혈천교주 좌멸천(左滅天)의 일그러졌던 얼굴이 떠올랐다.

좌멸천을 비롯한 수뇌부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면서 기세 좋던 혈천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덕분에 무림맹에서는 혈천교에 대해 그저 ‘사술을 연구했던 단체’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지다보니 존재감이 희미해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조직인지를.

행운이 없었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암흑마교.

혈천교.

흑도련.

사황련.

혈궁.

그동안 힘들게 토벌했던 사마외도의 대표적인 단체였다.

혈천교가 당당히 끼어 있다는 것만 봐도 그들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세인들은 혈천교를 제외한 네 단체만 기억했다.

‘정말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구나.’

이 부분도 무림맹에 전달하여 그들의 경각심을 고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정주현 근처의 무덕현에 들러 접선장소에 표시를 남겼다.

그 후 계속 남쪽으로 이동했고, 정주현 근처인 중모현에서 청을 만날 수 있었다.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청에게 앉으라며 손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전 면을 좋아하는데요.”

그녀는 싱긋 웃고는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주문했다.

식당은 공개적인 자리였기에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며 식사했다.

“그런데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전에 너무 뚱뚱했었거든.”

“저와 처음 만났을 때는 뚱뚱하다기 보다는 건장하다는 느낌이었는데요.”

“그전에 나를 봤으면 기절했을 거야. 정말 심각했거든.”

“잘생기셨어요. 정말로.”

“밥값 내야겠네.”

“잘 어울리세요.”

“뭐가?”

“그 분이랑요.”

“아, 내가 전생에서 나라를 구했거든.”

난 싱긋 웃으며 밥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남자친구 있어?”

“이런 직업인데 있겠어요?”

“예뻐서 인기가 많을 텐데.”

“그러게요. 하지만 전 이 직업이 마음에 들어요. 조용히 내조할 성격이 아니라서. 어머, 말해놓고 보니 시집은 다 갔네요.”

“좋은 인연을 만날 거야.”

“그럼요. 제가 어디 가서 빠진다는 말은 듣지 않아요.”

“인정.”

“참, 포상금 나왔어요.”

그녀는 집게손가락을 펴며 왼쪽 눈을 깜빡이고는 전표가 담긴 봉투를 건넸다.

일만냥 짜리 전표 한 장과 천냥짜리 전표 여섯장.

태극검 도양과 곡씨삼흉을 처리비용까지 포함된 금액이었다.

“고마워. 잘 쓸게. 나도 선물.”

두툼한 봉투를 받은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에요?”

“읽어봐. 꽤 재밌을 거야.”

“에휴, 재미가 아니라 고생이겠죠. 그전에는 편했었는데.”

“다 먹었으면 일어설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당을 나온 우린 사람이 없는 넓은 공터로 향했다.

“혈천교에 대한 내용이야. 암흑마교도 중요하지만, 혈천교에 대해서도 신경 쓰라는 의미에서 몇 글자 적었어. 사람들이 혈천교를 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거든. 무림맹도 마찬가지고.”

“혈천교도 아세요? 놀랍네요.”

“이 정도로 무슨. 앞으로 놀랄 일이 더 많을 텐데.”

“알겠어요. 저야 연락책이니 소마각에 전달하면 거기서 알아서하겠죠.”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간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참마각에게 다정님께 입각제의를 했어요.”

그녀는 품속에서 조진량의 친서를 꺼내 내게 주었다.

“대신 읽어줘.”

“왜요?”

“조진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무인답지 않아.”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아세요?”

“내 여자친구가 누군지 잊었어?”

“아, 만월루. 세상의 모든 정보는 만월루를 거친다는 말이 있으니.”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진량의 서신을 펼쳐 읽었다.

낯간지럽게 날 영웅으로 치켜세운 내용에서는 헛웃음마저 나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만냥을 지급하겠다는 대목에서 역시 조진량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요? 오만냥이면 굉장히 큰 금액인데요.”

“전에 말했잖아. 오십만냥이면 생각해보겠다고.”

“호호호. 조 각주님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려지네요.”

“뭐, 알 바 아니고. 그거 혈천교 중요한 거니까 꼭 전달해. 암흑마교만 신경 쓰다가는 크게 뒤통수 맞을 테니까. 조심하라고 하고.”

“그럴게요. 정주현에 계실 거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

정주현.

제일 먼저 만월루를 찾아 금노와 만났다.

“일만냥이라···. 자네 돈 버는데 소질이 있군.”

“이제 육만냥인가요?”

“그렇지. 맡겨놓은 오만냥에 이자가 붙어서 정확히 말하면···.”

“됐습니다. 나중에 돈이 모아지면 좋은 영약이나 부탁합니다.”

“그러지. 어때 할 만한가?”

“내공이 부족해서 항상 안타깝죠.”

금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엉뚱한 말을 꺼냈다.

“오만냥.”

“오만냥요?”

“자네 가치.”

“하하하.”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금노답다는 생각이 들었기도 했다.

처음에 그는 내 신용도를 일백냥으로 평가했었다.

돈으로 평가받는 것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가치가 올랐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괜찮았다.

“일억냥이란 말을 듣고 싶은데요.”

“글쎄. 내 입에서 일억냥은 딱 한번 나왔었네. 전임맹주였었지. 나 역시 자네가 그만큼 성장했으면 좋겠군.”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억냥의 주인공이 나였다.

역대 최강의 무림맹주로 평가받았던 나 화운룡.

그러고 보니 요즘은 화운룡이란 단어가 낯설다.

아무래도 구양천의 몸으로 살면서 여기에 익숙해진 듯하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연이가 지금 없는데.”

“당분간 정주현에 머무를 테니까 연락주세요.”

“그러지.”

“참, 선물 하나 드릴까요?”

“선물?”

“네. 아주 마음에 드실 겁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서서 몇 걸음 걸어 금노의 집무실 중앙에 섰다.

천천히 귀혼검을 뽑아 기수식을 펼치자, 금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절검법···.”

곧 내 손에서 검제 구양의의 독문검법 천절검법이 펼쳐졌다.

정확히 말하면 모방이었다.

천절검법의 구결도 알지 못했고, 천절검법과 짝을 이루는 천무신공도 익히지 않았다.

하지만 극의에 이른 내 감각은 거의 완벽하게 천절검법을 시연해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검제를 떠올린 금노의 눈이 붉어지며 촉촉해졌다.

금노는 내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천절검법을 시연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는 이렇게 빨리 천절검법을 보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후우.”

마무리를 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금노는 기쁨, 안타까움, 그리움이 섞인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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