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5화
15화. 배후를 캐다.
연월루.
곡씨삼흉과 도양을 처치한 나는 양원현 시내에 위치한 연월루에 방을 잡았다.
방에 들어온 나는 비스듬히 이불에 기대어 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암흑천세라니.’
난 천천히 도양과 대적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그가 펼친 검법은 무당파 검법인 태극검법.
그의 마혈을 제압했는데, 갑자기 눈이 뒤집히더니 공격했다.
‘무엇일까? 사술일까? 인신매매와 관련이 있는 걸까?’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했다.
32년 전에 내 손으로 직접 죽였던 암흑마교 교주 척무혁이 떠올랐다.
마교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불렸던 척무혁은 고강한 무위 못지않게 자존심이 굉장히 강했다.
극강의 패도를 추구했던 그는 사술을 격멸했고, 사술을 펼치는 사파 무리는 척무혁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분명 사술로 보이는데 어째서 암흑천세를 외쳤단 말인가? 어째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군가 암흑마교를 모방한 단체를 세웠고, 도양이 그 단체에 속했던 것일까?
고개를 흔들었다.
마혈을 찍었는데도 몸을 움직여 공격한다는 건 심오하고 방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 정도 연구를 진행할 단체가 단순히 모방단체일리는 없었다.
‘어쩌면 무림맹에 복수하기 위해 마교와 사파의 무리가 손을 잡았는지도 모르겠군. 내가 철저하게 박멸시켰으니. 쯧쯧. 적당히 숨통을 트여줄 걸 그랬나.’
답답했다.
지금 내 무위로는 절정고수까지 상대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모르니 어찌어찌 초절정고수까지는 상대하겠지만, 화경의 고수는 무리였다.
초절정고수도 내공수위가 높고 노회한 고수라면 상대하기 곤란했다.
영약을 복용하여 내공을 늘리는 게 유일한 해답이었다.
정말 갈 길이 멀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나는 정주현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바꿔 어제 도양을 해치웠던 폐가로 이동했다.
도양 정도면 꽤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을 테니,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분명 그가 속한 조직에서 움직일 것이다.
상대할 수 없는 거물이 나타나면 지켜보다가 도망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잡아서 배후를 캘 생각이었다.
**
무한현 무림맹 소마각.
소마각주 백검(白劍) 황성원(黃成原)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고민하던 그는 탁자 위의 작은 쪽지를 집어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섰다.
맹주실.
맹주는 이번에 새롭게 선출된 봉황검(鳳凰劍) 양천린(梁天璘)이었다.
황성원은 긴장한 표정으로 맹주실에 들어섰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황성원은 포권하고 고개를 들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경쟁관계인 동시에 상위기관장인 참마각주 일도탈명(一刀奪命) 조진량(趙眞良)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시오. 그렇지 않아도 조 각주와 중원의 정세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소. 자, 이리로 앉으시오.”
“예.”
황성원은 공손하게 조진량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오? 표정을 보니 긴한 일인 듯한데?”
양천린의 물음에 황성원은 심호흡을 하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암흑마교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나타났습니다.”
암흑마교라는 말에 양천린과 조진량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확실한 것이오?”
조진량이 큰 목소리로 황성원을 다그쳤다.
조진량은 평소 한수 아래로 여겼던 황성원에게 선수를 빼앗기자 열불이 났다.
특히 작은 사안도 아닌 암흑마교였다.
“본각의 집행인 다정이 태극검 도양을 죽였는데, 그가 죽으면서 암흑천세를 언급했다고 합니다.”
“다정? 다정은 얼마 전에 사망했지 않았소?”
“이번에 출중한 무인이 소마각에 입각하여 새로 다정이 되었습니다. 연락책 청이 직접 보고 들었고, 그걸 전서로 보내왔으니 믿을 만합니다. 청은 매우 숙련된 연락책입니다.”
황성원은 청이 보낸 쪽지와 암호해독서를 함께 양천린에게 건넸다.
청이 보낸 쪽지는 암호로 작성되어 있었기에 소마각, 참마각의 무인이 아니면 읽을 수 없었다.
곁눈질로 쪽지를 본 조진량은 황성원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산서성이라···. 깊숙한 곳이로군.”
“그렇습니다. 산서성은 매우 험준한 태행산맥이 위치하여 예로부터 사마외도무리가 도망쳐 은거하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양천린은 고민에 빠졌다.
험준하고 넓은 산서성을 단서도 없이 수색하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어려웠다.
“황 각주. 의견을 말해보시오.”
“아직 구체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으니 무작정 산서성을 수색하는 건 무리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하여 각지부에 비상령 1단계를 발령하고, 좀 더 세밀하게 사마외도의 동향을 살피도록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양천린은 조진량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견을 내라는 의미였기에 조진량은 ‘어흠’하고 입을 열었다.
“황 각주의 의견이 옳습니다. 지부에서 경계심을 가지면 족하지요.”
“그럽시다. 그럼 비상령 1단계를 발령할 테니, 조 각주와 황 각주는 좀 더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조진량과 황성원은 정중하게 포권하며 복명했다.
참마각.
조진량은 돌아오자마자, 부각주를 호출했다.
“다정이란 놈이 누구야?”
부각주 관해(關海)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남성에서 새로 선발된 무인인데, 자세한 건 알지 못합니다.”
“알아봐.”
“각주님. 집행인의 신상은 철저하게 비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를 캐려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최근에 하남성에서 소마각 입각시험을 치른 자들을 확인하면 대충 어떤 놈인지 추려볼 수 있잖은가?”
조진량은 소마각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을 건들고 있었기에 관해의 표정은 더욱 당혹스러워졌다.
하지만 조진량은 물러서지 않았다.
“정보 가져와봐.”
“알겠습니다.”
관해는 일단 복명하고 물러났다.
참마각은 소마각과 함께 단순히 사마외도를 처리하는 조직으로 외부에 알려졌지만,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처리하는 막강한 조직이었다.
약 한 시진 후.
관해는 문서를 가져왔고, 조진량은 재빨리 문서를 들어 살피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문서를 내려놓았다.
혹시나 대단한 무인이 있나 봤는데, 특별한 무인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정이 누군지 추론하기 힘들었다.
“태극검 도양과 곡씨삼흉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도양은 절정의 무인, 곡씨삼흉은 절정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관해의 대답에 조진량의 표정이 구겨졌다.
맹주실에서 본 청의 보고서에 의하면 다정이 몇 초 만에 도양을 제압하고, 발작하며 기습하는 그를 단 일 초 만에 쾌검으로 베었다고 보고되어 있었다.
그러니 관해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정의 무위는 초절정이란 뜻이었다.
“그 정도면 초절정인데···어째서 그런 자가 소마각의 집행인이란 말인가?”
“지켜보시지요. 그가 대단한 무인이라는 게 확인되면 제가 청에게 참마각 입각 제의를 넣겠습니다.”
“그렇게 해.”
조진량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같아서는 다정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했고 연락책인 청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연락방법이었다.
“그리고 각 지부에 비상령 1단계를 발령해. 암흑마교가 부활할 기미가 보여. 작은 정보라도 곧바로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려.”
“알겠습니다.”
관해는 즉각 복명하고 물러났다.
조진량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서류를 펼쳤다.
**
연월루를 나오기 전 역용술을 펼쳐 본 얼굴을 가리고는 경공술을 펼쳐 폐가로 향했다.
폐가에 도착한 나는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폐가로 들어서자, 역한 냄새와 흙으로 대충 덮어 주변으로 검은색 액체가 번진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시체를 처리하는군.’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폐가를 나온 후, 근처의 높은 나무로 올라갔다.
기다리는 일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배고픔, 무료함, 생리욕구.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럼에도 목표가 있기에 참으며 기다리는 것이다.
며칠을 기다리며 쪽잠을 자며 버텼다.
내공이 높아지면 일반백성에 비해 잠을 적게 자도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은밀하게 누군가를 기다려 본적이 언제였던가? 거의 50년만인 것 같은데.’
무림맹에 입맹하여 맹주가 되기까지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는 방법을 몰라 좌충우돌했었고, 많이 힘들었었다.
다행이 행운이 따랐고 누구보다 강력한 무인이 되면서 맹주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닷새를 기다렸을 때쯤,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었는데, 초절정의 무인은 보이지 않았다.
난 내공을 일주천하고는 몸의 관절을 풀어주었다.
총 다섯 명.
단숨에 제압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슈우우우욱.
그대로 몸을 날려 바닥에 내려서자, 그들이 일제히 몸을 돌리며 검을 뽑았다.
하지만 내 검이 더 빨랐다.
앞을 막아서는 흑의무인의 옆구리를 벤 후, 두 걸음 옮겨 좌측의 청의무인을 왼쪽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갈라버렸다.
“끄아악.”
“으헉.”
두 무인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나머지 셋의 표정이 썩은 돼지 간처럼 자줏빛으로 변했다.
“삼형진을 펼쳐!”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명령을 내리자, 두 무인이 보법을 펼쳐 내 좌우를 점령했다.
난 그들이 막 자리를 선점했을 때, 곧바로 좌측의 무인을 향해 섬전벽력을 전력으로 펼쳤다.
쐐애애애애액.
서걱.
“크아악.”
좌측의 무인은 급히 칼을 들어 막았지만, 전력으로 펼친 섬전벽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검을 들었던 오른손이 싹둑 잘려져 나갔고, 몸은 세로로 두동강이 났다.
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삼형진이 무산되자, 우측의 무인의 표정은 혼자보기 안쓰러울 만큼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퉁.
천의검범 3초식 뇌정지탄을 지공으로 전환하여 펼쳤고, 그는 구멍이 뚫린 어깨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난 재빨리 달려들어 그의 마혈과 아혈을 찍은 후, 대장을 향해 돌아섰다.
“네, 네놈은 누구냐?”
“그건 알 필요 없고. 도양과 무슨 관계야? 아, 내가 도양을 죽이고 너희를 기다렸으니까, 괜히 피곤하게 헛소리는 하지 말고.”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모르니까 이렇게 묻잖아.”
내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그가 소릴 질렀다.
“이 자식, 인피면구를 썼구나.”
젠장할.
역시 하급 역용술이었다.
이런 놈조차 속이지 못하다니.
뭐, 내 본모습을 숨기면 되니 상관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대장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쿠르르르르.”
괴음을 토해내며 우측에 쓰러졌던 사내가 내게 달려들었다.
마혈을 제압당했던 사내였다.
이미 도양을 통해 마혈을 제압당하고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대응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곧바로 뇌정지탄을 날려 우두머리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하여 쓰러트리고는 우측사내를 각법으로 걷어찼다.
내공을 실어 걷어차자, 그는 주르르 밀려났다.
난 그대로 달려들어 사정없이 그를 두드려 팼다.
그의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 그만. 제발. 그만.”
우측사내는 애처로운 비명을 터트렸다.
“또 이상한 사술을 쓰려면 써봐. 지옥이 뭔지를 보여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호되게 당한 그는 바닥에 누운 채 괴로운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쏟았다.
몸을 돌리자, 대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퉁.
다시 뇌정지탄을 날렸다.
이번에는 왼쪽 어깨였다.
이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 네놈들이 속한 조직에 대해 말하도록. 참고삼아 말하는데 입안의 독단을 깨문다던가? 혀를 깨문다던가? 그거 소용없으니까, 하지 말고. 죽을 자신 있으면 해봐. 그때는 진짜 지옥이 뭔지를 알려줄 테니까.”
사마외도의 특성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전문가였다.
두 사내의 얼굴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