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2화
12화. 소마각.
며칠 후.
나는 소마각에 입각할 요량으로 무림맹 하남성지국을 찾았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생각했다.
지금의 내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 그대로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50년이면 그래도 많은 내공이었다.
작은 하남성지국이니 주목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였지만, 최대한 빨리 무림맹으로 치고 올라가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성문을 지키는 무인에게 구양세가 구양천임을 알리고, 소마각 시험에 응시하러 왔음을 알렸다.
잠시 그곳에서 기다리니, 일류로 보이는 무인이 나왔다.
“구양세가 이공자시라고요?”
“그렇습니다. 구양천입니다.”
“이런 살이 정말 많이 빠졌군요.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습니다. 저는 소마각 소속 황웅빈(黃雄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내가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하자, 황웅빈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결례라도 했습니까?”
“그게 아니라 저를 모르십니까?”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이런 일을 수없이 겪게 될 것이다.
“제가 기억의 일부를 상실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 그렇군요. 이런. 제가 이공자의 아픈 곳을 건드렸군요. 큰 인연은 아니고 이공자와 몇 번 술자리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정 단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정 단주는 소마각 하남성지단 단주 정혼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황웅빈이었기에 걸으며 대화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험 보러 오는 무인을 단주님께서 직접 만나주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남성에서 구양세가의 위치는 특별하니까요. 그리고 이공자의 무위가 대단히 높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단주님께서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구양세가에서 내 무위에 대해 정혼에게 알렸을 것이다.
역시 검제는 하남성의 기둥이었다.
그때 검제가 죽지 않고 참고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난 순순히 물러났을까? 아닐 것이다.
작년에 혈궁을 직접 토벌할 만큼 난 의욕에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래. 검제도 이런 나를 보니 기다려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욕심이었어. 적당히 하고 검제에게 자리를 물려줘도 충분했을 것을.’
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양천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소마각 정혼 집무실.
“그리로 앉으시게.”
50을 넘긴 정혼은 정말 멋지게 늙었다는 말이 어울렸다.
만약 외모로 무림서열을 정한다면 그는 당당히 무림맹주 후보에 들 것이다.
“그래 소마각에 입각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부친께 자네의 무위에 대해 대충 들었네. 그는 자네가 성제와 맞먹는 절정고수라고 하던데, 참인가?”
“아직 많은 비무를 해보지 못했기에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현재 내공수위는 50년, 구양검법을 대성한 수준입니다.”
“호오, 50년씩이나? 영약을 복용하셨는가?”
“운이 좋았습니다.”
굳이 천지금령초를 복용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만월루까지 엮여 들어갈 것 같았기에 이쯤에서 차단했다.
정혼도 그 이상을 질문하는 건 실례라 생각했는지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럼 시험을 해보세. 구양세가의 이공자니 굳이 신원보증은 필요 없고. 따라오게.”
정혼은 구질구질하게 이것저것 묻지 않고 나를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어차피 검제의 가문 구양세가 출신이고, 부친 구양현, 제검대주 성제와 안면이 있으니 무공이 일정 실력 이상이면 입각을 허락할 생각이었다.
연무장으로 함께 걸으면서 그는 이것저것 질문했는데, 주로 구양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난 솔직히 기억상실부분을 이야기하자, 그는 구양세가의 과거와 검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검제가 죽은 지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곳 하남성의 무인들은 여전히 검제 구양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새삼 친우 구양의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오셨습니까?”
무인 한 명이 정혼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자, 정혼이 가볍게 인사한 후에 말했다.
“이번에 시험 보러 온 구양세가 이공자 구양천일세.”
“반갑습니다. 구양천입니다.”
“반갑습니다. 원강현(元强賢)입니다. 두 가지를 통과하면 됩니다. 일단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 저 등짐을 메고 일마장을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도주해야 하는데 그때는 탈진했을 경우이기에 기초체력을 시험하는 겁니다. 두 번째와 저와 비무하면 됩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건 아니니 편하게 비무하시면 됩니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강현은 절정의 무인.
그는 비무를 통해 내 실력을 확인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원래 이 몸은 강력한 체력을 보유했다.
그 후에 매일 강도 높은 체력단련을 했으니 이 시험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원강현은 내게 다가와 내공을 제압했다.
등짐을 들자, 상당히 무거웠다.
웬만한 체력이라면 절대 이걸 매고 일마장을 달리지 못할 것이다.
난 등짐을 메고 곧장 뜀박질을 시작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
반마장 거리에 놓인 깃발을 돌아 정확히 원강현 앞에 도착했다.
“대단합니다.”
원강현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체력이 강한 자라면 이 시험을 통과하지만, 깃발을 돌아왔을 때는 매우 힘들어서 붉어진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평온했으니 매우 놀랐을 것이다.
“조금 쉬셨다가 준비되면 비무를 시행하겠습니다.”
원강현은 제압했던 내공을 풀어주며 말했다.
“바로 시작합시다.”
원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검을 뽑았다.
나는 귀혼검을 뽑으며 기수식을 취했다.
원강현은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공 50년의 무인은 많이 봤다.
그런데 그런 무인과 비교했을 때, 나의 기운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는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검끝을 내게로 향했다.
“차앗!”
원강현이 선공했다.
그의 검이 가슴을 노리며 빠르게 찔러왔다.
나는 그의 검을 가볍게 쳐냄과 동시에 앞으로 한발자국 전진하며 옆구리를 쓸었다.
원강현은 깜짝 놀라며 급히 몸을 틀어 피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귀혼검은 그의 목을 향했다.
캉.
원강현이 급히 귀혼검을 내리쳤다.
난 그대로 검을 내리며 옆으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려 목, 가슴, 배의 요혈을 동시에 노리고 들어갔다.
“헉.”
예상치 못한 변초에 원강현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급히 물러났고, 나는 바로 따라붙으며 그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귀혼검이 그의 목젖에 닿으면서 비무가 끝났다.
성제가 극복하지 못했던 초식인데, 원강현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원강현은 물론이고 정혼도 깜짝 놀랐다.
설마 절정무인인 원강현이 이렇게 쉽게 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네 부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는데, 정말 대단하군.”
“합격입니까?”
“그렇네.”
“선공하고도 이렇게 빨리 패배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마 구양무인께서 선공했다면 제대로 초식도 교환해보지 못하고 패배했으리란 생각이 드는군요. 축하합니다. 구양무인.”
“고맙습니다.”
난 정혼과 원강현에게 정중하게 포권했다.
“따라오시게.”
나는 곧장 정혼을 따라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안쪽의 기관을 조작하여 두꺼운 철문을 열더니 단단하게 밀봉된 꽤 큰 봉투를 꺼냈다.
“이 안에는 자네의 별호, 소마각에서의 접선방법 등 소마각 집행인의 안내서가 들어있네. 그대로 시행하면 되네. 부디 장수해서 성공하시게.”
“정 단주님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게 아니었습니까?”
정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집행인은 1, 2, 3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네가 원강현을 순식간에 이겼기에 1급을 받았지. 원강현이 저렇게 패배하는 건 오늘 처음 보았네. 보통은 3급에서 시작하네. 1급은 소마각에서 직접 지휘하고, 2, 3급은 내가 지휘하지. 따라서 자네는 소마각주의 지휘를 받게 될 거야.”
“그렇군요.”
“그리고 1급 집행인은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고 별호를 불리기에 임무 중에 만나더라도 나는 자네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어렵고 힘든 임무에 투입하기 때문에 적은 물론이고 아군에게도 비밀을 유지해야 하니까. 그만큼 무림맹에서 우리 집행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네.”
“그래서 장수해서 성공하라고 하셨군요.”
“소마각주가 직접 지시를 내리니 어려운 임무가 많아. 그리고 자네에게는 연락책이 따라붙을 걸세. 그들은 은신술과 경공술에 능하며 소마각주와 자네를 연결하는 임무를 맡네. 또 그가 자네의 실적을 상부에 보고하여야 그에 따른 수당을 받을 수 있지.”
“참마각도 같은 방식입니까?”
“그렇다고 알고 있네. 그곳의 집행인은 총 20명. 절정에서 초절정의 무인이 모인 곳이지. 워낙 실전경험이 풍부한 자들이라서 실제로는 모두 초절정이라고 봐야 할 거야. 그 외에는 모두 비밀이네.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비밀만 가득한 조직이 참마각이지.”
“아쉽군요. 정 단주님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는데요.”
“그러기엔 자네의 실력이 너무 월등하군. 아무튼 축하하네. 그리고 자네는 소마각에 합격하지 않았네.”
“무슨 말씀입니까?”
“1급부터는 비밀이기 때문이지. 나나 원강현도 이제부터 자네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할 테고. 그러니 자네도 세가에 비밀로 해주게.”
“알겠습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1급이면 위험한 임무가 많을 텐데, 세가에서 걱정이 많을 것이다.
“저,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말씀하시게.”
“맹주님의 사인을 알고 싶습니다.”
정혼의 얼굴이 굳어졌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비밀로 해주시게. 내 입에서 나왔다는 걸 알면 내가 곤란해지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사실 맹주님의 죽음은 비밀로 할 게 아니었어. 주무시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셨거든. 역대 맹주님 가운데 가장 편하게 생을 마치셨지. 시간은 한 달 전이고.”
“그럼 왜 극비에 붙인 겁니까?”
“사파에서 준동할 수 있으니까. 맹주님께서 작년까지 혈궁을 토벌할 만큼 의욕적으로 움직이셨는데, 반대로 말하면 틈만 나면 사파들이 준동했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분이 무너뜨린 사파세력이 곳곳에 움츠리고 기회만 엿보고 있어. 그러니 비밀로 한 것이지. 세상이 언제나 편안해질지. 쯧쯧.”
정혼은 탄식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안심이 되었다.
무림맹에 어떤 흑막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이유였다니.
아마도 제갈문현의 머리에서 나왔으리라.
“새로 맹주님을 선출했습니까?”
“아직.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네. 압도적으로 강한 무인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제까지 화 맹주님 덕분에 평화를 누린 무림은 이제부터 고난의 시간을 보낼지 모르겠네. 자네 정신 바짝 차리게. 아마도 숨어 지내던 사마외도의 거마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
“이야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혼은 무림맹의 사정에 대해 아는 한도에서 이야기해줬다.
내가 구양천이 아니었다면? 강력한 무위를 입증하여 1급 집행인에 오르지 않았다면?
정혼은 이렇게까지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덕분에 궁금했었던 것이 대부분 해소되었다.
당장에라도 무림맹에 달려가 제갈문현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화운룡이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정혼에게 포권하고 하남성 지국을 나섰다.
정혼과의 인연을 기대했었는데, 만나자마자 이별이었다.
연락책이 붙는다?
무림맹주 시절에는 이런 것도 몰랐었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