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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1화 (1/151)

구양세가 역대급 천재 망나니 1화

1화. 천하제일인 화운룡.

호북성 무한현 무림맹(武林盟).

세상의 더러움을 다 씻어버릴 듯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나는 상념에 잠겼다.

퍼붓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지난 82년의 생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세상은 무림맹주인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사마외도의 무리는 아무리 척결해도 들판의 잡초처럼 끊임없이 살아났다.

난 그들에게 한 번도 자비를 베풀지 않고 모조리 격멸했다.

불과 1년 전에 하남성에서 혈궁(血宮)이라는 사파단체가 창궐했을 때, 나는 무림맹의 정예무인 1천을 이끌고 가 무려 6개월의 혈전 끝에 혈궁을 지도상에서 소멸시켰다.

내 생은 무공을 익히고 사마외도를 척결하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적이라고 판단하면 피도 눈물도 없이 처단하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가 비정(非情)의 맹주였다.

하지만 난 내 삶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과연 내 삶이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없이 오직 정의를 외치며 살았던 내 삶이 행복한가?

행복.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단어였기에 난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걸 떨쳐내려고 했지만, 계속 꼬리를 물고 마음에서 일어났다.

“젠장.”

“뭐가 안 풀리십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무림맹 군사이며 무림제일현자인 제갈문현(諸葛文賢).

난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50에 접어들은 그는 오늘따라 더 늙어보였다.

“오랜만에 비를 보고 있었네.”

“고민이 있으십니까? 벌써 세 시진째 그렇게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온 것도 모르고요.”

“세 시진이나?”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제갈문현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난 비를 보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82년을 돌이켜봤으니 세 시진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지난날을 돌아보았네. 내가 잘 살았을까?”

“맹주님께서는 누구보다 강호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맹주님의 헌신이 없었다면 무림은 끊임없이 창궐하는 사마외도의 무리 앞에 절망의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맹주님은 누구보다 훌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나이에 이만큼 존경을 받고 열심히 살았으면 그걸로 족할 테니까.

난 천천히 맹주전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제갈문현은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 따라왔다.

한참을 걷던 나는 맹주전 입구에 멈춰 서 벽을 바라보았다.

웅혼한 필체로 쓰인 글이 벽면을 채워놓았는데, 이는 내가 무림맹주로 재직하는 동안 사마외도를 물리친 업적이었다.

다시 그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암흑마교(暗黑魔敎).

혈천교(血天敎).

흑도련(黑道聯).

사황련(邪皇聯).

혈궁(血宮).

강력했던 적수만 5개 세력이었고, 자잘한 세력까지 포함하면 20개가 넘었다.

그 자잘한 세력도 지금 강호에 등장하면 피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암흑마교를 물리칠 때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제갈문현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고,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암흑마교와의 전투는 무려 5년을 끌었고, 그때 전사한 무림맹 무인만 2천이 넘었다.

나 역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교주 암흑마신(暗黑魔神) 척무혁(戚武奕)을 죽여 암흑마교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무림맹주 재임시 내 최대치적을 꼽으라면 단연코 암흑마교의 멸망이었다.

그때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에 비하면 다른 사마외도를 물리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시 몇 걸음 옮긴 나는 다시 멈춰 섰다.

이번에도 내 치적이 벽면에 새겨져 있었는데, 그 내용이 방금 전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사마외도가 아닌 정파의 도전이었다.

정확히 32년 전.

암흑마교가 무너지며 무림은 평화를 맞이했다.

사마외도는 숨을 죽이며 외지로 숨어들었고, 무림맹은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새로운 세력이 내게 도전했다.

바로 정파의 거두였던 검제(劍帝) 구양의(歐陽義)의 도전이었다.

“이때 맹주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랬지. 검제의 도전이었으니까.”

내 눈은 추억을 회상하며 붉게 물들었다.

검제 구양의.

나 철혈검신(鐵血劍神) 화운룡(華雲龍)과 함께 무림이강으로 불렸다.

그는 내 친우였으며 함께 암흑마교를 무너뜨린 전우였다.

그와 무학을 연구했고, 비무하며 서로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랬던 구양의가 내게 도전한 것이다.

“휴우.”

“힘드시면 맹주전에서 쉬십시오.”

“괜찮네. 참, 구양세가는 지금 어떤가?”

“몰락했습니다. 검제께서 돌아가신 후, 완전히 몰락했지요. 지금은 과거의 천하제일 구양세가가 아닙니다.”

“그랬지. 그랬어.”

과거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검제는 무림맹주에 대한 야망을 드러냈고, 검제가 이끄는 오대세가가 무림맹과 싸운다면 무림은 공멸할 가능성이 컸기에 고심 끝에 난 그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이보게. 그렇게 내 자리가 탐이 나는가?”

“사내대장부로 태어났고 무림인이 되었다면 당연히 무림맹주에 올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예하세력을 이끌고 싸운다면 무림이 공멸할 수도 있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그냥 나보고 이인자로 평생을 살란 말인가?”

구양의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반문했다.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구양의는 천하제일인의 자격이 충분했다.

나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무위를 지녔고, 인품이 넉넉했으며 호방하고 명성이 높았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가 무림맹주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둘만의 비무로 결정하세. 굳이 예하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겠는가?”

“그 말은?”

“내가 패배한다면 맹주자리에서 내려오겠네.”

순간 구양의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떠올랐다.

그 역시 바라던 바였다.

무림맹과 싸워 이긴들 무림이 피폐해진다면 맹주의 자리에 오른 기쁨은 반감될 것이다.

“대신. 자네가 패배한다면 20년간 봉문하게. 그리고 다시는 무림맹주 자리를 넘보지 말게. 약속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구양의는 호탕하게 웃으며 약속했다.

한 달 후.

무한현은 무림인으로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가득 찼다.

구파일방의 장문인, 오대세가의 가주, 수많은 무림명숙이 숨을 죽이고 우리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우리의 비무는 실로 경천동지했다.

나는 검강, 이기어검술까지 모조리 동원했지만, 검제 역시 검강과 이기어검술을 꺼내며 맞섰기에 승부를 내지 못했다.

막상막하라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이었다.

결국 1천 초가 지나도록 승부를 내지 못하면서 내공이 소진되어 검강, 이기어검술을 펼치지 못했다.

우린 초식으로 승부를 걸었다.

비록 막강한 내공이 실린 초식은 아니었지만, 검 끝에 실린 검기와 궁극에 이른 검로는 실로 예술이었다.

결국 2천 초에 이르러 내 검이 그의 목젖에 닿으면서 승부가 났다.

정확히 반초 차이였다.

만약 반초 뒤졌다면 내가 패배했을 것이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진정 원망스럽소.”

구양의는 바닥에 주저앉아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그의 분함은 나도 인정했다.

그는 이제껏 상대한 사마외도의 어느 누구보다 강했으니까.

“나 구양의 이대로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

난 그가 약속을 번복한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 기수식을 취했고, 구양의는 검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그의 무서움을 알기에 난 전력을 기울여 심장을 찔렀다.

그때 놀라운 반전이 벌어졌다.

구양의는 마지막에 검을 거둬들인 것이다.

푸욱.

내 검이 정확히 그의 심장을 찔렀다.

울컥.

구양의는 피를 토해내며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친우여. 내가 추한 모습을 보였어.”

**

난 고개를 흔들며 상념에서 깨어났다.

지금도 의문이었다.

그는 왜 내 검에 찔려 죽임을 당했을까?

좋은 친우로 계속 남을 수는 없었던 걸까?

구양의를 잃은 나는 더욱 비정해졌다.

“구양세가의 몰락은 자업자득입니다.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하남성의 문파가 등을 돌렸으니까요. 지금의 구양세가는 그저 평범한 세가에 불과합니다.”

나는 말없이 제갈문현의 말을 들었다.

“아쉽게도 검제의 천절검법과 천무심결은 검제의 죽음과 함께 절전되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구양세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텐데. 아, 물론 그의 후손들이 모두 평범한 재능을 타고 났으니, 검제의 무공이 남아있었더라도 예전의 영화는 누리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갈문현은 자세하게 구양세가에 대해 말해줬지만,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난 그저 검제와의 추억에 빠져들 뿐이었다.

오늘따라 미치도록 그가 보고 싶었다.

‘이 사람아. 잘 지내고 있는가? 많이 서운했지? 조금만 기다리게. 나도 곧 가겠네. 우리 저승에서 술이나 한잔하세.’

“쉬고 싶군.”

난 천천히 맹주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융단이 깔린 맹주전의 상석에는 태사의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곳을 지난 안쪽으로 들어가자, 평범하지만 고급스러운 침실이 나타났다.

“편히 주무십시오. 그럼 우울했던 마음이 한결 좋아지실 겁니다.”

제갈문현은 이불을 덮어주며 이같이 말했다.

“고맙네. 다시 태어나도 자네와 함께 일하고 싶네.”

“소인은 항상 맹주님 곁을 지킬 것입니다.”

난 제갈문현의 말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건 술을 진탕 마셨을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분명 어제는 제갈문현과 대화하고 편안하게 잤거늘, 어째서 이리 강한 숙취가 느껴진단 말인가?

난 어지러움을 느끼며 상체를 일으켜 대접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숙취 후에 마시는 물이 이토록 시원한 줄 처음 알았다.

무림맹주로 재직할 때는 항상 긴장하며 살았고, 그래서 술을 먹어도 내공을 이용해 취기를 몰아냈었기에 이런 기분을 몰랐다.

“헉.”

그제서야 낯선 공간이란 걸 깨달았다.

내 침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년의 남성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이 상황은?’

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건곤여의신공(乾坤如意神功)을 끌어올렸다.

무려 6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끌어올린 후에···없다.

6갑자의 내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샅샅이 단전을 찾아보니 겨우 10년의 내공뿐이었다.

그것도 불순한 내공.

산공독에 당했을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조심했고, 6갑자에 이른 건곤여의신공은 만독불침이었다.

산공독이라니?

말도 안됐다.

그럼 지금의 상황을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지난 82년의 생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졌다.

“양심은 있네.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누구냐?”

난 당당함을 잃지 않고 물었다.

무림에서 최고의 배분을 지닌 내가 저런 평범한 중년남성에게 존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더군다나 낯선 이곳과 10년의 불순한 내공은 내 신변에 어떤 이상이 생겼다는 방증이었다.

그렇기에 설령 여기서 저들에게 모진 고문이나 최악의 경우 죽임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무림맹주의 위엄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고? 이런 후레자식이.”

중년남성이 달려들어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며 저급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술 처먹고 사람을 패지 않나? 기루에 재산을 갖다 바치지 않나? 응. 이 자식아. 네놈 때문에 보상금으로 나간 돈이 얼마인 줄 아느냐? 그런데 내가 누구냐고?”

난 가볍게 그의 손을 쳐 밀어냈다.

“경망스럽게 이 무슨 짓인가?”

빡.

순간 내 뒤통수가 얼얼해졌고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야, 이 후레자식아.”

“이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내가 무림맹주 화운룡이다. 모욕하지 마라!”

“허어, 저, 저놈이 제대로 미쳤구나.”

중년남성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문이 활짝 열리며 중년여성이 들어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만해요. 천이도 이제 정신 차릴 거예요.”

“허어, 정신을 차려? 지금 이놈이 하는 미친 소리를 당신이 들었어도 그런 말을 할지 모르겠소.”

“아직 술이 깨지 않아 헛말이 나왔을 수도 있으니, 그만 돌아갑시다. 애도 힘들 텐데.”

그녀는 중년남성을 억지로 끌고 나갔고, 중년남성은 억울함을 강변하며 끌려 나갔다.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가?

꿈인가?

그래 말도 안 되는 악몽을 꾸는 것이로구나.

난 자고 일어나면 이 악몽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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