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48화 (24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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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제, 저들 주위가 보이지 않나?”

장선백이 손으로 두 사람이 싸우는 주변을 가리켰다.

소걸아가 눈을 비비고 보다 안색이 해쓱해졌다.

두 사람 주위 십여 장이, 그야말로 모든 게 먼지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고. 가까이서 구경했다면 가루가 되고 말았겠구나.”

소걸아가 중얼거렸다.

“주군께서 무사하실까요?”

언제 다가왔는지 강하, 강란 남매가 장선백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옷은 피투성이였다. 번천맹과 함께 군웅각 고수들과 격전을 벌였는데 용케도 살아남았다.

“걱정 마라. 휘는 이미 신인의 경지다!”

***

-쩌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주의 무형검이 깨졌다.

-파악!

-쿠우우웅!

허공이 폭발하였는데 대지가 뒤집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천주의 무형검이 깨지며 발산된 힘이 강소군을 덮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윽!”

“아앗, 피, 피해라.”

이미 백여 장이나 물러났음에도 천주의 무형검이 터지자, 그 여파에 무공이 약한 자들이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군웅들이 다시 황망히 뒤로 피신하였다.

“크하하하!”

천주가 득의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네놈 덕분에 벽을 깨뜨리고 경계를 넘다니. 고맙구나! 크하하하.”

천주는 강소군이 검의 파장으로 팽창의 세계를 만들어 균형을 이루자 무한 집약하는 무형검을 스스로 깨뜨렸다.

압축된 힘이 깨지자 반대로 팽창하며 강소군의 검이 만들어 내는 파장과 부딪쳐 더욱 폭발적인 힘을 얻었다.

천주는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그를 가로막고 있던 미증유의 벽을 깨고 무한의 경지에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통쾌한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

천주가 웃음을 그쳤다.

그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강소군이 멀쩡한 것이다.

열두 자루의 무형검이 연달아 깨지며 폭주하는 기로 주변이 초토화되고 있다.

그런데 강소군은 무풍지대에 서 있는 듯 고요하였다.

‘어떻게?’

천주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주위 십 장 반경은 기의 회오리 속에 바위가 갈려 먼지가 되고 있다. 그런데 강소군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어느 순간 강소군이 무애검으로 천천히 원을 그렸다.

사방으로 폭주하던 기운이 검이 그린 원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한히 팽창하던 기운이 강소군이 그린 원으로 수축되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경계? 경계란 게 무엇인가?”

강소군이 천주를 향해 물었다.

“애초에 누가 경계를 지었던 거지?”

“…!”

천주의 신형이 흔들렸다.

강소군이 한 발 내디뎠다. 거센 기파 속에서도 호수처럼 고요한 기도였다.

그러면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벗어나고자 하니 경계가 생긴 것 아닌가? 그게 당신의 경계다.”

천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미증유를 벗어나 무한의 세계로 넘어갔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강소군의 몇 마디 말에 다시 벽이 섰다는 걸 느꼈다.

‘이럴 수가!’

말장난 같았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은 여전히 인과에 매여 있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천주는 자신의 깨달음이 강소군만 못하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천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개소리 마라!”

천주가 자신의 몸에 집약된 영력을 끌어 올렸다.

천주의 눈이 투명하게 빛나며 광기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의 양손이 사납게 공간을 휘저었다.

-쩌저적!

뭔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이상하게 비틀리며 기이한 괴음이 연달아 터졌다.

강소군은 자신의 주위에서 비틀린 공간에 몸이 찢겨 나갈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내밀었다.

그러자 금빛 구체가 검끝에서부터 퍼져 나왔다.

“고작 검초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강소군이 그저 찌르는 것 같지만 천주의 눈에는 무수한 검초가 보였다.

“단숨에 깨 주마!”

천주가 숨을 들이켜며 자신의 내공과 영력을 모두 끌어 올렸다.

-파아앙!

천주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파가 터졌다.

동시에 합장하듯 손을 모았다가 펼치며 기운을 펼쳤다.

투명한 벽이 강소군을 향해 밀려 갔다.

강기에 영력을 더한 벽이 강소군을 덮쳤다.

강소군의 금빛 구체와 천주의 영벽이 부딪쳤다.

-콰앙!

강소군의 검이 멈칫하였다.

금빛 구체와 영벽이 팽팽하게 대치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

-파아앙!

강소군의 이마에 맺혀 있던 영인고의 결정체가 돌연 쏘아져 나갔다.

-퍽!

빛살처럼 날아간 영인고의 결정체가 천주의 이마를 뚫었다.

“커흑!”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천주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졌다.

한때 강소군의 의식과 동화되었던 영인고의 결정체.

깨알만 하지만 거기에는 우주를 담을 만큼 넓은 영력이 담겨 있었다.

그 영력이 집약된 결정체가, 천주가 흡수하여 발산하는 수많은 영력과 부딪치며 천주의 몸을 휘저었다.

천주는 내력을 쏟아 영인고의 결정체를 몰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퍼퍼펑!

천주의 전신 요혈에서 기가 터지는 폭발음이 들리며 피가 튀었다.

“헉! 저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영문을 모르는 군웅들이 술렁거렸다.

천주는 수많은 영을 흡수하며 하나하나를 자신의 전신 요혈에 봉인해 두었는데 영인고의 영력과 부딪치자 일제히 폭발한 것이다.

“크윽!”

천주가 순식간에 혈인이 되어 비틀거렸다.

“이, 이놈이?”

강소군을 노려보았으나 무심한 눈빛만 마주하였을 뿐이다.

천주가 비틀거리며 내공을 모으려 했으나 내상이 깊었다. 그가 흡수했던 영력들이 깨져 나가며 오히려 내상을 입힌 것이다.

천주가 억지로 내공을 끌어 올리려는데,

우렁찬 함성이 들판을 울렸다.

“대명의 황제께서 납셨다!”

“황실의 금군이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사람들이 놀라 황급히 주위를 돌아봤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군졸들이 들판 주위를 까맣게 메우고 있었다.

“앗!”

“이런!”

계속된 혈전에 온 신경을 쓰고 있던 의천맹이나 흑천맹 등 군웅들은 황제의 군대가 이렇게 가까이 몰려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북소리가 진동하고 황제의 친정을 알리는 기치창검이 하늘을 찔렀다.

***

젊은 황제는 천황성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이 깊었다.

조정에 스며든 증보를 비롯한 천황성의 부역 세력을 처단한 뒤 아예 뿌리를 뽑을 작정을 하였다.

황제의 대리를 세워 놓고 금군 일만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궁을 나왔다.

황제는 변방과 인근 도지휘사의 병력에 은밀한 명을 내려 이십만 대군을 동원하여 끌고 왔다.

제아무리 만인부당의 신인이라도 이십만 대군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황제는 싸움의 추이를 지켜보다 천주가 밀리자 비로소 나타났다.

-우르르르.

군졸들이 밀집대형으로 진형을 형성하며 들판을 완전히 봉쇄하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젊은 황제가 관무불침의 관례를 깨려 한다!”

무림인들이 당황하여 술렁거리며 한쪽으로 모였다.

오늘 정오까지만 해도 만여 명에 이르렀던 무림인들은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 절반도 대부분이 적잖은 부상을 입었다.

황제가 밀고 들어오면 전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둥둥!

북소리와 함께 황제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황제의 주위는 금군의 장수들이 겹겹이 두르고 있었다.

황제가 천주를 보더니 소리쳤다.

“네가 역도의 수괴이더냐?”

천주는 기가 막혔다. 피를 토하며 울부짖듯 소리쳤다.

“어린놈이 방자하구나. 이 강산은 본디 주나라의 것이고 수많은 제후들이 다스려야 하거늘. 한낱 도적의 후손이 황제를 참칭하다니.”

“확실히 미친놈이구나! 하늘의 뜻이 이미 명에 있음을 모르고 감히 짐을 능멸하다니!”

황제가 목소리 높여 천주를 꾸짖고는 강소군을 향해 말했다.

“네가 수고했다! 이제 짐에게 맡겨라.”

황제가 금군의 장수를 돌아보며 외쳤다.

“누가 저놈의 목을 베고 머리를 가져오겠는가?”

그러자 금군의 장수 한 명이 튀어나와 무릎을 꿇었다.

“신이 역적의 수급을 가져오겠습니다.”

“가라!”

“충!”

금군의 장수가 커다란 언월도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쳇!’

황제가 하는 짓을 보고 소걸아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거지도 남의 밥에 숟가락 올리지는 않는다고. 황제가 뭐 저래?’

강소군이 이미 천주를 잡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수많은 군웅들이 무림을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천황성의 고수들과 산화하였다.

일이 다 끝난 다음 대군을 몰고 와서 천주의 머리를 따겠다니.

소걸아뿐만 아니라 모든 군웅들이 황제의 얄팍한 수작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감히 대들 수는 없었다.

그때 정무문의 봉공, 과거 대정무각의 각주들이 앞으로 나섰다.

관중은 중상을 입어 들것에 좌정한 상태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부상이 심해 예를 올리지 못함을 용서하시지요.”

황제가 한쪽 다리가 너덜너덜하여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관중을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경이 그리되다니 반드시 천황성의 씨를 말려야겠소.”

“아닙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바를 기억하시지요? 이제는 강호의 무부로 아뢰고자 합니다.”

대정무각이 해체되어 정무문으로 거듭날 때 관중은 황제를 만나 이 같은 사실을 고했다.

원래 천황성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백정무와 관중이 관직을 버리고 야인으로 나와 만든 조직이다.

천황성의 실체가 드러났으니 맡은 임무는 끝이 난 셈이다.

이에 황제도 중양대전에서 천황성을 처단하는 조건으로 해체를 승인한 바 있다.

관중이 말을 이었다.

“천황성이 감히 조정을 넘보고 천하를 농락하였습니다. 이에 협의를 숭상하는 무림인들이 피를 흘려가며 천황성을 궤멸시켰습니다. 그 수괴 또한 검신 강소군의 손에 패하였습니다.”

관중이 남경부 강휘를 검신 강소군으로 호칭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황실의 인척이 아니라 무림인으로 천주를 상대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들판에 수많은 무림인들의 원혼이 있습니다. 이들이 보는 앞에서 강소군이 저자의 머리를 베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황제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사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나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관들은 기록을 한다.

황제가 친정을 하여 역당을 정벌하고 수괴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남기를 바랐다.

아직은 젊은 황제다. 황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세상에 그렇게 소문이 나야 한다.

과거 조정에 몸을 담고 있어 알 만한 관중이 왜 자신을 막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다 뒤에 선 무림인들을 보고 깨달았다.

천황성 고수들과 격전을 치르다 끊어진 팔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이들 태반이다.

온종일 벌어진 혈전 치른 이들의 얼굴은 피범벅이다.

그러나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는 황제다.

그 역시 한때 전장을 누빈 장수였으니까.

‘으응?’

그중에 중랑과 함께 서 있는 연화심이 보였다.

연화심의 눈빛 또한 냉랭하였다.

황제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황권을 위해 얄팍하지만 직접 나서 명을 내린 걸 스스로도 모를 리 없으니까.

황제가 잠시 생각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의 말이 일리가 있다. 이 강산을 위해 너희 백성들이 나섰으니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젊은 황제는 아직 생각이 유연하였다.

강소군을 향해 외쳤다.

“남경 강부 강휘! 그자의 목을 베어 가져와라.”

황제가 생각한 타협안이었다.

강소군을 자신의 신하로 대우하여 천주의 수급을 취하려는 것이다.

천주는 기가 막혔다. 그는 이제껏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자처해 왔다.

그런데 강소군에게 패하고 젊은 황제에게 수모를 당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누가 감히 나의 목을 벤다는 말이냐? 나는 스스로 하늘로 갈 것이다!”

천주가 크게 외치더니 남은 내공과 영력을 끓어 자신의 몸에서 터뜨렸다.

-퍼엉!

천주의 육신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온몸에 불이 붙었다. 삼매진화로 자신의 몸을 태워 버린 것이다.

“천주!”

그때까지 뒤쪽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현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연이 개국했던 그 오랜 시절부터 대대로 곁에서 보좌해 왔던 가신 가문의 마지막 후손 현가.

그는 한 시대의 종말을 자신의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천주, 가는 길 끝까지 보좌하겠소!”

현가가 자신의 천령개를 내리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으음. 참으로 독한 놈들이로구나!”

황제가 중얼거렸다. 앓던 이가 쑥 빠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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