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47화 (24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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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환아! 정신 차려라!”

장무강이 위응환의 상의를 찢고 비도가 박힌 부분을 살폈다.

손잡이까지 박혔다. 관통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대로 놔둬도 죽을 것 같았다.

장무강이 결심을 하고 비도를 뽑으려는데 누군가 다가오며 말했다.

“뽑으면 바로 죽는다!”

장무강이 보니 서신의 당종이었다.

당종이 다가와 옆에 앉더니 위응환의 팔목을 짚었다.

그러더니 위응환의 가면을 벗겼다.

혼절한 위응환의 얼굴이 드러나자 당종의 눈썹이 파르르 흔들렸다.

“살릴 수 있겠습니까?”

장무강은 위응환이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장무강이 채근하자 당종은 말없이 당종의 가슴 요혈을 찍었다.

그러더니 새로 만든 환생단을 먹였다.

“호법을 서 주게.”

당종의 말에 장무강이 식도를 들고 연화심 옆에 섰다.

하지만 더 이상 위협은 없었다.

강소군이 나타나자마자 군웅각 고수들을 처치하고 천주와 일대일 구도로 섰다.

현가가 천주의 뒤에 섰으나 더 이상의 싸움은 없었다.

천주가 허공에서 뿌린 무형비검에 놀라 물러났던 군웅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

천주가 몰려드는 군웅을 보았다.

방금 전 학살에 가까운 천주의 공격에 또다시 많은 이들을 잃었다.

의천맹이나 흑천맹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눈에 분노의 빛이 역력했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 수천의 무인이 모여드는 자체만으로 엄청난 살기가 넘쳤다.

‘이것들이 아직 눈들이 살아 있군. 이놈을 믿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확실히 죽여 주지.’

천주는 강소군이 나타나며 자기도 모르게 들었던 찜찜함을 떨치고 악의를 끌어 올렸다.

천주의 의지는 곧바로 외부로 표출되었다.

온화한 중년 문사의 외모였던 그의 얼굴에 살기가 어리더니 전신에서 싸늘한 예기가 폭발하듯 퍼져 나왔다.

“으윽!”

“큭! 무슨 살기가!”

무려 반경 삼십 장이 넘게 퍼져 나간 살기에 몰려들던 군웅들이 기겁을 하였다.

내상을 입었던 자들은 살기를 처리하지 못하고 다시금 피를 토했다.

강소군이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펴더니 지그시 누르듯 내렸다.

그러자 퍼져 나가던 살기가 천주와 강소군 주위로 압축되었다.

“휴우. 정말 괴물이구나.”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살기만으로도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니.

천주의 눈빛이 점차 투명하게 물들어 갔다.

강소군은 밀려드는 살기를 가볍게 해소하고는 검을 들었다.

“어리석은 놈!”

천주가 가볍게 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세웠다.

그러자 강소군도 비스듬히 검을 세웠다.

그저 손과 검을 세웠을 뿐인데.

-파지지지직!

허공에서 기가 부딪쳐 파열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천주가 손을 들며 날린 무형검을 강소군이 검을 세우며 막은 것이다.

이는 화경에 이른 고수들이나 짐작할 뿐 대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몰랐다.

천주가 손가락으로 검식을 펼쳤다.

“아!”

마치 검무를 추는 듯 가벼운 동작이었다. 너무나 단순하여 완전무결한 움직임.

천주의 검식을 지켜보는 화경의 고수들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 저런 검식에서….’

검식은 단순하였으나 사방 허공에서 예기가 터지며 강소군을 덮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검이 열두 자루나 생성되어 사방을 점하며 다가왔다.

강소군은 비스듬히 세운 검을 한 치 정도 내밀어 허공을 찔렀다.

검끝이 파르르 떨렸다. 검에 찍힌 허공도 점차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 파장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강소군의 전신이 파장에 감싸이는 순간.

-파팟!

강소군이 천성육십사식을 펼쳤다. 지극히 천천히 움직이는 검.

마치 공간을 밀고 가는 듯 움직이는 천성육십사식을 모두가 지켜보았다.

마치 사부가 제자에게 시현하는 듯 천천히 펼치자 모두가 이를 훔쳐 배우고자 눈을 크게 떴다.

고수들은 자신의 무공과 비교하고 파훼법을 생각했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은 절학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검식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지나고 나면 궤적이 머리에 남지 않았다.

다만 연화심과 중랑만이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다.

천주의 기다란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열두 자루의 무형검.

남들은 한 자루도 뽑기 힘든 무형검이다.

이를 열두 자루나 생성하여 던졌는데 강소군이 일으킨 파장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파장은 무애검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는데 밤하늘이 회전하듯 천천히 움직였다.

‘이게 무슨 수법이지?’

백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중원 대부분의 상승무공을 모두 접한 천주다.

무리(武理)에 있어서만큼은 고금제일이라 자처하는 그로서도 강소군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강소군의 눈에는 천주의 무형검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무형검은 없다!’

평범한 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형검이라고 할 뿐.

같은 경지의 고수가 보면 무형검을 이룬 기의 성질과 그에 따른 빛이 보인다.

천주의 무형검은 투명하면서도 검은빛을 담고 있다.

무한히 압축되어 닿는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무형검.

강소군은 무애검으로 자신 주위의 공간을 밀고 당기며 무형검의 진로를 흔들고 있다.

무형검 역시 유형이기에 공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소군과 천주의 대치는 아주 느리게 이루어졌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소걸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런 의문은 소걸아만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강소군과 천주의 겨룸은 이 자리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만물유기. 나아가 숨을 쉬는 공간마저 기로 채워져 있다!’

강소군은 영인고를 몰아내기 위해 금룡기가 폭주할 때 전신이 팽창하여 무한하게 부풀어 오름을 느꼈다.

이에 맞선 지화중약수의 기운은 온 세상의 기운을 끌어 그의 몸으로 들어오고자 하였다.

금룡기와 지화중약수의 대치를 통해 강소군은 미증유의 벽을 볼 수 있었다.

지화중약수가 벌모세수에 내공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나 강소군이 얻은 바는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훌쩍 넘었다.

숨을 들이쉬면 지화중약수의 기운이 밀려드는데, 무한한 한 점으로 집약되다가 어느 순간 숨을 내쉬면 다시 폭발적으로 팽창하여 무한히 뻗어 나가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무한히 집약하되 한 점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팽창하되, 그 역시 어떤 이름으로 규정할 수 있는 무한세계가 아니었다.

그저 집약되는 과정과 팽창하는 과정이 오갈 뿐이었다.

강소군에게 지금 천주와 맞선 공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주의 무형검은 기운이 무한히 압축되고 있는 과정이었고, 자신이 검끝을 떨며 공간을 밀고 흔들어 무한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 또한 팽창의 과정일 뿐이다.

두 가지 상반된 과정이 한 공간에 존재하니 점차 공간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수축과 팽창의 힘이 서로 융합하며 흐르는 공간이 태극을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강소군과 천주, 두 사람이 우주의 원리를 시현하고 있는 셈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를 이해하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그들은 무형의 강기 대결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기에 누구의 내공이 강하여 승리할지에 관심의 초점을 모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승부는 그런 게 아니었다.

싸우면서 자신의 경지를 열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싸움은 생과 사의 차원을 벗어나 있었다.

천주의 살기도 어느새 사라졌다.

그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이 세계를 벗어나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자 살아왔다.

그런데 강소군과 대치하며 수축과 팽창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보자 깨닫는 바가 있었다.

‘벗어날 수 없다!’

그 순간 천주의 머릿속에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까마득한 시절.

은을 멸하고 주나라가 들어섰을 때 주 문왕의 동생 소강공이 세운 제후국 연.

천주는 그 연나라의 후손이었다.

주나라가 힘을 잃고 수많은 제후국이 발호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졌으나 연은 천자와 제후국의 법도를 잃지 않았다.

춘추전국 시대에도 연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에 맞섰으나 끝내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진시황의 짧은 통치 이후 한나라가 들어선 뒤 다시 제후국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그런데, 세상이 다시 어지러워졌다. 천자는 하늘을 버리고 인간의 황제가 되어 직접 통치하고자 하고 제후들은 사라지고 있다.’

천자인 황제는 하늘을 대신하여 존재하는 자.

인간세는 수많은 제후들이 천자인 황제를 받들고 각기 주어진 영역을 다스려 번성하는 게 마땅했다.

그게 하늘의 도리다.

그러나 무도한 오랑캐들이 중원을 휩쓸고 지나간 뒤 하늘의 법도가 깨졌다.

황제는 중원을 직접 통치하고자 하였고, 과거 제후라고 할 수 있는 지방의 권문세가들을 말살하려 들었다.

권력이 집중되며 이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이 치열하게 권력다툼을 벌였다.

연의 후손, 그러니까 천주의 선조들은 이런 세상에 맞서 다시 황제와 제후국의 체제로 돌아가고자 노력해 왔다.

천주 역시 같은 소명을 받고 평생을 노력했으나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이에 직접 인간세를 다스리고자 결심을 하였다.

영인고의 존재를 알고 머나먼 북해까지 가서 겨우 찾았다.

그리고 백 년여의 노력 끝에 드디어 천령대법을 이뤘다.

이제 다시 하늘의 법도를 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흔들린다.

강소군과 자신이 펼치고 있는 회오리 같은 태극의 세계를 보며 그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었다.

***

“대체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까요?”

소걸아가 장선백에게 물었다.

천주는 검지와 중지를 세운 검결지를 찔러낸 상태고 강소군은 극히 느리게 천성육십사식을 펼쳐내고 있는 중이다.

어느덧 기나긴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하다는 중양절.

양이 충만했던 낮이 저물어 가며 음의 기운이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서산에 해가 완전히 지고 음의 기운이 양의 기운을 넘어서는 순간, 두 사람의 대결에 변화가 생겼다.

강소군의 무애검이 멈춘 것이다.

동시에 천주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검결을 맺은 천주의 손이 서서히 움직였다.

“어? 이제는 반대가 됐네요? 그런데 기운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소걸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운이 요동쳤다.

“어!”

“뒤로 물러나라!”

두 사람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는 막강한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이 황망히 두 사람으로 물러났는데 백여 장 거리까지 가야 했다.

고수들이 내공을 운용하여 버텨 보고자 했으나 퍼져 나오는 기운이 갈수록 강대해져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점차 두 사람 주위로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처음에는 초목이 잘리고 뽑혀 나가더니 점차 바위가 으깨졌다.

거리가 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강맹하고 날카로운 기운만 느꼈으나 고수들은 두 사람 주위 삼십여 장의 바위들이 가루가 되는 모습을 봤다.

그보다 고수들은 두 사람 십 장 주위의 사물이 형해화되는 것까지 보았다.

가슴이 서늘해지고 턱이 덜덜, 떨렸다.

단계가 높을수록 두 사람이 펼치는 대결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저 기운만 느끼는 소걸아는 태평하였다.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일까요? 대결이 너무 싱거운데요? 고수들은 원래 저렇게 싸우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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