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45화 (245/250)

245

강소군은 땅속으로 가라앉은 대전에서 천주가 득의만면하여 크게 웃는 소리를 들었다.

“천주!”

그가 천주를 떠올리자 어둠 한 구석에서 검명이 울렸다.

무애검이다.

천주가 강소군을 금관에 봉인할 때 떨어졌던 것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강소군이 손을 뻗자 무애검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짙은 어둠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등의 장애가 되지 않았다.

강소군이 머리 위로 검을 세우자 금빛 강기가 어리더니 원형의 구체를 이뤘다.

금빛 구체는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반장 크기로 부풀었다.

-파아앙!

어느 순간, 금빛 구체가 천장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콰콰쾅!

놀랍게도 천장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일 장 크기로 뚫린 구멍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강소군은 그대로 몸을 솟구쳤다.

저 멀리 아래쪽 들판에 무수한 시신과 아직까지 어울려 싸우는 이들이 보였다.

허공에 뜬 그대로 몸을 날렸다.

한 번에 무려 삼십여 장을 날아가는 그의 신형은 사람의 눈으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

강소군이 천황성 지하를 뚫고 솟구치는 순간, 천주가 눈을 떴다.

굉음이 터지자마자 변고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강소군!’

어찌된 일인지 모르지만 그가 봉인에서 풀려난 것이리라.

“모두 죽여라!”

천주는 강소군이 오기 전에 들판에 있는 무림인들을 모두 제거하고자 하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자신부터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양손을 휘저었다.

-쉬쉬쉭!

그의 양손에서 쏟아진 강기가 빗살처럼 쏟아졌다.

“크윽!”

“컥!”

수십 명이 강기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존명!”

천주의 명에 현가와 군웅각 고수들도 튕기듯 앞으로 튀어나가며 일제히 권장을 날리고, 도검을 휘둘렀다.

철권호와 고장추, 남궁악과 중랑, 조운룡도 맞서기 위해 몸을 날렸다.

양측이 격돌하며 강기가 부딪치는 파열음이 허공을 찢었다.

-펑, 퍼엉!

“의천맹! 먼저 간 형제들의 원환을 갚자!”

제갈선이 크게 외쳤다.

막바지에 이른 지금 더 이상 남은 전략도 없다.

그저 몸을 부딪치는 수밖에.

들판에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살아남은 의천맹과 흑천맹 무인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 떼로 돌진하였다.

“천황성을 궤멸시키자!”

“먼저 간 형제들을 위해!”

“저 다섯 놈만 죽이면 된다!”

홍의발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흑천맹은 맹도들의 무위가 의천맹에 비해 떨어지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더 컸다.

대신 워낙 인원이 많아 아직 천 명가량이 싸울 수 있다.

‘전력을 남길까?’

앞으로 의천맹과 겨루자면 일정한 힘을 남겨 둬야 하는 게 군사로서 타당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고장추가 천주를 향해 쇄도하는 걸 보고 기겁하였다.

‘아이고, 맹주님! 제발 몸 좀 사리시라니까요!’

속으로 한탄하며 흑천맹도들을 향해 외쳤다.

“흑천맹! 흑도가 질 수 없다!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 주자!”

“와아!”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흑천맹도들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무공의 차로 보자면 턱도 없었고 하나같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사부나 사형제, 지기를 잃은 그들은 눈이 뒤집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들었다.

의천맹과 흑천맹이 동시에 달려들고 정무문과 화룡문, 번천맹 등의 세력이 함께하니 오천.

다섯 천황성 고수와 일천 대 일이라는 압도적 수를 이뤘다.

이들은 중과부적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믿고 용기백배하여 밀고 들어갔다.

그중에는 소걸아와 개방도들도 있었다.

태상장로 오개는 참전하기 앞서 무공이 일류 경지가 못 되는 개방 제자들을 후군으로 남겨 두었다.

그들이 참전해 봐야 희생만 늘어날 뿐이고 오히려 정예고수들의 진퇴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

그런데 격전 끝에 개방의 고수들도 몇 남지 않았고 그나마도 부상을 당했다.

소걸아는 개방과 의천맹 고수들 대부분이 부상을 입자 후군에 있던 개방도 일백여 명을 불러 올렸다.

“사부님의 원수를 갚자!”

소걸아가 앞장서서 달렸다.

악만 남은 그였다.

***

‘크흐흐… 드디어 미증유의 벽을 넘는구나!’

천주는 삼십장 높이 허공에 둥둥 떴다. 그의 전신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용천혈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운은 막강하였다.

그가 들판을 보는데 군웅들이 정말 미물 같아 보였다.

그가 두 팔을 하늘로 뻗어 올렸다.

-스스스스!

하늘이 울렁거리며 기운이 서서히 뭉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검.

그런데 놀랍게도 한둘이 아니다. 크기는 비검처럼 작지만 무수한 무형비검이 형성됐다.

“저놈이 뭐하는 거지?”

개방 제자들의 선두에 서서 달려가던 소걸아가 천주가 하는 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형비검은 보이지도 기척도 없다.

적어도 화경에서 현경으로 넘어가는 고수 정도라야 예기를 느낄 수 있다.

“모두 피해라! 삼십 장 밖으로 물러나라!”

대약무검 관중이 천주의 머리 위에 뭉치는 예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고함을 질렀다.

몰려들던 사람들이 퍼뜩, 정신 차렸다.

“크하하하! 늦었다!”

허공에서 스산한 느낌이 싸하게 몰려왔다.

형체도 소리도 없는 검.

그런데 사람들이 픽픽, 쓰러진다.

-스윽!

고수들이 강기를 쳐내 막으려 했으나 어설픈 강기를 그대로 가르고 사람을 갈랐다.

-쾅!

관중이나 유문광과 같은 고수들만이 두터운 강기의 벽을 쳐냈으나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소리도 없이 사람이 잘려 쓰러지는 무시무시한 광경.

소걸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게 무형검!’

무형비검의 위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소걸아의 눈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앞서 달려가던 이들 대부분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갔다.

병장기를 마구 휘저어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대로 뚫고 들어와 몸을 관통하였다.

“크윽!”

“아악!”

병장기를 들어 막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서걱!

검이나 도 심지어 쇠몽둥이까지 그대로 썰려 나갔다.

싸움이 아니라 학살이었다.

사방에서 비명성이 터졌다.

‘으으… 이, 이럴 수가!’

만부부당(萬夫不當)

아무리 많은 장부들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

그동안 설왕설래 말로만 듣던 절대고수의 힘을 오늘의 싸움에서 모두가 실감하였다,

다만 그 대상이 자신들이라는 게 한스러울 뿐.

싸늘한 기운이 스쳐 갔다 싶은 순간, 자신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걸 보아야 했다.

곳곳에서 비명성이 터지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크윽!”

천주는 사람이 많이 몰린 곳으로 무형비검을 날렸는데 소걸아와 개방의 제자들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크윽!”

“피해! 뒤로 물러나라!”

개방 제자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데 소걸아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방도들이 죽어 나가자 보다 못해 가로막고 선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무형비검은 그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쉬이익!

소걸아는 싸늘한 기운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본능적으로 전력을 다해 타구봉을 내밀었다.

봉 끝에 어리는 누런 기운.

개방의 황룡심법에 의한 봉기(棒氣)다.

‘…!’

그간 그렇게 실현하고 싶었던 경지다.

그러나 무형비검은 이제 막 맺은 봉기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욕이 터져 나왔다.

‘제기랄, 소걸아, 이제 막 봉기를 발현했는데 죽다니!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있나?’

이미 피할 수도 없었다.

소걸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쉭!

기다란 채찍이 날아와 그의 허리를 감았다.

소걸아의 신형이 붕, 떠서 옆으로 끌려갔다.

“엉?”

정신 차리고 보니 우완청이 기다란 채찍으로 자신을 당기고 있다.

“이얍!”

장선백과 번천맹 고수 몇 명이 합세하여 장창과 도기를 쏟아냈다.

-쾅!

장선백의 장창이 부러지고 번천맹 고수들의 도가 박살이 났으나 요행이 소걸아의 목숨은 구했다.

벌써 두 번째 구명지은을 입은 셈이다.

“소형제, 뒤로!”

장선백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어리둥절해하는 소걸아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다.

‘에이 씨, 이게 무슨 창피냐?’

소걸아가 뒤로 날아가면서도 방도들을 살폈는데 다행이 피해가 크지 않았다.

의천맹과 정무문, 화룡문의 도객들이 병장기가 부서지는 걸 감수하고 결사적으로 막은 덕을 봤다.

땅바닥을 구른 소걸아가 일어나서 천주를 노려봤다.

천주는 그렇게 공력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십 장 높이에 둥둥 떠 있다.

“저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죽이지?”

높은 공중에 떠 있으니 일반 무림인들은 공격할 수조차 없었다.

그때.

-파아아앙!

의천맹 후미 쪽에서 허공을 찢는 소리와 함께 검 하나가 빛살처럼 날았다.

“아! 이기어검!”

아수라장 와중에도 누군가 감탄성을 흘렸다.

대약무검 관중.

그는 정무문에 난입한 보령호신환의 고수를 넷이나 해치웠다. 그 통에 내력이 바닥이 난 상태다.

그런데 처참한 학살을 보다못해 남은 원기까지 다해 검을 날린 것이다.

“맞아라!”

“제발 죽어다오.”

모두가 응원하였다.

평소라면 보는 이의 눈이 찢어질 신공이었겠지만 천주가 허공에서 뿌리는 무형비검을 보고 있으니 놀랍지도 않았다.

다만 저 이기어검이 천주에게 조금이라도 부상을 입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콰콱!

그러나 허무하게도 이기어검 또한 천주의 손짓에 의해 허무하게 박살났다.

천주는 이기어검을 깨뜨리는 동시에 손짓을 하였다.

싸늘한 기운이 쑥 뻗었다.

무형비검이 원기마저 쏟아낸 관중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관중이 급히 뒤로 몸을 날렸으나 무형검은 눈이라도 달린 듯 그를 쫓았다.

“대봉공!”

정무문의 다른 봉공들이 일제히 강기를 쏟아 무형검의 궤적을 틀었으나 관중은 허벅지가 날아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

“큭!”

중랑은 달려드는 군웅각 고수에게 검강을 내질렀는데 상대가 휘두른 도에 오히려 일 장이나 튕겨 나갔다.

‘권제와 버금가는 자다!’

중랑은 몰랐지만 권제는 천주의 금제를 벗어나기 위해 의식이 분산되었기에 가진 바 역량을 모두 쏟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군웅각 고수는 그에 필적하는 무위를 지녔으면서도 완전히 복종하는 자였다.

“오라버니!”

군웅각 고수가 기세를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데 연화심과 산동삼호가 합공하여 막았다.

심마백의 쌍창이 좌측을 장무강의 식도가 우측을 파고들고 연화심의 검이 위에서부터 내리찍었다.

그 빈틈으로.

-쉬쉬식!

위응환의 십이비도가 날았다. 그의 비도술은 강호의 일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파파팟!

-까가가앙!

놀랍게도 군웅각 고수가 도를 양옆으로 휘저어 심마백의 창과 장장무강의 식도를 쳐내고는 곧바로 도를 쳐올려 연화심의 검까지 막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왼손으로 날아오는 십이비도까지 쳐내는 것 아닌가.

-콱!

그러나 십이비도 가운데 하나가 틈을 비집고 날아들어 그의 가슴에 박혔다.

“됐다!”

위응환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군웅각 고수가 무심한 표정으로 가슴에 박힌 비도를 뽑았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휙!

위응환이 놀라 잠시 주춤한 사이 군웅각 고수가 비도를 던졌다.

“크윽!”

현경의 고수가 내기를 담아 던진 비도는 빛살처럼 빨랐다.

비도가 위응환의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응환아!”

“이 괴물 같은 놈아!”

장무강이 위응환을 부축하였고 심마백이 고함을 지르며 둘로 나뉜 단창을 결합하며 달려나갔다.

-파파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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