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43화 (243/250)

243

강소군이 미간 밖으로 고를 몰아내자 폭주하던 금룡기가 잦아들었다.

그러자 지화중약수의 기운이 밀고 들어왔다.

그동안 금룡기와 팽팽히 맞섰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 전신 모공을 통해 스며들었다.

‘으윽!’

지화중약수의 무거운 기운에 경혈이 터지고 힘줄이 뒤틀리는가 하면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지화중약수는 보통 물보다 열 배 이상 무겁다. 그 기운이 몸으로 스며드니 육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화중약수를 이겨내야만 벌모세수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

강소군이 금단진공을 운기하자 잦아들던 금룡기가 전신 경락을 따라 흐르며 지화중약수의 기운을 이끌었다.

이미 혈기와 금단진공의 기운을 합일한 바 있는 강소군이다. 지화중약수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쾅!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던 금관 뚜껑이 아예 박살 났다.

-출렁.

기운이 사라지자 진득했던 지화중약수가 여느 물처럼 출렁거렸다.

강소군의 몸이 그대로 두둥실 떠올랐다.

-팍!

기운을 내뿜자 옷에 있던 수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소군이 내려섰는데 온통 암흑이다.

금관에 있던 강소군은 천주가 대전을 지하에 봉인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천주!’

***

구양수는 전력을 다해 굴렀으나 벽력탄의 파편과 기운을 다 피하지 못했다.

몸에 파편이 대여섯 개나 박히고 여기저기 피투성이다.

“으….”

구양수가 이를 악물고 일어나며 천주가 있는 쪽을 봤다. 아무도 없다.

‘해치웠구나!’

그러나 곧바로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본좌를….”

언제 날아올랐는지 천주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천주의 하반신 쪽 옷이 걸레가 되다시피 했는데 다리 여기저기에 파편이 박힌 게 보였다.

부상을 당한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허공에 떠 있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주의 눈에서 흉흉한 빛이 흘러나왔다.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

“죽어랏!”

천주가 오른손을 그어 내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불쑥 투명한 검이 솟아 나와 구양수를 향해 쏘아져 왔다.

‘헉!’

구양수가 놀라 피하려 했으나 곧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그때,

숱한 손 그림자와 함께 한 사람이 천주의 무형검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크윽!”

“아버지!”

“태상 방주님!”

구연강의 신음성과 구양수, 천무방도들의 외침이 뒤섞여 들판을 울렸다.

구양수 대신 무형검을 받아낸 이는 구연강이었다.

부상을 입은 그로서는 막을 수 없었기에 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구양수가 몸을 날려 떨어지는 구연강을 받았다.

-따다당!

얼마 남지 않은 귀영화승총대가 다시 총을 쐈고, 벽력수들이 벽력탄을 던졌다.

-쾅! 콰쾅!

그러나 총탄이나 벽력탄은 천주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떨어지거나 터져 버렸다.

“아!”

“저건 인간이 아니야!”

구양수는 물론이고 옆에서 지켜보던 철권호나 백대고수들도 절망감에 절로 침음성을 흘렸다.

“크흐흐… 본좌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계에 들었거늘, 고작 벽력탄으로 어찌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허공에 떠 있던 천주가 갑자기 양팔을 벌렸다.

“뭘 하는 거지?”

“조심해라!”

알 수 없는 행동에 모두가 병장기를 쥐고 단단히 경계를 하며 천주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철권호 등 화경에 든 고수들은 어느 순간 크게 놀라 주위를 돌아봤다.

들판에는 무림인들과 싸우다 죽은 군웅각 고수들과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자들의 시신이 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시신에서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와 천주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절대지경의 고수들은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어엇!”

“저게 뭐지?”

고수들이 사방을 살피자 역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들이 소리쳤다.

검황이나 도황, 권제의 육신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확실하다! 저건 영력이야!“

춸권호는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현실이었다.

검황 등의 기운은 막강하여 마치 검강과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이 천주에게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이 현상은 천주가 죽은 자들의 영력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천주는 양팔을 벌린 채 사방에서 흘러들어 오는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살아생전 고를 통해 영연을 맺었던 자들의 영력이다.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천령대법의 진정한 의미! 굳이 노출하고 싶지 않았건만. 어쩔 수 없구나. 모두 죽여 버리면 되겠지.’

천령대법의 궁극의 목적은 상대의 육신을 조종하다 결국에 가서는 영력을 취하는 데 있었다.

절대지경에 든 이후의 무공 증진은 깨달음에 있다고 한다.

그 깨달음이라는 게 실은 자신의 본령과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생사경에 이르러 본령과 합일되면 영력이 크게 증가하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 사람에 불과하다.

천주가 걷고 있는 미증유의 세계는 말 그대로 그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천주의 영력으로도 미증유의 세계는 알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천령대법으로 수많은 이들의 영력을 취해 미증유의 벽을 깨고 신계로 가고자 하였다.

‘오! 오!’

천주는 영력이 차오르자 충만감을 느꼈고, 황홀경에 빠졌다.

미증유에 이른 절대자도 끊지 못할 극한 쾌감이었다.

마치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불어나는 영력에 취한 천주의 눈에 아직까지 살아서 싸우고 있는 군웅각 고수들과 검제가 보였다.

천주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남궁령은 팽일소와 함께 남궁세가와 팽가의 무인을 끌고 군웅각 고수 한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미 양가의 많은 무인들이 죽었으나 군웅각 고수는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날뛰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싸운다는 건 이 군웅각 고수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그는 남해문의 검법을 썼다.

팽일소가 본가의 지원을 받아 절정을 넘어서지 못했다면 벌써 다 죽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싸움은 불리한 형국이었다.

-쾅!

기가 부딪치는 파열음과 함께 기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팽일소가 뒤로 튕겨 나갔다.

남궁령이 뒤에 있다가 재빨리 팽일소를 떠받쳤다.

“으윽, 쿨럭!”

팽일소는 남궁령의 도움을 받아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솟구친 울혈에 핏덩이를 토했다.

“정신 차려!”

남궁령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치자 팽일소가 눈을 부릅떴다.

그의 도가 상대의 검에 반동강이 났다.

팽일소의 가슴이 참담한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뼈를 갈아내는 고통을 이겨 가며 수련에 매진했는데 여전히 군웅각 고수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팽일소는 자신의 상대가 한때 절검이라 불리는 자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리 낙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검은 군웅각 고수 중에서도 최상위를 다투는 자로 삼황오제에 필적할 만한 강자였다.

강소군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천황성을 떠났던 그도 천주가 고를 터뜨리며 소환하자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절검이 검을 휘두르자 팽가의 무인 둘이 그대로 쓸려 나갔다.

그 자리를 다시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채워 진이 깨지는 걸 막았다.

팽일소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러다 전멸할 것 같았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차라리 동귀어진이라도….’

자신은 죽더라도 남궁령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팽일소가 뒤돌아 남궁령을 봤다.

격전을 치르느라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얼굴은 창백하다. 역시 내상을 입은 것이다.

팽일소가 돌연 남궁령의 허리를 안아 입을 맞췄다.

“미, 미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싸우는 도중에 입맞춤이라니.

남궁령은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몫까지 잘 살아 줘.”

팽일소가 재빨리 한마디 하고는 몸을 굴렸다.

땅바닥을 한 바퀴 구르며 떨어져 있던 팽가의 도를 집어 들고 곧장 절검을 향해 튕기듯 쏘아져 갔다.

“뭐야? 뭔 짓이야?”

남궁령은 정신이 없었다.

난생처음 입맞춤을 한 걸 깨닫기도 전에 퍼뜩, 팽일소가 동귀어진할 것이란 생각부터 들었다.

“기다려!”

팽일소는 원기까지 끌어 도에 실었다.

그런데.

절검의 행동이 이상했다. 그 자리에 서서 막을 생각을 않는다.

‘엇, 왜 저러지?’

절검이 눈을 까뒤집어 흰자위를 드러낸 채 석상이라도 된 듯 서 있었다.

경직된 육신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로 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 같았다.

팽일소는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도를 휘둘러 절검의 목을 쳤다.

-퍽!

절검의 머리가 하늘로 솟았다.

“어엇!”

“도련님이 저놈을 해치웠다!”

팽가의 무인들이 놀랐고, 이내 환호하였다.

팽일소도 믿을 수가 없었다. 허공에 솟구친 절검의 머리를 보았다.

뭔가 하얀빛 같은 게 빠져나와 어디론가 날아가는 듯 보였다.

팽일소가 빛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니 천주가 허공에 떠 있었다.

-짜악!

그때 등짝에 따끔한 충격이 왔다.

돌아보니 남궁령이 씩, 씩 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게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다.

“너, 너….”

‘으헉!’

갑작스레 남궁령이 팽일소를 때렸는데도 팽가의 무인들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자기들 도련님이 맞을 짓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이다.

팽일소는 올그락불그락 하는 남궁령의 얼굴을 보고 방금 전 자신이 입맞춤한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는 동귀어진할 생각으로 마지막 인사를 한 건데.

“어, 어.. 그, 그게...”

팽일소가 변명을 하려했다.

그런데.

남궁령이 화락, 안겨 왔다.

“내 허락도 없이 죽으려고 하다니! 다시 그러면 정말 죽여 버릴 거야!”

이번에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쯧쯧. 아무리 좋기로서니. 여러 사람 죽어 간 전쟁터에서 저게 무슨 짓인가.’

***

“크흐흐흐….”

천주의 입에서 극도의 쾌감에 젖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죽은 자들의 남아 있는 영력에 이어 살아 있는 군웅각 고수들의 영력을 취하는 중이다.

천주의 영력은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막대한 힘이 솟구쳤다. 그건 육신이나 내공의 힘이 아니었다.

천주가 눈을 뜨더니 들판에 선 자들을 보았다.

멀리 계곡 안쪽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검제와 고장추, 십이호법이 보였다.

그 외 싸움은 멎은 상태였다.

천주가 생령에게서 영력을 취하자 군웅각 고수들은 극도의 고통과 함께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이제 남은 군웅각 고수들은 네 명에 불과했다.

방금 전까지 날뛰던 이들이 갑자기 눈을 까뒤집고 온몸을 떠는데 감히 다가서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의 무위에 질릴 대로 질린 것이다.

그런데 팽일소가 마침 동귀어진의 기세로 달려들어 절검을 취하자 다른 이들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이 기회다! 목을 잘라라!”

천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생령의 영력이 좋기는 하지만 이러다 군웅각 고수들이 전멸할 것이다.

‘심부름할 놈은 있어야지.’

천주가 아쉽지만 천령대법을 끊었다.

이제 남은 군웅각 고수들은 세 명.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달랐다.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눈빛은 탁했다. 영이 약해지고 혼백만 남은 결과였다.

그럼에도 천주의 명을 충실히 따랐다.

세 명의 군웅각 고수가 몸을 날려 허공에 뜬 천주의 발아래 섰다.

“현가!”

천주가 현가를 부르자 그림자 하나가 번뜩이더니 발아래 섰다.

“분부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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