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42화 (242/250)

242

폭음성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권제도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의 목과 두 팔에 지렁이 같은 혈관이 돋아났다.

“크흐흐. 제법이군.”

보기 드문 검이었지만 어쨌든 막아냈다.

그때,

“아아!”

“저건 대체?”

허공에 가득한 별빛. 그런데 꽃잎처럼 나부낀다.

중랑의 별무리가 은하수를 이루다 유성처럼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가벼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매화꽃처럼 하늘하늘 내려오는 별빛들.

갑자기 나타난 별빛에 백대고수들이 감탄성을 터뜨렸다.

심지어 권제마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꽃잎 같은 별빛을 뿌리는 여인 역시 아름다웠다.

천상의 선녀가 별빛과 함께 내려오는 듯했다.

‘이크!’

꽃잎처럼 나폴거리는 별빛에 취해 싸움마저 잊은 권제가 손을 내밀어 잡으려다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치 바람을 따라가듯 별빛이 몰려와 권제를 스쳐 갔다.

-파파파파팟.

별빛이 닿은 곳들마다 핏줄기가 터졌다.

권제는 중랑의 검을 막고 난 뒤 방심했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다.

“화심아!”

중랑은 연화심이 뛰어들자 놀라 소리쳤다.

***

정무문과 함께 있던 연화심은 천황성 괴인들이 들이닥쳤을 때 화천대와 함께 싸웠다.

연화심이 아끼지 않고 투자한 덕분에 화천대는 모두 일류에서도 최상이랄 수 있는 무력이었다.

뒤이어 대호를 쓰러뜨린 심마백 등 산동삼호가 가세하였다.

정신없었던 난전이 구양수의 포격으로 잠시 멈췄을 때 연화심은 중랑이 천황성 수뇌부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구양수의 포격으로 중랑마저 위험에 처한 걸 보고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천황성이 재차 공격에 나서고 중랑이 다시 권제와 맞부딪치자 연화심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나 중랑과 권제의 싸움은 너무나 흉흉하여 끼어들 틈이 없었다.

생사경과 화경의 고수들 싸움이니 그럴 만했다. 연화심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하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연화심은 삼 장 거리에서 떨어져 지켜보다 중랑이 위기에 처하면 나설 생각이었다.

늘 그녀를 지켜 준 중랑이었다.

‘오늘만큼은 내가 오라버니의 호위다!’

그때, 마침 중랑이 절초를 펼쳐 권제를 한 발 물렸다.

‘이때다!’

그녀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자 앞뒤 따져 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녀는 자신이 권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공력을 끌어 담았다.

-파아아앗!

연화심은 놀라운 일검을 펼치느라 모든 기운을 소진하였다.

땅에 내려서는 순간 비틀하였고 중랑이 놀라 달려왔다.

“안심하게. 문주는 우리가 지킬 것이네.”

언제 따라왔는지 산동삼호가 연화심의 옆에 섰다.

중랑은 산동삼호가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다시 몸을 날려 권제를 향해 쏘아져 갔다.

연화심이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권제는 연화심의 꽃잎 같은 별빛에 쓸려 거대한 몸 곳곳에 검상을 입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가 천황성에 입문한 이래 처음 당하는 수모였다.

“크아악! 찢어 죽일 년!”

마치 상처 입은 곰이 울부짖듯 포효하더니 연화심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라락!

중랑의 검이 다시 열 개로 나뉘어 권제를 향했다.

“소용없다니까!”

권제는 이미 한 번 경험하여 분검의 위력을 알았으나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거침없이 돌진하여 길을 가로막는 중랑과 그대로 격돌하였다.

권제의 기세는 그야말로 멧돼지가 달려오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 틈을 노리던 백대고수들은 감히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앗, 오라버니!”

연화심은 흉폭한 권제의 기세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두 사람이 격돌하기 직전 나뉘어 있던 중랑의 검이 하나로 합쳐졌다.

“…!”

검은 단순하게 직진하였다.

-퍼엉!

권제가 두 주먹을 교차하자 강기의 벽이 퍼져 나왔다.

권제의 강기는 화경이나 현경의 고수가 펼치는 것과 사뭇 달랐다.

무형검이 강기를 응축하고 또 응축하여 밀도를 높이는 방식이라면 권제는 타고난 신력과 두터운 내공을 쏟아부어 일정한 영역에 강기의 밀도를 한없이 붓는다. 그야말로 철벽을 만들어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의 격돌은 창과 방패의 대결과 같았다.

-치치치치치칙!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강기가 갈리며 불꽃 같은 빛줄기가 튀었다.

검을 쥔 중랑의 양팔에 미친 듯이 떨렸다.

검끝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권제의 양 팔뚝이 한 치는 부풀어 올랐다.

권제 역시 전력을 다하고 있다. 권벽이 뚫리는 순간 중랑의 검이 자신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진력을 뽑아내는 그의 상체 혈관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

중랑은 힘이 부치는 것을 느꼈다.

권제의 신력과 내공은 인간의 상궤를 벗어난 것.

-쩌적!

중랑의 검이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갔다.

‘아! 여기까지인가?’

검이 부러지면 강기만으로 권제의 권벽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면 곧바로 권벽이 덮쳐올 것이고 중랑의 몸은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중랑이 눈을 감았다. 검이 부서지기 전에 원기를 끌어낼 생각이었다.

원기마저 소진하면 그대로 죽음이지만 망설일 수 없었다.

중랑의 머릿속에 단전과 전신경락으로 이어진 두터운 기운줄이 그려졌다. 그 줄을 타고 진기가 검으로 흘러들어 갔다.

권제의 권벽을 뚫기 위해 최대한 끌어올린 진기가 기운줄을 타고 흐르는 맹렬한 소리가 들려 왔다.

내관반청.

놀랍게도 중랑은 싸우는 도중에 내관반청에 들었다.

‘나무를 쓰러뜨리는 큰 바람도 시작은 호수에 떨어진 물방울이 일으킨 미약한 바람에서 시작하나니….’

불현듯 대연의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

대연의결은 현치자가 태청심법에서 얻은 바를 바탕으로 지은 것이다.

천성육십사식을 위한 심법으로 고안했으나 일종의 도결(道訣)이기도 했다.

순간, 중랑의 전신에서 분출하던 기운이 싹, 사라졌다.

그 자리는 공허한 공간에 권제의 권력이 밀고 들어왔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기운이 중랑의 용천혈을 통해 땅으로 흘러들어 갔다.

‘헉!’

권제는 자신의 기운이 중랑의 몸으로 밀고 들어가자 쾌재를 불렀으나 곧바로 경악을 하였다.

중랑의 내부를 박살내고자 하였으나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흔적없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크윽!”

놀랍고 어이없게도 중랑의 검이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와 권제의 심장에 박혔다.

기운과 기운이 맞서다 기운을 받아 흘려보내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기운을 타고 올라 권제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검이 권제의 심장에 박히는 순간,

-쩌적!

그대로 갈라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이미 검끝은 권제의 심장을 반으로 갈라놓은 상황이었다.

“저, 저런 일이….”

지켜보던 백대고수 한 사림이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하였다.

도가 계열의 내가고수인 그는 무슨 상황인지 알았다.

상대의 무지막지한 기운을 대자연으로 흘려 무위로 돌려보내다니.

영문을 모르는 이들은 환호하였다.

“중 문주가 권제를 해치웠다!”

“권제가 죽었다!”

연화심이 중랑의 성취에 눈물을 글썽였다.

낭인 중랑이 일문의 문주를 넘어 일대종사가 되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

중랑이 권제의 심장을 가르는 순간 공교롭게도 조운룡 또한 도황의 목을 잘랐다.

도황은 강소군에게 오른팔을 잘린 뒤 곧바로 붙였으나 완전하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우문극과 싸우다 다시 잃고 말았다.

생사경의 고수라 하나 상대인 조운룡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인지라 팔 하나의 부재는 컸다.

게다가 조운룡과 합공하는 십이도객이 있었다.

오랫동안 서로 합을 맞춰온 십이도객과 조운룡은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도황을 공격하였다.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다수와 상대하니 팔 하나로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도황이 아니었다면 벌써 땅바닥에 시신으로 나뒹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일생의 맞수 검황이 천주에 의해 비참하게 죽자 도황의 심기가 흔들렸다.

도황이 흔들리지 네 명의 도객이 상하좌우를 공격하고, 도황이 회전하며 쳐내는 사이 조운룡의 화룡도가 도황의 목을 쳤다.

조운룡이 도황의 머리를 쳐들고 외쳤다.

“사부님! 보고 계십니까!”

놀라운 일이었다.

천외천이라 불리는 천황성에서도 수뇌부에 속한 자들이 속속 쓰러졌다.

마지막 남은 검제와 고장추, 십이호법의 싸움만 여전히 치열하였다.

***

의천맹과 흑천맹 그리고 재야무림인들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군웅각과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고수들과 대결하며 무수한 이들이 죽어 피바다를 이뤘다.

특히 재야무림인들의 피해가 컸다. 제대로 싸우는 자가 몇 명 남지 않았다.

“아악, 내 눈!”

“내 다리, 다리가 없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이뤘는데 천황성 고수들은 무자비하게 살행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의천맹과 흑천맹 고수들의 연수합격에 적잖이 쓰러졌다.

천황성 역시 손실이 컸다.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자들은 몇 남지 않았다.

복용하고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급상승한 자신의 무위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 많았던 게 요인이었다.

-퍼억!

불취가 기어이 군웅각 고수의 가슴을 베고 숨을 헐떡거렸다.

세 명을 쓰러뜨렸으나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애초에 그 역시 군웅각의 고수로 그들과 비슷한 무위를 지녔다.

죽었다 살아나며 얻은 바가 있어 한 수 윗줄로 오르기는 했으나 세 사람과 연달아 생사결을 벌였으니 지칠 만했다.

‘이제 끝인가?’

군웅각 고수들과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고수들은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화경 수준의 고수들이라 일반 무인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고수들이 나서야 했고 그들은 안면이 있는 ‘배반자’ 불취부터 죽이려 들었기에 고전을 했다.

불취가 기운을 가다듬으며 전황을 살펴보았다.

당가의 무인들이 암기와 독을 부려대며 군웅각 고수 하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당종도 거대한 체구를 지닌 중과 치고받고 싸우는 중이다.

당종은 대호에게 기습을 당했으나 당가의 전대 가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턱수염이 빳빳하게 덮여 장비를 연상케 하는 중은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어지간한 독이 통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정무문의 각주들과 격전 중이다.

의천맹을 공격한 군웅각 고수들은 거의 정리가 되어 가는 듯했다.

불취가 검을 불끈, 쥐고는 당종과 격전을 벌이는 중을 향해 다가갔다.

“이쪽은 신경 쓸 것 없다! 가솔들이나 챙겨라!”

당종이 외쳤으나 불취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를 가진 당우화는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불취에게 할아버지 당종의 안위를 신신당부했다.

물론 같은 당부를 당종에게도 했다.

당종은 불취가 무리하여 연달아 세 명을 상대하는 걸 보고 조마조마하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그런데 불취가 마지막 상대를 거꾸러뜨리니 적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땡중아! 이제 그만 해탈해야지!”

당종이 오른손이 허리춤을 스치는가 싶더니 비도가 연달아 열두 자루나 날아갔다.

과연 당가의 전대 가주였다.

“흥!”

중이 무쇠로 만든 선장을 빙빙 돌려 비도를 쳐냈다.

그때 당종의 손에서 팡, 소리가 났다.

-샤샤샥!

“커윽!”

중은 전신에 가느다란 침이 박힌 채 비틀거리다 뒤로 나자빠졌다.

당종이 손에 든 탈혼백침을 보며 중얼거렸다.

“에잉… 천주 놈을 죽일 때 써야 했는데 아쉽군.”

구양수에게 돌려받은 탈혼백침 죽통에 다시 가느다란 비침을 넣어 만든 탈혼백침이다.

아깝긴 했지만 당가의 무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으니 지체할 수가 없었다.

불취는 탈혼백침의 위력에 잠시 멍하니 섰는데 당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하고 있어? 가솔들이 죽어 나가는데?”

불취가 한숨을 쉬었다.

‘당가의 사위 노릇하기 어렵구나!’

불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당가의 무인들과 혼전을 벌이는 군웅각 고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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