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40화 (240/250)

240

철구는 한 면에 길게 홈을 파고 기다란 심지가 박혀 있다. 거기에 불을 붙여 심지가 다 타면 벽력탄이 폭발하는 원리다.

심지가 홈에 박혀 타들어 가기에 한 번 불을 붙이면 쉽게 끄기 어렵다.

대개는 한 치 정도 길이였는데 구양수는 대답하게 삼 푼 정도 남기고 불을 붙여 던졌다.

검황의 눈에 거의 다 타들어 간 심지가 눈에 들어왔다.

‘벽력탄?’

순간,

-꽝!

철구가 검황의 바로 앞에서 터졌다.

“크윽!”

검황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터졌다.

검황뿐만 아니라 일 장 거리에서 공격을 하던 청홍쌍요나 의천맹 고수들도 폭발 여파에 휘말렸다.

그들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뒤로 물러났다.

화포의 포환 위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벽력탄 또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구양수는 형 구양조로부터 내공을 전수받았다.

초절정 고수만큼의 내공을 지닌 그가 전력을 다해 던졌기에 검황은 더욱 피해가 컸다.

검황의 몰골은 처참했다. 수많은 파편이 전신을 덮었다.

“크으으. 이 쥐새끼같은 놈이….”

놀랍게도 검황은 여전히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치명상은 피한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철구가 날아왔다.

검황이 이번에는 장력을 쏟아 황급히 쳐내며 몸을 뒤로 날렸다.

-콰콰쾅!

철구는 곧바로 터졌으나 검황은 이미 삼 장 거리를 벗어나 있었기에 구양수가 던진 것만큼의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래도 구양수가 던진 벽력탄에 부상을 입어 내기가 원활하지 못했다. 그에 검황은 크게 분노하였다.

“네놈부터 죽여 버리겠다!”

검황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구양수를 찾았다.

“죽을 각오를 하고 다가가서 던지라고!”

구양수가 벽력수들에게 고함을 질렀으나 이미 늦었다.

검황이 구양수를 향해 날아오며 무형검을 그었다.

그때 남궁악이 끼어들어 검강을 날렸다.

“흥!”

검황이 코웃음을 치며 검강을 맞받아치고 재차 검강을 날렸다.

청홍쌍요가 재빨리 붉고 푸른 안개로 남궁악의 전신을 가렸다. 순식간에 남궁악의 신형이 사라졌다.

“으드득!”

검황이 이를 갈고는 재차 구양수를 향해 날아갔다.

검황이 잠시 지체하는 사이 구양수는 몸을 뒤로 빼더니 뒤에 있던 벽력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벽력탄을 건네라.”

검황만큼은 직접 죽이고 싶은 구양수였다.

구양수가 검황을 노리는 사이 대다수의 벽력수들은 천주를 노렸다. 하지만 천주는 검황보다 눈치가 빨랐다.

철구들은 천주의 삼 장 거리에서 벽에 부딪힌 듯 더 나아가지 못하고 터졌다.

-쾅!

지축이 흔들릴 굉음이 연달아 터졌으나 천주는 끄떡없었다.

“그만! 물러나라!”

이 광경을 본 구양수가 손을 들어 벽력수들을 제지했다. 아까운 벽력탄을 그새 절반 가까이 쓴 것이다.

구양수의 짐작대로 멀리서 던지는 벽력탄은 천주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벽력수들이 일제히 물러나자 구양수가 수신호를 하였다.

-따다당!

살아남은 귀영화승총대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화승총을 쏘았다. 그런데 목표가 천주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구양수의 신호를 따라 검황을 노렸다.

천주에게는 더 이상 화승총이 효력이 없다는 생각에 검황을 노린 것이다.

부상을 입은 검황은 남궁악과 청홍쌍요를 상대하는 동시에 화승총탄까지 날아오자 크게 분노하였다.

“크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화승총탄의 영역에서 피하고는 곧바로 자신의 전신 요혈을 두드렸다.

-펑, 퍼펑!

검황의 전신 요혈에서 폭음성이 터졌다.

남궁악 등이 느닷없는 검황의 행동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검황이 하는 짓을 본 청요의 안색이 홱, 바뀌었다.

“역천파혈마공이다! 홍요, 뒤로 물러나라! 모두 물러나시오!”

청요가 크게 외치며 다시 삼 장 거리를 물러났다.

청요의 외침에 천주도 주춤하며 검황을 보았다.

역천파혈마공!

전신 기혈을 거꾸로 돌려 주요 요혈의 잠력을 터뜨리는 마공이다.

가진바 내공을 서너 배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으나 요혈이 손상되는 부작용 때문에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천주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다.

‘흥, 끝끝내 나를 거부하더니 이런 수법을 익히고 있었군.’

검황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자신한 천주도 검황이 역천파혈마공을 익힌 사실을 몰랐다.

역천파혈마공이 극에 이르면 영인고의 영연을 끊을 수 있다. 아직 지배를 받는 걸로 보아 극의에는 이르지 못한 듯했다.

‘아무래도 버려야겠군.’

검황이 궁지에 몰렸으나 천주는 도움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검황 역시 무형검을 익힌 고수. 역천파혈마공까지 지니고 있다면 천주로서도 껄끄러운 상대가 된다.

차라리 동귀어진의 패로 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크아아아아!”

검황이 괴성을 지르며 역천의 기운을 무형검에 담아 마구 휘저었다.

보이지도 않는 살기가 장내에 퍼져 나갔다.

“피, 피해랏!”

주위의 백대고수가 일제히 뒤로 물러났으나 무려 십여 명의 고수가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크아악!”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욱!”

남궁악도 전신 요혈을 개방하고 전력을 다해 창천검을 휘둘렀다.

푸른 구체가 퍼져 나갔으나 역천마혈마공을 운용하는 검황의 무형검을 완전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끼기기기긱.

검황의 무형검과 푸른 구체가 갈리며 허공이 찢겨 나가는 기음이 터졌다.

남궁악의 얼굴은 물론 전신의 핏줄이 터져 오를 듯 부풀어 올랐다.

억지로 버텨내는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긴 소성이 들리더니 한 사람이 날아왔다.

“…!”

-번쩍

하늘이 수없이 많은 손 그림자로 뒤덮였다.

거대한 손 그림자들에서 나온 기운이 모여 강기의 검을 이루더니 그대로 검황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마치 뇌전에 꿰뚫린 것만 같았다.

강기의 검은 검강과 달리 뚜렷한 검의 형체를 지닌 강기였고 이는 무형검의 첫 단계였다.

남궁악과 대치하던 검황으로서는 급작스런 기습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크아아악!”

검황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모든 이들이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췄다.

“으으으….”

검황이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강기의 검이 관통했으나 아무런 흔적도 없다.

그러나 이미 내장이 박살 났다.

그 사이 손 그림자가 걷히고 한 사람이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아버지!”

구양수가 화들짝 놀랐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는 전대 천무방주 천수무흔 구연강이었다.

‘이, 이럴 수가!’

천주는 구연강이 나타나 강기의 검을 날릴 때 검황과의 영연을 끊었다.

그러자 검황은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왔다.

수십 년 만에 되찾은 온전한 정신. 그러나 그가 처한 상황은 너무나 허탈했다.

천산의 고매한 검으로 추앙받던 그가 무형검에 집착하여 천황성에 든 지 수십 년.

무형검을 이루었음에도 천주의 고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결국 그의 수족 노릇을 하다 덧없이 죽음을 맞이하다니.

-쿨럭.

검황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검황이 눈을 들었다.

가을 하늘이 푸르다. 풍운의 꿈을 품고 천산에 오르던 그날처럼.

마치 그날 이후 처음으로 푸른 하늘을 본 듯했다.

‘허무하구나.’

그 긴 세월 오로지 미증유의 극을 이루고자 살아왔는데 이렇게 비참한 죽임을 당할 줄 몰랐다.

문득, 천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주는 담담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마치 남의 일처럼 보고 있다.

검황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미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정신을 노렸던 승냥이 같은 자.

영연이 끊어진 이 순간.

지난날의 일들이 확연히 떠올랐다.

“천주… 너는 데리고 가겠다.”

검황이 뇌까리다가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엇!”

모두가 긴장하여 병장기를 세우고 검황의 신형을 찾았다.

“저런?”

“왜?”

검황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곳은 천주 앞이었다.

검황의 양팔이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천주의 손이 검황의 가슴에 박혀 있다.

“크윽!”

검황이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부었으나 소용없었다.

의외의 사태에 모두가 놀라 지켜보았다.

갑자기 같은 편끼리 죽고 죽이다니.

“끄르르….”

검황이 그대로 엎어져 잠시 꿈틀대다 숨을 거뒀다.

천산신검이라는 드높은 별호에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검황을 죽이고자 목숨을 걸었던 남궁악이나 청홍쌍요에게는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천주의 능력은 측량할 수가 없구나.’

남궁악은 잠력을 모두 폭발시킨 검황의 공격을 간단히 막아낸 천주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또 다른 벽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구양수가 구연강에게 다가갔다.

“대체 어딜 그리 쏘다니시는 겁니까?”

자신에게 방주를 물려주고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진 구연강이다.

따지듯 묻는 구양수에게 구연강이 인상을 썼다.

“화포에다 벽력탄까지 쓰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천무방은 무림문파다. 그에 맞게 처신해야지. 역도로 몰리고 싶은 게냐?”

구연강은 과거 천하 십대고수의 수좌를 노리던 인물.

뼛속까지 무림인이었던 그는 화포와 같은 무기를 동원한 아들이 탐탁지 않았다.

더욱이 관에서 금하는 무기다. 이 사실이 조정에 들어가면 역도로 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 전임 방주가 현 방주를 야단치는 것도 볼썽사나웠다.

‘좋은 소리는 한 번을 안 하지.’

어려서부터 구박만 받아온 구양수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가 보자마자 잔소리를 하니 샐쭉하여 입을 닫았다.

불만으로 입이 튀어나온 구양수를 더 이상 타박하지 않고 구연강이 천주 앞으로 걸어갔다.

“당신이 천황성 천주라는 자로군. 사람의 정신을 장악하는 사술로 무림을 지배하려 들다니. 그게 통할 것이라 생각했는가?”

“네놈이 천무방주 구연강인가? 과연 효웅의 기질이 있군. 기습을 하다니.”

천주가 구연강이 기습을 하여 검황에게 치명적 일격을 가한 걸 두고 비꼬았다.

구연강이 포권의 예를 갖추며 말했다.

“그래서 당신에게 정식으로 도전을 할까 하오.”

구연강의 시선이 왼팔을 잃고 창백한 얼굴로 장내 상황을 지휘하는 철권호에게 향했다.

“의천맹주, 이 자는 내가 맡겠소.”

그런데 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하다.

철권호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연강은 철권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검을 뽑아 천주를 향해 겨눴다.

강기의 검이나 무형검과 같은 절학은 그야말로 필살기.

지닌바 절초로 단숨에 상대를 죽이는 살인술이다.

진정한 무의 겨룸은 병기를 들고 초식을 통해 육신과 내공의 조화, 자신의 심득을 발현하는 데 있다.

구연강이 굳이 검을 뽑은 건 무를 겨루자는 뜻이었다.

평생 무를 추구하고 천하 십대고수의 수좌를 꿈꿔왔던 그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천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는 천하사패 패주이자 천하 십대고수의 일인이었던 구연강도 하찮은 존재였다. 그러니 손을 오래 섞고 싶지 않았다.

“아직 검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군.”

천주가 비스듬히 내린 오른손으로 검결지를 맺었다.

손속을 섞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대이니 필살기로 끝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구연강의 눈썹이 꿈틀, 하였다.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승패를 갈라야 하는 싸움에서 천주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구연강이 아들 구양수를 바라봤다.

늘 부족하다 여긴 구양수다.

오늘도 기상천외의 일을 벌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천황성 괴인을 몰살할 수 있었다.

둘째 아들에게는 그만의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천무방주다. 너를 믿는다!’

구연강이 다시 천주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서서히 검을 공력을 주입했다.

상대가 단판에 끝내자고 나왔으니 그 역시 가진바 최고의 수를 내놔야 했다.

-쩌엉!

구연강의 애검이 검명을 울리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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