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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가 검제 등을 돌아보았다.
검황과 도황, 권황은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하고 있었다.
서 있는 자는 검제뿐이다.
“아차!”
천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황급히 돌아보니 검제나 군웅각 고수들이나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자들이 비틀거리고 있다.
원래 영인고를 복용시키고 백 일간 대법을 시행했던 이유가 시술자의 육신에 천주 자신의 공력을 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주는 시술자의 정신은 물론이고 기운을 조절할 수 있었다.
자신의 기운을 심는 이유는 천주의 본래 목적이 단순히 정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분신을 이루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기본 바탕이 부족하여 화경 수준에 머물렀기에 그는 무림인들을 선호하였다.
그것도 문제는 있었다. 무림인들은 자신의 내공심법이나 영력이 있어 부작용이 많았다.
검황 등 삼황오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술받기 전 무공이 화경에 이른 자들은 현경에서 생사경까지 성취를 이뤘으나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몇몇은 영인고를 자각하고 스스로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런 시도가 있을 경우 곧바로 영인고를 봉인하여 스스로 제거했다고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천주에게는 쓰기 까다로울 뿐, 자신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훗날을 대비하여 그런 고수는 따로 삼황오제라 칭하고 대우해 주었다. 그리고 미증유의 경지를 보여 줌으로써 발아래 두었던 것이다.
천령대법을 완성하여 천주는 드디어 검제의 육신을 차지할 수 있었다.
나머지 검황이나 도황, 권제의 마지막 의식이 항거하고 있으나 그들의 육신을 차지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방금 포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키느라 전력을 기울이는 바람에 천령대법을 받은 이들에게 심었던 공력까지 모두 끌어 썼다.
그 통에 검제나 군웅각 고수들이 잠시 비틀거린 것이다.
천주가 재빨리 다시 기운을 분산하였다.
그러자 검제 등 군웅각 고수들이 곧바로 기운을 차렸다.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형형한 안광과 절대지경의 기운을 뿜었다.
그러나 검황과 도황, 권제는 여전히 운기조식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영인고의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스스로의 의식으로 꾸준히 수련하여 생사경에 든 자들이다.
그랬기에 잠깐 연결된 의식과 기운이 끊어진 사이 자신들의 의식으로 육신을 잡아챈 것이다.
‘흐흐흐. 그런다고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너희의 생사경이 진정한 생사경인 줄 아느냐?’
천주가 영인고의 지배를 완전히 끊으려는 검황과 도황, 권제를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사실 그들을 생사경으로 이끈 것은 천주다.
검제와 같이 마성에 물든 자는 죽어도 생사경에 들 수 없건만 자신의 깨우침을 영인고를 통해 계속 흘려줌으로써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검황이나 도황, 권제 등은 그중에서도 스스로의 자질이 뛰어났기에 약간만 도움을 줘도 됐다.
그러나 생사경이란 경지는 완전함을 이루는 경지다. 그렇기에 오로지 홀로 성취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는 건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다시 말해 검황과 도황, 권제가 백 년을 수련해도 생사경을 넘어 미증유로 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천주는 영인고를 통해 그들이 생사경을 넘어 미증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착각을 끊임없이 심어 주었다.
검황 등은 조금만 더 나가면 천주와 같은 수준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욕심에 사로잡혀 수십 년을 천황성에서 살았다.
천주는 그들이 영인고를 의식하고 자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걸 알지만 이렇듯 쉽게 다룰 수 있기에 용인해 왔다.
그런데 불완전해도 생사경은 생사경일까?
아주 잠깐 의식과 기운이 끊어진 사이 그들이 본래의 의식을 찾고자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천령대법이 완전해진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어림없는 짓이다!’
천주가 영인고의 힘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검황과 도황, 권제 등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하더니 눈을 떴다.
“일어나라! 아들들아! 적을 앞에 두고 뭣들 하는가?”
황제를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 천주가 하늘의 주인, 곧 하늘이니 맞는 말이다.
“너희는 나의 의식을 이어받은 영의 아들! 아버지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야 할 천자가 아니냐?”
그의 말에 검황과 도황, 권제 등이 벌떡 일어났다.
‘넘어왔구나.’
방금 몇 마디는 단순한 중얼거림이 아니었다.
천주의 영력을 담은 영언이었다.
검황이나 도황, 권제에게 백 일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완전히 자기의식을 찾았을 것이다.
잠깐의 의식 회복으로 자기의식을 찾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하지만 천주로서도 아쉬운 것이 시간이 짧아 검제처럼 완전히 육신을 차지할 수 없었다.
적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영력을 소진할 수는 없었다.
무림인들이 말하는 내공은 무한정이지만 영력은 다르다.
미증유의 길을 걷는 그에게도 아직 영력의 한계가 있었다.
‘으음, 아직은 무리인가?’
천주가 내심 아쉬워하는데 다시 쾅! 하는 폭음성이 들려 왔다.
천주의 미간이 꿈틀하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주에게는 날아오는 포환이 똑똑히 보였다.
아까는 느닷없는 기습에 당했지만 두 번 당할 천주가 아니다.
“이놈의 미물이?”
천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포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가 양손을 휘젓자 날아오던 포환에 기운이 연결되었다.
천주의 눈에 멀리 언덕에 서 있는 화포들이 보였다. 그 뒤에서 천리경으로 자신을 보는 놈이 있었다.
‘저놈이구나!’
천주가 한 바퀴 회전하자 포환이 빙그르르 돌더니 언덕으로 날아갔다.
***
“으헛! 포환이 다시 이쪽으로 날아온다!”
천리경으로 보고 있던 구양수가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포환을 퍼부었는데도 천주와 검황 등이 살아 있는 걸 보고 가슴이 서늘했던 구양수.
검황이 운기조식하는 걸 보자 부상을 입었다고 판단하고 아예 끝장을 내고자 남은 포환 하나를 발사하였다.
그런데 누런 곤룡포를 입은 천주가 날아오르더니 허공에서 포환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끝이 아니라 한 바퀴 돌리더니 다시 이쪽으로 날려 보내기까지 했다.
“피. 피해랏!”
천무방 무인들이 경악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행이라면 화포에서 발사된 것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게 날아오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포환은 정확히 화포들이 있는 곳에 떨어졌다.
-쾅!
땅이 뒤집어지고 화포 삼문이 박살이 나며 날아올랐다.
“으허허헉, 저 새끼는 인간도 아니야!”
그 먼 거리를, 두 사람이 간신히 드는 포환을 날려 보내다니. 천주의 무위에 구양수가 질려 버렸다.
그렇다고 포기할 구양수가 아니다.
“저런 놈은 아주 가루로 만들어 버려야 돼.”
구양수가 발악하듯 외쳤다.
“결사대! 앞으로!”
“충!”
화포수들을 제외한 이백육십 명의 무인이 도열하였다.
이백 명은 새로이 편성한 천무방 정예 신무와 참룡이다.
과거 검황이 구양조를 습격하였을 때 신무대주 주태와 참룡대주 평엽이 죽었다.
구양수는 새로운 대주들을 주태와 평해의 일가에서 뽑았다.
형 구양조와 자신을 살리려다 죽은 두 사람의 공을 기린다는 취지였다.
새로운 신무대주 주항과 참룡대주 평해는 전임 대주들보다 무공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구양수만큼이나 천황성에 대한 원한도 깊었다.
“벽력수 앞으로!”
“충!”
서른 명의 무인들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하나같이 체구가 큰 거한들이었는데 손에 아기 머리만 한 포환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포환은 구양수가 화포와 함께 어렵사리 구한 벽력탄이었다.
구양수가 벽력수들에게 일렀다.
“너희가 노릴 놈은 저기 저 검황이라는 놈하고 천주 두 놈이다! 엉뚱한 곳에 던지면 내 손에 죽는다!”
“예!”
“귀영화총대 앞으로!”
“예!”
화승총을 들고 있던 서른 명이 앞으로 나섰다.
“너희 역시 마찬가지! 총알 하나라도 허튼 데 낭비하지 말고 저 두 놈을 노려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구양수가 신무와 참룡대에게 외쳤다.
“신무! 참룡!”
“예! 방주!”
“너희는 벽력수와 귀영화총대가 저 두 놈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길을 터라!”
“예!”
명을 마친 구양수가 모두를 돌아보고 외쳤다.
“저 두 놈을 죽이기 전까지 살아갈 생각 하지 마라! 나도 죽을 각오다! 내가 죽든 저 두 놈이 죽든 오늘 끝장을 본다!”
구양수의 비장한 말에 모두가 흠칫, 하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백육십 결사대가 일제히 복창하였다.
구양수가 몸을 돌리려다 말고 멈췄다.
‘아니지?’
구양수가 다시 돌아서며 벽력수들을 바라보았다. 뭔가 스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벽력수들은 하나같이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은 비장한 얼굴들이다.
‘그래도 확실히 해야 돼. 이게 마지막 기회다!’
벽력탄은 저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벽력탄은 관에서 통제하는 물건이라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구양수조차 딱 서른 개를 구했다.
충성스러운 자들로 선발했지만 사람이란 자기 목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벽력탄을 던지는 훈련을 할 때 십 장 거리를 기준으로 했다.
포환이 터졌을 때 던진 사람이 안전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천주란 자가 하는 짓을 보니 십 장 거리에서 던졌다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구양수가 잠시 머리를 굴리다 벽력수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봤지? 날아가는 포환도 잡아 던지는 놈이다. 최대한 가까이 가서 던져라. 저 두 놈 중 한 놈이라도 제대로 맞춰 죽이는 자는 바로 본방의 봉공으로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다!”
“예!”
서른 명의 벽력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기회만 된다면 아예 붙들고 늘어져 같이 죽어라!”
“…!”
“혹시나 너희가 죽으면 집안 대대로 본방의 봉공가로 대우하겠다! 여기 모두가 증인이다!”
벽력수들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구양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그렇군!’
무거운 벽력탄을 멀리 던지기 위해 힘 좋은 놈들을 선발했는데 아무래도 탐탁지 않았다.
“모두 내려놔라!”
구양수가 외치자 벽력수들이 벽력탄을 내려놓았다.
“벽력수들 옆으로!”
벽력수들이 옆으로 나가자 포환들만 줄지어 놓였다.
구양수가 결사대는 물론 화포수들까지 모두 돌아보고 말했다.
“방금 내가 말한 걸 모두 들었을 것이다! 그 말을 따를 사람들만 나와서 벽력탄을 들어라! 누구라도 좋다!”
그러더니 구양수가 먼저 가서 벽력탄 하나를 들었다.
그러자 벽력수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들었고 신무와 참룡대에서 몇 사람이 나왔다.
원래 벽력수 가운데 칠팔 명이 주저하는 사이 서른 명의 새로운 벽력수가 채워졌다.
“주항, 평해!”
구양수가 외쳤다.
“예. 방주!”
“저놈들을 죽여라! 결사대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놈들은 천무방에 필요 없다!”
주항과 평해가 검과 도를 뽑아 휘두르자 망설였던 벽력수들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거침없는 구양수의 행동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구양수가 벽력탄을 들고 언덕에 올라 외쳤다.
“비겁한 놈들은 먼저 죽었다! 용감한 우리는 저 두 놈을 죽이고 집으로 간다!”
“예!”
구양수의 의지에 모두가 목청껏 대답했다.
“가자! 천무방 형제들아!”
“와!”
천무방 삼백 무인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
“…!”
천주가 포환을 막느라 영인고에 보내는 기운이 잠시 끊기는 순간, 강소군은 영인고가 터진 액체의 반발력이 사라짐을 느꼈다.
강소군의 금룡기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밀어붙여 액체를 완전한 환으로 뭉쳐낼 수 있었다.
“….”
강소군은 뭉친 환을 기운으로 밀어냈다.
강소군의 미간이 점차 불록해지더니 모래알만 한 환이 미간을 뚫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