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37화 (23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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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가 마치 당연한 명이라도 내리는 듯 말했다.

천주는 일부러 공력을 퍼뜨려 자신의 말이 모두에게 똑똑히 들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십 명이 자신의 천령개를 쳐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

“커억!”

“크아악!”

수많은 이들이 일제히 머리통을 내리쳐 죽는 광경은 끔찍하였다.

놀란 사람들이 뜯어말렸다.

“어억! 이보게 진정하게! 자네 미쳤나!”

“혈도를 짚어!”

천주의 영력이 실린 명을 따라 죽거나 미쳐서 날뛰는 이들은 재야무림인들과 흑천맹도들이 많았다.

나직한 목소리에는 영력이 실려 있었다.

공포, 분노, 슬픔과 같이 감정이 지배하는 상태가 되면 천주의 영력 실린 말이 더욱 힘을 발휘한다.

정파인들의 내공심법은 대개 정도를 따랐기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자가 많지 않았으나, 그들도 스스로 죽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당연히 재야무림인들과 흑천맹도들 가운데 사도의 심법을 익힌 자들이나 공력이 약한 이들은 그보다 타격이 컸다.

“아미타불!”

“무량수불!”

장엄한 불음과 도음이 일제히 들판에 울려 퍼졌다.

소림은 천황성으로 인해 장경각주 무오대사를 잃었다. 이에 은거했던 무오대사의 사형 무해대사가 직접 나왔다.

무해대사의 불력과 곤륜, 화산, 아미 등 도가의 고수들이 일제히 선음을 터뜨리자 사람들은 천주의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말 한마디로 수십 명을 그 자리에서 죽인 것이다.

“이것이 천외천의 진정한 힘인가?”

제갈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을 것이오.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영력이 실린 마음(魔音)을 펼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오. 다시 시전하지는 못할 것이오.”

무해대사가 말했다.

천주가 무해대사를 보며 말했다.

“제법이군.”

그러더니 고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일일이 손을 쓰기 아까운 미물부터 처리한 것이다. 너무 두려워 말거라.”

천주가 인심을 쓰듯 말했다.

“크으으으.”

최후의 격돌 여파로 십여 장이나 튕겨 나갔던 고장추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고장추가 퉤, 하고 핏물을 뱉고는 천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천주라는 놈이냐?”

“천둥벌거숭이가 하늘을 몰라보는군.”

천주가 혀를 찼다.

“으윽!”

남궁악과 조운룡, 중랑도 각기 신음성을 흘리며 각자의 병기를 쥐고 서서히 자세를 잡았다.

하나같이 성한 이가 없었다.

검제나 검황, 도황, 권제도 옷이 찢겨 나가고 핏물이 배어 있었다.

남궁악 등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자잘한 피해는 본 것이다.

“한심하군. 낫살이나 먹은 자들이 새파랗게 어린놈들 하나 제대로 처치하지 못하고.”

천주가 검제 등을 보며 다시 혀를 찼다.

천주가 들판을 둘러보았다.

말 한마디로 수십 명을 죽인 천주다.

또다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재야무림인들과 흑천맹은 주춤주춤 슬며시 뒤로 물러나는 중이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군웅각과 보령호신환을 먹은 자들이 여전히 들판 전역에 포진하여 있었다.

재야무림인들은 그들도 두려웠다. 천황성에서야 길가다 차이는 게 화경의 고수이지만 평범한 무림인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 보기 드문 고수들이다.

그들만으로도 여기 모인 무림인들 절반은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최대한 천주로부터 떨어진 거리이면서도 군웅각 고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곳까지만 갔다.

이를 보고 천주가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아까운 놈들을 죽여 줄까 하는데….”

천주가 검제 등의 뒤에 있는 천황성 괴인들을 보며 말했다.

“저 친구들도 오랜 세월 고생을 했지. 수십 년 만에 세상에 나왔으니 포식을 해야 하지 않겠나?”

천주의 말에 괴인들의 눈에 푸른빛이 돌았다.

“또 몰려올 것 같다!”

“저 눈 좀 봐.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모두가 부르르 떨었다.

천황성 괴인들의 조짐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천주가 나타나 검제와의 의식을 끊고 직접 괴인들에게 명을 내리니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이제 이 부산물도 처리해야겠군. 이를 두고 일석이조라고 할까.’

천주는 그동안 천령대법을 받다 부작용으로 괴인이 된 자들도 언젠가 쓸모 있지 않을까 하여 가둬 두고 연구해 왔다.

이제 천령대법이 완성됐으니 이들도 필요 없었다.

들판에 풀어놓아 무림인들과 동귀어진하게 할 셈이었다.

천령대법이 완성된 이상 멀쩡한 검제나 군웅각 고수들은 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귀중한 자산을 최대한 아낄 셈이었다.

“크르르….”

괴인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천주의 명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크하하하. 천주! 이 개자식아! 네놈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단박에 죽여 주마!”

이어, 천지가 흔들리는 굉음이 터졌다.

-콰쾅!

-쾅!

“으헉! 이게 무슨 소리야!”

귀를 찢는 굉음에 모두가 혼비백산하였다.

-콰콰쾅!

천주를 비롯한 검제 등 천황성의 고수들, 그리고 괴인들이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연달아 터졌다.

기파가 아닌 실제 불벼락이 터졌다. 뒤이어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콰콰쾅!

다시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들 사이로 또다시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천황성 고수들과 삼십여 장 거리 정도로 비교적 가까이 있던 남궁악과 고장추, 조운룡과 중랑도 검은 연기 폭발에 휩싸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포탄이다!”

낭인으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중랑은 바로 알아보았다.

다만 그가 전쟁터에서 본 화포보다 훨씬 강력했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포탄에 맞아 죽기 전에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빠져나가시오! 이대로 있다간 다 죽소.”

언제 자신들에게도 포탄이 떨어질지 모른다.

다시 천지가 흔들리고.

-콰쾅!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과 함께 연달아 불기둥이 터져 오르니 세상의 종말이 닥친 것만 같았다.

남궁악과 고장추, 조운룡과 중랑은 전력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세 차례 집중포격이 끝난 뒤 잠시 잠잠해졌다.

천주와 천황성 고수, 괴인들이 있던 자리는 짙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저 새끼가! 우리까지 죽이려던 게 분명해!”

간신히 빠져나온 고장추가 포탄이 날아온 곳을 보았다.

멀리 산언덕에 서 있는 자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그가 또 하나의 원수로 여기는 구양수였다.

***

구양수는 형 구양조로부터 내공을 물려받았으나 애초에 무공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형도 패했는데 자신이 며칠 더 갈고 닦아 봐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공 말고도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검황 같은 놈이라면 독도 통하지 않을 수 있지.’

그의 목표는 오로지 검황이었다. 무형검을 이룬 검황을 잡으려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구양수는 발이 넓었다. 그가 평생 해온 일이 기방에서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었는데 그중에는 꽤 쓸모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멀리 해외 원정을 간 군함에서 화포사수를 하다 돌아온 자였다.

구양수는 그를 통해 군함에서 쓰는 커다란 화포를 다섯 문이나 구했다.

원래 서양 이방인들의 물건이라는데 노획한 걸 빼돌린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모은 재산은 물론이고 천무방의 보고까지 털어야 했으나 구양수는 개의치 않았다.

네 필의 말과 천무방 무인들이 사력을 다해 끌고 온 커다란 다섯 대의 수레가 화포였다.

화포가 워낙 무거워 길이 파이니 무인들이 번갈아 달라붙어 힘을 써야 했고 그러다 보니 남보다 늦게 도착했다.

“뭐야? 벌써 싸움이 벌어졌다고?”

수하들을 독려해 달려온 구양수가 척후의 보고를 받고 버럭, 화를 냈다.

“천황성 계곡 앞 들판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화포사수가 구양수에게 말했다.

“차라리 잘됐네. 거리가 좀 있는 게 좋다네.”

“그래? 그럼 어서 설치하게.”

화포 사수는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대포를 설치했다.

“저놈을 겨누게.”

형을 죽인 검황을 조준하고 바로 불을 붙이려 했는데 공교롭게도 고장추와 남궁악 등이 달려들어 싸움이 벌어졌다.

“저 바보 같은 놈들이!”

천리경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구양수가 짜증을 냈다.

남궁악 무리뿐만이 아니라 의천맹과 흑천맹도들도 너무 가까이 있었다.

대포의 위력은 무척 강했다. 그도 딱 한 번 시험해 봤는데 일 장 반경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파편과 불기둥이 퍼지기에 십여 장 거리에 있는 사람은 무사하지 못할 위력이었다.

‘다 죽여 버릴까?’

사실 의천맹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형이 살았다면 모를까 이제 맹주가 되는 건 물 건너갔으니 관심 없었다.

‘아니지. 그래도 나중을 생각해야지.’

다 죽였다간 무림 공적이 되어 천무방이 위태로워진다.

그때 마침 천주가 나타나며 싸움이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게다가 무슨 사술을 부렸는지 수십 명이 자결했다.

구양수 일행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천주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정말 무시무시한 놈이구나. 말로 사람을 죽이다니.’

구양수는 천주는 꼭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남은 사람들이 천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뒤로 물러난 것이다.

“이때다! 불붙여!”

남궁악이나 고장추 등이 아직 위험 거리에 있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너희는 대의를 위해 희생했다고 쳐라!’

-쾅! 콰콰쾅!

다섯 대의 화포가 연달아 불을 뿜었다.

“죽었겠지?”

구양수가 천리경으로 살폈는데 검은 연기가 자욱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용케도 살아나온 고장추와 남궁악, 조운룡과 중랑이 보였다.

“저놈들이 살았네? 그럼, 그놈들도 살아난 거 아냐?”

“열다섯 발이나 한곳에 퍼부었는데 죽었을 거네.”

화포사수가 말했으나 왠지 자신이 없는 말투였다.

“열다섯 발 다 쐈다고? 그럼 이제 포환이 없잖아?”

“자네가 계속 쏘라고 하지 않았나?”

화포 사수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구양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 멀리서 저걸 이고 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일각 만에 다 썼다고?”

그가 구한 포환은 열여섯. 시험 삼아 한 번 쏜 것을 제하면 화포 다섯 문이 세 번씩 쏠 수 있었다.

구양수의 말을 들은 천무방 무인들도 기가 막혔다.

구양수는 편하게 마차를 타고 왔고 실제로 저 무거운 화포를 이고 지고 온 건 자신들이다.

그런데 벌써 다 쓴 거라니.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력은 어마어마했지만 너무나 잠깐이다.

근데, 마지막 화포를 맡고 있던 무인이 주저하다 소리쳤다.

“죄, 죄송합니다. 하나가 남았습니다.”

화포를 쏠 때 엄청난 진동과 굉음이 터진다. 그러다 보니 쏘는 이들도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마지막 화포에 포환을 넣던 무인은 옆에서 먼저 쏘는 바람에 놀라 발사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 대기해!”

구양수가 다시 천리경을 들어 검은 연기에 휩싸인 곳을 살폈다.

***

검은 연기가 걷힐 무렵 계곡 쪽에 몇 사람이 보였다.

천주와 검제, 검황과 도황, 권제였다.

놀랍게도 천주는 멀쩡했다. 그는 황색 곤룡포를 입고 있었는데 그을림 하나 없었다.

그러나 검제와 검황, 도황과 권황은 약간 상황이 달랐다. 팔다리가 끊어진 곳은 없으나 입고 있는 옷이 찢기고 검게 그을렸다.

천주와 그들의 격차를 한눈에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 이런 추잡한 짓을….”

천주가 움푹움푹 파여 황폐해진 앞을 보며 이를 갈았다.

천황성 괴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육편으로 화해 널려 있었다.

이지를 상실한 그들은 천주의 명이 있어야 움직인다.

날아오는 포환이 뭔지 알 리가 없으니 그 자리에 있다가 그야말로 산화하고 말았다.

-빠드드득!

천주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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